◈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사람만이 참된 스타.
예수님을 믿는 신앙인들 대부분이 오늘날 이 시점에 이르러 절망하거나 도리어 하나님을 원망하는 원귀(안티 기독인)들로 검게 변하였습니다. 그 까닭은 가룟유다와 같은 마음으로 지금껏 예수님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가룟유다가 꿈꾼 예수님이란, 하나님의 아들되신 신분으로 모세보다 다윗보다 더욱 뛰어난 지혜와 능력으로 주변의 적들을 다 정복할 줄만 알았습니다. 가룟유다는 그런 영광된 승리만 취할 줄 믿고 예수님을 부지런히 따라다녔는데, 결국 예수님은 세상 모든 악인들을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응징치 않고 끝내 모든 사람들의 죗짐을 대신 짊어지고 참혹한 십자가 형벌로 생을 마감한다는 말씀에 대해 더 이상 그를 추종해 볼 의욕을 잃고 말았습니다.
이런 상황에 이르게 되자 가룟유다는 한 술 더 떠 예수님에 대해 지금껏 알고 있었던 모든 정보들을 팔아 실속을 챙기기로 작정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을 팔아먹는 일로 세상에 유명해진 안티 기독인들의 원조, 곧 가룟유다의 탄생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팔아먹어야 할 무용지물로 생각한 동기는, 사람이 태어나 취할 수 있는 가장 큰 이득과 영광을 하나님께 인정받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세상 사람들로부터 받는 이익과 영광들로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즉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의 능력으로 애굽왕 바로 같은 자들을 굴복시키는 육적 승리만 통쾌한 일로 생각하였을 뿐, 하나님의 말씀을 세상 그 어느 누구의 말씀보다 더 존중히 여겨 순종하는 십자가의 삶이 가장 근본적인 승리라는 것을 깨닫지 못하였습니다.
위의 말을 다시 풀어 말할 것 같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하려는 죄악에서 벗어나는 일 자체가 세상의 모든 악을 다 정복할 수 있는 유일한 승리인 줄 모르고, 오직 마귀와 같은 약육강식의 수법으로 자신을 대적하는 모든 사람들을 멸하는 것만 승리로 착각하였습니다. 이게 바로 하나님께 인정받는 빛된 사람이 되느니보다 짐승 같은 자들로부터 인정받는 육적 부강의 사람이 되는 일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신앙인들이 이런 가룟유다와 같은 믿음으로만 신앙인 행세하려 할 뿐, 예수님과 같은 믿음으로 가장 먼저 하나님 한분에게 인정받으려는 참된 신앙인이 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보니 세상에 유행되는 마귀의 거짓말로 사람들이 우러러 보는 육적 권세와 미모와 지식과 지위와 재물만 갖추려고 혈안이 되었습니다.
하나님 한분에게 먼저 인정받으려는 양심의 올바른 믿음을 팔아 취할 수 있는 유익들로 인해 사람이 비록 부강한 지위와 권세를 모두 가졌다 할지라도, 그것들은 모두다 자신을 대적하려는 원수들을 파괴해 죽이는 멸망의 병기들로만 사용됩니다. 사람에게 원수가 발생되는 근본 원인은 오직 자기 자신이 먼저 마귀처럼 하나님과 원수 관계에 이르렀기 때문일 뿐, 자기 자신이 먼저 예수님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친밀한 부자지간이 되고 나면, 세상의 그 어떤 부강한 원수들도 추풍낙엽처럼 소멸됩니다. 그러므로 인류의 유일무이한 원수 척결 방법이 원수들보다 육적으로 부강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과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게 하는 원수 중의 원수인 자기 육신의 생각인 죄악을 예수님처럼 가장 먼저 두들겨 부수어 멸하고 하나님이 명하신 십자가를 짊어지는 일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한복음 1:1) 하심 같이, 사람이 천하무적의 강자가 되려면, 자신의 친아버지가 되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해 지키지 못하게 하는 원수, 곧 자기 육신의 생각인 죄부터 정복해 다스려야 합니다. 이것이 인간 최고최대의 승리요 행복이요 왕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예수님을 인간의 유일무이한 길과 진리와 생명으로 지명하셨는지, 인간 육신의 육감(肉感)으로는 도무지 그 이유를 깨달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순종해 지켜보아야만 비로소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앙인들이 가룟유다와 같은 허황된 믿음으로 예수님을 믿으려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그들을 가룟유다의 길로 가게 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생애를, 사람으로서 지닐 수 있는 지식과 지혜의 최고봉으로 삼으셨습니다. 그의 생애는 하나님의 소유물만 사랑해 가지려는 도적 같은 마귀의 짓은 따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이 담긴 거룩한 말씀을 순종해 지키는 것만 자식(피조물)된 근본 도리라는 것을 깨달아 순종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누구를 사랑할 때, 그 사람의 외모나 소유물 때문에 사랑하게 되면 반드시 도적 같은 거짓된 사랑이 되어 불행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유물에 불과한 전지전능한 능력으로 자기를 까닭없이 미워하는 원수들을 멸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실체와 같은 말씀을 최우선시하여 목숨까지도 바쳐가며 그의 말씀부터 순종해 지켰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을 불순종케 하는 자가 자신의 목숨일지라도 예수님은 그것을 미워해 버리셨습니다.
사람이 당하는 모든 불행과 고통의 근본원인은, 하나님의 실체와 같은 그의 말씀을 자기 목숨보다 더욱 사랑해 지키지 않고, 사단 같은 도적들이 되어 하나님의 소유물에 불과한 전지전능한 능력이나 부귀권세나 인기나 권력 따위를 탐하여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죄로 벌을 받나니 어찌 원망하랴"(예레미야애가 3:39) 하심 같이, 모든 사람이 겪는 고통의 근본 원인은 사단 같은 도둑 심보로 하나님의 소유물만 사랑해 가지려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받는 무시와 억울함은 이루 말로도 글로도 형언할 수 없을 정도입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을 창조해 친구 같이 지내려 하였으나 저들은 하나 같이 도둑과 창기들이 되어 하나님의 소유물만 사랑하기 때문에 그의 진노하심은 극에 달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매단 것은,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고 난 후 그들로부터 받고 겪게 된 모든 억울한 일들에 대한 분노의 채찍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여느 사람들과 같이 하나님께 "죄도 짓지 않았는데 이렇게 때릴 수 있습니까?" 하며 원망하지 않고 욥과 같이,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하는 마음과 또,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재앙도 받지 아니하겠느뇨" 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이 명하시는 그 무엇이든 다 까닭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셨습니다. 즉 하나님의 말씀 잘 듣는 일만이 사람의 본분으로만 취급하고 또 하나님은 자녀된 사람들에게 최고의 것들을 주시기 위해 고난도 주실 뿐, 결코 김일성 일가들 같이 하나님의 권위만을 위해 사람들을 아무렇게나 소모시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예수님의 이 같은 믿음이 사람으로서 갖출 수 있는 가장 온당한 태도입니다. 그러나 주제넘은 인간들의 행동들을 보십시오. 지음받은 자가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 육신의 좁은 식견으로 하나님의 언행을 마구 판단하려 할 뿐, 아버지는 자녀들에 한해서만 무한대로 선하고 의롭다는 것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주객이 전도되어도 이만저만 전도(顚倒)된 것이 아닙니다. 자신들이 무엇을 만들 때에는 만든 모든 것들에게 오직 자신의 뜻과 의도대로만 충성하고 복종하길 바라면서, 자기 자신이 자기를 만드시고 키우시는 하나님께 대해서만 주제넘게 나를 왜 이렇게만 만들어 천대하고 남들처럼 존귀하게 만들지 않았습니까 하고 항변합니다. 도대체 이런 못된 버르장머리는 어디에서 누구로부터 배웠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런 버르장머리 없는 인간들에게 겪고 당한 억울한 일들에 대해 예수님은 자기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아버지께 피조물된 아들의 본분이 어떠하여야 함을 실행해 보여드려 하나님의 한맺힌 응어리를 풀어드리지 않을레야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즉 사람들이 저마다의 가치관과 주의주장을 설정해 두고 하나님을 자신의 종처럼 취급해 부려먹으려는 모든 악행들에 대해, 예수님은 자신에게 있는 전부를 쏟아부어 하나님의 원대로 뜻대로 자신에게 보복하고 원수 갚도록 하시었습니다. 예수님의 그같은 충효의 행동이 뭇 인간들이 세상 끝날까지 하나님께 저지른 모든 악행들에 대해 진노하시는 한과 응어리들을 풀어드리는 유일한 산 제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사람의 참된 본분이 어떠하여야 함을 예수님이 몸소 실행하고 또 그에 대한 결과가 어떠하다는 것을 실증해 보였습니다. 그는 만사 제켜두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찾아 그의 원대로 뜻대로 살아가는 것을 최우선시 하였음으로 말미암아 마침내 하나님께서도 자신의 천지창조의 뜻을 제대로 깨달아 순종한 자식다운 자식을 얻은데 대해 흡족해 하시며 그가 구하는 그 무엇이든 다 들어주십니다. 예수님의 소원은 자신을 곡해해 죽인 뭇 인간들의 죄부터 용서해 달라고 하셨으니 참으로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아들로서의 선한 소원이었습니다. 이것은 사단도 생각지 못한 기묘한 하나님의 인간 구원 방법이며 또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아들의 탄생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로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케 하셨은즉 그 영혼을 속건제물로 드리기에 이르면 그가 그 씨를 보게 되며 그 날은 길 것이요 또 그의 손으로 여호와의 뜻을 성취하리로다"(이사야 53:10) 하심 같이, 하나님이 만물을 만드는 것은 수월한 일이었으나 자신의 속마음을 깨달아 자원하는 마음으로 도와줄 피조물, 곧 자식다운 자식이요 아내다운 아내 하나를 탄생시키는 것이 그렇게도 어렵고 힘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씨앗, 곧 완벽한 자식이요 초절한 미모를 지닌 아름다운 아내는 그리스도와 같은 순종의 사람들입니다. 이런 자녀가 되어 요구하는 모든 요구(기도)는 하나님께서 무조건 들어주지 않을레야 않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천하만물보다 자신의 속 뜻을 살피어 도와줄 피조물을 이토록 바랐던 것은, 바로 사단의 반역사상 때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께로 지음을 받았으면 당연히 하나님을 최우선적으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한 본분이거늘, 그는 하나님보다 도리어 수많은 피조물들에게 존대받기 위하여 부모 같은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난 후, "피조물은 피조물 스스로의 뜻을 성취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지 창조주의 일방적인 뜻대로 사는 노예가 되어서는 안된다. 그리고 피조물은 피조물 제일주의로 살아야 한다."라고 선언한 최초의 반역자입니다. 즉 "사람이 만든 모든 기계와 작품들은 자신들을 만든 발명가(제작자)의 뜻대로 작동되지 말고, 제작된 물품 자체의 뜻대로 임의대로 행동하여 불량품이 될 자유가 있다."라고 선동질한 창조 세계 최초의 반란 선동가가 되었습니다.
반역자들 뿐인 세상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대한 충효는 참으로 아름답고 숭고합니다. 여인이 아무런 유혹자나 훼방꾼이 없이 그 정혼한 남편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많은 유혹자들과 대적자들을 물리치고 정절을 지켰을 때에는 그의 심성만큼 아름답고 찬란하고 빛난 존재는 세상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유혹자와 훼방꾼들로 뒤덮인 세상과 싸워 이기는 일에 의미를 두고 세상에 오셨건만, 오늘날의 신앙인들은 그런 유혹자들의 범람과 만연을 마귀 탓으로만 돌리고, 자신들은 그저 육적인 지위와 권세로 남들보다 뛰어나려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 유혹자들과 핍박자들을 즉시 쳐 죽이지 않고 어찌하여 그들이 우리들을 짓밟도록 용납하십니까?" 하며 항의할 뿐, 하나님의 말씀보다 하나님의 소유물을 더욱 사랑한 자신들의 빨갱이 짓은 회개하지 않습니다.
세상의 주인공들인 그리스도인들이여! 지금 이 시대가 아무리 불신풍조가 만연해 행악자와 핍박자와 유혹자가 많다 할지라도 예수님 당시의 상황과 비교하면 참으로 소꼽 장난에 불과합니다. 김정은과 문재인이 한반도의 주인공이 아니며, 인기 배우와 가수들과 유명한 운동선수들이 스타가 아니라, 오직 의의 도를 지니고 사람의 가치와 값을 제대로 알고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이 참으로 하나님과 천군천사들과 우주만물이 초미의 관심을 기우리고 바라보는 주인공들이며 스타들입니다.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다니엘 12:3) 하심 같이, 이 세상의 영원무궁한 별들은 오직 창조주 하나님 아버지의 말씀을 세상 그 무엇보다도 사랑해 지킨 아름다운 성도들입니다. 성경에 명시된 지혜로 많은 사람을 옳은데로 돌아오게 하는 동방의 찬란한 별들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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