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월당 역씨와 대화
대구에 살면서 반월당 역을 한 번도 지나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대구의 인구가 이백오십만이고, 지하철이 뻗어있는 경산시의 인구가 삼십만이다. 주변 시군의 인구까지 합하면 지나다니는 사람이 삼백만은 너끈하다. 반월당 역씨는 이들의 속내까지 훤히 안다고 뻐긴다. 반월당 역의 말을 아무리 깎아내리더라도 별난 사람이라면 기억의 그물망에 걸렸으리라. 삼백만이라니. 어처구니없어 하는 내가 아니꼬운지 말씨가 퉁명스럽다.
“나이답지 않게 챙이 달린 모자를 쓰고 다니는 범어동 영감도 알고 있어. 왜 그런 모자를 쓰고 다니냐고 했더니 대답이 가관이야. 별 생각 없이 아들의 모자를 쓰고 나갔는데 여인네가 ‘선생님 그 모자를 쓰니 십 년은 젊어 보입니다,’ 하더라는 거야. 젊다는 말이 모자에 마술을 걸어서 자기의 머리를 떠나지 못하게 한 거지.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는 거야, 자기 속내는 감추고 남의 탓으로 돌리는 것을 보면. 쯧 쯧.”
범어동에 사는 늙은이도 반월당 역씨의 말투에 기분이 상했다.
“이보시게. 반월당 역님. 전동차가 풀랫홈에 닿을 적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가는 사람을 보면 줄을 지어서 가는 개미떼 같지 않아? 꼭 같은 모습인데 어떻게 속내까지 다 알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왜 몰라. 젊어보인다지 않았어. 젊음은 바로 ------. 그게 진짜 속내이지.”
반월당 역은 말을 계속 하려다가 그만 두었다. 뻔한 이치가 아닌가 하는 투다. 내가 왜 과민하게 반응하는 걸까? 행여나 내 속내가 드러나지 않았나 싶어서 이다. 얼마 전이었다. 떠밀리다시피 에스컬레이터에 발을 올려놓았다. 바로 눈높이의 내 앞에 허벅지까지 훤히 드러난 다리가 보였다. 나도 모르게 눈길이 다리에 머물렀다. ‘눈높이잖아’ 억지 변명을 하면서도 민망하여 눈길을 돌려버렸다. 나는 여자의 다리 따위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반월당 역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한 행동이었다. 에스칼레이터 벽면에는 취직이 잘 된다면서 대학을 선전하는 문구들이 파노라마가 되어서 뒤로 물러났다. 늙은이인 나하고는 아무런 관련도 없을뿐더러 흥미도 없어서 한 구절도 읽지 않았다. 그래도 읽는 척 했다. 반월당 역도 나더러 주책이라는 말을 하지 않겠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런데 갑자기 오금이 저렸다.
나는 세 번이나 ‘모른다’라고 부정했던 베드로가 생각났다. 내 눈이 여자의 허벅지에 머물렀을 때는 흥미를 느꼈던 것은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의 속내를 훤히 안다는 반월당 역이 또 나를 건드렸다.
“남자들이란 젊으나, 늙으나 여자를 보는 눈이 뻔하다니까.”
이 말은 지난 젊었던 날을 다시 기억 속으로 불러내서 나를 찔끔하게 했다.
수련의 때 교수님을 모시고 방석집에서 술자리를 마련했다. 우리는 맞선을 보는 총각들처럼 얌전하게 앉아 있었다. 교수님들이 먼저 자리를 떴다. 남은 우리도 교수님들처럼 옆에 앉은 여자의 몸을 만지기 시작했다.
“이봐요. 점잔을 뻬던 의사 선생님도 속에는 짐승이 들어있다니까. 남자들이란 늙으나, 젊으나 모두 짐승이야.”
까르르 웃으면서 내뱉는 말이었지만, 겉과 속이 다르다는 말을 듣는 순간에 움찔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상흔처럼 기억에서 떨어지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 결혼도 했고, 킨제이 보고서도 읽었다. 프로이트도 공부했다. 겉과 속이 다른 것이 인간이 지닌 속성이란 것도 배워서 알았다. 그런데도 여전히 나를 섬뜩하게 한다. 반월당 역이 비아냥거리면서 하는 말도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이므로 그의 눈치를 살피기가 바쁘다.
겉과 속이 다르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데도 아닌 척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은 비극이다. 그런데도 반월당 역은 나의 약점을 알고 있다는 듯이 히죽희죽 웃으면서까지 깐죽거린다.
메두사는 보석 같은 눈을 가진 아름다운 처녀였으나 포세이돈과 성관계를 맺었다는 죄로 저주나 퍼붓는 추한 여인이 되었다. 메두사는 성의 상징으로서 매혹하는 얼굴과 섬뜩하게 하는 두 개의 얼굴을 가지게 되었다. 메두사를 훔쳐보는 자는 죽음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메두사는 매혹의 얼굴이다. 매혹은 바라보는 자가 눈을 뗄 수 없게 한다. 다시 말하자면 메두사는 자신을 똑 바로 바라보게 해놓고는 그 자를 죽음의 구렁텅이로 인도한다. 우리가 만들어 낸 신화이다.
여자와의 관계에는 원초적으로 매혹과 두려움이 들어있다. 양면을 매혹과 죽음으로 만든 거울을 쥐고 있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여자의 다리에 매혹을 느끼지 않으면 두려움도 없지만, 여자의 다리에 눈을 떼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죽음이 두려우면 여자의 다리 따위는 바라보지 말라는 반월당 역씨의 말에 어이가 없어서 나도 한 마디 했다.
“매혹하는 것을 바라보지 말라고? 그건 죽음이지. 살아 있는 사람으로서 가능이나 한가?”
“테세우스는 바로 보지 않았기에 메두사의 목을 벨 수 있었어.”
반월당 역은 다시 나에게 말을 건넸다.
“내가 너를 비웃는 것이 아니야. 화내지 말게. 너야말로 입도 벙긋하지 않는 나에게 너의 두려움을 내 탓으로 뒤집어씌우는 것이 아닌가. 나는 지켜만 볼 뿐이라네. 이 역을 지나다니는 모든 사람을 지켜만 볼 뿐 일언반구도 하지 않았다네. 너는 무엇 때문에 스스로 두려워하면서 내 탓으로 돌리는지------. 겁쟁이에다 비겁하기조차 하구나. 매혹하는 것에 눈을 뗄 수 없다면 겉과 속이 어떠니 하는 쓰잘데기 없는 소리도 하지 말라는 거지. 다리를 훔쳐보는 너보다 더 한 짓을 해도 나는 못 본 척 한다네.”
수성구청역에 닿을 때까지도 기분이 좋아지지 않았다. 반월당 역보다는 많이 조용하다. 나는 에스칼레이틀 타고 아무런 생각도 않고 올라갔다. 저 편에서는 두 사람이 내려왔다. ‘아니, 이건 또 무슨 꼴이람.’ 젊은 여자애와 남자애가 꼭 끌어안고 서로 얼굴을 부비고 있었다. 내 곁을 지나칠 때도 떨어지지 않았다. 이번에도 못 본 척했다. 속으로 혀를 차면서 투덜거렸다.
“반월당 역씨는 나에게는 별별 소리 다 하더니만 어찌 하여 저 젊은이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는가?”
“어쭈, 이 양반 봐라. 내가 언제 입이나 뗐어. 자기 스스로 나를 핑계되면서 떠들었으며. 하기야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만 사랑을 나누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소.”
나는 눈에 저절로 뜨이는 여자 다리를 보았는데 비난하는 온갖 소리가 몹시 불편했다. 젊은이에게는 아름답다고 했을까? 아주 태연한 표정인 젊은이를 보면 반월당 역씨의 말마따나 입도 벙긋하지 않음이 분명하다.
모임에 나갔다. 내 나이들이다. 전철을 타고 다니면서 젊은이들이 포옹하고 있는 것을 보았으나 일부러 못 본 척 했나보다. 세상은 말세가 되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바뀐 세상에 대한 두려움의 표현이다. 그러나 서로 끌어안고 있던 젊은이의 얼굴은 행복해 보였고, 평화로워 보였다. 두려움은 찾아 볼 수 없었다. 반월당 역씨가 젊은이에게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벌 받을 짓이라고는 하지도 않는 노인들이 왜 말세라면서 두려워 하는걸까? 반월당 역씨는 할 말이 없습니까? 대답이 없다.
(반월당 역씨는 큰 타자이고, 범어동 노인은 ‘나’라는 주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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