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10.13. 성공회 대전교구 사회선교기관 간사리더쉽 교육. 유낙준주교.
살아남고, 견디고, 감사하는 리더쉽
하나. 대한성공회 대전교구 기관에서 일한다는 것이 내 인생에 어떤 의미이어야겠습니까? 성공회 기관장이 자신의 인생 전체에서 어떤 가치이어야하겠습니까? 기관의 간사로 갖는 리더쉽의 근거를 어디에 둡니까? 혼란과 절망이 가득한 세상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서 희망을 찾았다는 인류의 리더자이신 엘리자베스여왕(1926.4.21-2022.9.8)의 고백이 우리의 리더쉽이라면 우리는 성경에서 리더쉽의 원형을 두어야 할 것입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성경을 잘 익혀온 것입니다(2디모3:14).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써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데 유익한 책입니다(16). 이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두 선한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2디모3:17).” 그러니 “그리스도 예수가 다시 오실 것과 군림하실 것을 믿고(4:1), 끝까지 참고 하느님 말씀을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십시오(2디모4:2). To preach, insist, convince, reproach, and encourage as you teach with all patience.” 이렇게 말씀대로 산 리더인 나를 후손들이 동상을 세울 때 내 동상의 손에 무엇을 잡고 있는 것을 만들기 원하십니까?
둘. 베드로 동상에서 손에 잡고 있는 것은 천국열쇠입니다. “나는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마태16:19).” 그것처럼 내 손에 잡은 것이 무엇이면 좋겠습니까? 세 번이나 예수님을 배신했지만 예수님의 한결같은 베드로에 대한 사랑으로 베드로는 천국열쇠를 받았습니다. 천국열쇠를 받기 위해서 죽기 전에 꼭 마셔야 죄를 사하는 “영적인 바위에서 나오는 영적인 음료(1고린10:4)”인 와인을 손에 잡아도 좋을 것입니다. 예전의 로마수도사들이 생자크까지 가는 성지순례의 중간기착지인 포므롤 Pomerol 에 교회를 세웠고 그곳에 포도농장서 만든 페트뤼스 Pétrus 와인은 수도원의 와인이라 하여 상표에 성인 ‘베드로’를 형상화하였고, 노란색 바탕의 붉은 글씨는 ‘와인의 비밀이 담긴’ 메시지로 그의 오른손에는 황금의 열쇠, 즉 천국 가는 열쇠를 갖고 있습니다. 1953년 엘리자베스여왕의 대관식때 사용했던 페트뤼스와인으로 유명하고, 케네디 대통령의 영부인인 재클린여사도 이 베드로의 이름을 붙인 페트뤼스와인을 즐겨 마셨다고 합니다. 지금부터 페트뤼스와인 식구들과 동료들과 즐겨 마셔서 놀면서 일하는 즐거운 인생을 만들어 갑시다.
셋. 성당 안에 모신 예수님의 이콘의 손에 들린 성경책 안의 말씀은 대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요한14:6).”인데,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 안의 이콘에 든 말씀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8:12).”로 LUX MUNDI가 새겨져 있습니다. 대한성공회는 예수님을 빛으로 모셔서 어둠 세상과 어둔 자신을 예수님의 빛으로 밝게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빛으로 우리들이 밝은 인생이길 빕니다. 그렇다면 성공회 기관의 간사의 가슴에 새겨진 삶의 방향을 정한 말씀은 무엇입니까? “하느님에게서 나의 도움이 오는구나(시편121:2).”“하느님께서는 너의 그늘, 너를 지키시는 이(시편121:5).” “하느님께서 너를 항상 지키시리라(시편121:8).” “하느님의 말씀은 꿀보다도 더 답니다(시편119:103).” “하느님의 계명은 더 지혜롭게 나를 만드십니다(시편119:98).” “궁핍한 사람에게 자선 베풀기를 미루지 말라(집회4:3).” “고아들을 아비처럼 대하라(집회4:10).” 이러한 말씀 중에 자신에 맞는 말씀을 택하여 가슴에 새기면 좋을 것입니다. 그래야 지뢰밭을 걷는 인생이기에 예기치 않고 불쑥 다가오는 황당한 사건과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일들에 대해서 평정심을 잃지 않고 성공회 기관의 간사의 역할을 수행할 것입니다. 간사는 바로 성경에 기반한 생활원칙을 지닐 때에 모든 간사들뿐만 아니라 지역주민들과 식구들로부터 존경을 받게 될 것입니다.
넷. 성공회 간사가 성공회 신앙을 만난다는 뜻은 하느님을 믿고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너무 쉽게 음행으로 무너지게 되고, 하느님을 무시하거나 홀대하다가 가슴이 부서지게 되고, 불평을 입에 달고 살다가 선한 힘이 작동되지 않아 멸망하는 삶을 사는 이들에게 하느님을 알게 하는 것이 간사의 역할입니다. 성공회 기관의 간사로 산다는 것은 하느님의 말씀을 붙잡는 삶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믿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고 견디어 내야 합니다. 하느님을 믿으면 참고 견지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을 믿는다함은 좁고 작은 마음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우주를 품은 큰 마음으로 살기 때문입니다. 큰 마음이 없다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렇게 믿음이 없이 살면 참을 줄 모르고 소리를 냅다 지르는 기관장이 되기 쉽습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교만하거나 자만심에 가득차서 자기중심적인 이기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무엇보다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을 써 주시는 하느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 겸손하게 되고 그 겸손으로 자신을 살게 합니다. 그리하여 한 사람으로 선하게 살게 됩니다. 성공회 기관의 간사가 하는 가장 우선적인 길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이 주시는 힘으로 사람들을 격려하는 일입니다. 수직적으로는 하느님과 관계하고 수평적으로는 다른 사람에게 힘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호경을 이마에 긋고 가슴에 긋고, 왼쪽 어깨에 긋고 오른쪽 어깨에 긋고 가슴에서 두 손을 모아 하느님께 자신을 바치는 자세를 갖게 됩니다.
다섯. 결국 성호경은 하느님을 믿고 이웃을 격려하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래서 성공회 간사는 격려하는 일 Encouring을 잘하는 사람이 됩니다. 격려할 말을 제 때에 하여 필요한 사람에게 힘을 주고, 상처입은 사람에게 격려를 힘있게 하여 빠르게 회복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거친 말은 아주 짧은 순간에 그치고, 대다수 시간인 긴시간은 늘 격려하는 말로 채웁니다. 성공회 간사가 만나는 분들은 대다수가 힘든 시간을 겪는 분들이기에 격려와 지지가 많이 요구되는 상황입니다. 가난한 사람이 한 일에 대해 자신감을 가질 수 있도록 격려해 주고 지지해 주는 사람이 성공회 간사입니다. 지식을 많이 가진 동무는 자신이 아는 지식 안에서만 움빅이기에 깊은 관계를 지니기 어려울 수 있고, 삶의 가치의 고민을 인도해준 소명을 논한 동료는 깊게 오래 유지되는 우정을 갖게 합니다. 성공회 기관의 간사는 정보제공만 하기보다는 삶의 고민을 듣고 살 이유라는 근본적인 이야기를 나눌만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존경하면서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은 즐거운 인생을 함께 할 사람이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그리하여 자신이 스스로 즐거운 인생을 살고자 힘을 쓰게 됩니다. 사색적인 사람이어서 수도원에 들어갈 줄 알았는데 세상에 살고 있고, 활동적인 사람이어서 세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수도원에 들어간 사람이 있습니다. 그렇게 제 판단대로 세상이 움직여지지 않는다는 것을 가능하면 빨리 인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오류일 때도 많다는 것을 알면 겸손한 삶이 됩니다. 성공회 간사는 겸손한 사람입니다. 거만은 고통을 불러오게 하지만 겸손은 고통을 사라지게 하는 힘이 있기에 겸손은 많은 고통을 벗어나게 합니다.
여섯. 고통은 인간 누구에게나 오는 공통적인 요소입니다. 어린 시절에 힘든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고, 성인이 되기 전에 고통의 터널을 지나가기도 합니다. 고통이 언제 오는지를 파악할 필요는 있습니다. 대개 고통은 연약할 때 오고 면역력이 강할 때에는 고통이 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복이 된 사람도 있고 다른 어떤 이에게는 고통이 망가는 지점이 되기도 합니다. 당신은 고통이 복이 되는 삶이신가요? 아니면 고통이 자신이 망가지는 것으로 받아들이십니까? 인간은 불에 단련되어 사는 존재로 고통 중에 더 강해지는 존재임을 확신하는 성공회 기관의 간사이길 빕니다. 먼저 자신이 고통이 복이 되는 삶을 경험했다면 지금 고통 중에 있는 가난한 사람에게 확신에 찬 격려의 말씀을 줄 수 있게 됩니다. 고통의 불이 때로는 자신의 숨을 쉬지도 못하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 견디기 어려울지라도 참고 견디면 그 참음으로 인하여 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우리 성공회 간사들이 그러하기를 빕니다.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준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큰 선물을 준 것과 같다.”와 “만약 누군가가 현재 어느 항구로 항해하고 있는지 모른다면, 그 어떤 바람도 순풍이 아니다.”고 말씀하신 네로황제의 스승인 고대 로마 철학자 루시우스 안나에우스 세네카 Lucius Annaeus Seneca(BC 4∼AD 65)는 예수님과 동시대에 산 사람으로 “때로는 심지어 살아가는 것조차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말한 것은 고통이 극에 달할 때 한 말씀입니다. 자신에게 용기를 주는 성공회 간사는 분명히 가난한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는 사람으로 살게 됩니다. 용기는 내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외부에서 주어질 때 생기는 것입니다. 하느님이 주시는 힘으로 용기를 발휘하는 빛나는 삶이시길 빕니다. 성공회 기관의 간사로 고통이 극에 달한 사람들을 수시로 만나실터인데 하느님의 큰 마음으로 만나셔야 합니다. 그러려면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강고해야만 합니다. 믿음이 단단한 기관의 간사는 믿음이 약한 가난한 사람들을 세우는데 좋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일곱. 우리가 고통을 겪고 나면 고통이 우리에게 선물을 준 것을 생각하게 됩니다. 벤 오크리 Ben Okri는 “고통보다 더 위대할 수 있는 확실한 우리의 능력은 창조하고, 극복하고, 견디고, 변화시키고, 사랑하는 능력입니다.” 고통이 우리에게 준 선물은 우리의 상상력과 창조력이고 사랑할 능력이고 참는 인내력이고 확장된 사랑능력입니다. 그러니 고통을 달게 받는 참고 견디는 길이 가장 좋은 길입니다. 예언자 예레미야가 바빌론제국에 의해 예루살렘이 망하고(BC586) 포로로 끌려간 엘리트들의 제국에 대한 원한과 절망을 알고 그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너무 고통스럽고 혼란스럽기에 죽을 때까지 먹는 것을 중단해야하는지 여부를 고려하는 그들에게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인 참고 견디라고 전합니다(예레미야 29:1-7). 성공회 기관의 간사들은 예언자 예레미아의 편지쓰는 심정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야 할 것입니다.
먼저 예레미아는 하느님이 이들에게 주신 말씀을 전한다고 합니다(4). 그래서 성공회 기관의 간사들은 먼저 하느님의 말씀이 지금 만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신 말씀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해서, 기도를 통해서, 그리고 성경읽기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알게 됩니다. 그래서 성공회 기관장과 간사는 예배에 참여하고 나서 사람을 만나고,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 전에 하느님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나서 가난한 사람들을 만나서 힘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유배지에서 집짓고 정착하여 농사짓고 혼인하고 자녀를 낳으라고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들을 증가시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너희를 포로로 데려간 바빌론 도시의 평화와 번영을 구하고 그것을 위해 주님께 기도하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바빌론이 번성한다면, 포로민 당신도 번영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예레미아 예언자는 편지글에 씁니다. 바빌론제국이 망해야 자신들이 고국에 빨리 갈 것이라고들 생각하고 마음 속에 칼을 갈고 있는 포로민들의 생각과는 정반대의 생각을 편지글로 보낸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바빌론에 있는 히브리 백성들에게 전한 메시지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소식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주신 메시지는 '너희는 집에 가지 않을 것이다. 일생 동안 바빌론이 되도록 계획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를 통해 백성들에게 그들이 70년 동안 포로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레미야가 유배자들 가운데 살아남은 장로들에게 이 편지를 쓸 때, 그들은 성전과 나라와 삶의 방식을 잃은 것을 애도하고 있지만, 그들은 여전히 거짓 선지자들이 선포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그들을 구원해 주시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에게 전하신 메시지는 그들이 바빌론에서의 삶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바빌론과 그 통치자들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는 것인데, 왜냐하면 그들의 번영은 이제 그들의 정복자들의 번영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원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그들의 새로운 현실에 적응하는 것이 그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불편하게도 합니다. 내 생각과 하느님의 말씀이 전혀 다를 수도 있습니다. 그때 하느님의 말씀을 수용하는 그 마음이 신앙입니다. 현대인이 하느님의 말씀보다 자신의 생각을 우선시하기에 이를 가장 잘못하는 점입니다. 하지만 성공회 간사는 하느님의 말씀을 우선적으로 선택하는 삶을 살아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하느님께 인정받는 사람입니다.
여덟.그들이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언젠가는 먼 미래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로 돌아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지고 그때까지 살아남는다는 것은 포로로 잡혀있는 모든 것을 견딜 수있는 방법을 찾는 것을 의미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종류의 인내는 사도 바우로가 “하느님이 선택한 사람들을 위하여 자신은 모든 것을 견딘다.”는 글을 디모테오에게 전합니다(2디모데오2:10). “우리가 끝까지 참으면 우리와 함께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2디모2:12).”는 희망을 갖게 하는 것이 바우로입니다. “그대 성공회 기관의 간사는 진리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부끄러울 것 없는 일꾼으로서 하느님께 인정을 받는 사람이 되도록 힘쓰십시오(2디모2:15).” 감옥에 갇힌 상태에서도 바우로는 주변 사람들을 보살피고, 감옥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풀고, 변호사와 판사, 그리고 듣게 될 모든 사람들에게 설교하고, 디모데오와 그가 사역했던 교회들에게 격려의 편지를 쓴 것입니다. 바우로는 쇠사슬에 묶여 투옥되었지만, 하느님의 말씀에는 삶을 변화시키고 그가 접촉한 사람들을 구출할 자유와 능력이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사도 바우로도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참는데 선수인것처럼 우리도 하느님을 알게 하기 위하여 참는데 선수이길 빕니다.
“Kyrie 오 주님, Eleison 비참합니다. O Lord, Have mercy on me(루가18:39. 소경의 외침기도. 루가17:13, 10명의 한센인의 외침기도).가 배제된 버려지고 쫒겨난 힘든 사람들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보잘 것 없음과 비참함을 인식할 때 스스로 겸손하게 됩니다. 그때의 기도가 바로 기리엘레이손입니다. ”하느님, 저는 비참합니다. 그러니 제 상황을 아시고 저를 비참에서 건져주십시오.“라는 뜻으로 자비심을 간절하게 구하는 기도가 기리에입니다. 인간이 하느님께 바칠 이 기도는 4세기경에 예배에 들어와 지금까지 이어오는 기도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에서처럼 새로운 삶을 노래한 기도가 할렐루야Allulujah입니다. 희망의 빛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주님을 찬미하는 기도가 할렐루야로 주님을 찬미하는 것입니다. ”주찬미하여라.“를 자주 입에서 나오게 됩니다. 이렇게 기리에와 할렐루야가 기도의 근본이므로 늘 성공회 기관의 식구들의 입에서 나올 기도입니다. 힘든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것이 곧 복이 오는 길임을 알고 그 길을 주신 하느님께 수시로 감사해야 합니다. 기리에와 주찬미기도를 바치는 것입니다.
아홉. 성공회는 세가지 교회로 이해를 합니다. 첫째, 성공회는 하느님을 만나는 공간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입니다. “하느님이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이라(요한1:3,10)”고 성육신하신 하느님을 믿고, 힘과 사랑과 절제인 자기조절을 주시는 성령으로 인하여 신령한 예배를 바치는 교회로 “영적으로 참되게 하느님께 예배를 드립니다(요한4:24).” 대한성공회는 성육신예배는 잘 하는데 반하여 영적인 성령의 예배는 부족한 모습입니다. 둘째, 교회는 공동체입니다. 하느님은 개인에게 오시고 공동체로 답변하게 합니다. 결점이 많은 인간이 이 세상에 하느님의 왕국을 건설하는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로의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과거를 용서로 풀고, 생명의 왕국을 미래의 비젼으로 삼고, 현재 필요한 양식을 공유하는 삶을 사는 공동체가 바로 성공회입니다. 하느님은 공동체를 바라고 인간은 한 개인으로 하느님을 바라고 공동체로 답변하게 합니다. 셋째, 교회는 하나의 기관이자 제도입니다. 주교회의와 의회synode와 교회위원과 평신도원, 사제원, 주교원의 삼원제도로 균형적으로 갖춰 하느님 나라의 원형을 경험하게 하는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하느님의 세상에서 하느님의 교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하는 교회입니다. 성공회는 이 세 가지 요소를 기본으로 하여 하느님을 믿기에 성공회는 영적이고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이고, 성령으로 협력하여 이루어지는 공동체 교회이자 사도성을 이어가는 보편교회로의 주교제교회입니다. 그래서 니케아신경의 마지막 한 줄로 성공회를 표현합니다. 성공회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에서의 하나이요, 거룩하고,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인류의 보편적인 교회입니다. 주교제가 관료제가 되지 않기 위하여 공동체성을 강조하고 성령을 강조하는 성공회입니다. 그래서 가톨릭 제도가 주는 관료성에 머물지 않게 하는 힘이 성공회 교회에 존재합니다. 또한 성공회는 공동체성과 주교제가 기반이 된 교회 위에서 인간의 창조성인 성령의 주된 활동이 춤추는 교회로 균형감각을 갖춘 교회입니다. 수평적으로는 공동체성의 동료가 있고, 수직적으로는 “내가 어디서 왔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성육신의 하느님을 믿고 성령의 인도를 받아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에 대한 목적을 분명히 하는 성공회입니다. 그래서 흔들리고 아슬아슬하게 사는 인간에게 활력을 주어 삶의 적절한 선을 지키면서 소중한 관계를 맺게 하여 균형을 잡아주는 성공회 신앙인이 된 것은 분명히 복입니다.
열. 성공회의 리더는 흔들리는 세상에서 묵직한 힘을 지닌 힘을 주는 존재로 살아갑니다. 기본적으로 돌이킬 수 없을 정도의 심각한 문제의 일이라면 그것을 내려놓을 정도의 예절을 갖추고 있고, 부적절한 반응을 낳고 상처만 더 심해지는 일 또한 내려놓을 줄 아는 지혜를 지닌 현명함을 갖춘 사람이 성공회 리더입니다. 타인에게 정의가 실현되지만 자신에게는 자비가 다가오길 기다리는 세상과는 다르게 자신에게도 정의가 내려지기를 바라는 성공회 리더입니다.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남아 있는 곳에 가서야 비로소 자신이 그동안 얼마나 많이 변해 왔는지 깨닫는 것, 그것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 넬슨 만델라(1918.7.18-2013.12.5) 남아공 대통령은 흑인과 백인과의 원수관계를 화해시킨 훌륭한 인류의 리더로 그가 감옥서 나오면서 한 말씀입니다. “감옥 밖으로 나가며 나는 생각했다. 자유의 길로 걸어가는 동안, 그간의 쓰라림과 증오를 버리고 가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감옥에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누군가 제게 상처를 입히거나 화해할 수 없을 것 같거나 합리적인 대화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을 때 저는 넬슨 만델라의 이 글을 생각하곤 합니다. 4세기경의 북아프리카의 도나투스파는 배교자를 용서하지 않았지만, 보편교회는 배교자를 용서하는 길로 방향을 잡아 그리스도교의 용서하는 길을 제시한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것을 용서하는 것이 그리스도교의 삶이고 성공회의 길입니다.
열하나. 누구나 은퇴를 합니다. 은퇴하는 심정은 복잡하겠지만 그 복잡함을 분석하고자 합니다. 은퇴는 그동안 갖고 있던 권력인 힘을 잃는 시기이고 사람들의 주목을 받지 않게 되는 시기라고도 하지만, 실제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분명하게 수용해야 하고 그것을 익히는 것이 은퇴입니다. 또한 이기고 지는 것을 최후의 심판처럼 수용하기 보다는 그것을 즐기게 되고, 경쟁의 대열에서 선두에 있지 않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신중하게 생각하는 것이 은퇴일 것입니다. 은퇴 후에 1년간 놀고 3년간 산들을 다니고 이후 5년은 숨쉬기조차 힘들때까지 섹스폰을 불다가 6년간 아픈몸을 하다가 하늘로 가는 것이 은퇴자들의 삶입니다. 은퇴시기도 하느님이 주신 시간이기에 하느님께 영광을 올리는 적극적인 시간이 되는 은퇴자의 시간이면 좋을 것입니다. 시골교회는 대다수 고령층 신도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신앙생활로 평생을 사신 하느님의 이야기를 소책을 만드는 작업이라면 후손들에게도 선한 영향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은퇴자가 되면서 꼭 붙잡지 않아도 될 보수성을 잡는 것 또한 인간을 존중하려는 발로이겠지만 의무적인 삶보다는 즐기면서 사는 은퇴자의 삶이길 바라는 바입니다. 그리고 은퇴의 삶이 지금까지 의미와 가치를 찾은 삶을 지속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은퇴이후에 새로운 것을 하는 것보다는 하던 일을 지속적으로 할 그림을 그리는 것이 훨씬 좋다는 것입니다. 거대정부나 거대기업에서의 활동이 이어지는 것은 어려기에 동료들 서너명이 아름답게 살 그런 생활방식을 구성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공정의 조건을 확보하는 진보가 공정을 확보하는 불편과 그 노력을 싫어한다면 진보주의자가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한국사회에서 진보주의자가 공정한 사회를 확보하려는 치열함이 부족하고 공정성을 놓치다보니 욕을 먹게 된 것입니다. 교회는 선을 향한 헌신의 삶으로 아름답게 사는 것인데 교회의 돈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수단으로 사용한다면 이는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진보에는 도덕이 늘 연합되어 있기에 보수주의자가 따라올 수 없는 세계를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그리스도인인 성공회 신도는 진보주의자와 궤를 같이 하게 됩니다. 그리고 패배자를 끌어안는 성공회는 협력하여 선한 사회를 만들기에 보수성을 포용하는 곳입니다. 새로운 한국사회의 비젼을 세우면서 성공회는 경쟁보다는 춤추며 재미있게 사는 길을 추구하고 그것을 사회에 제시하는 교회입니다.
열둘. 성공회 성당 안에는 국기를 계양합니다. 성당 안의 국기를 보면서 사랑의 공동체를 추구하는 그리스도교의 원리를 국가에 적용하겠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트럼프와 지지자들이 국회의사당에 난입하는 것과 다음세대에게 열림이 없는 은퇴자들의 극단적인 보수성부대는 교회가 국가주의를 표현한 것입니다. 집단주의로 나아가는 길인 보수성부대와는 다르게 성공회가 태극기를 성당 안에 계양하는 것은 선교적인 의미입니다. 독일의 마틴루터사제가 1523년에 라틴어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독일어성경을 출판하여 종교개혁의 길에 박차를 가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웰리엄틴들사제는 1525년 신약성경을 번역하여 영국에 5만권을 전파하여 성공회를 세우는데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모국어로 성경을 번역하는 것이 하느님을 기쁘게 한다는 확신으로 번역하였고 이 죄목으로 1536년 화형을 당해 순교한 사제입니다. 그리고 성경번역과 번역된 성경배포그룹들이 체포되어 화형을 받으면서까지 신앙을 지킨 신앙인들로 하여금 목숨을 걸고 세워진 교회가 성공회입니다.
열셋. 한 기관에서 일하면서 늘 생동감이 넘치는 것은 아닙니다. 무기력하게 자신을 느꼈을 땐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선배 혹은 사제에게 다가가십시오. 좋은 말벗이 될 것입니다. 자신이 뭔가 완성을 하지 못한 채 미완성으로 마무리를 제대로 하지 못하는 존재로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 시기가 오면 자신의 내부의 허공함으로 차서 한동안 무기력하고 연약한 상태로 우울감에 젖어 아무것도 못 하게 되고 사람들 만나기가 꺼려집니다. 너무 무기력하여 기도로 힘을 얻는 것조차 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기도가 불가능하다고 느껴질 때 어떻게 기도를 하여 하느님이 주시는 힘을 얻을 수 있습니까? 한때 아니 지금도 제 속에는 최고가 되는 것을 향하는 생활방식이 남아있어 스스로 부끄러워 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한번도 최고가 되겠다는 마음을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을 만나면 무진장 부러운 마음이 듭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저 자신이 저가 아닌 사람을 필요로 하는 존재라는 원칙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최고가 되겠다는 것은 나와 그들의 관계를 만들어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들과 함께 사는 생활을 모르게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사는 나를 사랑해주는 사람을 잊지 않는 것은 사랑에 젖었을 때만 가능할 일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이 더 좋은 삶을 위해 길을 열어주신 분이십니다. 어떤 연유로 공동체에서 배제되었던 다양한 사람들에게 자신을 열고 사는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분이 예수님이십니다. 그러니 예수님은 나와 그들의 관계로 경쟁체제로 만드는 생활방식을 나와 우리라는 협동체제의 생황방식으로 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열넷. 누군가를 진심으로 아끼고 챙길 때 자신의 내부에 묵직한 힘이 의미를 가지게 되고 그 힘으로 자신이 사는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챙겨주지 못했던 것이 과거가 되고 다른 사람을 제대로 챙겨주는 지금의 사람이 될 때 진짜 용감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표현한다면 혼자서 잘하는 게 용감한 게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헌신하는 것이 용감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의 도움으로 버팅기는 인생의 부분도 있겠지만 스스로 자신을 챙겨야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자유로워지기 위해서 내키는대로 살아 반항적인 기질이 한때는 전부였지만 평생 내키는대로 반항적인 기질로는 살 수는 없습니다. 순종을 기반으로 한 반항은 성장의 디딤돌이 되기도 했었습니다. 순종을 기반으로 하는 안정감 없이 반항으로만 사는 것은 현명한 삶이 아닐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이 내게 주신 하느님의 특성을 발견하고 그 거룩성인 특성을 유지하는 것이 신앙생활이라면 그것이 현명한 지혜로운 삶입니다. 성경은 죽은 과거로만의 이야기가 아니고 지금도 살아있는 하느님의 말씀이기에 지금을 사는 내게 지혜로 오는 것입니다.
열다섯. 벤자민 프랭클린은 미국 독립선언문 초안 작성에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영국과의 독립전쟁에서 프랑스로부터 동맹을 이끌어내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입니다. 그는 와인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와인은 하느님이 우리를 항상 사랑하고, 우리 스스로 행복하기를 원함을 보여주는 증거”라는 말을 했습니다. 와인을 마시면서 하느님의 사랑을 느낀다는 것이 서양사람들의 표현이 좋습니다. 와인을 마시면서 하느님이 인간이 행복하기를 바라시는 표증이라는 말이 좋습니다. 스페인의 중남부 고원지인 세르반데스가 살던 라만차지역에서 나는 전통치즈로 만체가라는 양에서 나는 젖으로 만든 치즈를 만체고 Manchego치즈라고 합니다. ”불가능한 것을 손에 넣으려면 불가능한 것을 시도해야 한다.“는 세르반테스의 말을 인용하며 만체고 치즈를 먹으며 불가능을 가능케하는 믿음을 단단하게 지녀봅니다. 용기를 잃은 사람은 만체고를 먹어 보는 것도 좋을 것입니다. 용기를 가지고 다시 모든 것을 이루어 봅시다. 식후에 이탈리아 소렌토의 남부 아말피해안의 해와 바람을 맞은 레몬소주인 리몽셀로Limoncello가 있고 그라파Grappa가 있습니다. 시칠리아 섬의 시라쿠사의 성당 입구의 베드로는 성경과 천국열쇠를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베드로를 본 후손의 밤에는 리몽셀로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의무로 살지 말고 예수님과 동행하는 즐거움을 지니며 예수님과 산책을 하며 예수님과 함께 놀면서 사는 성공회 기관의 간사 여러분이 되시면 더 나은 삶이 될 것입니다. 그러다보면 진정한 삶이 다가올 것입니다. 우리들이 그러하기를 빕니다.
열여섯. 성공회 리더의 강점은 일치성과 자비심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것에서 정체성을 찾고, 하느님의 마음으로 예수님처럼 상처입은 사람들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디서 오고 어디로 가는가?“ 라는 질문은 정체성에 대한 질문이고 리더는 이 질문에 하느님을 믿어 사는 존재로 일치된 답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지?“라는 질문에 대해서는 예수님을 본받아 사는 존재로 하느님을 중심으로 사는 생활이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공회 신앙은 하느님과 관계하고 하느님과 관계된 사람으로 하느님의 창조물을 돌보는 삶이어야 합니다. 성공회 리더는 이를 잘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문제를 풀고자 밤늦게 한 사제를 찾아갔습니다. 지친 내 모습을 보고 생기를 주려고 이탈리아에서 가져온 캄파리, 탱커레이넘버텐 진, 스위트 베르무트로 만든 칵테일인 네그로니 Negroni를 만들어서 제게 주었습니다. 지친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성공회 간사의 앞길을 야곱처럼 열어주시는 하느님이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