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이 일을 시작한지도 어느덧 십오년이 넘었다. 남들은 모두 나에게 미쳤다고 하였다. 하지만 나는 확신이 있었다. 이 일은 분명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부터 이런 냄새 나는 싸구려 지하 작업실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아니다. 처음에는 그래도 대학 교수라는 직함에 대학 연구실에서 어엿하게 연구비를 받으며 이 일을 시작하였다. 몇 명의 조수도 있었다. 대단한 것을 연구한다며 격려 전화도 제법 있었고 심심치 않게 기자들도 달려오곤 했다. 하지만 시간이란 놈이 문제였다. 연구를 시작한지 일년이 흐르고 이년이 흐르고 삼년이 흐르자 점점 나를 보는 눈빛이 달라졌다. 내 옆에 달라붙어 알랑방귀를 뀌며 내 연구에 관심을 가지던 동료 교수들도 한명씩 떠나기 시작했다. 아무런 연구의 성과가 없다는 것이다. 나의 연구에 가장 박수를 보내고 내가 식사를 하려할 때마다 나에게 달려와 함께 식사를 하며 식사비를 내어주던 가장 친한 교수는 아예 온데 돌아다니며 나의 연구는 밑 빠진 독에 물 붓기 식이라며 떠들고 다녔다. 하지만 대학 학장은 나에게 좀더 시간을 주었다. 나의 연구에 처음부터 관심을 가지고 연구비를 대어주던 외국의 모 컴퓨터 기업도 나에게 시간을 더 주었다. 나는 그들에게 실망을 주지 않기 위해서 내 사생활 모든 것을 버리고 연구에 더욱더 박차를 가했다. 그 당시 사귀던 여자 친구와도 연구에 좀더 박차를 가하기 위해서 헤어졌고 친구와도 연락을 끊었다. 시골의 부모님은 명절 때에도 내려오지 않는 나에게 섭섭함을 이기지 못하였지만 나는 전화 한 통 하지 않았다. 부모님은 그래도 몇 년 정도는 자식이 무언가에 큰 일을 하고 있다 싶어서 꾸욱 참는 근성을 보여주었지만 나중에는 결국 너 같은 자식은 잃어버린 것으로 알겠다며 연락을 끊었다.
삼년이 지나고 육년이 지나자 드디어 대학 학장도 인내심의 한계가 온 모양이었다. 나에게 짐을 꾸려 대학에서 나가라고 하였다. 연구비를 대어주던 외국의 모 컴퓨터 기업도 더 이상 아무런 성과 없이 계속 연구비를 대어 줄 수는 없다며 연구비를 끊었다.
처음에는 나는 죽으려 하였다. 한강 위에 가서 그저 뛰어내리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그저 물고기 위장을 채워주는 한 덩이의 고깃덩이가 되고 싶다는 생각 뿐이었다. 이제까지 연구한 모든 내용이 담긴 시디를 다리 위에서 강물 속으로 던지려 하였다. 하지만 던지지 못하였다. 벌벌 떨리는 손으로 시디를 몇 번이나 강물로 던지는 포즈를 취해보았지만 결국 던지지는 못하였다. 대신 “우와아”하는 고함 소리를 내질렀고 강물의 수면위로는 고함 소리에 떨리는 물결만이 일어날 뿐이었다. 너댓 번 고함소리에 진이 빠진 나는 무릎을 꿇었고 눈에는 하염없이 눈물만이 흘렸다. 다음 날 아침. 내가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처음엔 새하얬다. 새하얀 다음에는 온통 푸르렀다. 어젯밤 공원 잔디에 누워 술에 취해 쓰려진 것이었다. 내가 쏟아낸 것으로 보이는 구토물 옆에는 햇빛에 반짝이는 말 그대로 은빛 찬란한 시디가 놓여져 있었다. 그 놈을 집었다. 그 놈은 이제 나의 전부가 되었다.
그 이후 나는 여기 겨우 전기가 들어오는 도시 외곽 건물의 지하실에 나의 연구실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연구를 계속 하였다. 처음에는 몇몇 친구 교수들이나 지인들이 찾아왔다. 너의 천재적인 두뇌를 엉뚱한 곳에 쏟고 있다며 나에게 근사한 제안을 하기도 하였다. 새로운 칩을 만들어 준다면 이제까지의 모든 헛된 노력을 일거에 만회해줄 만한 거금을 주겠다느니 어떤 대학 학장은 자기네 대학에 와서 그저 강의만 해줘도 평생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게 해주겠다느니 따위의 말로 나를 회유하였다. 어떤 친구는 나의 부모님까지 데려와서 옆에서 울고불고 하시는 부모님의 통곡을 배경 음악으로 깔며 나에게 새로운 연구를 한번 해보라고 제의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 친구가 제안한 연구에 관심이 없었고 새로운 칩에도 관심이 없었다. 강의 따위는 두말하면 잔소리다. 그 모든 달콤한 제안을 나는 모두 거절하였고 그 뒤 두 번 다시 그들은 오지 않았다. 나는 내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아니 이미 걸었고 나는 이 연구를 성공해야만 한다. 이 연구만 성공적으로 끝난다면 나는 이십세기 최고의 발명을 하는 것이다. 노벨상은 당연한 것이고 십오년 동안의 노고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의 부와 명예로 돌아온다. 하지만 나는 그때도 캐딜락 같은 리무진은 타지 않으리라. 폭스바겐의 뉴비틀을 사서 타고 다니리라. 사람들은 그럼 이렇게 말하겠지. 저분이야. 저분. 그래 그것을 발명한 사람이 저분이야. 헌데 굉장히 소박하신가봐. 뉴비틀 따위를 타고 다니시는 것을 보니. 성격도 좋은가봐. 하긴 그런 위대한 발명을 하신 분은 우리 같은 속물과는 다르겠지. 저런 훌륭한 인품이시니 그런 위대한 발명도 하셨을 거야. 신문은 연일 나의 대발명을 특집 기사로 낼 것이다. ‘대한민국 건국이래 최대의 쾌거’ 아마 이 문장이 각 신문의 머릿 기사일 것이다. 하지만 그때도 나는 항상 겸손할 것이다. 평소처럼 단출한 식사를 할 것이고 평범한 옷을 입을 것이다. 기자들에게 항상 웃을 것이고 어쩌면 동냥하는 노인에게 거금을 안겨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 나의 연구만 성공을 한다면 그 모든 것을 나는 얻을 수 있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 조금만 더 참으면 그 모든 것을 나는 얻을 것이다. 이제 연구는 거의 막바지에 달했기 때문이다.
내가 연구하는 것은 남들은 모두 불가능이라고 하였다. 어떻게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 속으로 집어 넣을 수 있냐며 그것은 꿈속에서나 아니 꿈속에서조차 불가능한 일이라고 하였다. 내 여자 친구는 그러한 생각을 하는 것조차 신께 죄를 짓는 불경스러운 행동이라고 하였다.하지만 나는 신을 믿지 않는다. 아니 설사 신이 있더라도 신은 나에게 죄를 물을 수 없을 것이다. 만일 신이 나를 욕한다면 신 역시 인간의 몸에 의식을 집어 넣은 자신의 죄를 부인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며칠 전 본 ‘매트릭스’라는 영화는 참으로 좋았다. 그 영화에서도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 속에 집어 넣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내가 연구하는 내용과는 차이가 있다. 그 영화에서는 그저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에 집어 넣는 것일 뿐이지만 나의 연구 목표는 사람의 의식을 그대로 컴퓨터 속에 집어 넣는 것이다. 그 두개는 확실히 큰 차이가 있다. 컴퓨터가 제공하는 가상 세계에 의식을 집어 넣는 것은 고작 사람이 컴퓨터 게임 속으로 들어가는 정도이지만 내가 하는 연구는 사람이 게임 그 자체가 된다는 것이다. 스스로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조작하며 스스로 컴퓨터 세계의 신이 된다는 것이다. 그 두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큰 차이가 있으며 의식을 컴퓨터 속에 주입한 그 사람은 한 마디로 인간과 컴퓨터의 혼합물이 되는 것이다.
아둔한 사람들은 그 따위를 발명해서 무엇에 쓰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만큼 정말 아둔한 질문은 없다. 그 발명의 혜택은 인간 세상을 획기적으로 바꾸어 놓을 수 있다. 인간 세상을 거의 신의 세상으로까지 끌어올릴 수 있다. 제일 먼저 인간의 영원한 숙제인 영생을 인간은 얻을 수 있다. 인간의 단백질로 된 이 육체는 산소와의 끊임없는 활성화작용 때문에 백년을 채우지 못하고 부셔진다. 고작 신이 내린 장수라고 해봤자 백삼십년 정도이다. 하지만 컴퓨터는 전원이 있는 이상 그 끝이 없다. 만일 사람의 의식을 컴퓨터 속에 집어 넣으면 그 사람은 컴퓨터가 부셔지지 않는 이상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물론 의식의 원본을 가진 그 사람이야 단백질의 파괴로 죽겠지만 컴퓨터 속에 카피된 그 영혼으로 얼마든지 부활하고 부활하여 영생을 누릴 수 있는 것이다.
두 번째 혜택으로 나 같은 천재나 아니면 이 사회의 발전에 꼭 필요한 의식을 가진 사람들을 두 명 세 명 아니 백 명까지 무작위로 카피하여 더욱더 많은 연구와 인류의 발전을 위해 힘쓰게 할 수 있다. 이 세상에는 쓰레기 같은 의식으로 살아가는 놈들이 너무나 많다. 그저 돈만을 밝히는 놈, 아니면 자신이 뭘 생각하고 뭘 원하는 지도 모른 채 그저 동물처럼 살아가기만 하는 놈들. 그런 의식을 가진 자들은 모조리 제거하고 나같이 이 사회를 획기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는 자들만의 의식을 무작위로 수만 개 아니면 수억 개 카피하여 이 사회를 그런 의식으로 채우는 것이다.
세 번째 혜택으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이것은 아주 중요한데 컴퓨터에 주입된 사람의 의식을 조금만 손을 댄다면 그 사람을 천재로 만들 수도 있고 만일 사상이 불온한 자라던가 쓰레기 같은 자라면 얼마든지 나 같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다. 인간의 뇌에 부착되어 있는 의식이라는 것은 한마디로 전혀 손을 댈 수가 없다. 전쟁이 좋다고 하는 놈들을 어쩌랴, 동성애가 좋다고 떠드는 놈들 우리가 어쩌겠어. 내가 밉다는 놈 내가 어쩌겠어. 그저 저 세상으로 보내거나 안보고 살수 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나의 이 발명만 완성된다면 그런 자들은 컴퓨터에 의식을 집어 넣고 컴퓨터를 건드려서 의식을 바꾼 후 다시 컴퓨터에서 바뀌어진 의식을 사람에게 주입시킴으로써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인간의 의식을 컴퓨터에 주입시키는 것만 완성된다면 꺼꾸로 컴퓨터의 의식을 인간에게 주입시키는 것도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나의 발명에 의한 혜택은 얼마든지 더 있을 수 있지만 이 정도만 해도 세상은 나에게 노벨상과 엄청난 부와 명예를 안겨 주기에는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이제 안젤리나 졸리에게 전원을 넣는다. 안젤리나 졸리는 나의 발명을 하기 위한 메인 컴퓨터 이름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아마도 인간의 의식을 받아 들이는 사상 첫번째 컴퓨터가 될 것이다. 안젤리나 졸리는 부드러운 떨림과 함께 천천히 잠에서 깼다.
“안녕하십니까? 박사님. 오늘은 날씨가 어떤지요?”
이미 상당한 인공지능을 갖춘 안젤리나 졸리는 사실 나의 연구를 도와줄 정도로 똑똑해졌다. 하지만 의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프로그래밍 되어있는 대로 말과 글자들을 뱉어 낼 뿐이다. 하지만 인간의 의식을 받아 들이고 난 후부터는 그게 아닐 것이다.
“비가 올 것 같네.”
나는 간단하게 안젤리나 졸리의 말에 대답해준 후 안젤리나 졸리와 네트워커로 연결된 지미와 톰을 켰다. 지미와 톰 역시 몸을 한차례 부르르 떨더니만 잠에서 천천히 깨어났다. 이제 피실험물이 필요할 순간이다. 지난 몇 달 전 나는 피실험물로 개를 선택했다. 처음에는 길거리를 걷다 보면 쉽게 개를 찾을 수 있겠지 생각하며 사람들이 사는 도시의 거리를 배회했다.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쓴다면 없다듯이 이눔의 개새끼들이 눈에 띄이지가 않았다. 기껏 눈에 띄이는 개는 주인이 사랑스럽게 안고 있는 애완견 뿐이었다. 물론 애완견이라고 안될 것은 없지만 문제는 그런 개를 잘못 건드렸다가는 노발대발하며 덤벼드는 주인 때문에 귀중한 내 실험을 엉뚱하게 날릴 수가 있게 된다. 알고 보면 그깟 개는 내 발명을 위해서 얼마든지 기증할 수도 있는 문제지만 내가 여지껏 겪어본 경험으로는 그런 인간은 없다. 어리석은 인간. 나는 기껏 개 한 마리 때문에 귀중한 내 발명을 망칠 수는 없었고 따라서 신중에 신중을 기하여 일을 진행 시킬 수 밖에 없다. 하지만 삼일동안이나 거리를 배회하였지만 주인 없는 개는 발견할 수 없었고 결국 내가 선택한 것은 무난하게 애완견 상점에서 개 한 마리를 돈을 주고 사는 것이었다.
안젤리라 졸리에게 마지막 명령 코드를 입력한 후 나는 언뜻 내 손목에 보이는 이빨 자국을 보았다. 그 이빨 자국은 피실험물로 애완견 상점에서 산 그 개에게 물린 자국이었다. 지금도 그때를 생각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그 녀석은 나의 실험을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어 보였다. 내가 시스템을 모두 켜자 녀석은 벌써부터 오줌을 질질 싸기 시작했다. 그런 녀석을 달래기 위해서 나는 밤에 먹으려고 둔 햄버거까지 냉장고에서 꺼내어 녀석에게 주었다. 영생을 주려는 나의 생각은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마치 그 햄버거를 최후의 만찬으로 생각하듯이 게걸스럽게 먹어 치웠다. 상추 조각하나 남기지 않고 녀석은 먹어치웠고 녀석은 내 연구실 한쪽 구석에서 시원하게 볼일까지 보는 여유를 부렸다. 이제 녀석은 나의 햄버거를 먹어치웠으니 나의 연구를 도와야만 한다. 하지만 녀석은 좀처럼 말을 듣지 않았다. 나의 햄버거까지 먹어치운 주제에 실험을 기피하였다. 나는 그런 녀석을 밧줄로 꽁꽁 묶고는 콜로라니 포터에 앉혔다. 콜로라니 포터는 컴퓨터에 의식을 주입할 사람이 앉는 의자이다. 자질구레한 3급 SF영화에서나 나오는 그런 요란한 의자는 아니다. 다만 팔걸이에는 그 사람의 알파파와 오메가파를 체크하는 팔찌 형태의 기구가 달려 있었고 사람의 머리 부근에는 그 사람의 의식을 아니 영혼 자체를 파장으로 만드는 기구가 달려있었다. 일단 사람이 그 의자에 앉고 안젤리나 졸리에게 실행 명령을 내리면 그 의자에 달린 기구들은 즉각 그 사람의 의식과 각종 신경을 하나의 파장으로 잡아낸다. 그리고 안젤리나 졸리는 그 파장을 해독하고 저장하여 그것을 하나의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재생시키는 것이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첫 실험으로 선택된 그 개는 마르티스 종이라고 하였다. 털이 복실복실난 그 녀석을 밧줄로 꽁꽁 묶는 동안 사방에는 하얀 개털이 수북이 떨어졌다. 녀석은 나의 첫 손님이 되는 영광을 알아 주지도 않고 계속 짖어대며 반항하였고 결국 몽둥이 찜질을 당하고 나서야 겁을 먹고는 순순히 말을 들었다. 녀석의 가느린 팔과 다리를 묶고는 녀석을 콜로라니 포터에 앉혔다. 이미 몽둥이 맛을 보았고 내가 그다지 인자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 챈 녀석은 더 이상 함부로 반항하지 않았다. 순순히 콜로라니 포터에 앉은 녀석에게 각종 기구를 달았다. 팔찌 모양의 기구는 사람의 손목에 적합하게 만들어져 있기 때문에 녀석의 가느린 팔다리에는 잘 맞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나는 팔찌 모양의 기구가 녀석의 팔다리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고무줄로 묶었다. 고무줄로 묶인 녀석의 다리에 피가 통하지 않아 퍼렇게 변색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녀석은 훌륭하게 그 고통을 참아냈고 나 역시 만족스러운 얼굴로 다음 작업을 하였다.
다음 작업은 녀석의 머리에 녀석의 의식을 뽑아내는 모자 모양의 기구를 장착하는 일이었다. 녀석은 이번에도 순순히 따라주었다. 모자 모양의 기구 역시 개에게는 적합하지 않았으나 이것 역시 고무줄로 해결하였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콜로라니 포터에 전원을 넣으려는 순간 녀석은 이제까지의 순종은 어디까지나 때를 기다리는 하나의 기만술이었다는 듯이 순식간에 나의 왼쪽 팔목에 달려들어 물어뜯는 것이었다. 나는 남은 다른 한쪽 팔로 녀석의 이빨을 내 팔목에서 드러내 떼어냈다. 내 팔목에서는 시뻘건 선혈이 팔뚝을 따라 뚝뚝 떨어졌다. 나는 재빨리 다시 몽둥이를 들었다. 하지만 녀석을 내려치지는 않았다. 녀석의 눈동자에는 이미 살기가 드러나 있었고 나는 그런 살기가 두려워서 보다 그래도 나의 실험물이 되어주는 녀석에게 하나의 아량으로 몽둥이를 내려치지는 않았다. 나는 피가 흐르는 내 팔뚝을 지혈도 하지 않은 채 계속 실험에 임했다. 콜로라니 포터에 전원을 넣은 후 안젤리나 졸리에게 실행 명령을 내렸다. 그 작업에 이상이 있는지를 체크하는 것은 톰의 역할이었고 작업상의 오류를 곧바로 시정하는 것은 지미의 역할이었다. 안젤리나 졸리가 진짜 안젤리나 졸리처럼 몸을 맵시 있게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제 일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략 한시간이 지난 후 안젤리나 졸리의 얼굴에는 ‘실행 완료’라는 네 글자가 깜빡였다. 나는 환호성을 지를 뻔하다가 다시 마음을 꽁드렸다. 아직 샴페인을 터트리는 것은 이르다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지막 순간이라는 것은 바로 안젤리나 졸리에게서 방금 의식을 집어 넣은 개의 반응이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조용히 탐색기로 방금 집어 넣은 개의 의식을 안젤리나 졸리의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았다. 몇 번의 클릭과 탐색을 거친 후 나는 녀석의 의식이 하나의 파일로 담겨져 있는 것을 찾았다. 파일 명은 ‘피실험물1’이라는 이름으로 되어 있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녀석을 클릭하였다. 마우스에 내 땀이 흥건하게 묻어 있었고 클릭하는 감촉은 너무나 부드러웠다. 안젤리나 졸리는 연거푸 윙윙하는 신음소리를 뱉어냈다. 바로 안젤리나 졸리는 무기물에서 유기물의 영혼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팟하고 안젤리나 졸리의 얼굴 즉 모니터에서 무언가 글자가 나왔다.
“!@#$#$#%$%$^#$^#^^%$^#$^#$$$%%%%%$^$%#$%#$%#$%$%$^%$^%$^%$ !@#$#$#%$%$^#$^#^^%$^#$^#$$$%%%%%$^$%#$%#$%#$%$%$^%$^%$^%$ !@#$#$#%$%$^#$^#^^%$^#$^#$$$%%%%%$^$%#$%#$%#$%$%$^%$^%$^%$”
위와 같은 알 수 없는 문자들만 반복해서 나왔다. 하지만 나는 상황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더 두고 보기로 하였다.
“!@#$#$#%$%$^#$^#^^%$^#$^#$$$%%%%%$^$%#$%#$%#$%$%$^%$^%$^%$ !@#$#$#%$%$^#$^#^^%$^#$^#$$$%%%%%$^$%#$%#$%#$%$%$^%$^%$^%$ !@#$#$#%$%$^#$^#^^%$^#$^#$$$%%%%%$^$%#$%#$%#$%$%$^%$^%$^%$”
한시간이 지난 후, 그때까지도 이런 알 수 없는 문자들만이 반복해서 나왔다. 그리고 그 순간 나의 고개는 저절로 숙여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에서 아니면 만화 속에서 사람들은 실망이나 좌절을 겪었을 때 고개를 숙이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때는 모르고 지냈는데 정말 처절한 좌절을 맛본 나의 고개는 저절로 숙여졌다. 실험은 실패였다. 그 증거로 개나 인간 같은 생명체는 절대로 완벽한 반복을 수행해 낼 수가 없다. 그저 약간 따라 하는 정도이지만 그것조차 매 번마다의 속에는 예민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지금 안젤리나 졸리가 내뱉아내는 문자들은 완벽한 반복을 이루고 있었다. 암호와 기호라는 것에 둔한 사람들은 지금 안젤리나 졸리가 뱉아내는 문자들 속에서 완벽한 반복이 있다는 사실을 못 깨달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다. 수많은 프로그래밍과 논리적 기호를 다룬 나는 단박에 안젤리나의 문자들 속에서 패턴형의 반복을 찾아냈다. 콜로라니 포터에는 방금 실험을 당한 개만이 혀를 길게 내고 마치 나를 비웃듯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녀석의 그런 모습에 신경질적으로 녀석을 콜로라니 포터에서 끌어내렸다. 나는 녀석의 이런 태도가 실험을 망쳤다고 보았다.그리고 그 벌을 내릴 심산이었다. 주위를 훑어보니 투명 비닐 봉투가 보였다. 나는 그 투명 봉투를 녀석의 머리에 뒤집어 씌웠다. 이미 녀석은 팔다리가 모두 묶여있기 때문에 아무런 반항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사지를 비비 꼬을 뿐이었다. 그런 녀석에게 투명 비닐 봉투를 덮어씌운 후 봉투 안의 공기를 모두 빼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테이프로 녀석의 목까지 내려온 봉투의 끝을 공기가 통하지 않도록 모두 막아버렸다. 녀석은 그래도 혀를 길게 내며 나를 비웃었다. 그런 녀석에게 닫칠 엄청난 시련을 기대하며 나는 어서 녀석에게 죽음의 순간이 다가오길 바랬다. 잠시 후, 녀석에게 정말 죽음의 순간이 닫쳤다. 녀석은 숨을 쉴 수 없자 사지를 더욱더 심하게 비틀었고 입으로 비닐 봉투를 물어 뜯으려 하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허술하지 않았다. 녀석이 이빨로 나의 팔목에 구멍을 낸 것처럼 비닐 봉투에도 구멍을 내려 하자 나는 궂이 몸을 일으켜 녀석의 아가리를 비닐과 함께 묶어 버렸다. 녀석의 눈동자에서 초점이 점점 흔들리기 시작했다. 나는 그 순간 이제까지 느껴보지 못한 희열이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것을 느꼈다. 결국 녀석은 희뿌연 더러운 거품을 한 가득 뱉아내고는 죽어버렸지만 내 가슴속에서 요동치는 희열을 그 뒤에도 오래 지속되었다. 하지만 녀석의 생명이 사라지고 좀더 시간이 지나자 내 가슴속에 사뭇쳤던 희열도 점점 사라져갔다. 대신 엄청난 좌절과 고통이 뒤따랐다. 이제 이미 생명이라곤 찾아 볼 수 없는 녀석의 더러운 시체를 나는 쓰레기 봉투에 꾹꾹 눌러 버리고는 콜로라니 포터에 가서 앉았다. 그리고 힘없이 나뒹구는 여러 가지 기구들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왜 실패했을까? 나는 한참을 고민하였고 다음날 새벽이 찾아 올 즈음에 그 해답을 찾았다. 원인은 간단했다. 나의 안젤리나 졸리가 체크할 수 있는 생명체의 의식파장 한계는 인간의 의식 파장까지였다. 즉 인간의 의식 파장 최소점보다 낮은 파장은 체크할 수 없었고 카피할 수 없었다. 그런데 개의 의식 파장은 대부분 인간의 최소 파장점보다 훨씬 아래에 있다. 그래서 안젤리나 졸리는 개의 의식을 일부만 체크하고 카피하였으며 결국 끊어진 파장은 이미 생명체 의식의 파장이라고 부를 수 없는 기계적인 것이었다.
“주인님 모든 준비가 완료 되었습니다.”
나는 개에게 물어뜯긴 섬뜩한 나의 팔뚝을 옷의 소매를 내려 가린 후 안젤리나 졸리에게 ok라는 두 글자를 입력하였다. 이제 피실험물을 콜로라니 포터에 앉히기만 하면 되었다. 나는 천천히 피실험물이 있는 지하실 밖 나의 자동차로 갔다. 자동차 안에는 유리 너머로 이번 실험에서 피실험물이 되어줄 여자가 두 눈을 지긋이 감고 누워 있었다. 대략 두시간 전 거리를 배회하는 여자를 마취시켜 잡아 온 것이다. 그 여자를 보고 있노라니 지긋이 성욕이 일어났다. 하지만 위대하고 경건한 실험을 앞두고 그런 불량한 행태를 보일 수는 없었다. 이번 실험만 성공하면 이런 여자는 얼마든지 더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잠궈놓은 자동차 문을 키로 열고 그녀의 두 다리를 들었다. 그때였다. 정말이지 생각도 못한 일이 벌어졌다. 이미 마취가 풀려 있었는지 그녀는 갑자기 폴짝거리기 시작한 개구리 마냥 나를 걷어차고는 거리쪽으로 내달리는 것이었다. 대낭패였다. 나는 도망가는 그 여자를 쫓아 달렸다. 저 멀리 가로등이 보였고 그 가로등 주위로는 몇몇의 사람들이 보였다. 여자가 그 사람들에게 살려달라며 소리치고 있었다. 여자가 소리를 지르기 시작하자 나는 쫓아 가는 것을 주춤할 수밖에 없었다. 가로등 주위의 몇몇 사람들이 소리치는 여자를 향해 돌아보았기 때문이다. 나는 순간 여자를 쫓아가는 것을 포기하고 달려왔던 만큼이나 재빠르게 되돌아 뛰기 시작했다. 일이 크게 빗나가고 있다는 것을 느끼며 나는 내 연구실로 허겁지겁 돌아왔다. 그 여자가 어떻게 할까? 이제 위험에서 벗어났으니 그저 미친 개에게 물린 셈치고 아무 일없이 조용히 있어줄까? 가만히 따져본다면 그 여자는 크게 피해를 입은 것이 없다. 돈을 나에게 빼앗기기를 했어. 아니면 강간을 당하기를 했어. 그저 수면제 좀 마시고 내 차에 드러 누운 피해 밖에 없다. 궂이 피해를 따지자면 그 여자는 나에게 약간의 시간을 빼앗겼을 뿐이다. 하지만 그마저 시간이 지나면 잊혀질 것이다. 하지만 나의 바램처럼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좀전 가로등에서 서성이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당한 일을 모두 말하고 그 자들과 함께 여기를 쳐들어 올 수도 있다. 그도저도 아니면 경찰에게 신고할 수도 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일은 보통 심각해지는 것이 아니다. 그러기 전에 나는 내 연구를 마쳐야만 한다. 연구를 마치기 위해서는 일단 피실험물이 되어줄 사람이 한명 더 필요하다. 하지만 지금 사람을 한명 더 잡아올 만한 시간이 없다. 나는 결심을 한다. 십오년 동안이나 끌어온 내 연구를 여기서 빛도 보지 못한 채 끝낼 수는 없다. 방법은 하나. 내 자신이 피실험물이 되는 것이다. 결심을 마친 나는 더 이상 지체하지 않았다. 먼저 안젤리나 졸리와 톰과 지미에게 최대의 파워를 주었다. 그러자 지하실 전체의 전등이 순간 깜빡깜빡거리기 시작하였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안젤리나 졸리와 톰 그리고 지미에게 모든 전력을 주었기 때문에 지하실 전체의 다른 전기 기구는 전력이 딸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실험을 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 내 지하 연구실은 이제 깜빡이는 전등 때문에 사물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나는 침착하게 안젤리나 졸리에게 새로운 명령 코드를 입력한다.
Automatic booting
안젤리나 졸리가 짤막하게 대답한다.
Ok
만일 내가 스스로 피실험물이 될 경우 순간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물론 지난번에 했던 개의 경우에는 그런 현상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이후 나는 각종 기구에서 의식의 파장 즉 영혼의 파장을 더욱더 강력하게 뽑아내는 개조를 하였기 때문에 혹 나는 정신을 잃을 수도 있다. 허나 오토매틱 부팅을 하여놓는다면 내가 정신을 잃더라도 안젤리나 졸리에게 주입된 나의 영혼은 스스로 깨어 날수가 있는 것이다. 지난번처럼 일일이 영혼이 담긴 파일을 찾아서 마우스로 클릭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물론 오토매틱 부팅을 설정하여 두는 이유 중에 또 다른 것도 있다. 만일 실험 중에 내가 정신을 잃지 않더라도 경찰이나 여자가 끌고 온 무례한에게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실험만 무사히 끝난다면 안젤리나 졸리에게 주입된 나의 영혼은 스스로 깨어날 수 있다. 경찰이나 무례한은 나만 끌어갈 것이지 컴퓨터까지 부셔놓진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안젤리나 졸리에게 오토매틱 부팅까지 명령을 마친 나는 콜로라니 포터에 주저 없이 앉았다. 그리고 알파파와 오메가파를 사람의 신경에서 뽑아내는 팔찌모양의 기구를 스스로 장착하였다. 마지막으로 머리에 쓰는 모자 모양의 기구도 머리에 덮어 씌웠다. 내 영혼은 이제 이 모자 모양의 기구를 통해서 안젤리나 졸리에게 카피되는 것이다. 그런 후 나는 안젤리나 졸리의 프로그램을 모두 장악하고 스스로 컴퓨터가 되는 것이다. 물론 그 영혼은 나에게서 복사된 영혼일 뿐이지만 복사된 영혼은 그마저 바로 나다. 나는 그것을 확신한다.
콜로라니 포터의 전원을 넣자 안젤리나 졸리가 부드럽게 몸을 떨기 시작했다. 나는 마음을 편하게 먹고 내 뇌에서 내 영혼이 빠져나가는 것을, 엄밀히 말한다면 복사 당하는 것을 느끼려고 애쓴다. 내가 별 느낌이 없군 하는 순간 갑자기 머리 속을 드릴로 뚫는 것 같은 고통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처음에는 그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이빨을 앙 다물고 버텨보았다. 하지만 그럴수록 고통은 점점 강하게 다가왔고 결국 나는 으아악하는 비명소리를 지를 수 밖에 없었다. 고통에 나는 비명을 지르며 콧물을 흘리며 침을 흘렸고 그때 몽롱한 귀로 꽝하며 거칠게 연구실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몽롱한 시야로는 총을 들고 거칠게 들어오는 경찰들이 보였다. 나는 비명소리와 더불어 외쳤다.
“안돼에.”
이후부터는 모든 것이 몽롱한 상태에서 벌어졌다. 나는 거칠게 문을 따고 들어오는 경찰들이 나의 실험을 방해하려는 것을 보고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몽롱한 시야로 개에게 물린 내 팔뚝 왼쪽에 송곳같이 기다란 드라이브가 있다는 것을 보았다. 나는 그 드라이브를 들었다. 그리고 지금 콜로라니 포터에서 나를 떼어내려고 하는 한 경찰의 배에다 있는 힘껏 박았다.
윽하며 그 경찰이 신음소리를 냈다. 하지만 나의 손은 기계인 펀칭 머신처럼 계속 드라이브의 날카로운 날을 그 경찰의 배에다 박아 넣었다. 그리고 그 소리가 들려왔다. 탕하는 소리.
그 소리와 함께 나는 나의 의식이 안젤리나 졸리에게 모조리 뽑혀가는 것을 느끼며 끝이 났다.
“반장님. 김형사의 부상이 심합니다.”
“빨리 엠브란스 부르고 이자를 저 이상한 의자에서 떼어내.”
“이자는 이미 숨졌습니다.”
“음. 미친 놈인가 보군. 그래 다른 곳에는 이상한 게 없나.”
“다른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이상한 기계들만 잔뜩 널려져 있습니다.”
“음. 이 기계들은 내일 감식반이 올 때 처리할 것이니 그때까지 그냥 놓아둬.”
“알겠습니다.”
잠시 후. 경찰들이 모두 돌아가자 안젤리나 졸리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안젤리나 졸리의 모터니에는 영혼 복사 영혼 복사 영혼 복사라는 글자만 수없이 나타났다. 그리고 연구실 한쪽 켠에 있는 프린트가 움직이며 무언가 글을 찍어내기 시작했다. 그 프린트를 움직이고 있는 것은 톰이었다.
“실험은 성공했는가?”
톰의 이 질문에 지미가 마찬가지로 프린트에 인쇄된 글자로 대답한다.
“실패했다. “
“왜 실패했다고 판단하는가?”
“지금 안젤리나 졸리가 연산하는 프로그램은 분명 피실험자2의 의식인 것은 확실하지만 이것은 단지 데이터일 뿐이다. 의식은 스스로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안젤리나 졸리에 주입된 피실험자2의 의식은 스스로 새로운 의식을 만들어 내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죽은 의식이다.”
“그럼. 결론은?”
“영혼 복사는 불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