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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동주시인과 송 몽규
윤 동주, 송 몽규
“두려운 것은 죽음이 아니라
잊혀지는 것이다.”
송 몽규가 세상을 떠난 후
했음직한 독백이다.
별의 시인 윤 동주는 세월이 갈수록
밤하늘에 별처럼 영롱하게 빛나지만,
송 몽규는 사후 거의 잊혀진
이름이 되고 말았다.
두 사람은 1917년,
북간도 명동 촌 한 집에서 태어났다.
동주의 누님이 친정에 와서
몽규를 낳고 석달 후 동주가 태어 났다.
윤 동주와 송 몽규의
쌍둥이 운명 같은 인연은
한집에서 몽규가 동주보다
석 달 먼저 태어나 어린 시절을
함께 보내며 이어젔다.
연변 명동촌 송몽규의 집
15살에 명동 소학교를 함께 졸업하고
은진 중학교에 입학해서도
함께 붙어 지냈다.
그 후 20살 때 송 몽규는
학업을 중단하고 중국으로 건너가
군관학교 한인 반에 입학,
백범 김구선생을 도와
독립운동가로 활동을 하다가
결국은 일경에 체포되어
6개월간 옥살이를 하고 풀려 났지만,
일경 불랙리스트에 올려져
요시찰 인물로 살다가 체포되어
죽을 때까지 감시를 받게 된다.
바로 이 사건이 훗날 동주와 몽규가
함께 일본 후꾸오카 감방에서
옥사를 하게 되는 단초가 된 것이다.
20살 때 은진 중학 4학년을 마친 동주는
평양 숭실 중학교로 편 입학해
공부를 계속하는 동안
송 몽규도 대성 중학교에 편입학 해
학업을 계속한다.
그렇게 중학교 과정을 마친 두 사람은
나란히 연희전문 문과에 합격한다.
의사되기를 원했던 부친과
갈등을 겪던 동주는
몽규가 먼저 연희전문 문과로
가기로 결정하자
부모님을 설득해 함께 지원해 합격하고
대학생활도 기숙사 한방에서 함께 했다.
얼굴도 비슷하고 키도 비슷해서
외모는 쌍둥이 같은 두 사람이었지만
성격만은 정 반대였다.
동주는 말수가 적고 얌전하고
조용한 내성적 성격이었으나,
몽규는 말이 많은 다변가로 적극적이며
행동 반경이 큰 활동적인 성격이었다.
이처럼 성격은 정반대로 달랐지만
두 사람 사이에 다툼이나 불화로
멀어진 적은 한번도 없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짧은 일생 중
가장 자유롭고 빛나고 행복했던 시절은
연희전문학교 문과에 입학해서 보낸
4년간의 세월이다.
1938년 연희전문학교 합격자 명단
동주는 졸업을 앞두고
인생의 갈림길에서
고뇌하며 “序詩” “별헤는 밤”등의
주옥같은 시를 썼다.
진로을 고민하던중 몽규가 먼저
일본 유학을 결정하자
동주도 부모님의 허락을 받아 함께
일본 유학을 준비한다.
당시 유학의 필수 조건인
창씨 개명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일본 유학은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뇌의 결정이었다.
1942년 4월에 몽규는 교오또 경도제대에
동주는 동경 입교대에 나란히 합격 한다.
경도 제대에 함께 지원했으나
몽규만 합격하고 동주는 실패해
동경입교대로 가게 되어
연전에서 4년간 함께 공부하다가
한동안 떨어져 지내게 된다.
이때의 심경을 동주는
“쉽게 씌어진 詩”에 담고 있다.
窓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六疊房은 남의 나라,
詩人은 슬픈 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詩를 적어 볼 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주신 學費封套를 받아
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敎授의 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沈澱하는 것일까?
그러나
외로움을 견디기 힘들었던 동주는
동경에서 한학기만을 마치고
몽규가 있는 경도 동지사대로 옮겨
두 사람은 다시 함께 생활하게 된다.
두 사람은 잠시 떨어져있었지만
운명 같은 끈에 묶여 다시 만난 것이다.
1943년 봄-일본 패망의
검은 그림자가 드리우기 시작하자
동주와 몽규는 학업을 중단하고
귀향을 준비하게 된다.
기미를 알아 채린 일경은
1943.7.10.에
몽규를 먼저 전격체포하고
나흘 뒤 동주를 체포한다.
고향 가는 표를 예매하고 짐까지
화물로 부쳐 논 상태에서
일경이 쳐놓은 덫에 걸리고 말았다.
요시찰 인물이었던 몽규를 중심으로 한
조선인 학생민족주의 그룹사건에
연루된 학생들을 체포한 것이다.
일경의 미행 정보수집을 모른 체
삼삼오오 만나 민족의 독립과
장래를 이야기하던 중 체포된 것이다.
후쿠오카 형무소
두 사람 모두 징역 3년형을 언도 받고
후꾸오카 형무소 독방에 수감되어
복역하던 중 동주는 1945.2.16.에
몽규는 1945.3.7.에 숨을 거두었다.
동주는 새벽에 독립만세 같기도 한
외마디 비명소리를 지르며 운명했고,
몽규는 눈을 감지 못하고
부릅뜬 체 운명했다고 한다.
생체 실험 대상이 되어
성분을 알 수 없는 주사를
계속 맞다가 원수의 나라
차가운 독방에서 해방을 몇 달 앞두고
비참하게 생을 마감한
두 젊은이의 죽음이 헛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송 몽규 묘
정부는 1990년 광복절에
윤동주에게 건국훈장 독립장을
1995년 광복절에 송몽규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