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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부터 계속해서 입가에 맴돌던 라트라비아타의 '파리를 떠나서' 를 흥얼거리며
이제 스위스로 간다는 메일을 한국으로 날리고 마당의 정원에 앉아 날이 밝기를 기다렸다.
이 날 따라 늦게 일어난 민박집 주인 총각은 (실은, 내가 아랫층에서 불러서 깨웠다)
불쌍하게도 "빠흐동 빠흐동(pardon ; 미안)" 하구 무척 미안해하면서 허둥지둥 아침을 지었다.
평소와 다르게 식탁에 빙 둘러 않은 여행자들이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침묵 속에서 식사를 하길래,
나는 '맛있다'를 연발하며 아부와 식사를 동시에 처리했다.
아침이 늦어진 관계로 짐을 다 꾸렸을 때는 10시가 넘어가고 있었고 Geneve로 갈 TGV는 오후 2시경에 출발하기 때문에 4시간 정도의 여유가 있었다.
원래는 아침 일찍 어디고 다녀올 작정이었지만 이러구 보니 어딜 다녀오기도 저 짐을 끌고 아예 나가기도 애매해졌다.
하는 수 없이 어제 갈려다 포기한 퐁네프 다리 앞에 사마리텐에 가서 일기라도 쓰면서 Paris를 정리하려구 했다.
민박집 총각은 시간이 애매하니 아예 짐을 들고 나가서 Gare de Lyon (리용역)의 coin locker 에 보관한 후 움직이라는 것이다.
뭐.. 경험자가 더 낫겠지 싶어 짐을 들고 민박집을 나서는 실수를 하게 되었다.
리용역까지는 계단을 오르락 내리락 해가며 전철을 두 번 갈아타야 했다.
핸드캐리어 + 휴대용 가방 + 배낭 을 메고 용을 써서 도착한 리용역은 규모가 무지 크고 우라나라처럼 사람들이 바글바글했다.
현지인들에게는 아무리 물어도 Coin locker가 어디 있는지를 모르길래 Information desk를 찾아가 줄을 섰다.
거기서는 저 쪽으로 가서 직진하라구 알려주었으나 100m 도 넘게 역 끝까지 가도 아무래도 보이질 않았다.
다행히 지나가는 역무원이 있어서 그에게 다시 물어 에스컬레이터를 내려 간 다음에야 찾을 수 있었다.
Coin locker 가 있는 방에는 폭탄테러와 마약 때문인지 비행기 탈때처럼 짐과 몸 수색을 한 다음에 들어보내 주었다.
하긴 프랑스는 이슬람교가 제 2종교라는 것에서도 알 수 있듯이 아랍인과 흑인들이 무지 많았다.
[세느강의 유람선]
휴우~~힘겨운 짐을 내려 놓은 후 퐁네프로 향했다.
날씨는 전 날보다 더 더웠다. 기차 시간을 1시간 반 남짓 남겨 놓고서 도착한 사마리텐은 덥기만 하고 운치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실망스러웠다. 이 곳에 오기 위해 땀을 뻘뻘 흘리며 리용역의 코인락커까지 짐을 끌고간 것이 후회스러웠다.
이런 곳을 어찌하여 마뚜는 그렇게 가보라구 한 것일까...흑흑
여행안내책자와 스위스를 다녀온 사람들은 스위스에서는 거의 모든 상점이 6시면 문을 닫고 휴일에는 레스토랑도 쉬므로, 토요일 저녁에 스위스로 들어가서 일요일 - 더군다나 5월 1일 노동절이었으므로- 까지 버티기 위한 요깃거리를 장만하라구 했다.
사마리텐 주변에는 먹을 걸 파는 곳이 없어서 서둘러 리용역으로 돌아왔다
역 주변에는 호텔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했지만 자리에 앉아 먹을만한 시간은 없어서 레스토랑에서 참치바게뜨 샌드위치(음~얼마나 맛있었는지..)를 사고 그 주변을 뱅뱅 돌아서 찾은 작은 수퍼에서 과일과 요쿠르트등을 샀다.
다시 역으로 돌아왔을 때 아직 시간이 남아서 엄마에게 전화 드렸다.
"엄마"
"오이야~~ 아가 (오빠 외에 마뚜와 나는 아가로 부르심).... 병원이니?"
"아니.. 파리야. 하하하"
파리에 도착한 날도 전화를 드렸었지만 엄마에게는 paris로 떠났슴을 알려드리지 않았다.
걱정하실 일이 뻔하고 더군다나 혼자 간 것을 아시면 솔로인 나 땜에 맘 아파하시며 눈물 지으실 것이기에....
"으응~~ 친구랑 같이 갔어?"
"아니, 혼자야. 하하하하하"
"오메오메오메~~~~~~~" 수화기에서는 제대로 된 전라도표 감탄사 폭탄이 터져나왔다.
"엄마 !! 영국 사람도 저더러 영어 잘한대요. 하하하 걱정마세요. 엄마 싸랑해~~"
내가 바로 자식자랑 파트로 넘어가자, 우리 천하태평표 어머니께서는 '오메오메'에서 '영어 잘한다'로 금새 포커스가 옮겨지셨다. 아유~ 우리 성격 좋으신 어무이~~~~원래가 자질구레한 걱정은 안하시는 분이다.
서울에서 떠나기 전 날 하부지께서는 나를 보러 오셨다.(고 생각했는데 짐을 보러 오신 게 아닐까...)
짐을 보시더니 "이렇게 가면 동양거지라고 한다" 라며 당신의 젊을 적에 유럽여행하시던 기억을 되뇌이시고는
옷장을 확 여시더니 4계절 옷을 다 가져가야 한다며 아직 서울은 추웠는데도 끈나시에서부터 얇은 파카, 등산양말과 조끼, 휴대용 비옷에 모자도 두개까지 챙기게 하셨다.
내가 이것이나 요것은 필요없지 않을까 하고 조심스레 세번째 여쭙자, 하부지께서는 "다 빼 !!!" 하셨기 땀시
꼼작없이 찍소리도 못하고 모조리 싸 오게 된 것이다.
파리의 민박집에서 내 가방 속을 본 여자애들은 모두 허억~놀라며 입을 게 많다구 부러워도 하고 불쌍해 하기도 했다. 또 배낭여행자는 거지처럼 입고 다녀야 도둑을 만나지 않는다는 충고도 잊지 않았다.
나는 그럴 때마다 "하하하" 하고 웃음과 울음이 뒤섞인 애매한 심정으로 얼릉 가방을 닫아버렸다.
더 듣구 있다가는 이 여행의 짐 때문에 가슴이 괴로워질 것 같아서...
하부지께 전화드리다가 짐으로 인한 고생을 토로하자,
"연아야, 그러면 입고 난 옷은 하나씩 버리면 되지~~" 하시는 게 아닌가.
안 가져가겠다는 것을 동양거지처럼 보이면 안된다구 좋은 것만 골라서 담게 하셔 놓고는 이제와서 버리라신다.
순간 CDG 공항에서부터의 짐으로 인한 고생이 한꺼번에 떠올라서 나도 모르게 투정이 나와 버렸다.
그러자 하부지는 내 응석을 받아주시지 못하고 도중에 갑자기 인사를 하시고는 뚝!! 끊으셨다.
나는 깜작 놀라기도 하고 투정 부린 것이 마음에 가시가 되어 잠시 후 다시 전화를 드렸더니
첫번째 신호가 가기가 무섭게 바로 받으셔서 미안하다구 먼저 사과하셨고 나두 잘못을 빌었다.
그 날따라 아주 나쁜 일이 있으셔서 피곤하시고 기분도 무지 상하신 채로 방금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에고~~ 그런데 못나게도 부스럼을 안겨 드렸으니... 지금 생각해도 '하부지 증말 죄송해요~~~'
그러나 이미 속이 많이 상한 채로 눈물까지 훔쳐가면서 락커의 짐을 찾아 기차를 탔다.
여행하다보면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게지...
살아가면서 욕심이 많으면 이 짐처럼, 욕심은 짐이 되고 이 얼마나 수고롭게 하는가..
앞으로는 오늘을 교훈삼아 인생의 짐을 가볍게 하여 여행을 하리...
[Geneve의 몽블랑 다리 위에서]
Geneve에서는 입국심사도 없이 여권만 보여주고 간단히 나갈 수 있었다.
그런데 무거운 가방들과 먹을 것까지 낑낑대고 들어선 Geneve 역에는 수퍼마켓도 버젓이 열려있고 베이커리, 레스토랑도 성업 중이었다.
이럴 수가.. 한 시간 가까이 국제전화를 하고 하부지를 속상하게 한 짐이 몽땅 먹을 것으로 보이면서 원망스러웠다.
Geneve와 다음 날 묵을 Zermatt(체르맛)은 오후 6시 넘어서 도착하게 되므로 이미 호텔예약을 했었다.
호텔로 픽업요청 전화를 하려면 스위스 국내 전화카드를 사러 가야 해서 역에서 가깝다는 말을 믿고 걸어가기로 했다.
약간 오르막 길이어서 핸드캐리어를 수레처럼 앞으로 밀면서 올라갔다.
그러나 가도 가도 눈 앞에 금방 나타난다는 호텔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보니 또 '바로 저기' 라며 금방이란다.
그 말을 다시 믿었지만 가도 가도 호텔은 보이지 않고 흐르는 땀이 이제는 샤워 수준이 되자
신화 속의 '시지프스'가 되어 커다란 운명의 바위를 옮기고 있구나..싶어졌다.
바로 이 생각이 들었을 때, 뒤에서 자전거를 끌며 올라오는 선해 보이는 커플을 만났다.
호텔은 아직 멀었냐구 물었더니 또 '바로 저기'란다.
내가 힘들어 죽겠다는 표정으로 "Are you sure ?" 하자, 커플은 껄껄껄 웃었다.
그들은 짐을 들어주려 하기보다는 내게 궁금한 게 많은지 그렇잖아두 숨차 죽겠는데 쉬지 않고 말을 시켰다.
드디어 호텔에 도착하자 시지프스의 돌덩이는 흰 정장차림의 흑인 웨이터 차지가 되었다.
우와~~~어찌나 시워언 하던지...습관이 되지 않은 팁을 주면서 그렇게 기분 좋기는 난생 처음이었다.
호텔은 그랑프리 정원에 위치해 있어서 맘에 쏙 들었다.
로비에서 '역에서 되게 멀다'구 했더니 전화 한방이면 될 것을 고생했다며 check out 할 때는 말하란다.
우이쒸~시지프스놀이 했는데...
방에 들어오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공원이 바로 앞에 시원스레 펼쳐졌다. 침대에 벌러덩 누우니 새소리도 청아했다.
짐을 놓은 마음이 얼마나 개운하던지..지금 생각해도 무지 신이 난다.
피곤이 몰려와서 샤워를 하고 나갈 지, 해가 지기 전에 산책을 갈 지 생각하다가
'샤워는 집에가서 실컷하자' 로 굳히고 땀에 절은 몸으로 밖으로 나갔다.
호텔 앞으로 나서자 마자 아까 그 자전거 커플이 환한 미소로 Bon Voyage 하며 손을 흔들고 쌩하니 지나갔다.
그들의 친절한 인사에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시지프스처럼 올라갈 때는 그리 멀던 길이 가벼운 몸으로 가니까 놀랄만큼 짧았다.
파리에서도 끊이지 않던 새소리가 여기까지 따라왔는지 무곡을 연주하길래 발걸음은 저절로 '스텝'으로 바꼈다.
[Geneve의 상징 대분수- 분수아래의 하얀 이쑤시게처럼 보이는 것은 요트의 돗대이다]
지도를 보며 아까 지나온 역을 지나서 몽블랑 거리로 나갔다.
시계샵들이 많이 보였고 파리와는 달리 노천 레스토랑에 앉아 있는 사람들의 눈에는 힘들이 빠져서 참 여유로운 미소들이었다. 저녁 8시가 가까워져가고 있었다.
아까 시지프스 놀이를 하느라 수고한 내 몸뚱아리는 어느새 시원한 Lac Leman(레망호수)와 그 건너 몽블랑의 만년설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다 마르고 박하사탕만큼이나 시원해져서 리용역에서의 일은 바람과 함께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레망호수의 몽블랑 다리를 건너면서 호수에 닿은 석양을 만나자 환희처럼 기분이 날아갈 것 같았다.
'아아~ 시원해~~~'
이미 날이 어두워지기 시작했으므로 첨으로 혼자서 낯선 이국의 야경을 헤매는 설레임과 두려움이 가슴에서 고동치고 있었다.
다리 건너에는 그 유명한 스위스은행들이 즐비했다. 세계의 많은 검은 돈이 이 곳 Geneve의 은행에 있다 한다.
여기서부터는 지도를 보고 싶지도 않아서 바로 눈 앞에 보이는 카페로 가서 '생피에르'를 어디로 가는지 물었다.
그는 가게 밖으로 나오더니 뒷쪽을 가리키며 쭉 올라가라구 한다.
그리구 성당을 다녀온 후, 호텔 앞에 되돌아 가는 8번 버스를 어디서 타야 되는 지 미리 물어봤다.
그는 활달한 표정으로 세군데를 가리키며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에 따라 다르다며
"어디서 왔죠?" 했다.
"south korea 에서 왔어요. 근데 왜 타는 곳이 달라요?"
"하하하...미안 미안, 농담이에요. 저기에서 타세요."
[생피에르 성당 가는 길]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가다가 키 큰 남자가 지나가길래 한번 더 길을 물었다.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알아도 한번씩 더 확인하고 다녔다.
'성당'이라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그냥 '생 피에르' 했더니 그는 "You mean cathedral?" 한다.
"오우~~ 맞아요. 당신 발음이 아주 좋군요~ 하하하" 하구선 그가 가리키는 곳으로 올라갔다.
좁은 골목 양쪽의 노천 레스토랑에서는 저녁을 먹는 이들의 소근거리는 소리가 빛과 함께 흘러 나왔다.
골목을 지나 성당에 이르러 성당과 마들렌 사원을 카메라에 담았다.
이미 어둑어둑해지고 있었으므로 안으로 들어갈 생각은 하지 않고 온 길을 되집어 서둘러 호텔로 향했다.
아까 길을 물어본 레스토랑 뒤에 공중전화박스들이 있어서 빈 곳이 있나 하고 있을 때 길을 가르쳐준 그와 다시 마주쳤다.
그는 자기를 보러 왔냐구 반기더니 내가 전화하러 왔다구 하자 통화가 끝나면 카페로 오라구 했다.
[생 피에르 성당]
하부지께서는 리용역에서의 일이 마음이 쓰여 잠도 못 이루시고 계실 것 같았다.
이 곳 Geneve(쥬네브) 가 너무 황홀케 해주어 기분이 좋아졌노라구...
그러니 하부지께서도 마음쓰시지 말구 부디 푹 주무시라구...
전화를 끊고 나서 그의 카페 앞을 지나는데 그는 마실 것을 권했다.
그 때 이미 9시 반을 넘기고 있었고 너무 어둡기 전에 서둘러 저녁산책을 마칠 작정으로 두근거리는 설레임과
약간은 기분좋은 긴장감으로 저녁도 안 먹고 돌아다녔기 때문인지 먹을 것을 보자 마음을 약해졌다.
나는 달지 않은 핫초코를 달라했고 그는 샌드위치도 들겠냐며 함께 내왔다.
으음~ 얼마나 맛있던지... 이국에서 모르는 이에게 받은 친절로 인해 먹기도 전에 이미 배가 불러왔다.
내게 나이가 얼마냐구 묻길래 순간 주춤하다가 22살이라구 뻥을 쳐 보았다.
그는 오~ 아름다운 나이라며 자기는 29살이란다. 하하핫
그가 드라이브 하자고 권했지만 이국에서 낯선 남자와 그것도 이 밤중에 단 둘이는 겁도 나고
- 서양인들은 허락없이 섣부른 짓은 하지 않는다' 라고 들어왔으나 -
무엇보다도 다음 날의 일정을 위해서 이 배부른 잠퉁이는 돌아가야만 할 것 같았다.
내일 몽트뢰를 거쳐서 체르맛에 가야하니 호텔로 돌아가겠노라 하자
그는 드라이브할 것을 사정하다시피 조르다가 내일 다시 와줄 수 있냐구 물었다.
하는 수 없이 오전 10시경에 들리마 하고 오늘은 스위스에 온 첫 날이며 당신의 친절을 잊지 않겠노라구
인사를 하고 트램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러 저만치 뛰어갔다.
[전기로 가는 트램]
버스운전수 아저씨에게 "Bon Jours" 인사를 하구서 그랑프리 호텔로 가는 지 물은 후 도착하면 알려줄 것을 부탁했다.
무엇이건 간에 타기 전과 후에도 늘 행선지를 재차 확인한 후 내릴 때를 부탁했다.
잘 생긴 이 아저씨는 빙그레 웃으면서 그러마 했고, 호텔 앞에 이르러 내리라구 알려주며 '오흐부와' 하고 인사를 해 주었다.
나는 언제나 먼저 "봉쥬르" 인사를 하고, 헤어질 때는 "오흐부와"(또 봐요) 혹은 "메흑씨~" 했다.
그러나 서울로 돌아온 후에 안 것인데, 오전에는 '봉쥬르' 오후에는 '봉수아' 였다.
'jours' 가 아침이라구 알고는 있었지만 오후에는 뭐라 할지 몰라서 애써 귀를 기울여봐도 '봉쥬르'로만 들렸기 때문에
나의 인사는 하루종일 '봉쥬르' 였다.
그래서 버스기사 아저씨든, 기차 차장이든 내가 봉쥬르할 때마다 빙그레 웃은 것일까???
친절하고 여유있는 Geneve 사람들...
Geneve의 밤은 아늑했다.
피곤해진 몸을 방에 들여 놓으니 공원의 신선함이 살갗에 와 닿았고
파리에서부터 나를 따라온 새들의 노래가 여전히 계속되고 있었다.
[노래 출처 - empas]
첫댓글 저분수를 보니 나도 가고 싶다는 생각이...제네바에 오비브 교회에 공연갔을때 생각이 나는군요,연아씨는 노날에 소개해 주려고 여행간 사람 같네여, 어쩌면 이렇게 생생하게,,,,,그래서 슬플정도로,,, 아무튼 멋진 추억에 소유자가 되심을 축하드립니다....
어제 저녁에 스위스의 호스텔들을 예약했는데 이렇게 스위스 여행기를 읽으니 마음에 화~ㄱ 다가옵니다. 용감하고 유쾌한 이야기들이 여행 속의 피곤함 조차도 멋지게 치장해주고 덕분에 아침 일과에 지친 마음에 위안이 되었답니다. 고마워요~~!!
데레사님~ 호스텔 예약했어요??? 올리브맘이 또 흔들립니다~ 연아님 저두 여행기 즐겁게 읽고 있답니다~ 참! 세느강의 유람선을 '바토무슈'라고 부르던데 아직까지 그 뜻을 모르고 있답니다.. 혹시 연아님은 아시나요?
연아야..언냐도 그래또오..파리 갔을 때 내 짐을 보고..으악 이민 가는거에요? ㅡ,ㅡ 그 짐이 나중에 터져버려...이태리 트레빌분수대 옆에 베네똥 가게에서 급조했었지..흐윽...너의 힘든 맘..암..이 언냐는 알고말고..근디 그 이쁜 옷들 입고 찍은 네 모습은? @.@
컴앞에서 ㅎㅎㅎㅎㅋㅋㅋ 마구 웃으며 너무 재미있어서 푹 빠져서 읽다보니 다음편에 계속~~^^ 연아의 솔직함, 마음여림, 등등이 너무 잘 보이는지라 더욱 재밌고 많이 웃게 된다~ 그러나... 참 장하다~ 우리 연아님~
글을 읽으면서 가고 싶다는 생각이..^^ 여행을 못간게 언~~~~~ 10년째네요..ㅜ.ㅜ 어느날 제가 사라지면 이 글을 보고..슈~~~~~~~~~~~~~~~~웅 어디론가 떠난 줄 아셔야해용..ㅋㅋㅋㅋ 글이 정말 재밌습니다.. 기분이 좋아지는 글이에요..
오늘 오전엔 등산다녀와서 누가 야외로 데려가 밥사주고 드라이브 시켜주고^^늦게 들어와서 오늘 처음으로 읽은 후기..거의 단편소설분량의 글이 이리 쉽고 재미지게 읽혀지다니!엄마 관심을 딸자랑으로 환기시키는거 하며 재치 덩어리,명랑하고 긍정적인 성격의 울연아 여튼 캡 재밌게 읽었지만 두번여행한 기분이겠다 ^^*
"체험하는 것"만큼 참 순수한것은 없는거겠죠..일상을 떠나 여행을 하고, 낯선 환경속에서 그곳의 문화, 자연에 들리워졌던 시간의 순간들.. 그 여행의 추억을 순수의 글로 맑게 상큼하게 표현해내는 연아님...신선한 자극은 계속 이어지는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