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만난 名문장, 책방 하는 생활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김이듬 시인 ‘아쿠아리움’ 중
11월은 어반스케치 작가 초청 원데이클래스와 신간을 낸 작가들과 두 번의 북토크, 세 번의 시, 독서, 글쓰기 소모임까지 꽤나 분주했다. 매월 랜선 모임으로 꾸준하게 이어가는 생활체육, 드로잉, 시집필사 모임까지 더하니 그럭저럭 꾀부리지 않고 제 할 일 했구나 싶어 뿌듯하다.
책방 소모임은 길게는 4년, 짧게는 1년을 꽉 채워간다. 제주 골목 오래된 폭낭(팽나무)처럼 책방이 동네의 인문적인 풍경이 되길 바라는 꿈이 있다. 관광지를 벗어나 한적한 이차선 골목에서 동네서점과 북카페를 겸하는 햇수 6년 차 책방지기·자영업자로 살고 있다. 코로나19로 모두 어렵고 ‘살아남기’ 위해 애쓰는 시절, 대출로 수혈받고 이자를 근근이 내며 버틴다.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두렵고 쫓기는 마음은 비양도가 보이는 바다 앞에 매번 세워놓고 책갈피에 앉혀놓는다. “마음 크게 먹으라”는 팔순 엄마의 기원을 부적 삼는다.
작아지는 마음 크게 키우는 고난도 기예. 달리 방도가 없어 매일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짬짬이 읽고 쓰고, 책 추천과 큐레이션을 하고 음료 제조와 설거지를 병행하는 일상이다. 경추 추간판 탈출증과 손가락 건초염, 족저 근막염은 ‘떡 하나 주면 안 잡아먹지’ 으르렁거리는 인생 호랑이를 상대하느라 얻은 깡다구의 흔적이다. 쓰다 보니 꿈과 현실, 일과 일상을 잇는 흔들다리 위를 매일 왕복하고 있구나 알아진다. 사는 게 뭔지 알듯 모를 듯 그저 이것도 공부구나 알아채며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건너갈밖에…. 저 바다가, 엄마가, 책이, 시 한 줄이 중년의 척추를 붙잡아준다. 아직도 자라는 중이다.
✵ 달리책방(대표 박진창아)은 제주도 서쪽 바닷가동네 옹포리에 자리잡은 책방 겸 북카페이다. <나는 내가 읽어야 할 한권의 책> 모토로 자신의 영혼과 내면을 살피는 책읽기를 권한다. 페미니즘, 그래픽노블, 문학, 예술서, 여행서, 그림책 등 2000여권의 도서가 비치되어 있다.
* 김이듬 시인은 1969년 경남 진주 출생하였다. 부산대학교 독문학과 졸업하고 경상대학교 국문학과 박사 학위를 수여 받았다. 2001년 <포에지>로 등단하고, 시집 『별 모양의 얼룩』 『명랑하라 팜 파탈』 『말할 수 없는 애인』 『베를린, 달렘의 노래』 『히스테리아』 『표류하는 흑발』, 장편소설 『블러드 시스터즈』, 연구서 『한국 현대 페미니즘 시 연구』, 산문집 『디어 슬로베니아』 등을 출간. 경기 고양시에서 ‘책방이듬’ 운영 하고 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나는 생각한다
실연한 사람에게 권할 책으로 뭐가 있을까
그가 푸른 바다거북이 곁에서 읽을 책을 달라고 했다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웃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나는 참는 동물이기 때문에
대형어류를 키우는 일이 직업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최근에 그는 사람을 잃었다고 말한다
죽음을 앞둔 상어와 흑가오리에게 먹이를 주다가 읽을 책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사람들은 아무런 할 일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들은 내가 헤엄치는 것을 논다고 말하며 손가락질한다
해저터널로 들어온 아이들도 죽음을 앞둔 어른처럼 돈을 안다
유리벽을 두드리며 나를 깨운다
나는 산호 사이를 헤엄쳐 주다가 모래 비탈면에 누워 사색한다
나는 몸통이 가는 편이고 무리 짓지 않는다
사라진 지느러미가 기억하는 움직임에 따라 쉬기도 한다
누가 가까이 와도 해치지 않는다
사람들은 내 곁에서 책을 읽고
오늘처럼 돈이 필요한 날에도 팔지 않는 책이 내게는 있다
궁핍하지만 대담하게
오늘처럼 인생이 싫은 날에도 자라고 있다
_김이듬 <아쿠아리움>
❁ 들풀의 서울 남산 [木覓山] 풍경 2021년 12월 5일(일)
✵ 남산 잠두봉(蠶頭峰) 포토아일랜드(Photo Island) 전망대 북측지점
✵ N서울타워 포토아일랜드(Photo Island) 전망대 남측지점
[참고문헌 및 자료출처: 〈내가 만난 名문장, 책방 하는 생활(박진창아, 달리책방 대표), 동아일보 2021년 12월 6(월)〉 / 《Daum, Naver 지식백과》/ 사진: 이영일 ∙ 고앵자, 생명과학 신지식인 사진자가 ∙ 채널A 정책사회부 스마트리포터 yil2078@hanmail.net]
첫댓글 고봉산 정현욱 님
책, 책방, 북카페를 소재로 쓴 글을 보고 글재주 좋은사람들이 많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잘 읽었는데 여운이 많이 남는것 같네요
남산에서 바라 본 서울이 이런 모습이군요
즐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