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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봄은 유난히도 눈부셨다. 눈물을 감추기에 딱 좋을 만큼. “눈물을 왜 글썽거려요?” “아. 햇살이 너무 눈부셔서요.”
그 말은 완전히 틀리지도, 그렇다고 전부 맞지도 않았다. 햇살에 눈에 부신 건 사실이지만 그보다 더 눈이 시린 것은 따로 있었다. 나는 그것을 굳이 말하지 않았다. 때론 설명하지 않아도 되는 일들도 있고, 설명할수록 더 슬픔 속으로 빠져버리는 일들도 있기 때문이다.
벚꽃이 피고 있다. 벚꽃이 핀다는 것은 나에게도 새봄이 왔음이다. 며칠 전 흐트러진 마음을 다독여보겠다고 만개한 벚꽃길을 찾아 길을 나섰다. 꽃은 위로가 되니까. 흐드러지게 피어있으면 그만큼 더 많은 위로가 될 테니까. 그래서 그날은 작정하고 하루 종일 벚꽃만 보러 다녀 보기로 했다.
그날 아침 일찍 길을 나서서 차리 마을의 벚꽃길을 찾았다. 이른 아침의 고요가 주는 벚꽃길의 매력은 순수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곳의 잔상이 채 다 사라지기도 전에 영천댐의 백 리 벚꽃길로 접어들었다. 가도 가도 끝나지 않을 것 같은 기나긴 벚꽃길이다. 이제 막 피어나는 응달쪽 벚꽃들은 나의 슬픔보다 더 깊고 찬란했다.
오후가 되어서야 영천의 임고면으로 들어섰다. 멀리서 보아도 자호천 둑길에 늘어선 벚꽃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차에서 내려 둑길로 접어들었다. 길은 생각보다 좁아서 길 양쪽에 늘어선 벚꽃은 하늘을 덮고도 남을 만큼 풍성했다.
고개를 외로 꼬아 위를 올려다본다. 하늘을 가린 꽃 지붕이 현실 너머 가상인 듯 눈앞마저 아득하다. 바람이 불 때마다 만개한 꽃잎들이 함박눈이 되어 흩날린다, 감탄이 절로 인다. 떨어지는 벚꽃을 보다보니 마음 한 쪽에 머물러 있던 슬픔을 잠시 잊는다. 위로를 받은 것인지 아니면 나도 그저 다른 이들처럼 시선을 잠시 빼앗긴 탓인지 알 수 없다. 피어있는 것은 결국 떨어지고, 머물러 있는 것은 언젠가는 떠난다는 사실이 오늘따라 마음을 다독인다. 좁은 길이 구부러지다 한 점이 되는 그곳에선 길 양쪽 벚꽃들이 서로 맞닿아 거대한 구름을 이루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다른 세계로 들어가는 문이 절로 열릴 것만 같다. 황홀하다. 차리 마을에서 느꼈던 감탄이나, 백 리 벚꽃길에서 느꼈던 끝없는 연민과는 또 다른 그 어떤 부유감이 나를 감싼다. 자호천에서는 나의 흐트러진 마음도 순식간에 날아올라 가버려 나는 없고 그 자리에 풍경만 남는다.
길 위에 섰다. 꽃은 피고 있고 지고 있다. 어떤 꽃들이 가장 환하게 피고 있는 동안에도 어떤 꽃들은 소리 없이 떠나간다. 만개와 낙화가, 그리고 완성과 소멸이 함께 공존하는 시간이다. 사람들의 탄성은 꽃이 피어있을 때보다 꽃잎이 떨어져 흩날릴 때 더 크게 터져 나온다. 끝을 향해가는 순간인데도 그 장면은 시작보다 더 찬란하게 느껴진다. 허무를 알고 있으면서도 눈을 떼지 못하는 이유가 뭘까. 영원한 이별을 알기 때문일까. 아니면 놓아버린 그 짧은 순간이 안타깝기 때문일까. 아름답다. 지금 여기 이 벚꽃들이 이토록 아름다운 것은, 이처럼 놓을 때를 알기 때문이다.
문득 아주 오래된 장면 하나가 떠오른다. 어느 봄날, 불국사 앞 벚꽃길. 팔순을 훌쩍 넘긴 엄마도 바람에 흩날리는 벚꽃을 보며 흥겨우셨던가 보다. 떨어지는 꽃잎들 사이로 두 팔을 흔들며 하얀 나비 되어 걸어간다.
“~님아 님아 나의 님아 나를 데려가거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꽃피는 춘삼월에 부디 나를 데려가오~”
노래 소리 남기며 홀로 앞서간다. 그림자도 만들지 않고 구름에 떠가듯 내려간다. 내리막길이어서 그렇게 보였나 보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 듯 가볍게 가볍게.
나는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떨어지는 벚꽃 되어 춤추듯 두 팔을 휘적거리며 걸어가시던 그날 엄마의 뒷모습을. 그날의 걸음은 이별이 아니라 미리 연습해 둔 한 번의 봄이었을 지도 모른다. 그리고 엄마는 알고 있었나 보다. 놓아야 할 때를.
오늘처럼 찬란한 봄날, 나는 아직도 형체도 없는 슬픔의 무게를 내려놓지 못하고 그 속에 서 있다.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을 잡고 무엇을 놓아야 하는지 알아가는 과정인지 모른다. 벚꽃도 피고 짐이 조화를 이룰 때가 절정이었다. 조급하게 덜어내려 하지 않아도 충분히 피고 나면 기꺼이 떨어질 때가 온다.
조금 늦더라도, 그때를 기다리며 이 봄을 지나가 보려고 한다. 아직도 서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