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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키퍼 이운재를 만나러 가는 고속도로에서 오스트리아 극작가 페터 한트케(Peter Handke)의 소설 ‘페널티킥 앞에 선 골키퍼의 불안(Die Angst des Tormanns beim Elfmeter)’의 한 대목을 떠올렸다.
〈페널티킥이 주어졌다. 모든 관객들이 골 문을 향해 달려갔다. “골키퍼는 상대방이 어느 구석으로 찰지 생각하지”라고 블로흐가 중얼거렸다. “만일 그가 슛하는 선수를 잘 알면, 그가 보통 어느 구석을 선택하는지 알지. 아마도 페널티킥 차는 선수도 골키퍼가 머리를 굴리고 있다고 생각할거야. 따라서 골키퍼는계속해서, 오늘만큼은 공이 다른 구석으로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하지. 그러나 만일 키커가 여전히 골키퍼처럼 생각해서 이전에 차 넣던 구석에 차고자 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지난 2일 경기도 화성의 수원 삼성 프로축구단 훈련장에서 만난 골키퍼 이운재는 승부차기 이야기를 꺼내자, 잠시 진저리를 치듯 고개를 흔들었다.
“또 승부차기? 경기 종료가 5분 정도 남았을 때부터 가슴이 답답해지기 시작했어요. 지겹지요. 제발 골 좀 넣어달라고 마음속으로 빌었어요.”
그는 지난 11일 동안 네 차례 경기를 모두 0대0으로 비긴 뒤 이어진 승부차기를 맞이했다. 그는 3차례 연속은 있었지만 4차례 연속은 태어나서 처음이라고 했다.
승부차기는 ‘인도적인 차원’에서라도 폐지해야 한다고 제프 블래터 FIFA(국제축구연맹) 회장이 말할 정도로 선수와 팀 모두에게 가혹한 제도다. 오죽하면 ‘축구의 신이 내린 형벌’, ‘11m의 러시안 룰렛’ 이라는 잔혹한 애칭을 지니고 있을까.
이런 승부차기를 이운재는 주중과 주말 각각 두 차례씩 연속으로 4경기를 치러냈다. 아시안컵에서 7월 22일 이란과 8강전(승리), 25일 이라크와 4강전(패배), 28일 일본과 3·4위전(승리)을 치렀고, 이달 1일 소속팀 수원 삼성의 FA(축구협회)컵 16강전(패배)에서 이운재는 축구의 신이 주재하는 형벌의 장으로 내몰렸던 것이다.
“원칙적인 이야기지만 잘 뛸 수 있을 때까지 뛰고 싶어요. 대표 선수도 잘할 수 있다면 계속하고, 그렇지 않다면 더 이상 미련을 두지는 않을 거에요. 수원 삼성의 창단멤버로 프로 생활을 시작했으니, 여기서 열심히 한 뒤 은퇴하고 싶어요. 그리고 선진 축구를 배우며 지도자 수업을 하고 싶습니다.”
이운재는 한 살 아래인 부인 김현주씨와 두 딸 윤서(5), 은서(3)와 함께 수원에 살고 있다.
한 달 만에 ‘축구의 신이 주재하는 형장’을 떠나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이운재는 원래 큰 눈을 더 크게 뜨면서 아이들 이야기를 신나게 늘어 놓았다.
첫댓글 꺅 운재형~ 역시 형은 최고에요!! ㅋㅋ
와~ 역시 수원 최고레전드...
역시...운재형님....
최고레전드는 이운재도 이운재지만 박건하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