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방문한 외국인들이 놀라는 것 중 하나가 24시간 잠들지 않는 도시다. 단순히 늦은 밤에 거리를 오가고, 공원에서 산책하는 것까지 부러움 대상이다. 선진국이라도 저녁이 되면 어두운 골목길은 물론 공원도 피해야 할 장소다. 허나 우리의 도시는 24시간 먹고 마시고 놀 수 있으니 그들의 눈엔 각별해 보였을 터다. 더구나 남북 대치로 위험하다고 입국을 꺼렸던 이라면 큰 반전에 더 놀랄 것이다.
이 밤의 천국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다름 아닌 전기다. 단순히 조명 용도를 떠나 우리의 일상 매 순간은 전기의 도움 없는 곳을 찾아보기 힘들다. 공기나 물과 같은 또 다른 필수 생존요소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전기가 주는 편리함과 혜택 뒤에 많은 이들의 희생이 따른다는 사실은 잊고 지낸다.
결혼을 앞둔 전기공사업체 근로자 한 분이 또 유명을 달리했다. 새 건물에 전기공급을 위한 활선(活線)작업중 22.9kV 전기에 감전된 것이다. 2인1조로 근무해야 하는 안전수칙 미준수에 대한 아쉬움과 한전의 관리감독 소홀을 질책하는 목소리가 크다.
한전은 경영진의 사과와 함께 직접활선작업 중단과 전선의 정전후 작업 원칙 등을 선언했다. 과거에는 공사시 우편이나 가두방송 등으로 사전 예고한 뒤 해당 지역의 전기를 차단하고 작업했다. 그러나 생활수준 향상과 함께 첨단 전기기기 사용이 늘면서 정전작업에는 많은 민원이 따랐다. 한순간의 정전도 소비자들이 용인하지 못한 것이다. 공장 가동이 멈추고, 횟집 수족관의 물고기가 죽고, 가정의 냉장고 음식이 상하고, 작업중이던 컴퓨터에서 파일이 날라갔다 등등이다.
다양한 민원과 피해보상 요구에 대한 한전의 대응은 정전 축소를 위한 대규모 설비투자와 활선작업 확대였다. 그로 인해 한전의 가구당 정전시간은 2018년 기준 연간 8.59분으로 세계 최고수준이 됐다. 해당 시간이 여름철 낙뢰나 자동차의 전주 충돌 등에 의한 고장정전과 노후설비 교체 등을 위한 작업정전을 포함한 것이라 더 대단한 기록이다.
활선작업은 위험성이 높아 전문기술을 갖춘 인력만 작업할 수 있고, 안전확보를 위해 상대적으로 더 많은 인력과 비용이 필요하다. 가장 위험한 것은 절연장갑과 절연복 등 보호장구를 착용하고 특고압 전기가 흐르는 설비를 직접 다루는 직접활선공법으로, 작업자의 사소한 실수라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진다. 때문에 정전구간을 최소화 하는 바이패스(by-pass) 케이블 공법과 기다란 막대기와 같은 절연스틱과 공구들을 이용해 전선을 다루는 간접활선공법을 쓰기도 한다. 전자는 최소 작업구간만 전기를 차단하고 타지역은 우회하여 전기를 공급할 장비와 운영인력이 추가로 필요하며 좁은 공간에선 쓸 수 없다. 간접활선공법도 무거운 절연공구 사용으로 인한 작업자의 근골격계 질환 유발과 정밀작업의 한계 등 문제가 있다.
이번 한전의 직접활선작업 중단과 전선 정전후 작업 결정은 무정전을 위한 근로자의 희생을 더는 묵인할 수 없다는 사회적 요구에 응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 결정이 순조롭게 정착되기 위해서는 극복해야할 과제들이 많다. 가장 먼저 소비자들의 불가피한 정전을 이해하고 수용하는 마음이다. 거미줄처럼 깔린 설비로 공급되는 전기산업 특성상 항구적인 무정전은 불가하다. 그러나 현실은 태풍으로 정전이 되어도 기다리기 보다 즉시 복구를 요구하는 소비자들이 많다. 앞으로 잠시의 정전으로 인한 불편 감수가 작업자들의 안전과 생명을 보장한다는 큰마음으로 정전을 바라봐주면 좋겠다.
바램으론 이번 기회에 모든 전기공사를 사선작업을 원칙으로 하고 불가피한 경우만 활선작업으로 진행했으면 싶다. 어떤 형태의 활선작업이든 사고 개연성은 상존하며, 사선작업만이 작업자의 감전사고를 근원적으로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거의 무정전에 가까운 전기에 익숙해진 소비자들이 작업을 위한 정전을 쉽게 수용하진 못할 것이다. 또 반도체나 화학산업 등 연속공정 특성상 정전 자체가 큰 손실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결국 현재의 대안은 더 안전한 간접활선공법의 개발과 확대 적용이다. 작업정전 시간과 구간을 최소화하는 기술도 개발하고, 정전작업시 철저한 사전 안내와 함께 예고한 작업시간을 지켜야 한다. 또 고도의 전기공급 안정성이 필요한 소비자를 위해 정전작업 중이라도 전기공급이 가능한 임시 전기공급장치 개발 등 노력도 필요하다. 일반인의 감전사고도 여전히 발생하는 만큼 전기안전 전반을 위한 더욱 과감한 투자도 기대해 본다.
전체의 30%에 이르는 직접활선작업 중단으로 인한 공사업체와 근로자들의 수입 감소도 검토 대상이다. 위험을 담보로 한 직접활선작업에 상대적으로 높은 비용이 지불되어왔기 때문이다. 활선을 사선작업으로 전환한 만큼 공사비 부담이 줄 것이므로, 공사비 감소와 인건비 감소 양자간 적정한 합의점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2022년 1월 27일부로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되면서 사업주들의 대응이 긴박해진 모양새다. 사상자 발생시 사업주 처벌 강화로 지나치게 사용자를 옥죄는 법이라는 불만이 있지만, 그동안 돈과 효율성 때문에 뒷전이었던 우리 사회의 안전문화를 획기적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 안전을 위한 투자는 곧 인간존중의 시작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