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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필 '퍼기의 아성에 도전한다'
스콜라리는 유로2008 예선에서 잉글랜드를 패퇴시켰던 히딩크 만큼이나 잉글랜드인들에게 두려운 인물이다. 아니, 히딩크보다 더 무서운 사람일 수도 있다.
그는 브라질을 이끌던 2002한일월드컵 8강전에서 잉글랜드를 2-1로 물리치며 통산 5번째 월드컵 우승을 안겼고, 포르투갈을 이끌며 유로 2004와 독일월드컵 8강전에서도 잉글랜드를 짓밟았다. 이른바 '잉글랜드 8강의 저주'의 장본인인 셈이다. 첼시의 구단주 로만 아브라모비치는 심사숙고 끝에 스콜라리를 택했다.
외국인 감독 영입에 가장 적극적이었던 첼시의 전통을 모를 리 없지만 극성스러운 런던 언론들은 남미 출신의 지도자를 선택한 것에는 의문부호를 달았다. 브라질, 포르투갈과는 엄연히 다른 잉글랜드의 문화를 거론하며 빅필이 걸어갈 험난한 길을 예견했고, 옛방식으로 팀을 운영하는 그의 스타일이 런던의 고품격 축구를 추구하는 첼시의 이미지와 맞지 않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빅필은 뚝심의 지도자다. 2002한일월드컵을 앞두고 브라질 대통령의 압력에도 불구하고 호마리우를 뽑지 않았고, 브라질 전통의 포백 대신 스리백을 가동하며 월드컵을 우승시킨 고집불통이다. 포르투갈을 맡아 브라질 출신의 데쿠를 귀화시키자 루이스 피구를 주축으로 황금 세대들의 조직적인 반발에 부딪혔다. 그는 끝내 피구를 무릎 꿇리며 조직을 장악하며 유로 2004 준우승, 독일월드컵 4위를 이끌어냈다.
7월1일 지휘봉을 잡은 이후 그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이적을 준비하던 프랭크 램퍼드와 디디에 드로그바 붙잡기였다. 그의 스타일대로 이들의 이적 불가를 밀어부치고는 주장 존 테리에게 힘을 실었다. 여기에다 바르셀로나의 데쿠와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자신이 구축할 팀의 뼈대를 빠르게 완성했다.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바라겠지만 맨유로부터 프리미어리그 패권을 되찾아오는 일이 첼시의 급선무다. 결국 알렉스 퍼거슨 감독과 정면 승부를 펼쳐야 하는 셈이다. 그는 유로 2008 당시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에게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라"고 충고하며 이미 퍼거슨 감독의 심기를 불편케했다.
영국 언론들은 스콜라리의 선전포고로 받아들였고, 퍼거슨은 "스콜라리, 입다물고 호날두에 대해 더이상 말하지말라"고 대응했다. 무리뉴가 사임한 후 지휘봉을 건네받은 그랜트에게 무게감이 떨어진다고 비판해온 영국언론들은 빅필이 퍼거슨의 제대로 된 상대가 될 지 주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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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르디올라 '판타스틱4의 해체는 성공할까'
역설적이게도 레알 마드리드가 되살아난 까닭은 지네딘 지단, 데이비드 베컴, 호나우두, 호베르투 카를로스 등으로 대표되는 갈라티코(Galatico·스페인어로 별들의 집단) 정책을 백지화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바르셀로나가 부활하려면 호나우지뉴·데쿠·에토오·메시 등 '판타스틱4'의 해체가 급선무였다. 바르셀로나는 그 적임자로 바르셀로나의 전설이었던 과르디올라를 선택했다.
바르셀로나의 볼보이를 하면서도 행복하던 19살의 한 소년은 1990년 12월 16일꿈에 그리던 1군에 포함됐고 요한 크루이프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후 2001년까지 바르셀로나의 수비형 미드필더로 종횡무진 뛰었다. 과르디올라다.
1992년 바르셀로나의 첫 UEFA챔피언스리그 우승을 이끌었고, 프리메라리가를 우승했다. 또 바르셀로나올림픽 대표로 뛰며 금메달을 목에 걸며 20살의 나이에 이미 바르셀로나의 신성으로 자리잡았다.
호나우두, 피구, 히바우두, 클뤼베르트, 오베르마스 등 초특급 외국인 선수들 속에서도 그는 바르셀로나의 영원한 주장으로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주던 그였다. 프리메라리가(6회), 챔피언스리그(1회), 컵위너스컵(2회), 코파델레이(국왕배·2회), 유럽 슈퍼컵(2회), 스페인 슈퍼컵(4회) 등 그가 뛰던 바르셀로나는 최고였다.
잠시 이탈리아의 브레시아와 AS 로마에서 외도했지만 은퇴 후 바르셀로나로 돌아와 2군 코치를 맡던 그는 20년만에 스페인 출신 지도자로 바르셀로나 감독이라는 중책을 맡았다. 과르디올라 이전 스페인 출신의 지도자는 유로 2008에서 스페인을 우승시켰던 루이스 아라고네스로 1987년 9월부터 1988년 6월까지 단 한 시즌 감독을 맡다 사임했다.
바르셀로나는 리누스 미헬스, 요한 크루이프, 루이스 반할, 프랑크 레이카르트 등 네덜란드 출신의 명장을 배출했지만 스페인 출신들은 호셉 콘살보(1967)) 살바도르 아르티가스(1967∼1969) 호아킴 리페(1979∼1980)와 아라고네스의 예를 살펴봐도 별볼 일 없었다. 과르디올라의 성공은 바르셀로나의 영광인 동시에 첫 스페인 출신의 명장을 배출하는 새로운 전통을 세우는 일이다.
지휘봉을 잡은 그는 티에리 앙리와 리오넬 메시를 중용할 뜻을 밝힌 반면 호나우지뉴와 에토오, 데쿠를 내쳤다. 또 노쇠한 튀랑, 참브로타 등 수비라인도 대거 바꿨다. 대신 아스널에게 알렉산더 흘렙을 영입했고 세이두 케이타, 다니엘 알베스, 헤라르드 피케, 마틴 카세레스, 핀투 등을 영입하며 공수의 주축을 교체했다. 7월 17일 바르셀로나의 홈경기장 캄프 누에서 첫 훈련에 돌입한 그는 지난 5월 8일 레알 마드리드에게 당한 1-4대패의 분풀이를 되새기며 새시즌을 기다리고 있다.
그는 자신의 자서전 '나의 사람들, 나의 축구(La meva gente, el meu futbol)에서 "무언가를 변화 시키기 위해서는 나 자신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써놓았다. 바르셀로나의 재건을 위해 과르디올라가 스스로 무엇을 바꿔낼 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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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지 '안방 호랑이가 아닌 유럽 챔피언으로'
지난 6월 30일 클린스만은 환한 표정으로 바이에른 뮌헨의 첫 훈련을 지휘했다. 특유의 웃는 얼굴이었지만 선수들은 바짝 얼었다. 클린스만은 훈련장 내에서 휴대전화 사용을 전면 금지하며 강한 규율을 강조한 것이다. 대부분의 선수들이 휴가 중이라 12명만이 참가한 첫 훈련이었지만 임팩트는 강했다.
공식 기자회견도 수요일 하루로 한정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훈련 집중력에 심혈을 쏟겠다는 것이다. 뮌헨의 지역신문인 TZ는 "클린스만 감독은 훈련장에 불상까지 세워두고 명상을 위한 공간도 마련했다"고 전했다.
1995년부터 1997년까지 뮌헨에서 뛰며 84경기에 출전, 48골을 뽑아낸 클린스만 감독은 흔히 말하는 뮌헨의 적자 출신은 아니다. 감독과의 불화로 뮌헨을 떠날 때도 이별이 깔끔하지 않았다. 하지만 프란츠 베켄바워, 칼-하인츠 루메니게 등 독일 축구를 좌우하는 뮌헨파들은 클린스만을 독일대표팀 감독을 맡겼고 이후 숱한 비난 여론 속에서도 그를 보호했다.
클린스만은 독일월드컵을 거치며 스타 플레이어 출신의 감독이 아닌 진정한 지도자로 성장했다. 독일대표팀을 맡아 자국서 열린 월드컵에서 3위의 호성적을 거두며 지도자로 인정받았다. 독일월드컵 이후 휴식을 취해온 그가 클럽팀 감독을 맡기는 이번이 처음이지만 루메니게 뮌헨 회장은 전설적인 지도자 히츠펠트 대신 그를 택했다.
독일 대표팀을 개혁했듯 뮌헨을 유럽 최고의 경쟁력을 갖춘 팀으로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뮌헨은 지난 2000-2001시즌 UEFA챔피언스리그 챔피언에 오른 후 우승권에 진입하지 못하고 있다. 최근 10년간 7차례 리그 우승을 차지한 뮌헨의 고민은 바로 여기에 있다.
루카 토니(이탈리아) 프랑크 리베리(프랑스) 판 보멀(네덜란드) 등 경쟁력있는 외국인 선수에다 루카스 포돌스키, 미로슬라프 클로제, 필립 람,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등 독일대표들이 즐비한 이 팀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어야 할 중책이다. 독일월드컵 당시 '클린스만의 남자'로 불리며 쾰른에서 뮌헨으로 이적했던 포돌스키는 뮌헨에서 출전 기회를 잃고 방황했다. 유로 2008에서 부활한 그는 이적을 추진했지만 클린스만 감독이 그를 붙들었다.
클린스만은 VfB 슈투트가르트 소속의 독일 대표팀 공격수 마리오 고메즈의 영입을 백지화하며 포돌스키에게 무게감을 실었다. 클린스만은 4-4-2를 기본 전형으로 삼아 토니와 클로제, 포돌스키 등 3명을 경쟁시킬 생각이다.
클린스만의 유럽 정벌은 단시간 이뤄지지는 않을 것이다. 다만 결과를 떠나 얼마나 호쾌하고 즐겁고 파격적으로 변화할 수 있을 지가 관건이다. 가능성을 보여준다면 2년의 계약을 뛰어넘어 뮌헨에서 장수할 길이 열릴 수도 있다.
▲판 바스턴 히딩크와의 싸움은 계속된다
판 바스턴은 소방수다. 뜨겁게 달아오른 아인트호벤의 독주의 불길을 꺼야만 한다. 네덜란드 리그를 총 29번 우승한 아약스지만 단 한 번도 4연패를 이루지 못했다.
반면 아인트호벤은 박지성과 이영표가 뛰던 2004-2005시즌을 시작으로 4연패를 내달렸다. 결국 판 바스턴은 유로2008 때 패배를 안긴 히딩크가 시작한 아인트호벤의 연패행진을 막아서야만 한다.
21번째 우승을 차지한 아인트호벤은 아약스의 아성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는 형국이다. 아약스의 선택은 마지막 전성시대를 구가한 판 바스턴이었다. 그는 네덜란드 감독을 맡기전이었던 2003-2004시즌 아약스 2군을 지도한 경험이 있다.
지난 2월 23일 아약스와 4년 계약에 합의하는 그는 유로 2008을 마친 7월 1일부터 감독직을 수행하고 있다. 유로 2008에서 비록 히딩크의 러시아에게 8강전에서 무릎을 꿇었지만 이탈리아를 상대로 30년만의 승리를 거둔, 게다가 3골차로 이긴 업적은 기억해야만 한다. 토털사커의 본고장다운 공격 축구의 가능성을 되살린 것이다.
독일월드컵 때는 판 니스텔로이와 유로2008을 앞두고는 판 보멀 등과 치열하게 싸우며 터득한 선수 관리법은 아약스 감독을 맡아서도 좋은 교과서가 될 것이다. 마치 자신은 절대 웃어서는 안될 사람처럼 근엄한 그의 모습은 바르셀로나 지휘봉을 잡던 크루이프를 떠올린다.
크루이프 시절에는 근엄함이 절대적이었지만 달라진 시대에서는 포용도 필요해 보인다. 과르디올라, 클린스만과 마찬가지로 첫 클럽팀 감독을 맡은 판 바스턴은 어떤 리더십으로 아약스를 되살릴까. 판 바스턴의 복귀만으로도 네덜란드리그의 이야기 거리는 풍성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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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창이형.. 독일월드컵 8강전은 포르투갈인듯... 브라질은 프랑스에게 졌는데...
어디 말씀하시는거? 포르투갈이라고 나와있는듯한데
왜 최원창인지 알겠네요ㄱ- 첼시가 언제 호빙요를 영입했지...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레알 마드리드의 호비뉴를 영입하며
이 형아도 참 일할맛 안날꺼야...
한 3주정도 앞서나가서 기사를 쓰는 거 같아요 존경스러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