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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양극화에 서민들은 벼랑끝 내몰려
다섯 친구들의 자산 대조표는 '언제 어디로' 갔느냐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
버블세븐지역 거품 낄수록 상실감 커져
"그 때 빚내서 인기지역으로 갈 걸”
최="애기 키우느라 부동산 시세에는 관심도 갖지 못했어. 그나마 2003년 결혼할 때 30평짜리 아파트 하나 사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지. 그런데 지역이 시흥이라 '버블세븐' 얘기는 남 얘기 같아. 남편 직장이 수원 쪽이라 당장 크게 불편한 점은 없지만, 시흥 아파트 살 돈에 2억원 정도 더 대출을 받아서 과천이나 평촌, 용인으로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마음만 아프다고. 1억 3500만원에 산 집이 지금은 1억8000만원이야. 버블세븐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해도 우리 집도 쏠쏠히 오르고 있다는 생각에 기분이 좋았어. 그런데 요즘 분위기에 이건 오른 게 아니더라. 완전히 마이너스인 거지. 이렇게 격차가 크게 벌어지면 영원히 시흥에 살아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김="역삼동에서 미장원을 하고 있어. 물론 집은 양재동에 전세를 살고 있지. 요즘 근로의욕 완전 상실이야. 사촌이 검단에 아파트를 분양받았는데 얼마 안 있어 신도시 발표가 나왔어. 1~2년새 집값이 1억5000만원 올랐다고 난리더라고. 함께 미장원 운영하며 맞벌이 하느라 아이는 인천 부모님 댁에 내버려두고, 손님 많을 땐 점심도 못 먹고 일하는데 절망스러웠어. 아내는 요즘 그때 몇 억을 대출받더라도 집을 샀어야 한다고 바가지를 긁어. 쓸데없는데 돈 안 쓰고 착실하게 산 게 부질없는 짓이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
중학교 때 서초동으로 이사온 박모씨는 친구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았다.
박="중학교 때 아버지가 직장을 서울로 옮기면서 이사를 갔어. 1990년에 31평형 아파트를 5500만원에 분양받았지. 지금 이 집이 7억 정도 간데. 부동산 버블 이야기가 나오기 전만해도 5억원대였어. 고속도로변이라 시끄럽고 세대수가 많지 않아 강남에서도 싼 아파트 축에 속했어. 분양가도 그래서 높지 않았던 거고. 아버지 덕에 7억대 자산가가 된 셈이지만, 집 한 채 있는 걸 팔아서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 그냥 집은 해결됐으니 월급으로 알뜰살뜰 살아야겠지. 하지만 요즘 부동산이 오르는 걸 보면 그때 사지 않았더라면 평생 집 한 채 못 샀을 것 같다는 생각이야.
이번에 버블에 가장 큰 재미를 본 건 중대형 아파트잖아. 공급이 줄어들었다고 하지만 결국 부동산 시장에서도 큰 놈이 더 크게 오르는구나 싶어. 돈 있는 사람들이 돈 가져가는 부익부 빈익빈이 더욱 커지는 것 같아."
(일동 모두 부러워한다.)
당신이 사는 동네가 당신의 신분을 말하는 시대
최="그래도 우리 중에는 박이 제일 성공한 인생인 것 같네. (웃음) 중학교 때는 모두 한 동네에서 그만그만하게 살던 사람들이 어떤 동네로 옮겼느냐에 따라 운명이 갈린 것 같아. 이제 중산층은 직업이나 재산으로 나뉘는 게 아니라 '어느 동네에 살고 있느냐'로 나뉜다는 생각이 들어. 무슨 아파트 광고 카피가 사회의 진리가 돼버렸어. 이러다가는 동창회도 사는 지역에 따라 수도권파, 강남파로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모르겠다."
그때 호프집 주인인 동창생 한모씨가 끼어든다.
돈, 사람 개발 이익 찾아 떠나, 구도심 사람들 상실감 깊어
한="맞아. 예전에도 동네별 격차가 없지 않았지만 지금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야. 아파트 평수별로 애들이 놀아. 임대아파트 주민들하고 같은 학군 배정됐다고 난리치는 학부모들이 있는 강남 얘기가 남 얘기가 아닌 거야. 버블세븐 현상이 시사하는 것은 부동산으로 인한 계급화 현상이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됐다는 거야. 인천만 해도 그래. 같은 인천에서도 송도 신도시와 구도심 주민들의 격차는 이미 엄청나게 벌어졌어. 우리 동네 사람들은 오래 전에 이 곳에 정착한 사람들이야. 당시에 2000만원이면 적지 않은 돈이었어. 전 재산으로 집 한 채 사서 이 곳을 떠나지 않은 거야. 그 때는 다들 서민들이고 중산층이었지. 그런데 부동산 거품이 한 순간에 우리를 빈곤층으로 만들어 버렸어. 부모님이 1988년 인천 주안동에 2400만원 주고 산 20평형 빌라가 지금 4500만원이야. 물가상승률에 다른 지역의 부동산값 상승률을 감안해 보면 완전 '쪽박'찬 거다. 버블세븐에 사는 세입자들은 정부 말 믿고 있다가 당했다는데 우리 동네 사람들은 집 있다고 행복하는 사람 없어. 상실감만 크지. 그나마 이 가격도 호가야. 당시에는 주안역도 가깝고 학교도 가깝고 해서 인천에서 중심지라 이 동네에 터를 잡았던 거야. 근데 지금은 허허벌판에 도로내고 지하철 내는 신도시에 비해 교통도 불편하고, 입지도 안 좋으니, 재개발 조합이 생겼지만 사업 시행 여부는 불투명해."
최="예전에 인하대 후문 식당들은 값싸고 양 많기로 유명했지. 동문회니 회식이니 다 이 곳에서 하지 않았나. 근데 오늘 오랜만에 왔더니 도로 변에만 아이들이 모여있을 뿐, 한 블록만 안쪽으로 들어와도 사람이 없이 썰렁해 놀랐어."
한="인하대 후문에서 장사를 10년 넘게 장사를 하는데 요즘 같이 장사가 안 된 적이 없어. 호경기에는 월매출이 1200만원도 나왔지. 지금은 부부가 둘이 하는데 한달 매출이 500만원 될까 말까야. 완전히 적자지. 이러다가 망하지 않을까 걱정이야. 최근 6개월 사이에 인하대 후문 골목에 가게가 12군데 새로 생겼어. 그만큼 망해서 나갔다는 뜻이기도 해. 돈은 교통이 좋은 신도시로 몰려. 여기는 아무도 찾지 않아 공동화가 가속화되고 있지. 동인천이나 주안도 마찬가지야. 동인천은 다방이니 호프집이니 없어진지가 오래야. 어쨌든 여기서 돈을 벌어야 목 좋은 곳으로 옮겨갈 수 있는데 사람도 돈도 돌지 않으니 돈이 벌릴 리가 있겠어."
김="나처럼 입지 좋은 곳으로 빨리 이동했어야지. 사람들 떠나는 동네 계속 지키고 있으면 뭐하나. 돈이 몰리는 곳을 빨리 감지하고 떠나야지."
불황에 비싼 부동산값, 자영업자들 이중고
한="악순환이야. 집값이 5000만원도 안 되는데, 남들처럼 담보대출 받아도 사업에 투자할 여력이 안 생기지. 비싼 자리세 내면서 중심가에 들어갈 여력도 안 돼. 자본이 넉넉하지 않으니까 중심 상권 들어가더라도 성공한다는 보장도 없어. 불경기 탓에 가격 경쟁력, 고급화 등 모든 면에서 우위에 있지 않으면 망하기 십상이다. 게다가 부동산 가격 폭등으로 신도시 지역은 자리세도 엄청나게 올랐어. 전반적인 경기 불황에다 비싼 자리세까지 감당해야 하니 사업 리스크는 훨씬 더 커지는 거야. 이게 다 집값 안 오른 동네에 산 죄지 뭐냐. 가게 적자폭만 커지고 있어. 그나마 집 담보 대출 받아서 버티고 있는 중이야."
김="하긴 나도 중심 상권은 아니지만, 양재동 월세가 500만원이다. 월 매출이 2000만원 넘게 나와야 해. 파마값을 다른 동네보다 너무 비싸게 받을 수도 없고, 하루종일 점심도 못 먹고 뼈빠지게 일하는데 상가주인만 좋은 일 시키는 거 같아."
10여년전 7000만원에 산 단독주택 1억도 안가
집값 양극화에 서민들은 모두 벼랑끝
윤="송도 신도시 생기고, 연수구에 대단지 아파트들이 들어서는데 누가 인하대 와서 술을 먹겠나. 동창이나 되니까 오는 거지. 요즘 주안이니 동인천이니 신포동이니 구 도심은 다 죽었잖아. 호프집 하나 없고 사람 한 명 없더라. 부평이니 송도니 하는 신도시와 서울과 가까운 곳에 사람들이 모이잖아. 택시를 몰면서 느끼는건데, 전체 경기가 그렇게 나쁘지만은 않은 것같아. 돈 있는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셔. 문제는 없는 사람들만 더 빈곤해지고 죽는 상권만 더 죽어나간다는 거야. 우리가 살던 개발 낙후 지역은 희망이 없어. 여기 있다가는 서울 강남은커녕 검단으로도 옮기지 못하고 슬럼화된 동네의 빈곤층으로 남게 될지도 몰라. 눈치 빠르게 혹은 서울로 나가서 어디라도 터 잡고 사는 동창들과 너무 격차가 커졌어.
우리도 인근 도화동에 단독 주택을 1990년에 7000만원 주고 샀었지. 지금 팔려고 내 놔도 1억도 안 간다. 엄청나게 '삽질'한 거야. 나는 그래도 단독 주택에 살 거다. 우리 나라는 앞으로 인구가 감소한다고. 10년 지나 봐. 고층 아파트들 흉물이 되고 부셔서 다시 짓느라고 골치일꺼야. 외국 아파트는 튼튼하게 지어서 수백년 쓰지만, 우리나라는 30년도 안돼 부셔야 하지 않니. 아파트 값이 폭락하고 단독 주택 가진 사람들이 엄청난 부자가 되는 시기가 올 거다. 버블이라고 열받지 말자. 10년만 버티면 되지 않나. 나는 이 버블이 꺼질 거라고 봐."
최="그래서 진짜 집을 사야 돼, 말아야 돼? 지금 들어가면 상투 잡는 거 아닐까. 대출도 규제한다는데. 돈 있는 사람들한테는 싸게 대출해 주고 집사라고 해놓고 집값 올려놓고 챙길 거 다 챙긴 다음에 서민들이 집 사려고 하니, 대출금리 올려서 더 옥죄는 거 아닌가. 배신감만 느껴진다."
김="손님 중에 건설사 직원이 있는데 지금 건설사들이 주택 사업에서 손을 떼고 있다고 하더라. 장사 할 만큼 다 했더니 이제 빠지겠다는 거 아닐까. 은행들도 강남에는 더 이상 대출해줄 집이 없다고 하더라. 물량을 다 넘겼다는 거야. 이러다가 은행들이 만기가 왔을 때 선수쳐서 자금을 회수하면 난리 날걸. 지금 무리한 액션을 하는 건 어리석은 짓인 것 같애."
최="부동산 거품이 양극화를 심화시키고, 유동자금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가계 부채까지 눈덩이처럼 불리니, 경제에 치명적인 독이야. 사람으로 치면 피가 돌지 않고 고여있는 거지. 이 정권은 개발 이익을 적절하게 분산하고, 경제에 활력소가 되게 하는 능력이 부족한 거 같아. 이럴수록 서민들만 힘들고 중산층만 몰락하는 거 아냐. 오래된 동네에 허물어져가는 집을 지탱하고 사는 사람들이나, 몇 억씩 빚을 내 버블 투성이인 집을 사는 사람들이나 벼랑 끝에 몰려있기는 마찬가지 아니냐고."
'거품' 이면의 '그늘'에는 서민들의 한숨만
같은 동네에서 비슷한 성장환경을 거친 다섯 명 친구들의 자산대조표는 '언제 어디로' 이사했느냐에 따라 명암이 극명히 갈렸다. 다섯 명의 친구들은 "특정 지역에 부동산 거품이 끼었다는 것은 버블세븐 외의 지역에 돌아야 할 자본이 한 쪽으로 쏠렸다는 의미"라며 씁쓸해했다. 그만큼 부의 편중 현상으로 인한 소득격차와 부익부 빈익빈이 커지고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국민소득은 90년대 중후반 8000달러 선에서 현재 12000달러를 넘어 2만, 3만 달러 시대를 목표로 향해 가고 있다. 그러나 물가 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부동산 가격 상승세, 그리고 하루에도 억 소리가 나게 오르는 부동산가격을 보면서 부동산 시장의 그늘에 자리한 서민들의 한숨과 주름은 늘어만 가고 있다.
왜 이런 걸까. 웰시안닷컴 최정환 대표는 "미국에서도 슈퍼시티 이론이라고 해서 수급을 결정하는 여러가지 변수에 따라 오르는 지역과 안 오르는 지역이 극명하게 갈린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문제는 투기로 인한 거품인데, 정부의 냉온탕 정책이 반복되면서 시장이 춤을 추고 투기꾼들에게 시간을 준 셈"이라고 지적했다.
닥터아파트에 따르면 버블세븐 이야기가 나온 지난 5월부터 강남은 평당 매매가가 3184만원에서 3424만원으로 올랐다. 9.1%가 오른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의정부는 평당 매매가가 441만원에서 459만원으로 올랐다. 4.1%의 상승률이다. 닥터아파트 이용호 과장은 "상승률로만 따지면 강남과 의정부가 별 차이 없어보이지만, 가격의 차이가 워낙 크기 때문에 격차는 비례해서 커진다"고 설명했다.
미디어다음 심규진 기자 sally4mn@daumcorp.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