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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다헌 - 醉茶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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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사는 이야기 스크랩 [양주]양주향교(楊州鄕校)
이모텝 추천 0 조회 149 07.11.15 23:00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양주향교 버스 정류장에서 내리면 향교가 있음을 알려주는 홍살문을 볼 수 있다.

 

홍살문

 

홍전문(紅箭門)·홍문(紅門)이라고도 한다. 9m 이상의 둥근기둥 두 개를 세우고 위에는 지붕이 없이 화살 모양의 나무를 나란히 박아 놓고, 가운데에는 태극 문양이 있다.
 
홍살문은 훌륭한 업적을 남기고 죽은 사람의 공을 왕이 치하하여 내렸다고 한다. 홍살문 또는 홍문, 도설, 정리, 전문, 작설 등은 홍살문을 이르는 다른 말이며 붉은 색을 칠한 것은 악귀를 쫓아낸다는 의미이다. 문 중앙에 태극도를 그려 놓은 것이 특징인데 이는 조상들이 길표로 사용한 것이다.
 
태극은 홍청색으로 태극 소용돌이가 세워진 문양으로 이것이 한국인의 길표로 사용되었다는 것을 입증한다. 향교의 삼원색 태극은 또 다른 태극으로 천지인(天地人)을 상징하는 삼태극이다. 곧 천은 천신인 하느님을, 지는 땅의 신령을, 인은 인신은 조상을 상징하였으며 예로부터 촌부들은 삼신은 곧 아기를 잉태하여 주는 삼신할머니로 믿었다.

 

 

홍살문 옆에는 하마비가 있는데 한국전쟁 당시 총탄에 맞은 흔적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하마비(下馬碑)
 
그 앞을 지날 때에는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타고 가던 말에서 내리라는 뜻을 새긴 석비()로써 대개 왕장()이나 성현, 또는 명사·고관의 출생지나 분묘 앞에 세워져 있는데, 이로 미루어보아 그들이 선열()에 대한 경의의 표시로 타고 가던 말에서 내렸음을 알 수 있다.

 

 

5분여를 올라가면 드디어 양주향교를 볼 수 있다. 4월이라 따스한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다.

 

 

양주향교의 전경이다. 큰 느티나무가 인상적이다.

 

 

향교의 정문으로 외삼문(外三門)이라 한다. 말 그대로 밖에 있는 세 개의 문이라는 뜻이다.

 

 

외삼문은 솟을대문 형식을 취하고 있으며 옆에는 공적비가 세워져 있다.

 

 

공적비를 가까이에서 본 모습이다. 

 

 

정문 앞에 있는 느티나무는 보호수로 수령은 450년, 수고 12m, 둘레 5.5m의 웅장함을 자랑한다.

 

 

운치있는 느티나무와 향교는 잘 어울린다.

 

 

외삼문의 홍살은 철제로 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다.

 

 

공포는 주두 밑에 익공을 하나만 사용한 초익공식을 쓰고 있다.

 

 

외삼문이 솟을 대문인 것을 잘 나타내주고 있다.

 

솟을대문

 

행랑채의 지붕보다 높이 솟게 지은 대문이다. 좌우의 행랑채보다 기둥을 훨씬 높이어 우뚝 솟게 짓는것이 특징이며 다른 말로 고주 대문이라고도 한다. 과거 솟을대문은 지채와 위신을 나타냈으며 높은 지위의 사람들이 즐겨 지었다.

 

 

맞배지붕의 보습도 보여주고 있다.

 

맞배지붕

 
가장 간단한 지붕형식이며, 지붕면이 양면으로 경사를 지어 책을 반쯤 펴놓은 八자형으로 되었다. 정면에서 보면 장방형의 지붕면이 보이며, 측면에서는 지붕면 테두리(내림마루)가 보일 뿐이다. 맞배지붕은 측면 가구(架構)가 노출되므로 측면관(側面觀)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처마의 양끝이 조금씩 치켜 올라가고 용마루선 역시 중앙부를 처지게 하여 서로 어울리게 한다. 이것은 만약 용마루선과 처마선이 수평으로 되면 부자연스럽게 처져 보이는 것을 역으로 더한층 처지게 하여 교정한 것으로 여겨진다. 이는 상류주택의 행랑채와 서민 주택의 몸채에 이용되었다.

 

 

안에서 본 외삼문의 모습이다.

 

안쪽에는 명륜당(明倫堂)이 자리잡고 있다.

 

우정면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명륜당의 크기는 약 28.6㎡(8.65평)이다.

 

우측에서 바라본 모습이다.

]

 

좌측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멀리는 삼문이 보인다. 삼문은 맞배지붕이며 단칸이다.

 

팔작지붕의 형태를 잘 보여주는 명륜당

 

팔작지붕

 

한식(韓式) 가옥의 지붕 구조의 하나로, 합각(合閣)지붕·팔작집이라고도 한다. 지붕 위까지 박공이 달려 용마루 부분이 삼각형의 벽을 이루고 처마끝은 우진각지붕과 같다. 맞배지붕과 함께 한식 가옥에 가장 많이 쓰는 지붕의 형태이다.

 

 

굴도리 형식을 갖추고 있지만 주두가 보이지 않는다.

 

 

내삼문(內三門)은 맞배지붕 형식에 세 개의 문이 나뉘어져 있다.

 

 

내삼문을 뒤에서 담아 보았다.

 

 

내삼문을 지나면 대성전을 볼 수 있다. 좌측의 모습이다.

 

 

대성전의 방풍판의 모습이다. 대성전은 맞배지붕 형식에 한식 골기와를 얹었다.

 

 

대성전의 우측면 모습이다.

 

 

외삼문과 마찬가지로 초익공식의 두공을 사용하였다.

 

 

위패를 모시는 동무와 서무의 모습. 최근에 복원되어 깨끗하다.

 

 

명륜당, 동무와 서무 그리고 대성전을 함께 담아보았다.

 

 

 기와에는 옛 역사가 뭍어나지만 시멘트 처리한 부분은 조금 아쉬웠다.

 

양주향교(校)
 
지정 번호 : 경기문화재자료 제2호
지정 연도 : 1983년 9월 19일
소  재  지 : 경기도 양주시 유양동 266
시       대 : 조선시대
크       기 : 대성전 정면 3칸 측면 3칸, 명륜당 정면 5칸 측면 2칸, 동무·서무 정면 4칸 측면 2칸

분       류 : 향  교

 

1983년 9월 19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2호로 지정되었다. 향교재단에서 소유하고 있다. 조선시대 인조 때 창건되어 많은 유학자를 양성·배출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1610년(광해군 1) 재건하였고,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8년에 유림들이 다시 복원하였다.

 

대성전은 9.89평으로 정면 3칸, 측면 3칸에 한식 골기와를 얹었으며 맞배지붕이고, 좌우에 방풍판을 설치하였다. 전체적으로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동재와 서재가 없고, 명륜당은 석축 위에 사각형 또는 원형의 주춧돌만 남아 있는데 8.65평에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였던 것으로 보인다.

 

철제로 되어 있는 홍살문은 채색되어 있고, 삼문은 맞배지붕에 기와를 얹고 단칸이다. 외삼문 좌우로부터 전체에 크게 담장을 둘렀으며, 내삼문은 긴 담장의 중간중간에 대문을 하나씩 내었다. 동무와 서무는 한식 골기와를 얹은 맞배지붕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이며 보존상태가 좋은 편이다.

 

대성전에는 공자, 안자, 증자, 자사, 맹자 등 중국의 5성을, 동무와 서무에는 신라의 설총(薛聰), 최치원(崔致遠), 고려의 안향(安珦), 정몽주(鄭夢周), 조선의 김굉필(金宏弼), 정여창(鄭汝昌), 조광조(趙光祖), 이언적(李彦迪), 이황(李滉), 김인후(金麟厚), 이이(李珥), 성혼(成渾), 김장생(金長生), 조헌(趙憲), 김집(金集), 송시열(宋時烈), 송준길(宋浚吉), 박세채(朴世采) 등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해마다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린다.

 

'07. 5. 7.
CanonPowerShot A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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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7.11.16 13:26

    첫댓글 예전의 지방대학 향교네요..사진으로 잘구경하고 갑니다.^-^

  • 작성자 07.11.17 00:27

    네~ 잘 보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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