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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 불신앙의 사람들, 믿음의 사람들
본 문 : 민 13:21-33
요 절 :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본 장은 가데스 바네아에서 발생한 사건으로 이스라엘 민족의 광야 40년 생활 중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지역이라고 볼 수 있다.
본문은 가나안 땅 탐지를 위해 파견된 열두 정탐꾼들이 40일 동안의 가나안 탐지를 마치고 무사히 귀환해 모세와 백성들 앞에서 탐지 보고를 하는 장면이다. 그러나 열두 정탐꾼들의 보고는 두 부류로 나뉘어진다. 갈렙과 여호수아는 긍정적이고 신앙적인 보고를 하는 반면, 나머지 10인은 주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한다.
1. 불신앙적 보고를 한 10명의 정탐꾼들.
12명의 정탐꾼들 중 갈렙과 여호수아를 제외한 10인의 정탐꾼들은 부정적이고 불신앙적인 마음의 소유자였다. 본문을 보면 이들은 3가지 불신앙의 특징을 갖고 있으며 이는 현대에도 동시에 적용된다.
첫째는 사실을 왜곡하고 있다. 본문을 보면 열 정탐꿈은 탐지한 땅을 악평했다고 말한다. 이처럼 불신앙적인 사람들은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지 않고 왜곡한다. 왜냐하면 그들이 지니고 있는 시각이 항상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민13:32)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그 탐지한 땅을 악평하여 가로되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그 거민을 삼키는 땅이요 거기서 본 모든 백성은 신장이 장대한 자들이며."
둘째는 보이는 현상만 보았다. 열 정탐꾼들은 그 땅 주민들을 묘사하면서 모두 신장이 장대한 자며 아낙 자손의 대장부라고 말한다. 이처럼 부정적인 사람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현상적인 것들을 지나치게 크게 본다. 왜냐하면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 보이지 않는 힘, 곧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신경하기 때문이다.
셋째는 미리 겁을 먹는다. 열 정탐꾼들은 자기들을 스스로 메뚜기 같다하여 그들이 보기에도 그럴 것이라고 미리 겁먹는 장면이 나온다.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이처럼 부정적인 사람들은 싸워 보기도 전에 미리 겁부터 먹는다. 그들은 늘상 싸움은 하나마나 질 것이라는 잘못된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부정적이고 육신적인 눈을 가진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도 못하고 광야에서 방황하다가 모두 죽어버리고 말았다.
2. 이것이 바로 부정적인 사고를 가진 자들의 최후요 결과다.
신앙적인 보고를 한 갈렙과 여호수아는 10명의 정탐꾼들이 "그러나"하고 불신앙적인 보고를 할 때 여호수아는 (본문에서 갈렙만 등장하지만 다음장에는 여호수아가 등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고 하면서 신앙적인 보고를 한다. 세가지 유형의 긍정적인 보고를 하고 있다.
첫째, 믿음의 보고다. 10인이 "(민13:31) 그와 함께 올라갔던 사람들은 가로되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하고"라고 주장한 반면 두 사람은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나 (민13:33) 거기서 또 네피림 후손 아낙 자손 대장부들을 보았나니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의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고 한 반면, 여호수아와 갈렙은 "(민13:30)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안돈시켜 가로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긍정적으로 믿음의 보고를 하고 있다.
둘째, 소망의 보고를 한다. 열 명의 정탐꾼이 갈 수 없다고 절망적인 보고를 하고 하나님과 모세를 원망하며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오쳤지만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 포도송이를 견본으로 보이면서 "우리가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고 소망을 복돋워주고 있다.
셋째, 사랑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열 명의 정탐꾼은 자기 중심으로 살았으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했고, 민족을 사랑하여 옷을 찝으며 하나님의 계심을 선포했고 가나안 복지로 돌아가자고 한다. 그 결과 여호수아는 그 말대로 가나안 백성들을 치고 그 가나안 땅을 차지하기에 이른 것이다. 참으로 불신앙과 믿음의 삶은 삶과 죽음, 성공과 실패를 가리는 시금석이 된다.
적용
1) 우리는 매일 매순간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거룩한 순례자며 나그네인 것을 인정하고 실감하면서 살아가는가?
2)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면서소유해야 할 가장 큰 재산은 물질도, 지식도, 배경도 아닌 천국으로 인도해 주어야 할 믿음인 것을 확신하며 살아가는가?
3) 신앙생활을 하면서 불신앙적이며 부정적인 사고 방식 가운데 휩사이지는 않았는가?
4) 믿음과 소망과 사랑의 정신을 갖고 긍정적이며 신앙적인 삶의 모범을 보이면서 살아가고 있는가?
출처: 한국강해설교연구원 글쓴이: 옥련지침이
이규현 목사 / 관점이 바뀌어야 인생이 변한다 (민 13:25-33)
우리가 어떤 관점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집니다. 사람마다 관점이 다 다릅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관점에 따라서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어떤 문제가 일어났을 때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그 사건은 달라집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으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우리 안에 있는 관점에 따라 바라보고 판단합니다. 내 안에 이미 잡혀있는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설정되어있는데 이 관점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내가 지니고 있는 관점에 따라서 세계를 보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타락으로 찾아온 어려운 점 중의 하나는 관점에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사건을 있는 그대로 정확하게 바라보지 못합니다. 관점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에 판단력에도 문제가 생겼습니다. 아담이 하와를 보는 눈에도 문제가 생겼고 하와가 아담을 보는 관점에도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관점은 죄성에 영향을 받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것을 있는 그대로 보기보다는 왜곡된 시선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어떤 때는 전혀 두려워할 문제가 아닌데 두려워집니다. 이유는 나의 잘못된 관점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인생을 어쩔 수 있겠느냐며 체념적, 운명적으로 바라보고 모든 사물을 부정적으로 바라봅니다. 또 어떤 사람은 잘못된 일이 일어났을 때 남을 탓하고 원망하면서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고 합리화합니다. 이런 것은 사건과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에 문제가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신앙의 훈련은 관점의 훈련입니다. 사물을 바로 보는 눈을 기르는 것입니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날 때 인생의 변화가 일어나는데 관점의 변화는 한순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오랜 시간을 통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지속적인 노력과 의도적인 관점의 훈련을 하지 않으면 우리는 눈으로 보이는 것에 잠식당하고 영향을 받고 살아갑니다. 달라스 월라드라는 분이 「마음의 혁신」이라는 아주 좋은 책을 썼는데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영향을 끼치는 것은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데 마음의 혁신이 일어나지 않으면 인생의 진정한 변화는 없습니다. 마음의 혁신은 관점이라는 말과 일맥상통합니다. 신앙생활은 표면적인 문제가 아니라 우리의 내면적인 싸움입니다.
세상에서 일반적으로 가지는 두 가지 관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긍정적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부정적 관점입니다. 우리는 둘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긍정적 관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모든 사물을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이런 사람은 얼굴이 밝고 활달하고 잘될 것이라는 그림을 얼굴에 그려놓고 삽니다. 언제나 무엇을 하든지 성공 예감이 큽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용기와 실행력이 있고 매사에 적극성을 띄고 진취적입니다. 어떤 조직에서든 앞장서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긍정적 관점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실패에 대한 큰 두려움이 없습니다. 실패가 온다 할지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노력합니다. 부정적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사물에 대한 비관적인 태도를 많이 가지고 있는데 날씨만 흐려도 부정적인 생각을 합니다. 주로 의기소침하고 매사가 소극적이며 정신질환에 잘 걸립니다. 일을 앞서 하기보다는 일을 하는 사람을 평가하고 판단하는 것에 익숙하고 문제가 생기면 문제를 피하는 성향이 있고 항상 피해의식이 있습니다. 똑같이 실패해도 부정적인 사람은 ‘나는 늘 이런 사람이야. 앞으로도 틀림없이 실패할 거야.’ 이런 자신의 존재 자체를 부정합니다. 그러나 긍정적인 사람은 다릅니다. ‘나는 이 일에 실패하기는 했지만, 앞으로 반드시 잘 될 거야.’ 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크게 나누어 이렇게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행태의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세상은 부정형보다도 긍정형의 사람들이 훨씬 유리합니다. 조엘 오스틴 목사의 「긍정의 힘」이라는 책을 많이 보셨을 텐데 긍정형의 대표적인 책입니다. 긍정의 힘은 실제적으로 우리의 삶에 필요한 부분이 많습니다. 긍정의 효과는 삶에 큰 힘을 불어넣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긍정의 힘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부정과 긍정의 문제를 심리적 측면에서만 보면 우리의 심리는 어느 한순간에 무너질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가져야 할 관점입니다. 그것은 성경적인 관점인데 믿음의 세계에서 믿음으로 보는 관점입니다. 비성경적인 관점은 불신앙적 관점입니다. 세상적 관점으로 긍정적, 부정적 관점으로 구분한다면 우리는 성경적 관점과 비성경적 관점으로 구분해서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가나안 정복을 위해서 정탐꾼을 먼저 보내는데 각 지파에서 한 명씩 12명을 파견해 보고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호수아와 갈렙의 보고와 다른 10명의 보고가 너무도 다릅니다. 그들의 보고서를 보면 우선 표면적인 평가는 같습니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고 성읍이 크고 그 땅의 거주민들은 강력하다고 말합니다. 사실에 대해서는 같은데 평가가 달라 전혀 다른 결론이 도출됩니다. 한쪽은 가서 싸워봤자 그쪽이 너무도 강하고 견고해서 우리는 다 죽을 것이니 싸울 필요도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갈렙과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갈렙은 본문을 보면 우리는 능히 이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라며 자신감에 넘치는 모습입니다. 다 같이 정탐을 했지만, 정탐하기 전 이미 그들 안에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관점이 잘못되어있으면 믿음의 역사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관점이 잘못되어있으면 믿음의 역사를 내 안에서 거부하는 마음이 일어납니다. 12명의 지파 대표들이 파송되었는데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의 대표들이라고 한다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역사의 과정에서 많은 신앙적 경험을 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의 관점은 믿음의 관점이 아니라 불신앙의 관점입니다. 성경적 관점, 하나님의 시각으로 보는 관점을 갖고 있지 않으면 결국은 비신자와 다를 바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신자는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 사람들입니다. 이전에는 세상의 눈으로 보고 싶었는데 신자가 되는 순간 새로운 관점이 생긴 것입니다. 신자는 세상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사물과 사건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신자가 되는 순간부터 인간적인 관점이 서서히 줄어들고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는 훈련이 돼가고 그것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과 인간적인 관점은 완전히 다릅니다. 갈렙을 보면 다른 사람들과 다른 관점을 갖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0절을 보면 「갈렙이 모세 앞에서 백성을 조용하게 하고 이르되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14장 8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 이는 과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니라」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가나안땅을 본 것입니다. 민수기 14장 24절에 「그러나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나를 온전히 따랐은즉 그가 갔던 땅으로 내가 그를 인도하여 들이리니 그의 자손이 그 땅을 차지하리라」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내 종 갈렙은 그 마음이 그들과 달라서」 행동 이전에 마음입니다. 로마서 12장 2절에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마음이 다르다는 것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태도, 관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때부터 우리의 믿음 생활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다는 말은 세상이 말하는 긍정형 인간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긍정형은 자신감의 근거가 자기에게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적 관점, 하나님의 관점에서 나오는 긍정적 관점은 나에게서 나오는 자신감이 아니라 자신감의 원천은 하나님입니다. 내가 가진 자신감은 오래가지 못합니다. 한순간에 부러지고 허망하게 무너집니다. 우리가 가진 자신감은 하나님으로부터 흘러나온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면 자연히 자신감이 생기고 당당해지고 안정감이 생깁니다. 오늘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사물과 사건과 사람을 보는 눈이 열리는 은혜가 있기 바랍니다. 우리 집 아이들이 어릴 때 그릇을 엎지르거나 깨뜨리면 부모가 볼 때는 그릇을 하나 더 사면되는데 아이들은 큰 일 났다고 난리였습니다. 아이들은 코피가 나거나 피가 조금만 나도 죽는 줄 압니다. 자신의 관점에서 보면 아주 큰 일이 난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가 아닌데 우리의 관점에서 보면 큰 문제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면 신앙과 우리의 삶에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믿음의 훈련이라는 부분을 다른 각도에서 표현하면 관점의 변화가 일어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은 자신의 관점에서 가능한 일만 활동하려고 합니다. 12지파의 대표들이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성벽은 너무 크고 견고하여 아무리 보아도 불가능해 보인 것입니다. 순전히 자신의 관점에서 본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은 우리의 관점과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관점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지점을 더 좋아하십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불가능하다고 하는 지점이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가장 일하기 적합한 지점입니다. 남들이 안 된다고 할 때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전혀 다르게 평가를 내립니다. 갈렙의 선포가 정확한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관점 자체가 다릅니다. 기드온이 상대연합군과 싸워야 할 그때에 하나님은 군사의 숫자를 자꾸 줄이도록 하십니다. 수치로 따지면 승리할 확률을 높이기 위해서 군사를 더 모아야 합니다. 상대 연합군은 십삼만 오천이라 한 사람이라도 더 끌어모아야 이길 확률이 높아지는데 하나님은 확률을 낮추는 작업을 하십니다. 세상의 방식과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계속 사람을 줄이라고 하셨습니다. 나중에는 300명까지 줄이셨습니다. 이길 확률이 점점 줄어들수록 인간적 관점에서는 두려워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에서 보면 성공 확률이 더 높아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세계에 들어오면 이런 관점의 변화를 경험해야 합니다. 인간적으로는 기대가 줄어들고 소망이 없어지고 점점 절망적인 상태가 되면 될수록 하나님은 승률이 더 높아지는 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이런 예화가 한둘이 아닙니다. 많은 사건 속에서 이런 일이 일어납니다. 인간의 관점에서 보면 확률을 점점 바닥으로 내려놓으시고 인간적인 기대를 밑바닥까지 내려가게 하시고 하나님이 그 일을 반전시키시면서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경험하게 하십니다. 그 일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이 인간적 관점에서 하나님이 관점으로 전환되는 훈련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면서도 관점이 바뀌지 않을 때가 많습니다. 인간적 관점을 그대로 가지고 신앙생활을 합니다. 관점이 너무도 인간적이고 세속적이고 합리적, 이성적, 계산적입니다. 신자가 신자로서의 진짜 삶이 시작되려면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사물을 보는 눈이 열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일을 하도록 부르실까요? 나를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일을 시키실 때는 하나님이 의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들을 일으키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그냥 내가 내 일을 내 수준에서 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가 우리 가운데 일어나도록 하시기 위해서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려고 하면 먼저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인간적인 관점을 가지고 있으면 자기 수준으로 일을 하게 됩니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으면 삶의 변화도 없고 하나님의 역사도 체험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에게 그 훈련을 시키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려고 하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 번째, 하나님이 어떤 분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르면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수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10명의 정탐꾼이 그런 결과를 낸 이유를 한마디로 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백성이 밤새 통곡하고 원망하며 하는 말을 보면 14장 4절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하면 하나님이 누구이신지에 대해 연구하고 묵상하는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가장 기본기입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바로 아는 작업을 하지 않으면 기본기가 흔들려서 신앙생활이 항상 딜레마에 빠집니다. 상황이나 여건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누구이신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으면 흔들리지 않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주목하고 읽으셔야 합니다. 모든 우리의 삶과 신앙의 문제는 하나님을 바로 알지 못할 때 일어납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항상 문제가 일어난 것은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가질 때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에 문제, 하나님에 대해 무지가 생길 때 그들은 신앙의 문제가 생겼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신앙이 헛갈립니다. 그래서 사탄은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관점을 자꾸 심어주려고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사탄은 아담과 하와에게 하나님을 뭔가 부족한 분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은 다 주셨는데도 무엇인가를 감추고 계신 분,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을 주셨는데 뭔가 결함이 있는 것으로 오해하게 만듭니다. 오늘 하나님이 나에게 가장 완벽한 것을 주셨음에도 하나님에 대해서 뭔가 오해를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사탄은 아담과 하와를 선악과에 관심을 주목하도록 했습니다. 선악과를 주목하게 한 것이지만,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을 갖게 하고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도록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최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다윗이 경험한 하나님은 시편 23편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이때는 다윗의 생애에서 전성기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에 대한 완전한 시각을 갖고 있는 것입니다. 이 상태가 다윗에게 아무 일도 없고 낙원을 누리며 살았던 것이 아니라 삶에 문제가 있고 어려움이 있지만, 여호와가 나의 목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완전성을 믿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니는 일이 있다할지라도 결국은 하나님이 내 인생 가운데 가장 좋은 길로 인도해주실 것이라는 하나님에 대한 온전한 시각을 갖고 있었습니다. 어려운 문제 속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시각과 관점이 왜곡되어있지만 않는다면 삶에 어떤 폭풍우가 몰아쳐도 그 탄탄한 기초위에 하나님 안에서 안연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초가 약한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기초가 탄탄하지 않아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있으면 하나님이 뭔가 부족하고 변덕스럽고 한계가 있는 것 같고, 신실성에 문제가 있는 것 같은 오해를 하게 됩니다. 내 상황이 부족하고 문제가 있어서 조급한 마음이 들어도 하나님은 정확한 타이밍과 정확한 타임테이블을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를 일으키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선하신 분이십니다. 성경을 보고 말씀을 들을 때마다 하나님에 대한 왜곡된 시각이 생기지 않도록 사단의 모든 공격으로부터 온전하게 서서 하나님에 대한 신실한 관점을 가지도록 한다면 우리는 낙심하고 두려워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을 만한 분이시고 우리가 상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좋으신 분이시고 훨씬 더 크고 위대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날마다 깊어지고 풍성해지면 거대한 하나님의 손길 안에 내 인생이 있게 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뜻을 바로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가나안으로 이끌어드리시고자 한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이해한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과 계획입니다. 상황에 빠져버리면 객관성을 잃어버립니다. 지금 펼쳐진 상황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어난 상황은 죽을 것 같고 나를 집어삼키고 도무지 이겨낼 수 없을 것 같아 보입니다. 어려운 상황에 자꾸 몰리다 보면 부정적인 관점이 자꾸 일어납니다. 우리는 연약해서 자칫하면 상황에 매몰되기 쉽습니다. 지금 열 명의 정탐꾼도 상황에 매몰되어있습니다. 대게 많은 사람은 상황에 휘말리고 온도계가 왔다갔다합니다. 문제가 터지면 문제로부터 도망치려고 정신을 못 차립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은 상황을 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기뻐하시면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들이시고 그 땅을 우리에게 주시리라」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은 상황에 따라 파도처럼 이리저리 가고 내 인생이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어떨 때는 우리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의 상황이 일어나 우리 인생이 이리저리 마음대로 굴러가는 것 같아 우리의 눈으로 보면 헛갈리는 부분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하나님은 칼로 재듯이 정확하게 당신의 뜻에 따라 우리의 인생을 끌고 가고 계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에 당신의 선하신 뜻을 행하십니다.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지 상황대로 돌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나를 삼킬 것 같은 문제가 나를 목을 쥐고 흔들고 있지만, 그 상황이 내 인생의 목을 쥐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인생을 쥐고 있다고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뜻을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어려움이 오면 올수록 주목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바라보는 눈을 놓치지 않으면 우리는 상황에 매몰되지 않습니다. 로마서 12장 2절을 보면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신자가 가져야 할 관점은 하나님의 뜻에 초점을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두 번째 우리가 성경을 읽고 말씀을 들으면서 늘 확인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부르신 자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가져야 할 관점의 기준은 하나님의 관점입니다. 지금 이 상황이 어디로 움직일지를 다 알 수는 없지만, 복잡하고 파도치는 것처럼 불규칙한 경계에 있다할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 안에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자의 나침반은 하나님의 뜻입니다. 길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는 혼란한 순간에 어떨 때는 잠시 하나님을 의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지만, 그래도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입니다. 그것을 붙들고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놓치지 않으면 우리는 반드시 승리합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을 알면 새로운 관점이 생깁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법칙을 갖고 움직이십니다. 성경에 나오는 인물을 연구해 보면 흥미로운 것은 하나님은 기본적인 법칙으로 사람들을 다루십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하나님의 일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서 하십니다. 그런데 그냥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떤 일을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의 사람을 반드시 다루십니다. 반드시 훈련의 과정을 통과하게 하시는데 그 훈련은 한계의 상황 가운데로 몰아넣으시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우리 인생의 한계 지점에서 하나님이 일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런 경험을 통해서 자신의 방식으로 일하지 않고 하나님의 방식, 하나님의 관점으로 일하도록 하시고 하나님의 안목을 갖도록 하시기 위한 훈련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게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사역하는 단계로 나아가야 비로소 하나님의 역사를 맛볼 수 있습니다. 엘리야도 하나님이 부르셨을 때 제일 먼저 아무도 없는 바짝 마른 길르앗 골짜기, 한계의 상황으로 밀어넣으셨습니다. 그리고 나중에는 850대 1의 대전쟁에서 하나님의 군사로 싸우게 됩니다. 처음부터 한계 상황으로 밀어넣고 한계의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며 하나님이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정확하게 훈련받게 하신 다음에 역사의 무대, 갈멜산에 올려놓으신 것입니다. 내가 상상할 수 없는 완전히 밑바닥에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관점이 생기는 것입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갈렙은 85세에도 여전히 난공불락의 성을 정복하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여호수아가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그에게 모세를 이어 가나안 정복의 과업을 맡기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하나님의 일을 맡기지 않으십니다.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이 생기면 완전히 달라집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모든 정복을 여호수아에게 맡기셨습니다. 믿음이 자란다는 것은 하나님의 관점이 강화되는 것을 말합니다. 보는 앵글이 다르기 때문에 인생의 질이 완전히 다릅니다. 예전에는 인간적인 관점에서 보던 시각이 없어져 버립니다. 예배시간에 위대하고 높으신 하나님을 높여드리면서 관점의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예배당에 들어올 때는 의기소침하고 위축되어있었다가 돌아갈 때는 자신감이 생기고 평안함이 찾아옵니다. 내가 붙들고 있는 문제가 더 이상 문제로 보이지 않는 것이 삶의 변화입니다. 예배를 드리는 시간이 바로 우리의 관점을 교정하는 시간입니다. 그래서 예배가 아주 중요합니다. 10지파 사람들은 「우리는 스스로 보기에도 메뚜기 같으니 그들이 보기에도 그와 같았을 것이니라」 스스로 보기에도 사람인 자기들을 메뚜기 같다고 했습니다. 상대는 확대경으로 보고 있고 자신은 망원경을 거꾸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을 보는 관점이 너무도 왜곡되어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관점을 잃어버리면 자신에 대해서도 왜곡이 일어납니다. 어려운 상황에 신자가 하나님의 관점을 놓쳐버리면 사물을 엉터리로 바라보는데 보통 오차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 속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죽 일이 아닌데 죽을 일이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상황에 빠져서 하나님의 관점을 잃어버리면 눈먼 자와 같아서 자신의 상황을 너무도 안타깝게 왜곡시켜버립니다. 그러므로 어렵고 힘든 상황에 빠졌을 때 개인적인 힘으로 빠져나오려고 기도할 것이 아니라 예배를 예배답게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신실하심을 마음껏 인정하고 찬양해야 합니다. 이럴 때는 시편을 많이 묵상하십시오. 광대하시고 우주에 충만하신 하나님, 나를 둘러싼 어둔 문제를 한순간에 잠재울 수 있는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을 높여드리고 찬양하다 보면 내가 가지고 있던 문제가 없어져 버립니다. 오늘 이 밤에 여러분의 모든 무거운 짐들과 문제가 사라지기 바랍니다. 사람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십시오. 하나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면 하나님은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여리고성을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했습니다. 한꺼번에 13바퀴를 돌게 하지 않고 하루에 한 바퀴씩 돌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일차적으로 하나님이 하신 일은 인간적인 관점으로는 성이 도저히 무너지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완전수인 7바퀴를 돌게 해서 그들 안에 하나님의 관점이 일어나게 한 것입니다. 마지막 순간에 함성을 지르니까 그 소리에 무너졌습니다. 인간적 관점에서 보면 절망적입니다. 철저히 인간적인 관점에서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깊이 통찰하게 만들어 놓고 그러나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무너질 수 있다는 확신을 갖도록 마지막 7바퀴를 돌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루십니다. 우리의 눈을 열어주시기 원하십니다. 우리 앞에 버티고 있는 문제를 나의 관점으로 아무리 쳐다봐도 해답은 나오지 않습니다. 골리앗을 향해 달려간 다윗은 이스라엘 진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관점을 갖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소년이었지만, 아주 작은 소년이라는 한계가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골리앗을 바라본 소년 다윗이 가장 거인이었습니다. 그가 하나님과 동일선 상에서 골리앗을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골리앗을 메뚜기로 본 것입니다. 골리앗을 거인으로 보았다면 갑옷과 병기를 들고 나가야 하는데 메뚜기 잡듯이 나간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을 통해서 일을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한계 속에서 하나님의 관점으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십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절대 안 되는 문제인데 나는 한다는 것을 보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하나님의 관점을 가진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때 내 삶에 진정한 변화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면 내 안에 하나님이 가지고 계시는 평강이 찾아옵니다. 하나님의 평안, 하나님의 자유가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일어납니다. 두려움은 나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의 관점을 가져야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을 가져야 하나님의 일꾼이 될 수 있습니다. 나의 약한 인간적 시각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이 우리 안에 일어나려고 하면 내 관점 안에 혁명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모든 것을 바라보면 내 안에 흥분이 일어나고 가슴이 뛸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실지에 대한 기대감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관점, 시각, 눈이 변해야 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의 시각, 하나님의 수준에서 이 세상을 바라보면서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기도할 때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