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 지은 아파트인데도 마감재를 뜯어내고 인테리어를 바꿀 때 드는 만만치 않은 비용과 버려지는 폐기물을 아까워하면서 에디터와 에디터의 주변인들은 “그러길래 벽체만 세워진 아파트를 분양하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성토하며 여기에서 출발해 좀처럼 결론이 나지 않는 집에 대한 수다를 몇 시간이고 나누곤 했다. 대화의 상대가 누구이건 간에 닭장처럼 네모반듯한 집이 답답하다는 것과 개개인의 자유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담기에 한계가 있는 주거 형태임에 금세 동의하곤 했다. 최근 입주를 시작한 광명시의 이 아파트는 보기 드문 마이너스 옵션 아파트로 인테리어 디자이너에게도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이너스 옵션 아파트란, 옹벽만 세워져 있고 벽 마감은 물론 주방의 싱크대와 창호 마감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로 분양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인테리어 마감이 끝난 아파트보다 저렴해 최소 리노베이션할 비용 정도는 빠진다고 하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면 눈이 번쩍 뜨이는 조건인 것이다.
히틀러스 플랜잇 신선주 실장은 콘크리트 벽만 세워져 있던 헐벗은 아파트에 옷을 입혀 나가기 시작했다.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을 집을 만들기 위해 오크와 티크 톤의 나무 마감재를 사용했고, 주로 천장 몰딩을 생략하기 위해 사용하던 마이너스 몰딩 시공 방법을 벽체에 적용해 패브릭 텍스처의 일본 수입 벽지를 발랐으며, 벽보다는 천장에 디자인 포인트를 줬다. 이제 편안하고 기능적으로 완성된 이 집은 집주인의 취향으로 채워 나갈 일만 남았다.
디자인 및 시공 히틀러스 플랜잇 신선주 02-516-1239, www.hitlersplanit.comDINING & KITCHEN
오래 사용해도 질리지 않는 집은 곧 복잡하고 화려하지 않은 집을 의미한다. 이 집에 사용된 마감재와 놓인 가구 모두 오크와 티크 소재이며 화이트, 그레이, 블랙 세 가지 컬러가 사용됐다.
단순하기만 하면, 집이 밋밋해질 수도 있다. 그래서 신선주 실장은 다이닝 & 키친의 천장에 음각 효과를 활용한 재미를 줬다. 석고보드 위에 세로로 길게 켠 합판 조각을 이어 붙인 뒤 나무 패턴의 인테리어 필름지를 붙인 것. 또한 싱크대에는 얇은 무늬목을 발라 내추럴한 느낌을 연출했다.
STUDY ROOM & HALL
약 44평의 아파트는 현관을 중심으로 긴 복도가 거실과 주방, 부부 침실과 서재 및 패밀리룸을 연결하는 구조로 건설사는 분양 당시 여러 가지 평면을 제안했다. 집주인은 ㄷ자형 주방과 부부 침실을 넓게 사용하고 싶어 집을 길게 관통하는 복도식 구조를 선택했고, 신선주 실장은 다른 아파트(약 2.25m)에 비해 천장고가 조금 더 높고(약 2.4m) 폭이 넓은 복도에 그레이 톤의 벽지를 발랐다. 평소 컬러가 세 가지 이상 들어가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녀의 디자인 원칙으로 컬러 포인트 벽지를 바를 때도 매스감을 전달할 수 있도록 한쪽 벽이 아닌 양쪽 벽에 시공했다. 주방 맞은편 부부 침실의 문을 안쪽 깊숙한 곳으로 옮긴 것을 제외하면 기존의 벽체를 그대로 살려 리노베이션했다.
LIVING ROOM
다이닝 & 키친 천장의 음각 효과는 거실까지 이어진다. 천장의 조명 박스를 비워두고 창호까지 연결해 통일감을 주었고, 조명 박스 자리에는 사각 천장등 말고는 다른 조명은 설치하지 않았다. 일반 천장등으로 조도가 충분하다면 굳이 교체하기 어려운 간접등을 넣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 것.
바닥재는 이건마루의 소폭 합판마루를 시공해 천장과 바닥, 가구에 이르기까지 갓 베어낸 나무 향기가 전해지는 듯하다. 유일한 블랙 컬러인 소파는 무스터링(Musterring) 제품.
BEDROOM
소위 “집 잘 빠졌다. 평수보다 넓어 보인다”라는 이야기는 실제 크기보다 넉넉하게 설계된 집을 평가할 때 주로 쓰는 말이다. 이 아파트가 그 경우에 해당하는데 주방과 거실 말고도 방이 4개 딸린 구조로 집주인 부부는 메인 복도에서 부부 침실로 연결되는 작은 복도에 딸린 방을 드레싱룸으로 활용하고 부부 침실에는 다른 물건을 수납하지 않고 TV와 침대, 협탁만 두었다. 백화점 같은 상업 공간에서 볼 수 있는 넓은 파우더룸이 부부 침실을 더 융통성 있는 공간으로 만든다.
BATHROOM
이 집에서 사용된 세 가지 컬러 화이트, 그레이 그리고 블랙. 욕실 역시 이 세 가지 컬러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욕조 없이 샤워 부스와 세면대, 양변기로만 구성된 심플한 욕실은 시크한 그레이 모자이크 타일로 시공되었고, 하수구로 연결되는 배수로를 감춰 깔끔한 느낌이 더욱 강해졌다. 세면 볼 높이에 맞춰 폭이 좁은 선반을 만들어 폼 클렌저나 칫솔 등 세안 용품을 수납할 수 있게 했다.
Details
벽을 심플하게 유지하는 대신 천장에 세로로 길게 켠 합판을 정교하게 이어 붙이고 인테리어 필름지로 마감해 입체적으로 표현했다. 내추럴한 분위기를 유지하면서도 모던함을 잃지 않은 천장 디테일. 주방 가구는 얇은 무늬목을 발라 시공했다.
1 현관의 데드 스페이스를 활용한 커다란 수납 창고. 이 아파트는 베란다를 확장해 수납 공간이 적은 편이었기 때문에 설계 당시부터 수납이 관건이었다. 그래서 현관에 넉넉한 신발장을 만들어주는 동시에 나무 문이 달린 ㄷ자식 수납 창고를 함께 만들었다.
2 현관의 중문은 슬라이딩 미닫이 방식으로 금속 프레임을 만들고 동경 유리를 끼워 제작했다. 두께가 얇은 금속 프레임의 문이 미니멀한 느낌을 더한다. 미닫이 중문 너머로 보이는 나무 문을 열면 커다란 수납 창고가 나타난다.
3 현관에서 주방, 거실로 이어지는 메인 복도와 메인 복도에서 부부 침실로 갈라지는 작은 복도 벽에는 모두 그레이 컬러 벽지를 시공했다. 몰딩 없이 깔끔하게 천장을 마감할 때 이용하는 마이너스 몰딩 공법을 벽에 사용해 마감 상태가 더욱 반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