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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전환점을 맞이하는 방법
나는 성경을 신화나 성자들의 기도문 정도로 알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처음 배우게 되었을 때 나는 성경이 우주를 창조한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성경에 대해서 의심을 나타내는 대부분 사람은 성경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들이다. 만약 그들이 성경을 깊이 연구한다면 그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나 역시 성경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을 만나게 되었다. 성경 속에서 하나님을 만난 이후부터 성경은 내 인생의 유일한 기준과 표준이 되었다. 그렇게 했을 때 내 삶에 의미심장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고, 내 삶 전체가 하나님의 지배하로 들어가게 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나 자신과 삶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성전임을 깨닫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생명으로 사신 몸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몸을 굴리면서 살 수 없었다. 그래서술과 담배를 끊고 운동하기 시작하였다. 성경에 대한 지식이 늘어나면서 열심히 가족들에게 진리를 나누어 주려고 애를 썼지만, 나의 선한 의도와는 달리 가족과 거리가 생기고 말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살고자 하는 내 결심은 인생을 극적으로 바꾸어 놓았다. 그리스도를 믿고 첫 번째 생긴 전환점은 성경 말씀을 절대적 권위와 원칙으로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두 번째 전환점은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난 후 내가 어렸을 때부터 다니던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로 입교할 때에 찾아왔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 바꾸는 것을 때 묻은 셔츠 갈아입듯이 쉽게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그것은 내 인생의 축을 흔드는 발걸음이었다. 교회를 바꾸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결정이다. 그것은 친구 따라서 강남 가는 것도 아니고 내 마음에 드는 목사를 따라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진리가 내게 무엇이라고 말하는가에 따라서 결정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지금 당신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내가 지금 다니는 교회는 성경 말씀에 의해서 확실하게 지지가 되고 있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분명한 답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아직 하나님의 말씀을 충분히 공부하지 않은 것이다.
세 번째 전환점은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족에게 광야로 나가야 할 것을 말씀하시고 온전한 개심을 하도록 호소하셨을 때이다. 우리 가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시골로 이사하였다. 도시의 소음과 공해를 떠나서 빚이 없고 생활비가 적게 필요한 삶을 살면서 우리 가족은 단순함에 익숙해졌다. 생각과 계획이 단순해졌다. 성경 말씀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뜻이 좀 더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였고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이 좀 더 뚜렷하게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우리 부부는 결혼한 지 오래되어서 자녀들이 있었지만 정작 결혼이 가져다주는 참된 행복은 시골에 가서 누리기 시작하였다. 나 자신을 부인하고 하나님 앞에서 부복한 상태로 성령의 음성을 듣는 훈련은 놀라운 결과를 가져다주었다.
네 번째 전환점은 드디어 나는 꿈을 이루었다! 라는 생각을 했을 때 찾아왔다. 시골에 와서 경제적 안정과 영적 회복을 이루었다. 내 마음속에 모든 것을 이루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하나님께서 나를 찾아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하는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고 이제부터는 나를 위해서 일하라. 나는 하나님께 저는 못합니다. 라고 대답하였다. 나는 앞날에 대해서 다른 계획을 세워 놓았으며 지금 가진 경제적 안정이 흔들리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이렇게 평화스럽고 안정되게 사는 것이 좋은데 주님은 내게 너무나 큰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고 생각하였다.
물론 얼마 전부터 이곳저곳에서 연락이 와서 설교했지만, 설교하고 말씀을 전하는 것은 내 삶에서 부차적인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부르심을 받고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씨름을 하였다. 모세를 생각해 보았다. 바로의 왕위를 이으면 모든 것을 손에 쥘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나라고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께서 부르셨던 베드로와 다른 어부들 역시 이름 없는 한 랍비를 따르라는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때의 결정은 그들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 역시 내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환점이 올 것이다. 하나님께서 독자 여러분에게 무엇을 요구하시는지 알고 있는가? 성령의 음성을 듣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 우리의 문제는 주저주저하면서 결정을 미루는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심각한 문제에 빠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가고, 어떤 사람들은 믿음이 죽어 버린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신자들은 누구나 나와 유사한 전환점을 갖게 된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그러한 전환점을 갖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나는 확신한다.
전환점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갖고 있는 어떤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그분과 좀 더 깊은 관계 속으로 들어갈 수 있기를 원하신다. 확실하고 흔들리지 않는 구원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기를 원하신다. 어떤 때는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할 때까지 마음의 평화와 쉼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나 역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그것을 받아들일 때까지 결코 마음의 평화를 얻을 수 없었다. 성경에 나오는 젊은 부자 법관은 하나님 앞에서 주저주저하다가 모든 것을 잃어버렸다. 이제 나는 하나님의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여기서 찾은 안정된 삶에 코를 처박고 그것으로 만족할 것인지 선택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만일 내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일에 뛰어들면 내 가족의 생계비는 누가 대줄 것인가? 누가 우리 가족을 부양할 것인가?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을 책임지신 일들이 가득 차 있지만 정말 내 가족에게도 그렇게 해 주실 것인가?
네가 정말 믿느냐?
그리스도인은 가끔 내가 정말 하나님을 믿는가? 라는 질문을 자신에게 물어보아야 한다. 성경에서 그리스도께서는 포도나무고 우리는 가지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정말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인가? 가지는 포도나무가 나의 필요를 정말 공급해 줄까? 하는 따위의 걱정을 하지 않는다. 가지는 자라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포도나무의 가지라고 생각하면서 늘 걱정하고 염려하며 살아가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들을 가르치셨다.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마 6:31~33)
우리는 정말로 이 말씀을 믿는가?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런 믿음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가정과 교회들이 믿음을 잃어버린 채 나약하게 살아가고 있다. 우리의 삶 속에 하나님의 손길이 작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다. 문제는 우리가 스스로 꾀로 해결책을 찾느라고 바빠서 우주의 하나님께 나아가 지혜를 구하지 않는 것이다. 주님! 저는 당신이 필요합니다. 한 걸음씩 저를 인도해 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오. 라는 기도를 드리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은 가끔 우리에게 앞이 캄캄해지는 경험을 허락하신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되고, 우주의 크신 하나님을 기억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든 일에 하나님의 구원을 구하면 우리를 지켜 주시는 그분의 손길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그분의 능력을 받는 일이 포함되어 있다. 영접하는 자, 곧 그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 1:12)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를 그들의 모든 역경, 시련, 혼동 가운데서 구하시기 위해 그들에게 지혜와 능력을 주기 원하신다. 이사야는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 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사 58:11). 당신은 그것을 원하지 않는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삶과 그 속에 있는 문제들을 다스리시고 해결하기 원하신다. 그분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그분과 개인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렇게 인도해 주셨다! 라는 우리의 말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나의 응답
하나님께서 나를 주의 사업에 부르시는 음성이 정말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인가? 아니면 나 혼자의 상상인가? 나와 가족의 생계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확신 없이 그냥 뛰어들 수는 없었다. 구약 성경에 나오는 기드온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기 위해서 양털 뭉치를 사용했던 것처럼, 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확인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무엇을 양털 뭉치로 사용할지를 몰랐다. 그러던 중에 어떤 여집사님이 나를 자신의 교회로 초청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우리 교회에 와서 설교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20명 정도밖에 참석하지 못할 것입니다.
너무 사람이 적어서 오실 마음이 없으면 거절하셔도 됩니다. 이 말을 듣고 있는데 주님의 음성이 다가왔다. 네가 원하면 이것을 너의 양털 뭉치로 해도 좋다. 나는 그 주말 집회에 강사로 가기로 하면서 이런 기도를 하나님께 드렸다. 주님, 주님께서 정말 저를 당신의 일꾼으로 부르신다면 그 주말 집회에 사람들이 50명 이상 올 수 있도록 역사 하여 주시옵소서. 50명은 나에게 전화를 한 여집사님이 올 수 있다고 말한 숫자의 2배 반이었다.
집회 날짜가 되어 나는 그 교회를 찾아가서 제일 앞 자리에 앉은 다음 말씀을 들으려고 오는 사람들의 숫자를 세었다. 설교 시작 시간이 되었는데 교회 안에 모두 8명이 앉아 있었다.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주님, 알겠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뜻이군요. 그때 문이 열리면서 한 가족 4명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그래 봐야 12명입니다. 주님. 그런데 그 뒤를 이어서 계속해서 3명이 들어왔고, 다시 4명이 들어왔다. 나는 속으로 계산했다. 사람들이 계속해서 들어와 28명이 되더니 34명으로 늘어났고, 40명이 되더니 곧 48명이 되었다. 설교가 시작되어 정신을 집중하고 말씀을 전하려고 했지만, 마음이 혼란하였다. 사람 수는 계속해서 늘어났다. 51명, 60명, 73명, 78명. 드디어 나는 숫자 세기를 중단하였다. 주님, 이제 숫자를 그만 세겠습니다. 답을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계속해서 들어왔고 그 작은 예배당에 더 앉을 자리가 없게 되었다. 내게 성령이 충만하게 임하였고 혀가 자유롭게 되면서 강력한 진리를 설파하였다.
설교가 끝나고 사람들과 인사하면서 나는 계속해서 마음속으로 이렇게 외쳤다. 와! 우리 하나님은 정말 멋진 분이시다! 주님, 제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란 말씀이시죠? 말씀만 하옵소서. 제가 여기 있나이다. 저는 신학 공부를 못했지만, 주님의 은혜로 광야 신학을 했습니다. 주님, 제가 사람들에게 무엇을 가르치기 원하십니까?
나의 이런 질문에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해 주셨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실제로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어라. 너의 설교는 오늘날 교회 속에서 흔히 듣는 그런 설교가 되어서는 안 된다. 너의 개인적 간증을 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권능과 연결해서 설교하되 기회 있을 때마다 재림의 소망을 강조하여라. 너는 이 산중에서 나와 함께 보내며 발견한 삶에 애착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제부터 다른 영혼들을 위하여 너의 행복을 포기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네 간증을 다른 사람들에게 들려주도록 시골 은신처로부터 너를 가끔 불러낼 것이다. 단순하고 실제적인 복음의 능력을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한다.
그 다음 날 새벽에 일어나 성경을 무릎 위에 펼쳐놓았을 때, 나는 떨고 있었다. 기도의 응답을 받았을 때는 놀라운 감정과 흥분이 있었지만, 이제부터는 현실에 부딪혀야 한다. 행동은 항상 믿음에서 나온다. 복음을 생활 속에서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다. 이 글을 통하여 받게 되는 도전을 여러분의 삶 속에 실현하는 것이 믿음이다. 말씀을 삶 속에 받아들이기로 결정하면 그것이 여러분의 인생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되는 것이다. 지금은 선택해야 할 시간이다. 다시는 성령의 음성이 지금보다 더 뚜렷하게 들리는 일이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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