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다례
신라 3년 12월 대렴이 당에서 차 종자를 가져오니 왕이 지리산에 심게 한 이전인
선덕왕(632~646)때 이미 차가 있었다.
다례(茶禮)란 용어는 차가 들어온 이후부터 사용되었다.
[국어 대사전]에 다례의 기록은 없고, 차례(茶禮)에 대하여 기록하기를, 음력 매달 초하루 날과,
보름날, 명절날, 조상 생일 등 낮에 지내는 것을 제사 차례, 차사라 하였다.
[삼국유사]의 (가락국기)편에 의하면, 최초의 차를 올린 대상은 가야시조이다.
정신태자와 효명태자가 문수보살에게 공양다례를 하였으며, 충담이 미륵세존과 경덕왕에게,
사포승이 원효대사에게 차를 올린 다례기록이 있다.
신가시대 차를 올린 다례의 대상은 신(神), 부처님(佛), 사람(人)이다.
2. 신라 다례의 종류
신라 다례의 종류는 종묘다례, 불교다례, 화랑다례, 경덕왕 헌다례 등이 있었다.
1) 조정 다례
삼국유사 가락국기편에 의하면, 수로왕이 나이 158세에 돌아가니 장사지내고 수로왕능묘라 하였다.
신라삼국을 통일한 30대 문무왕(661~680)은 즉위한 해에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의 제사를 종묘의 제
사와 합사해서 지내라 하였다. 가락국이 폐망한 후 60년간 끊겼던 종묘의 제사 제수에 차를 올리는
다례가 계속하여 행하게 되었다.
그 나라는 이미 없어 졌지만 그 묘는 지금도 암아 있으니 종묘에 합사해서 계속 제사 지내게 하리라.
사자(使者)를 보내어 묘에 가까운 상전(上田) 30경(頃) 왕위전(王位田)을 수로왕 17대손 갱세급간
이 조정의 뜻을 받들어 그 밭을 주관하여 해마다 정월 3일과 7일, 5월 5일, 8월 5일과 15일에 대대로
제사를 지냈다. 명절이면 술과 단술을 마련하고 떡, 밥, 차, 과실 등 여러 가지를 갖추고 제사를 지내며
해마다 끊이지 않게 하였다.
가야의 시조인 수로왕 묘에 제수품으로 차를 올린 것이 최초의 기록이다.
2) 불교다례
(1) 문수보살의 다례
삼국유사의 [대산오만진신] (명주오대산보질도태자전기)에 의하면 신문왕(?~692)의 아들인
정신태자 보길도는 아우태자 효명과 함께 하서부(河西付) 세헌각간(世獻覺干)의 집에 가서
하룻밤 묵고 이튼 날 대령을 넘어 각각 일천여명을 거느리고 성도평에 가서 여러날 유람하다
태화원년 5일에 형제가 함께 북대의 남쪽 오대산에 숨어들어가 진여원터 아래 산 끝에 푸른
연꽃이 핀 것을 보고, 그곳에 암자를 짓고 두 형제는 부처님께 예배하고, 염불 하면서 행실을 닦고
날마다 이른 아침이면 골짜기의 물을 길어다가 차를 달여서 일만진신의 문수보살께 공양 다례를
하였다.
차 전래 이전에 이미 불교다례가 있었다.
(2) 충담이 경덕왕에게 헌다례)
삼국유사의 경덕왕, 충담사, 표훈대덕조에 의하면 경덕왕 24년에 오악과 삼산신들이 때때로 나타나서
삼월 삼일 왕이 귀정문루 위에 나가서 좌우 신하에게 일렀다.
누가 거리에서 위의 있는 중(僧) 한 사람을 데려 올 수 있느냐 하니 이때 마침 위의 있고 깨끗한 고승
하나가 길에서 배회 하고 있어 좌우 신하들이 중을 왕에게 데려오니 왕이 위의 있는 중이 아니라고
돌려보냈다. 다시 중 한 사람이 납의(衲衣)를 입고 앵통을 지고 남쪽에서 오고 있는데 왕이 보고 기뻐하여
루 위로 영접했다. 통속을 보니 다구(茶具)가 들어 있었다. 왕이 물었다.
"그대 대체 누구요?"
"소승은 충담이라고 합니다."
"어디서 오는 길이요?"
"소승은 삼월 삼일과, 구월 구일에는 차를 달여서 남산 삼화령의 미륵세존께 드리는데 지금도 드리고
돌아오는 길입니다."
"나에게도 그 차 한잔 나누어 주겠는가?"
충담이 왕의 청에 이내 차를 달여 바치니 차 맛이 뛰어 났으며, 찻사발에서 차의 기미가 특이하고 사발
안에 이상한 향기가 진하게 풍긴다 하였다.
위의 기록에서 차를 올린 대상을 보면 미륵세존인 불(佛)과 경덕왕인 사람(人)에게 헌다 한 충담의 다례가 보인다.
충담의 휴대용 다구 앵통은 [다경]의 (차 그릇)조에 나오는 흰 부들로 만든 동구미와 다르다.
앵통 앵두나무 앵(櫻)자에 대롱통(筒)자이다. 즉 앵두나무로 대롱통 같이 만든 독창적인 휴대용 다구가 육우의 휴대용
다구보다 먼저 만들어졌다.
충담선사가 경덕왕에게 헌 다례한 곳은 귀정물루 위이며, 신라시대 찻자리 이었다. 경덕왕이 충담선사의 차솜씨를
시펌하고 왕은 그가 찬기파랑가를 지은 스님임을 알고 안민가를 지으라 하였다. 충담선사가 노래를 지어 바치니
왕이 기뻐하며 왕사(王師)에 봉하려 하였으나, 굳이 사양하였다. 그가 지은 안민가는 임금과 신하와 백성이 각각
자기 본분을 지키면 나라가 태평하리라는 유교 사상이 담긴 향가이다.
첫댓글 불교와 다례
소중한 불교와 다례
잘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여우님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서를 이것저것 독파하는 중인데
그 중 골라서 올려봤습니다. ^^*
차의 전래...참 좋은 자료 잘 보고 갑니다..감사합니다..
여기 오면 차 마시는 법과 예절을 알 수가 있지요..
명법님과 함께 두 세번 집으로 초대받아 갔었죠^^

차 한잔 주셔요^^_()_
님에 글 차의 전례에 관한 지식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 여기 오면서 차 마시는 마음 자세가 달라 졌다우...
명법님
반갑습니다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