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 이 사람 [122] : 전원열 법무법인 김&장 변호사
1966년 경주 출생
1984년 부산 해운대고
1987년 제29회 사법시험
1988년 서울대 법대
1995년 서울민사지법 판사
1998년 美 하버드 법대(LL.M)
2001년 서울대 법대 박사
2003년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2004년 서울고법 지적재산권 전담부 판사
2005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 판사
2006년 청주지법 영동지원장(부장판사)
2008년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
現 김&장 법률사무소
전원열(43) 김&장 변호사는 스스로를 ‘의사’라고 부릅니다. 의사가 환자를 치료하듯 도산분양 변호사는 파산위기의 기업을 회생시킨다는 점에서 의사와 비슷한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전 변호사는 2008년 2월 대법원 재판연구관(부장판사)을 마지막으로 15년간 몸담았던 법원을 떠나 김&장에 둥지를 틀었습니다. 경기침체 등으로 기업도산우려가 높아짐에 따라, 로펌들이 앞다퉈 도산분야 전문변호사를 영입하려는 분위기도 법복을 벗은 이유였지만, 다양한 법률자문을 통해 파산기업을 스스로 회생시켜 보겠다는 욕심도 없지 않아 주위의 만류에도 로펌 行을 결심하게 됐습니다.
계약당사자간 법적 분쟁을 사후적으로 해결해주는 게 민사사건이라면, 기업회생은 한 때의 잘못된 경영판단으로 위기에 처한 기업을 정상화시키는 작업입니다. 모르는 사람은 도산분야 변호사를 ‘남 뒤치닥 거리나 하는’ 것쯤으로 오해할 수 있지만, 사실은 기업을 구조조정하는 최고경영자(CEO)나 다름없습니다.
전 변호사는 파산부 근무 시절 유명 정보통신(IT) 벤처기업의 기업회생사건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이 기업은 당시 세계 유일의 원천특허기술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회사를 빠르게 성장시켜야겠다는 조급함에 마케팅 비용 등을 과다하게 지출해 결국 재무상황악화로 법정관리에 이르게 됐습니다.
당시 주임판사였던 전 변호사는 재무상황으로만 보면 당장 파산절차를 밟는 게 정석이었지만, 회사가 보유한 특허기술이 너무 아까워 시간을 두고 구조조정 등 자구안을 마련케 했고 정상화시킨 뒤 새로운 주인을 찾게 해 줬습니다. 이름도 남지 않고 공중분해 됐을 이 회사는, 전 변호사 덕분에 지금은 잘 나가는 기업이 됐습니다.
전 변호사는 이 같은 판사시절 경험을 살려 도산 직전의 회사를 회생시키겠다며 새로운 도전에 나섰습니다. 전 변호사가 도산분야에 처음 눈을 뜨게 된 것은 1998년 미국 유학시절이었습니다. 당시 미국기업들은 거래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할 때 항상 파산에 대비한 규정을 상세히 적시해 놓는 것을 보고 조만간 한국에서도 도산분야가 중요해지겠다는 것을 직감했습니다. 이후 전 변호사는 2004년 서울중앙지법 파산부에 근무하면서, 본격적으로 도산분야를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듬해인 개인회생제도와 통합도산법이 잇따라 제정되면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는 역사상 가장 바쁜 시기를 보냈습니다.
파산부 소속 판사와 직원들 모두 법 시행에 따른 업무처리지침과 절차를 마련하는데 매달렸습니다. 당시 서울중앙지법 파산부가 펴낸 개인회생제도에 관한 법원해설서에는 전 변호사의 이름이 제일 앞줄에 올라 있습니다. 그만큼 기여가 컸다는 반증입니다. 다음해 이 해설서는 기업회생제도까지 포함한 4권짜리 파산법 해설서 시리즈로 재출판돼 도산분야 지침서로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전 변호사는 “법원실무지침기준을 만들면서 자연스레 도산법을 공부하게 됐다”면서 “10년이 넘는 판사생활 동안 가장 힘든 시기였지만, 온 몸의 에너지를 쏟아 부은 만큼 평생의 자산이 됐다”고 말했습니다.
이 밖에도 전 변호사는 판사 시절 법원행정처 정보화담당관, 서울고법 지적재산권 전담부를 경험하는 등 폭넓은 인맥도 쌓았습니다. 서울대대학원에서는 언론법으로 박사학위를 받기도 했는데, 당시 지도교수가 양창수 대법관입니다.
전 변호사는 변호사의 매력으로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다이나믹함을 꼽았습니다. 판사는 2~3주일치 일거리가 어느 정도 정해져 있지만, 변호사의 경우 언제 어떤 종류의 사건이 들어올지 알 수 없고, 의뢰인들이 제기하는 질문도 판사 시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이나믹합니다. 하지만 전 변호사에게는 이런 다이나믹함이 오히려 도전하고 싶은 촉매가 됐습니다. 전 변호사는 김&장에 오자마자 수건의 기업회생과 관련된 자문에 응했습니다. 대부분은 경기에 미감한 해운과 건설관련업체들이었습니다.
도산전문이라고는 하지만, 난제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해운업체 관련 사건을 맡을 경우입니다. 해운업체의 경우 몇 단계의 복잡한 과정을 거쳐 이뤄지는 선박임차관계 때문에 이해관계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데, 심지어 선박의 주인인 선주와 최종임차인인 해운사 사이에 5개가 넘는 중간임차인이 끼어 들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습니다. 이들의 이해관계를 적절히 조정해 채무관계를 정리해 주는 임무를 전 변호사가 맡았는데, 매일 매일 새로운 도전의 연속이나 다름없었습니다.
전 변호사는 “판사시절에는 경험해 보지 못한 복잡한 기업회생사건을 접하면서 아직도 배울 게 많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면서 “기업회생사건은 M&A와 유사하게 금융, 세무, 국제법 등 다양한 분야와 연관돼 있어 변호사 자신의 폭넓은 지식은 물론, 타분야 전문 변호사와의 호흡도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김&장이 맡는 사건은 국내에서 사례를 찾아보기 드문 특이한 케이스들이 많다는 게 업계의 통설입니다. 이 때문에 전 변호사도 과거 사례가 없어, 자신만의 새로운 판례를 만들어야 하는 고독한 싸움을 해야 할 때도 여러 번입니다.
그럴 때마다 전 변호사는 “어떤 사안에 대해 의뢰인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100% 확신을 가져야 한다”면서 한 가지 사건을 놓고도 항상 여러 각도에서 검토한 후에 의견을 낼 정도로 꼼꼼합니다. 최근 맡았던 해운업체 사건의 경우 선주나 중간임차인이 해외법인이어서, 해당 국가의 법률까지 낱낱이 찾아 의견을 낼 정도로 사건 하나하나에 대단한 열의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 같은 열의에 동료변호사들도 감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 변호사는 “판사경력은 15년이 넘었지만, 변호사로서는 새내기인 만큼 항상 배운다는 심정으로 일하고 있다”며 한껏 몸을 낮췄습니다.
하지만 전 변호사 스스로 완벽주의자로 칭할 만큼 일에 대한 욕심은 대단합니다. 전 변호사는 “내 사전에 대충대충은 없다. 한 가지 일에 집중하면 끝을 봐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라고 스스로 밝혔습니다. 전 변호사가 대학 4학년 때 친구의 소개로 알게 된 여자후배와 결혼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전 변호사의 ‘한우물’ 스타일을 그대로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완벽주의자’ 전 변호사는 의뢰인들로부터 ‘베스트 어드바이저(Best Advisor)’라는 평가를 받는 게 당분간의 최고 목표입니다. 빈틈 없는 일처리에, 고객감동을 위해 완벽을 기하는 전 변호사는 이미 곳곳에서 ‘최고의 변호사’라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