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6월 볼트 EV 구입해 1년 넘게 타는 중 여름철엔 에어컨 펑펑 켜고도 주행거리 만족, 그러나 겨울엔..
처음 전기차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된 건, 전기차가 아니라 전기산악자전거를 시승해 본 후였다. 주먹보다도 작은 모터 하나로 라이더의 페달링을 보조해서 자전거와 성인 체중을 합쳐 100kg이 넘는 무게를 산 정상까지 가볍게 올려주는 미래의 탈것을 경험한 후, 그렇다면 전기자동차는 어떨까라는 기대가 생긴 것이다.
테슬라는 여전히 멀게 느껴지던 지난해 어느 날, 쉐보레가 한번 충전으로 383km를 달릴 수 있다는 볼트 EV의 사전 예약을 받는다는 소식을 접했고 운 좋게도 3개월 후 주차장에 진회색의 볼트를 데려올 수 있었다. 지금은 현대 코나 EV와 기아 니로 EV가 출시되어 400km 전후를 달릴 수 있는 대중적인 전기차가 3종이 되었지만, 불과 작년 3월에는 부담되는 가격표를 달고 있는 테슬라 모델S를 제외하고는 볼트가 유일했다. 지금 차를 새로 산다고 가정하면 옵션의 화려함에 넘어가 다른 차에도 곁눈질을 할 수 있겠지만, 실질적인 후보 리스트는 앞서 언급한 국산 3종의 전기차일 것이 분명하다. 결론부터 얘기하면, 지난 15개월 간 후회 없이 매우 만족스런 EV 라이프를 즐기고 있다.
전기차를 타보기 전까진 나 또한 배터리에 대한 의심이 많았다. 에어컨을 켜면 주행거리가 확 줄어들지 않을까? 휴대폰처럼 1년 정도 지나면 배터리 성능이 많이 저하되는 것은 아닐까? 갑자기 배터리가 방전되면서 길에 서면 어떡하나? 겨울에는 어쩌지? 의심은 끝이 없었다.
개인적으로 전기차를 구입하며 가장 중요하게 여긴 부분이 ‘비공용 완속충전기’의 설치 가능 여부였다. 비공용 완속충전기는 여러 종류의 충전기 중에서도 나 혼자만 쓸 수 있는 개인용 충전기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비공용 완속충전기의 유무에 따라서 전기차의 이용 환경과 만족도가 극명하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차고가 있는 단독주택에 살고 있는 필자는 차를 받은 지 2달이 지나서부터 완속충전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는데, 그 전까지는 회사 근처의 공영주차장과 대형마트에 설치된 환경부의 급속충전기를 이용했다. 배터리가 40% 정도 남았을 때 30~40분 정도 충전하면서 쇼핑을 하거나 커피 한 잔 마시면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당시에는 충전비용이 무료였기 때문에 이렇게 충전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어차피 매일 충전하는 것이 아니고, 월 1,000km 정도만 주행하는 내 운행환경을 보면 많아야 일주일에 한 번 충전하는 꼴이었기 때문이다. 처음 2000km는 이렇게 집 밖에서 충전을 하며 지냈고, 큰 불편 또한 느끼지 못했다. 가끔씩 충전소에 주차를 하고 가버린 사람들 덕분에 다른 충전소를 찾아가는 정도만 빼면 말이다.
무료로 2,000km를 달린 후, 드디어 집에 설치된 완속충전기에 계량기가 설치되고 전기가 연결됐다. 그리고 많은 것이 달라졌다. 지금까지 불편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외부의 급속충전기 이용이 순식간에 귀찮다고 느껴진 것. 일주일에 한 번 퇴근 후 충전 케이블을 연결하면 미리 설정해둔 최저요금 시간대에 충전을 하고, 출근할 때면 배터리는 100%로 빵빵해진다. 마치 주유소를 집 주차장으로 옮겨온 느낌이다. 전기차의 가장 큰 불편이라고 말하는 충전시간의 불편함이 한순간에 사라진 것이다. 차에서 내려 충전 포트를 열고 충전기 케이블을 꺼내 연결한 후 충전기 전원을 켜고 카드를 태그하는 데까지 길어야 10초다. 아침에 케이블을 정리하는 건 더 빠르다. 매일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정도의 장거리 주행만 아니라면 하루 300km 내외로 탄다고 하더라도 충전 시간에 의한 낭비가 전혀 없는 셈이다.
완속충전기의 또 다른 장점은 저렴한 충전요금이다. 2019년까지 한시적으로 월 1만6,000원 정도의 기본요금이 면제되고 충전요금은 50% 할인된다. 충전요금이 가장 저렴한 밤 11시부터 9시까지의 경부하 시간대에 충전하면 볼트 EV의 경우 완전충전까지 할인 후 기준으로 2,000원 정도만 부과되니 부담이 적다. 고로 전기차 오너의 최고 복지는 비공용 완속충전기라고 할 수 있겠다.
계절에 따른 주행거리 변화는 어떨까? 전기차로 4계절을 모두 타보고 여름은 두 번째 맞고 있다. 볼트 EV의 경우 여름철 주행거리는 발표치인 383km에 근접한다. 에어컨을 항상 가동하고 극심한 정체도로를 포함해서다. 에어컨을 사용하지 않는 봄가을에는 500km를 넘기기도 하는데, 문제는 역시 겨울이다. 외부 온도에 따라 다르지만 지난 겨울 평균 250~300km를 탔다. 공조장치를 사용하지 않는 봄가을에는 길이 막힐수록 주행가능거리가 오히려 늘어나는 마법 같은 일을 목격할 수 있는데, 겨울에는 히터를 가동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주행거리는 사정없이 줄어든다. 게다가 낮은 기온은 충전효율마저 떨어트린다. 특히 볼트 EV는 현대나 기아의 전기차보다 겨울철 충전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겨울에는 외부에서 급속충전을 할 때 시간을 더 여유 있게 잡아야 한다.
타이어 문제도 있다. 볼트 EV에는 미쉐린의 에너지 세이버 AS라는 사계절 타이어가 달려있는데, 구름저항을 줄여서 주행가능거리를 늘려주는 효과가 있다. 문제는 구름저항을 줄이다보니 타이어 자체의 접지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데 있다. 여기에 모터의 토크가 초반부터 쏟아져 나오는 전기차의 특성과 만나, 가속 페달을 조금이라도 거칠게 다루면 곧바로 휠스핀이 이어진다. 출발할 때뿐만 아니라 가속 중에도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들리고, 급제동을 할 때도 배터리가 실려 묵직한 체중을 이겨내지 못하고 비명을 지른다. 주행가능거리의 5~10%는 타이어가 만들어낸 것 같은 느낌이다.
필자는 예전부터 겨울이면 출퇴근 차에 윈터타이어를 끼워서 사용했는데, 볼트 EV도 마찬가지였다. 보통 윈터타이어를 끼우면 사계절 또는 여름용 스포츠 타이어에 비해서 마른 노면 접지력이 떨어져서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자주 듣게 되는데, 볼트는 반대였다. 기본 장착된 타이어의 접지력이 워낙 낮은지라 윈터타이어가 오히려 스포츠 타이어처럼 느껴졌다. 덕분에 겨울철에 오히려 끈끈한 느낌으로 달릴 수 있었다. 주행가능거리는 타이어를 갈기 전보다 10% 정도 줄었지만 말이다.
전기차를 타면서 좋게 느낀 점 중 하나는 소음이 없고 예열이 필요치 않다는 점이다. 조용한 주택가에 사는 관계로 야근이 많은 직업 특성상 심야에 귀가할 때 차에서 나는 배기음조차 조심스러웠는데, 전기차를 타면서 이런 걱정이 싹 사라졌다. 돌돌돌~ 타이어 소리 정도만 날 뿐이다.
예열 문제도 마찬가지다. 예열이랍시고 시동을 한참 동안 걸어두는 사람들이 있는데, 환기를 위해 열어뒀던 창문을 모두 닫아야 할 정도로 불편하고 소리 또한 거슬린다. 전기차를 타기 전에는 시동을 걸고 즉시 움직이되, 큰 도로에 나가기 전까진 가속 페달을 살살 밟아 예열하는 방법을 썼다. 그런데 볼트를 타고 나서는 이런 부분도 안녕이다. 엔진 눈치를 보고 달랠 필요 없이 출발 직후부터 아무 때나 마음 놓고 최대 파워를 끌어낼 수 있다.
에어컨과 히터는 배터리를 소모하지만 아주 빨리 시원하고 따뜻한 바람이 나와서 편리하다. 특히 에어컨의 경우 차 안에서 대기하면서 배기가스 걱정 없이 마음껏 틀 수 있어서 좋다. 마치 이동 가능한 초대형 보조배터리 또는 에어컨을 타고 다니는 느낌이랄까. 다만 볼트 EV의 주간주행라이트가 항상 켜 있는 점은 마음에 안 든다. 적어도 변속레버를 P에 놓고 주차브레이크를 채우는 조건에서는 꺼졌으면 좋겠다. 다른 회사 차는 된다던데…….
그리고 골목길을 달릴 때 보행자가 소리 없는 전기차에 치이는 일이 없도록 소리를 내는 ‘가상 엔진음’도 마음에 안 든다. 시속 23km에 도달할 때까지는 모터룸(?)에 설치된 스피커에서 UFO 같은 소리가 나는데, 정작 보행자에게는 자동차가 오는 소리로 들리지 않아서 별 효과가 없고 그 소리에 익숙한 운전자에게만 크게 들린다.
올해의 전기차 보급 속도는 지난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필자의 볼트를 경험해본 지인 여럿이 같은 차를 뽑았고, 다른 전기차를 구입한 이들도 몇 있다. 아니, 최근 새 차를 구입한 지인의 대부분이 전기차를 구입했다. 저렴한 유지비에, 전기차 특유의 재빠른 가속감에, 디젤차의 진동에 질려버려서, 정부보조금이 바닥나기 전에 혜택을 받자 등 이유도 가지가지이지만 모두 전기차가 주는 기쁨을 한껏 만끽하는 중이다. 하나같이 다른 사람들이 전기차를 더 많이 사지 못하도록 ‘시기상조’라는 말을 반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