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30일, 강남에서 한 60대 남성이 이별을 통보하는 연인관계에 있던 여성과 그의 딸을 칼로 살해했다. 5월 28일에는 경남 창녕에서 30대 남성이 자신의 여자친구를 살해하고 자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5월 6일에는 한 20대 남성이 이별을 요구한 여자친구를 강남역 근처 건물 옥상에서 살해한 일명 '강남 의대생 여자친구 살인사건'이 사회의 공분을 일으켰다. 그리고 4월 1일, 거제에서 한 19세 남성이 전 여자친구를 폭행해 숨지게 하였다. 해당 사건이 발생하기 전 피해자는 가해자의 폭력에 대응하기 위해 경찰 신고를 감행했음에도 목숨을 잃었다. 이는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된 사건을 추린 것에 불과하여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피해자가 있을 것을 감안하면 실제 피해 규모는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대한민국 정부는 연이은 데이트폭력 사건에도 ‘논의하겠다’며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다가, '강남 의대생 여자친구 살인사건'이 일어난 지 3일 후에야 공식적인 입장을 발표했다. 해당 입장에 따르면 신영숙 여성가족부차관은 뒤늦게 "법무부·경찰청 등 관련 부처 및 전문가와 현장이 함께 참여하는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2전문위원회를 조속히 개최하겠다"며 "여러 의견을 듣고 개선이 필요한 사항을 발굴,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사건 일주일 후, 윤희근 경찰청장 또한 본 사건을 언급하며 데이트폭력의 "기준과 한계 설정이 모호한 것이 사실”이며 "(이를) 근절할 수 있는 법, 제도 개선을 위한 사회 전체적인 관심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말하였다. 여성폭력방지위원회 제2전문위원회는 지난 14일에 개최되었다고는 하지만, 논의 결과도 알려지지 않았을뿐더러 실질적 후속 조치도 없었다.
대한민국 정부가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은 채 친밀한 관계 내 여성폭력 사건을 방치하는 동안 다른 나라에서는 여성폭력 방지를 위한 고무적인 움직임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인구의 약 50%의 인구규모를 가진 호주는 올해 들어 여성이 28명이 살해된 것을 '국가적 위기'로 규정하여 가정폭력 피해여성 지원과 폭력 근절을 위해 약 9천억원을 투입하기로 하였고 지난 5월 15-18일, 가정폭력 범죄자와 고위험자를 대상으로 대대적인 단속을 실시해 총 554명을 가정 폭력 혐의로 체포하는 등 국가적 위기에 걸맞은 강경 대응을 하고 있다. 아울러, 스코틀랜드와 호주에서는 친밀한 관계 상대방에 대한 ‘통제 행위’가 발생할 경우 최장 14년형을,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최장 5년형을 선고할 수 있으며, 미국과 캐나다는 입법 절차에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다른 나라의 실효성 있는 대책을 보며 느끼는 바가 없는가. 여성가족부 차관이 언급한 “개선이 필요한 사항”은 이미 발굴되었고, 경찰청장이 말한 “사회 전체적인 관심과 의지”는 이미 충분하다. 이제는 정말 정부가 행동해야 할 때이다. 더 이상 ‘논의의 필요성’과 ‘입법 공백’을 운운하지 말라. 국가는 국민의 생명권을 보장할 책무가 있다.
* 관련 기사: https://n.news.naver.com/article/001/0014698493?sid=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