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그것도 당시의 동반도 인(한국)이나 역사에서 줄기차게 말하는 이씨 왕조및 조정에 의해 결정된 것이
아닌,미국과 일본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실천에 옮기기 위해 '미국의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 육군장관과
당시 일본 총리였던 카쓰라 다로(桂太郞) 밀약으로 미국은 필리핀을 먹고,일본은 한반도를 먹는다' 는 약
속을 한다는 것이다.즉 역사에서 말하는 '테프트ㅡ카쓰라 밀약' 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된 것이다.
이후 테프트 장관은 미국 27대 대통령이 되고,카쓰라 다로는 11대,13대,15대 일본 총리를 함으로서 전임
자들의 제국주의 팽창정책을 계승해 침략 행위들을 실천에 옮긴다.일본과 미국 사이에 맺어진 밀약의 성
립은 일본의 승리 깃발을 억지로 만들어준 러일강화 조약이자 포츠머스 강화조약이 체결(1905년 9월 5일)
되기 약 2달 전에 이미 이루워 진다.서로 나눠 먹자는 밀약을 한 것이다.米日 간의 이러한 비밀 거래는 한
국전쟁 전후 사정을 볼때 반도에서 미국의 속셈이 뭔지를 이해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러일전쟁에서 일
본은 미국 돈을 많이 빌렸기에 미국이 하자는 데로 할수밖에 없었고,먼저 휴전의 강화협약을 루스벨트에
게 부탁한 것도 패전의 러시아가 아닌 승전의 일본이었다.일본은 당시 영국과 미국의 지원이 없었으면
러일전쟁에서 이길수가 없었다.
2, 밀약 당시의 상황을 보면,미국의 육군장관 태프트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의 딸 '엘리스' 를 포함
해 약 80명의 수행원을 이끌고 필리핀(1899~1900년 미국과 스페인과의 전쟁으로 필리핀을 빼앗음) 방문
을 위해,미국의 샌프란시스코를 출발한 것이 1905년 7월 8일 이었으며,그들이 탄배가 일본의 요코하마에
도착한 것이 7월 25일(17일 소요) 이었다.7월 26일 태프트는 메이지 왕을 알현했고 그날밤 제국호텔에서
일본총리 카쓰라 다로가 베푼 만찬회에 참석하는등 일본측으로 부터 최대한의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문제는 1905년 7월 27일 오전부터 시작된 태프트와 카쓰라 간의 장시간 밀담인데,그자리에서 양자간에
성립된 양해 사항을 간단히 요약하면 '일본이 필리핀에 대한 미국의 지배권을 인정하는 한,미국은 반도
(한국)에 대한 일본의 종주권을 인정 한다' 는 것이 주 내용이었다.이른바 '태프트ㅡ카쓰라 밀약' 인 것이다.
이밀약을 승인하고 포츠머스 강화조약(러일강화조약)의 알선 댓가로 미국의 26대 대통령 루스벨트는 노
벨 평화상을 받는다는 아이러니다.미국과 일본간의 이러한 밀약은 한반도에서 여전히 유효하다.
3, 태프트가 카스라와의 밀약의 내용을 전보로 본국 정부에 보고한 것이 동년 7월 29일 이었으며,이 전문
보고서를 읽는 루스벨트 대통령이 전면적으로 승인한다는 답전을 태프트 장관에게 보낸 것이 7월 31일 이
다.그리고 이 답전을 받은 태프트가 다시 필리핀의 마닐라에서 일본의 카쓰라에게 이 내용을 알리는 전문
을 보낸것이 동년 8월 7일 이다.보통 태프트ㅡ카쓰라 밀약으로 알려진 이건은 7월 29일 미국의 태프트가
일본에서 워싱턴으로 보낸 전문을 말하는 것인데,미국이 국제법상 조약도 아닌 밀약의 형식으로 비밀리에
반도(한국)에 대한 일본의 지배권을 인정했다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당시 미국
대통령 루즈벨트의 딸 엘리스는 일행과 별도로 한국을 방문하고자 9월 19일 한성부에 도착하게 되는데,그
당시의 조정에서는 미국의 환심을 사고자 거창한 환영행사를 하고자 기획 했으나 그것도 일본인들의 반대
로 실현되지 못했다.따라서 1905년 이해를 반도인 이자 한국인들은 미국에 배반 당한 첫번째 해로 기억하
게 만든다.두번째 미국의 배신 행위는 2차대전 종전 막바지에 이루워진 한반도 38도선 분단 행위다.오랫
동안(약 20년) 반도의 신탁통치를 주장했던 나라도 미국이었다,
4,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즉 제1차 세계화 시대 당시 해양세력(미국과 영국)과 대륙세력(러시아,독일)의
대립시 해양세력인 미국과 영국은 일본을 그들의 하부 조직으로 대리 역할을 잘해 주기를 부탁하고자 근
대화(투자와 기술 이전)를 조성해 주었다.청일전쟁에서 영국이 대준 신형무기로 청국을 이긴 일본의 군부
는 기고 만장했다.이런 허세의 기운을 더 키워주기 위해 영국이 일본과 영일동맹을 맺어 줌으로서 일본을
강대국으로 발 돋음하게 해주었다.당시 일본은 청나라(대륙)에 대한 영국의 이권을 인정하는 댓가로 반도
에 대한 일본의 이권을 영국으로 부터도 인정 받았다.즉 태프트ㅡ카쓰라 밀약은 1902년 체결해준 영일동
맹의 연장 선상에 있었다.英,日 동맹이 체결된후(2차는 1905년 8월) 반도 접경지대에서 불리함을 느낀 러
시아는 반도에 군대를 파견했고 일본과 충돌을 빚었다.당시 국력이 약했던 일본은 차선책으로 반도를 위도
38도선을 기준으로 양분해 각각 영향력을 행사 하고자 제의 했으나 러시아의 거절로 성사되지 못했다.이
선은 2차 대전후 미국에 의해 결정된 한반도 분할 경계선과 일치하고,이런 분단 정세와 상황은 지금도 계
속되고 있다.
5,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의 모두는 반도에서 시작되고 종결 되었다는데 당시 반도 실존의 거창한 역사의 왕
조와 조정은 한일이 없다.타국의 세력들이 무단으로 침입해 그들끼리 반도 주도권 놓고 이전투구로 싸우고
있는 데도 한일이나 말린 일도 없다.戰場을 강제로 빌려주고 강토와 인민들이 유린되고 있는데도 臣民들을
보살펴야 할 지배층인 사대부들과 왕조는 뭘 했는지도 알수가 없다.반도에서 일어나고 반도의 주도권을 놓
고 싸운 청일전쟁의 마무리도 청국의 이홍장과 일본의 이등박문의 조약으로 마무리 되고,반도를 38도 선으
로 나누는 것도 1차는 일본과 러시아 사이에서 거론한다.다음은 미국이 독자적으로 했으니 반도의 왕조및
지배층들은 과연 무엇을 하면서 백성들로 부터 세금을 징수했는지 알수가 없다.이어 반도의 지배권을 놓고
싸운 러일전쟁도 미국의 중재로 마무리 되고,최종적으로 미국이 반도의 지배권을 일본에 주었다는 데도 반
도의 실질적 지배세력들은 이것이 뭔 뜻인지도 몰랐다.나라의 자존심 회복과 실질적 독립은 독립문을 세우
고,독립협회를 발족하고,신문을 발행 한다고 되는 일이 아니다.중립국 선포도 선포 만으로 되는게 아니다.
제도의 안정과 재정의 확실한 독립과 역량이 있을때 만 가능한 것이다.현 한국에서 보수를 자처하는 수구들
처럼 뿌리까지 확실하게 부패한 세력들은 나라를 지킬수가 없다.오직 그들의 영화만 살필 뿐이며 나라와 구
성원들의 안정과 행복은 뒷전이다.
첫댓글 뭔가 오류가 있는 듯 합니다. 가쓰라-태프트 밀약에서 일본이 필리핀을 양도한 데는 필리핀에 대한 권리가 어느 정도 일본에게 있었다는 가정 하에 가능한 것이고 반도보다 큰 필리핀을 주고 겨우 반도를 할양 받았다 는 것은 논리 상 말이 안돼 보입니다. 대륙조선 이라면 몰라도 말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열도나 반도는 언제나 접수 가능한 상태라 여겼으니 대륙을 탐냈을 것이 훨씬 합리적인 추측이라 보여집니다. 태스라_기프트 밀약에서 반도를 기정 사실화 해버리면 대륙 조선은 없는 얘기가 되어 버립니다. 그것이 그들이 노리는 바가 아닐까요?
당시 반도는 동반도 였고 한국 이었습니다.조선이란 국명은 없었지요.역사서에 의한 조선은 여전히 동국과 동방이란 이름으로 대륙과 반도를 포함하고 있었지요.지금의 요동 3성지역은 동북도 였습니다.1911년 대륙에 중화민국이 선포되고 1912년에 반도에 조선이란 말이 회자 됩니다.필리핀은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전리품으로 뺏은 것인데 이제 미국 것이다,반도를 줄테니 일본으로 하여금 인증하라는 의미지요,일본은 러일전쟁 승리 전리품으로 한반도와 남만주 철도,사할린 남부,쿠릴열도를 일본이 차지했고,이즈음 미국은 스페인과의 전쟁 승리로 '프에르 토리코,쿠바,괌(사이판 포함),필리핀' 을 먹지요.일본은 당시의 능력으로 대륙을 넘볼 처지가 아니였 습니다.
고맙습니다
"자주국은 제도의 안정과 재정의 확실한 독립과 역량이 있을때 만 가능한 것이다. "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작금의 한반도 상황이 100여년 전의 상황과 비슷하게 돌아가는 듯 해서 우려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님께서 한국의 현재 상황이 100년 전 반도 상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신다면 역사를 제대로 바르게 이해하시는 겁니다.감사 합니다.현재의 한국 상황은 매우 우려 스럽고 좌표와 방향키를 잃고 선장없이 표류하는 배와 같습니다.
1905년이면 이미 일본이 한반도를 지배하고 있을 무렵이군요.1895년부터 한반도는 일본의 점령지였고 대한제국은 대륙에 있을 때네요.우리는 학교서 청일전쟁 결과 청나라가 일본에 대만을 넘겨주었다고 들었지만 원래 고대로부터 일본땅이었던 대만을 어떻게 넘겨받는다는 말인가요?추론컨데 1875년 한반도의 꼬리국은 조선-청나라 연합군에 의해 멸망했고 20년간 조선-청의 지배를 받다가 조선과 청나라로부터 청일전쟁 배상으로 받은 곳이 한반도일 가능성이 높죠.훗날 대륙조선을 숨기기 위해 교묘하게 한반도를 빼고 대만을 끼워넣은거죠.
대한제국은 허상이지요.대한제국은 일제가 반도를 가질려고 반도의 토호들 중 규모가 큰 세력을 나라의 주인으로 만들어준 경우에 해당합니다.당시의 英米들도 일제의 반도 지배를 호응을 한 상태였습니다.淸도 2차 아편전쟁에서 패한후(1860년) 혼란에 빠져 북경을 수호하기에 급급해 반도 분할을 양보했지요.황제가 통치하는 제국이 될려면,돈이 있어야 하는데 중앙정부 통제의 예산안 조차 없었을 때 였습니다.문제는 남이 침략을 했을때도 방어하려면 돈이 있어야 하는데 戰費가 뭔지도 몰랐던 무지랭이 시대였습니다.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는 나라를 방어 할려면 돈이 바로 전쟁의 혈관이 아니겠습니까?
기록상으로는 1910년이 조선이 망한 것으로 나오지만 조선 왕조가 반도에서 연명 한 것으로 나오는 비밀을 밝혀야 합니다
청이 대조선을 뒤로 빼고 대륙에 대표가 되어 역사의 장에 등장한 비밀도 알아야 합니다
조선왕조가 아니리 제후국 이씨국 정도지요.반도에 조선의 전체를 놓고 대조선이라 할수는 없지요.또 이씨들이 조선과 조선의 왕국들을 대표
하지도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