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멋지다!”
입이 딱 벌어졌다. 다리 아래로 펼쳐지는 넓고 웅장한 강에 넋을 잃었다. 강은 그 어디에 쪽빛 물을 숨겨두고 쉼 없이 풀어내는 듯했다. 당장이라도 내달려 강물에 손을 담그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간질거렸다. 차창 안으로 들어오는 바람도 그 마음을 부채질하였다.
“아빠, 이 강 이름이 뭐예요?”
“응, 영산강이야. 어때? 실제로 보니까 정말 넓지?”
영산강, 교과서 속에서 잠자고 있던 막연한 강이 눈앞에 장엄하게 펼쳐지고 있었다. 나는 한 번도 이처럼 큰 강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영산강을 바다만큼 큰 강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이제는 정말로 강이 끝나는 곳에 바다가 있다는 것을 보지 않고도 믿을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영산강을 따라 달리다 사람들이 많이 모여 있는 곳에 차를 세웠다. 지역축제라도 열리는지 사람들로 북적였다. 강을 따라 펼쳐진 유채꽃 밭은 마치 푸른 치마를 두른 노란저고리 입은 새색시처럼 아름다웠다. 여기저기서 사람들 눈을 사로잡는 광경이 벌어지고 있었다. 관광버스에서 내린 어른들이 무리지어 홍어축제가 열리는 곳으로 몰려갔다. 우리 가족은 행사장에서 흘러나오는 시끄러운 음악을 피해 유채꽃 한가운데로 걸어갔다.
“덜커덕, 덜커덕”
소달구지가 사람들을 태우고 지나갔다. 우리도 달구지에 올라 유채꽃길을 보기로 했다. 그러나 이미 예약한 사람이 많아 한참을 기다릴 수밖에 없어 강가로 내려갔다. 나는 제일 먼저 맑은 물에 손을 담가보려고 뛰어갔다. 그러나 곧 그만 두었다. 기름때며 오물이 널려있었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았던 쪽빛 물은 가까이 보니 검붉은 빛을 띄고 있었다. 나랑 동생은 뒤로 물러나 물수제비를 뜨며 놀기로 했다.
“에이, 물수제비는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야. 이렇게 납작한 돌로 옆으로 해서 던져야지.”
아빠께서 방법을 설명해 주셨지만, 우리가 던지는 돌멩이는 퐁당하며 싱겁게 가라앉아버렸다. 마지못해 돌 멀리 던지기 시합을 했다. 강물 위로 수많은 파문이 일어 번져 나갔다. 부모님께서는 그 모습을 빙그레 웃으시며 바라보았지만 내 마음은 풍덩 가라앉은 돌멩이 같았다.
소달구지를 타는 시간이 되어 덜커덕 소리에 따라 몸을 흔들며 찜찜한 마음을 털어보리라 생각했다. 노란 유채꽃 사이로 다시 쪽빛 강물이 펼쳐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거짓색이었다. ‘영산강은 남도의 젖줄’이라고 써 있는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이 유채꽃들이, 수많은 생명이 이 물을 먹고 자란다는 말일 것이다. 식물의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게 했을 것이다. 그러다 그 물이 아까 본 검붉은 물이라고 생각하니 얼굴이 금세 찡그려졌다.
마음 때문이었을까. 막상 보지 못했던 광경들이 눈에 띄었다. 유채꽃밭 여기저기에 쓰레기들이 버려져 있었다. 소의 배설물도 널려 있었고 다리 밑에는 커다란 비닐봉투들이 쌓여 있었다. 얼마나 치우지 않았는지 알 수 없지만 거기에서 나오는 물이 강으로 흘러들 것은 불 보듯 했다. 물수제비를 뜰 때 보았던 기름 띠며 둥둥 떠다니는 오물들이 생각나 씁쓸했다. 문득 영산강이 전국에서 가장 오염된 강이라는 말도 생각났다. 저렇듯 맑게 보이는 강은 5급수, 물고기들이 살기 힘든 강, 전국 4대강 중 최악, 이것이 영산강의 현주소였다.
내 어두운 표정을 읽은 듯 아빠께서 가마골 용소이야기를 해주셨다. 그곳은 사계절 맑고 깨끗한 물이 흘러넘치는 영산강의 발원지다. 목마른 등산객들은 용소의 물을 망설임 없이 마신다니 그 물과 방금 보았던 강물이 한가지라고 믿을 수 없었다. ‘어쩌다 강물이 검은 빛으로 썪게 되었을까요.’ 이런 내 눈빛을 보시고 ‘너도 그 책임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지.’ 하는 듯 아빠께서 가만히 들여다보셨다. 가마골 맑은 용소를 내려온 물은 사람이 사는 마을을 지날 때마다 탁한 옷을 켜켜이 껴입은 것이다. 도시 하나 들판 하나를 건널 때마다 검은 폐수를 만나 숨이 막혀왔던 것이다. 그 속엔 나도 있었고 우리 모두가 있었다.
“ 아빠, 영산강이 다시 깨끗한 강이 될 수 있을까요?”
도로 묻는 내게 아빠의 답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어느 한 사람의 노력만으로 오염된 강물이 살아나는 것은 어렵다고 하셨다. 그렇게 생각하니 오늘 아침 샴푸를 두 번 한 일도, 비누거품이 좋아 장난친 일도 후회됐다. 아무 생각 없이 날마다 했던 행동들이 결국 나를 먹이는 영산강을 서서히 죽여 온 것이다. 겉으로는 저렇듯 햇살을 받으며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영산강이 보인다.
언젠가 노력하면 영산강을 살릴 수 있다는 생각은 잘못이다. 자연은 언제까지 기다려주지 않고 우리가 버리는 폐수, 쓰레기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그렇게 남긴 상처는 결국 우리에게 돌아온다. 영산강 젖줄을 먹고 자라는 논과 밭의 곡식들은 아픈 병을 안고 우리들 식탁에 오를 것이다. 오염된 물마저도 점점 적어져 더 이상 겉이라도 아름다운 강물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버리는 사람만 있고 치우는 사람이 없는 떠들썩한 축제장을 떠나오며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들에 대해 얘기했다. 유채꽃이 아름다운 것은 그 뒤에 쪽빛 강물이 흐르고 있어서였다. 비록 맛은 보지 못했지만 홍어가 맛이 있고 소달구지를 타는 일이 신이 나는 것도 모두 도도한 강물이 맑은 기운을 보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썩어 냄새나는 죽은 강물일 때 아무도 그 곳을 찾지 않을 것이다.
다시 강물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용소에서 막 떠난 산벚꽃나무에서 떨어진 꽃잎이 계곡을 따라 떠내려 오는 모습을 그려보았다. 그 물이 그대로 이 곳까지 오는 날을 위해 우리 가족은 오늘부터 달라질 것이다. 당장 샴푸와 린스부터 쓰지 않기로 했다. 재활용비누로 머리를 감고 식초로 행구면 그 효과는 같다고 엄마께서 귀뜸해주셨다. 나는 답답한 마음을 거둬내기 위해 창문을 열고 소리쳤다.
“ 영산강아, 미안해. 이 작은 시작이 우리가 네게 하는 첫 번째 사과야. 받아줄래?”
답이라도 하듯 파아란 강물 위로 해오라기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