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는 프랑스와 통상조약으로 신앙의 자유를 얻게되고
그떄부터 본당시설에 천주교회의 간판을 달게된다
대채적으로 처음에는 한옥건물에게 미사를 드리다가 차츰 서양식
고딕건물로 짓게됩니다
성지순례를 가면 대체적으로 그곳에서 식사를 하게됩니다
오래전에는 마당에서 하거나 아니면 간이시설에서 식사를 제공해왔지요
그런데 어느떄부터인가 건물안에서 하게됩니다
차츰 본당이고 성지이고간에 시설에 돈을 들이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대부분 건물을 크게 올리는데 많은 노력과 비용을 소비하지만
정작 그곳에 영성적인 교육이나 천주교회사적 기록물관리등에는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것
같습니다
지금 유럽에서는 어느 유명한 성당은 이를 짓는데 오랜세월이 걸렸다니
아니면 아주 화려한 건물이니 하는 소식을 우리는 듣게되고 떄로는
그곳을 가서 보고 감탄해 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유럽에서 유명한 성당은 어떻게 되어갑니까
수많은 수도원의 시설도 어떻게 되어 가는 것입니까?
지금 유럽에서의 천주교신앙에서 하느님중심이 아니라 개념적인 신앙으로
점차 신앙적인 열기가 시들해지고 있기에 한때 가톨릭국가로서 대부분 국민이
가톨릭신자였지만 지금은 거의 성당에서 미사를 드리는 인원은 전국민의 1%수준에 머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사봉헌금으로 유지하는 건물유지비를 감당할수가 없어서 수많은 성당이
다른용도로 매각되고 많은 수의 성당이 패닉상태에 놓여있다고 합니다
1962년에서 1965년사이에서 열린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는
교황청은 전세계주교들이 모여서 오래간만에 개혁을하기 시작하였는데
여기에도 적지않는 보수주교들의 반발을 가져왔다고 한다
4년동안 매년 바티칸에서 세계주교들이 거의 한달동안 머물면서 현안에 대해
논의하였습니다
획기적인 개혁안이 반포됩니다
주요내용이 전례헌장이었고 동방정교회와의 화해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공의회가 반포되었는데도 불구하고 이들이 전세계 본당으로 파급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역대교황들은 그이후 수없이 많은 권고문들을 반포하였지만
아들이 잘 지켜지지 않았던 것입니다
공의회를 개최한지 30주년이 될무렵에 교황청은 교리서를 반포하게 됩니다
제생각에는 전통적인 교리뿐만 아니라 현대적인 삶에 잘 어울리는 교회가
필요하다고 여겼던것 같습니다
방대한 교리서를 만들고 이를 본당에서 잘 가르쳐주기 위해서
요약서까지 만들었다고 하는데요
요약서는 전주교구의 원로신부가 우리말로 번역하셨는데 피정에 참가하던중에
저자이신 신부님이 직접 그 책을 갖고 오셔서 무료로 주셨지요
저도 그책을 지금까지 소중히 보관하지만 잘 읽어보지도 못했지요
놀라운일든 그이후 전세계에서 일반신도에게 이를 가르쳐주지도 않고 예비자교리시간에도
이런 내용이 적용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제2차바티칸공의회에서 부터 세계주교회의 시노드까지 수많은 문헌이
반포되는데요 놀랍게도 1960년당시는 지금과 같이 개인용컴퓨터가 보급되지도 않았는데
정보의 중요성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후 여러차례에 정보의 새로운기술을 신앙을 위해서 이용하라는 주문이 있었지요
우리본당에서는 양쪽에 천장에 빔프로젝트가 달려있고 그리고 여러대의
휴대용 빔프로젝트를 보유하고 있지만 이를 잘 다룰줄 아는 이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지금은 미사떄에 특히 청년미사때에 반주자가 없기도 하지만
이런 빔프로젝트를 이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금년도에는 교황청에서 15세에 백혈병으로 사망한 한 소년이 성인품에 올라
내년에 성인식을 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는 여러컴퓨터매체를 이용해서 신앙을 널리 전파했다는
공로로 성인품에 올랐다고 합니다 그는 순교자가 아니기에 그 엄격한 기적심사도 2차례
통과했다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 레지오를 창립하고 이를 확장하는데 영향을 준 평신도 프랑크더프
에델퀸과 알폰스렘에 대한 시복시성기도를 드립니다
그 기도안에서는 해당분들의 이름으로 기도하면서 혹시나 받게 되는 기적이 일어나게되면
기적심사에 통과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초기 순교자들은 일반죄수들처럼 잡혀서 심문을 받고 조서을 꾸미어서
왕의 재가를 받아야만 그를 처형할수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에 대한 기록이 따로 교회공동체에서 남기지 않더라도
여러관청이나 떄로는 조선왕조실록에도 남아있게 됩니다
그런데요 조선각지 교우촌에서 수많은 교인들이 생겨나고 해서 이런 절차를 밟을 겨들이
없어서 그 이후 대부분의 순교자들은 그런 과정없이 현장에서 죽음을 맡게되는데요
우리나라에서 여러곳에 무명순교자가 많은 것은 그 이후에 그 현장이 발굴되었기
때문입니다. 충청도 관아가 있던 해미성지에는 연못에서 수많은 신자들을 산채로
매장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전주 치명자산의 무덤은 순교한 여러 교우들이 합장하였다고 합니다
그리고 겨우 시신이 교우들에 의해서 수습한 분중에는 최초의 우리나라 신부이신
김대건신부님도 있었지요 그분은 새남터백사장에서 처형되었다고 하는데요
죄인의 시신은 함부로 반출되지 않고 관아에서도 허락해주지 않았기에
밤에 몰래 이를 수습해서 남제는 이동하지 못하고 밤에만 산길로 해서 용인땅 미리내야산에
임시 매장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는지 김대건 신부님의 유해를 산산조각을 내어서
전국여러곳에 보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놀라운 발상이라는 것입니다
미리내에서 산기슭밑에 있는 작은 성당에도 신부님의 유해를 모셔졌다고 하고
제가 아는 지방 본당의 재대에도 모셔져있다고 합니다
그런것이 무엇이 중요한데 시신을 그렇게 한다는 말인가요
그런의미라면 수도 없이 많은 순교자들중에는 이름도 남김없이 시신도 수습하지
못했는대 어쩌라는 말인가요 여러가지 이유를 내세워서 유해를 여러곳으로 이장하기도 하였지요
왜 우리는 신앙을 하느님중심이 아니라 외형인 건물이나 성물 그리고 성인들의 유해모시기에만
신경과 비용을 투입하는것일까 립니다
그들은 이를 마치 역사적인 기념관으로 여기는것 같아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박해시절에서 교우촌에서 출발해서 공소로 해서 본당이 되는데요
오래시기동안 박해시절이기떄문에 사제를 만나기도 어려운시기임에도
평신도들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유지되어나갑니다
지금 대도시에서 큰 성당이 있지만 여전히 본당운영은 본당신부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본당에 5년마다 새로운 본당신부님이 오시고 그것도 새로운 사목지침을 갖고 오시기에
평신도지도자들의 양성을 할 겨들이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지금 이런 생각을 하고 있지만 어느곳에서든지 이를 잘 말하지 않게되고
속으로 삭이고 있습니다 혹시나 제가 서툰주장으로 교회공동체제를 혼란에 빠트릴까하는
염려떄문입니다
제가 하고싶은 말은 여전히 지금보다는 평신도지도자의 양성이 중요하고 그들이 제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세상에서는 지금 제4차산업혁명이니 하는 새로운 문화기조가 물밀듯이
밀려오고 있지만 본당에서는 전통적인 사고라고 하는지 오래전의 모습으로 운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묵상없이 구역,반모임에서 복음나누기를 하고
하느님의 현존의식없이 성시간이나 성체조배를 하고 있으며
큰단체인 레지오는 냉담자를 위한다고 하지만 성당외 활동은 거의 이루워지지 않고
성당내에서나 아니면 개인기도에 치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놀랍게도 제가 아는 자매님이 지난 천진암에서 파티마성모발현 107주년기념미사에 참여하고
오셨다고 합니다 파티마성모님이 주요한 발현이 된 것은 세계평사를 위하고 공산주의를 해체하려는
것 아닙니까 지금 각단체에서 저녁9시마다 세계평화를 위해서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는 이를 고리기도라고 부르는데 세계각처의 레지오단원들은 그시각에 동시에 하는것입니다
다들 열심히 하고 있지만 왜 그런기도를 하는지 재대로 그 의미를 알고 하는지는 의문시됩니다
전체적인 맥락을 볼때에는 본당에서의 모습은 전혀 현실과 많은 거리가
있다는 것이고 대부분 평신도봉사자들이 아무런 대책없이 활동한다고 여겨지지만
개인적으로 만나보면 이들에 대한 인식을 가진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입니다
본당내에서나 본당밖에서 많은 활동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교구활동에도 적지 않는 시간을 할애하기도 합니다
저는 너무 안타까운것은 본당에서도 ME나 꾸르실요같은 좋은 교육이나 체험한 이들이
있지만 그들은 여러가지 이유로 본당에서 제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때로는 에이레 콘칠리움보고서를 읽어봅니다
지금 우리나라 레지오만 위축된것이 아닙니다 세계적으로 잘 활동하고 있는
에이레나 남미 그리고 아프리카에서도 그런 현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론 그 보고서안에는 우리나라의 3개의 세나뚜스의 보고서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간혹 우리나라 보고서내용이 들어있기도 하지만 아주 짧은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인데
이는 우리나라의 레지오현실을 잘 말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아프리카에서 그 어려운환경에서 사제의 힘이 미치지 않는곳에서의 활동보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이러한 신앙적인 여러활동들이 우리나라 본당에서는 전혀 이루워지지 않고 있느냐입니다
평신도의 역할이나 생각표현이 극도로로 제한받고 있기 떄문입니다
저는 감히 말씀드릴수가 있는데요 건강한 평신도지도자를 양성하지 않으면
건강한 평신도 공동체를 만들수가 없고 그런 공동체가 없이는 어느곳에서나 사제나 수도자성소자가
생겨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믿기만 해도 죽음을 당하는 그런 박해시절이 아닙니다
교황청에서도 교회법이 있고 이들이 전세계 교구에 영향을 주고 있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이후에 많은 교황의 권한이 대폭 세계 각 교구장에게 이양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한때에 교구에서 하는 교육에 열심히 참여한적이 있었지요
선교교육이나 아니면 구역.반모임의 소공동체교육이었지요
그때 만난 교구의 성서사도직신부중에서 놀라운 말씀을 들었습니다
'성서교육과 모임을 평신도지도자에게 맡기는 것은 아주 위험하다 그이유는 평신도는
영적 분별력이 없기 떄문이다' 라는 것입니다
이 분은 오래전부터 본당에서 소공동체를 위해서 헌신하신 신부님이십니다
그분의 말씀을 통해서 제가 인식한것은 신부님은 소공동체가 평신도의 신앙생활에 영향을 주는것이
얼마나 어려운일인지를 잘 알려주신것 같았지요
예수님은 복음서에 기록한대로 제자들과 두루다니면서 가난하고 소외된이들을 낫게하시고
그들을 가르치셨는데요, 주님을 따라온 무리들이 주님의 의중을 잘 알았기 떄문이라고
여기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이는 신약성서중에는 초대교회에서 가장 많이 읽혔다는 마태오복음에서의
산상복음이 의미하는 것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할것입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마태오 5,3)
여기서는 우리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이 과연 누구인가를 아셔야 할것입니다
예수님은 주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실천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을 하시지 않고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하다는 의미가 무엇일까하는 의문이 듭니다
이는 물질적으로 가난하다는 의미 그 이상일 것입니다
저는 이를 다른 말로 누가 과연 아주 절실할까 입니다
루까복음 18장은 '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의 말씀이 들어있습니다
우리가 있는 곳에 늘 주님이 함꼐 하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우리는 치장하거나 꾸미는데 덜 노력할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