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교회에 오래 동안 다니셨던 할머니께서 계신 요양원에 정기적으로 방문을 합니다. 연세가 드시고, 치매에 걸려서 자신이 누구인지, 과거의 기억을 잃어버린 할머니를 보고 올 때면 마음이 무겁다 못해 답답합니다.
나이 드신 부모님을 자녀들이 모시기가 어렵고, 요양원에 모셔야 하는 사회 문화와 구조, 특별히 동양 문화권에서 이민 온 자들에게는 심각한 가정 문제요, 사회 문제입니다. 남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나와 여러분의 문제입니다.
현대는 큰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생각이 변하고, 생활양식이 변하고, 풍속이 변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들이 있는데,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습니다. 계절의 변화를 보십시오. 예컨데, 지금은 가을입니다. 나무는 붉게 물들어 놓고 바람에 하나 둘 낙엽을 떨어뜨립니다. 그러다가 겨울이 오고, 겨울 끝에 꽃 피는 봄이 올 것이고, 그 다음에는 어김없이 여름이 옵니다. 사계절의 법칙입니다.
이처럼 천지는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법도와 율례입니다. 영원합니다.
십계명이 바로 그렇습니다. 십계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누면, 1-4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5-10계명은 인간관계에 관한 계명입니다. 그 첫번째 계명인 제 5계명이 무엇입니까? “네 부모를 공경하라”입니다. 이 계명은 자연법칙처럼 당연한 법이요, 영원불변의 법입니다.
오늘 본문 엡6:1절에도“이것이 옳으니라” 라고 적고 있는데 이러한 표현이 신약성경에만 183번 나옵니다. 이 말은 절대적 가치를 강조할 때 쓰였습니다. 즉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할 당위성을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마땅히 그렇게 해야 하며 그것은 당연한 일이다’ 라는 절대적 진리, 불변의 진리를 강조한 것입니다.
오늘, 어버이주일을 맞이해서 부모 공경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십시다.
1.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신앙의 문제입니다.
1절에서 바울은 말합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부모에 대한 순종은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에 새겨 넣으신 자연법칙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사회적으로 그리고 도덕적으로 마땅한 행위입니다.
그리스의 스토아 철학자들은 부모공경을 당연한 것으로 여겼으며, 유교를 비롯한 다른 종교도 부모공경을 대단히 중요한 덕목(인륜)으로 생각하여 적극적으로 권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성경의 가르침은 그런 것에 머물지 않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라는 표현을 붙임으로써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이 궁극적으로 신앙의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부모공경은 신앙의 문제임을 분명히 드러냅니다.
바울은 2-3절에서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것은 십계명을 인용한 것인데, 이렇게 하여 그는 부모 공경이 하나님의 명령임을 강조합니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것은 단지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성격을 가질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신앙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것은 인간의 도리를 넘어서 하나님의 명령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전서 5:8에서도 “누구든지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아니하면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니라”라고 말하였습니다. 참으로 신자들에게 있어서 부모를 공경하는 일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부모 공경 명령에 대한 신앙적 이해는 우리로 하여금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에 대하여 생각하게 합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신앙의 선생으로, 즉 말씀의 메신저(전달자)로 세우셔서 자녀들이 부모로부터 말씀을 배우기를 원하십니다. 분명히 부모들은 자녀들의 신앙을 책임져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부모는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자’입니다. 부모는 자녀들에게 말씀을 전수해 주어서 그들이 하나님을 알고 경외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부모님이 말씀으로 자녀를 양육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직무유기이며, 부모의 직분을 행하지 않는 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교회의 선생들에게 책임지우고 부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옳지 않습니다.
우선 부모가 자녀들에게 신앙을 전해주어야 하며, 교회의 선생들은 부모들과 같은 입장에서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는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책임져야 하고, 그런 가운데 자녀들은 부모 공경하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2. 부모를 공경하는 방법은 순종하는 것이다.
바울은 1절에서 “순종하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이에 해당하는 헬라어 휘파쿠오는 능동태 명령형입니다. 이것은 강한 의무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바울은 5:22의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에서 ‘복종하라’에 해당하는 헬라어로 휘포타쏘마이를 사용하였는데, 이것은 자발적인 복종을 뜻하는 것으로 휘파쿠오보다 의미가 약합니다.
이것은 부모에게 순종하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모든 공경과 사랑과 신뢰를 나타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모든 선한 가르침과 징계에 마땅한 순종으로 자신을 복종시켜야 합니다.
“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잠 1:8).
자녀들이 부모 공경에서 한계를 느낄 때가 있습니다. 가령, 부모 공경에서 자녀는 부모들의 결점에 대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인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를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잠 23:22). 이 말씀은 부모가 연로하고 힘이 없다고 해서 부모를 가볍게 여기거나 업신여겨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자식이 부모를 공경하여 그분들에게 순종해야 하는 것은 부모가 자식에게 무엇인가를 줄 수 있는 힘이 있는 동안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를 공경하라는 것은 절대적인 명령으로 그분들이 자식들에게 아무 것도 줄 수 없을 지라도 순종해야 할 일입니다.
이 시간에 부모 공경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생각해 보십시다.
1) 마음을 편안하게 해 드리는 것입니다.
감사와 은혜를 헤아리며 부모님들의 마음을 이해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불편하면 모든 것이 다 귀찮게 되어 있습니다.
어떤 목사님이 예배를 마치고 나오는데, 한 권사님이 목사님의 손을 꼭 잡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목사님! 자녀들에게 부모를 공경하는 것까지 바라지도 않습니다. 공격만 당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이젠 나이가 들어 쉬고 싶은데 손주를 맡겨놓습니다. 그리고 자기 자녀에게 조금이라도 문제가 생기면 우리를 공격합니다. 부모가 봉입니다. 몸이나 마음이 너무 힘이 듭니다."
조부모가 손주를 볼 여건이 되면 돌보아줄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부모에 대한 공경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부모 공경이 아니라 부모 공격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2) 좋은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돈이나 선물을 부모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연세가 들면 돈이 필요한 것입니다. 평소에 1/10을 받는 월급에서 드린다면 금상첨화일 것입니다.
3) 함께 하는 것입니다.
조선시대 퇴계 이황선생은 노년에 벼슬자리에서 물러나 고향으로 내려가기를 원했는데, 임금이 그 이유를 묻자 고향에 내려가서 얼마 남지 않은 어머니의 여생을 보살피고 싶어서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임금은 그의 어머니를 한양으로 모셔오면 어떠냐고 되묻자? 퇴계 선생은 자기 어머니는 시골에서 태어나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아오셨기 때문에 한양생활이 어머니에게는 오히려 불편과 부담만 주게 될 것이라고 사양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서 어머님을 모셨다고 합니다.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물질적으로 함께하는 것이 진정한 공경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부모이 주님의 뜻에 반하게 행동하거나 우리에게 범죄를 강요할 때 우리는 순종의 의무를 가지지 않습니다. 부모라는 권위을 주신 하나님이 더 높으며 그분의 뜻이 우선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주님으로부터 권위를 받은 직분자들, 부모들은 솔선수범 주님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격이 있어서 그 자리를 주신 것이 아니라 그를 통하여 일하기를 원하셨기 때문에 주신 것임을 알고 사려 깊게 일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부모를 공경하는 의무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부모 공경에는 약속이 있습니다.
3. 부모 공경에는 약속(대가)이 있다.
바울은 2-3절에서 말합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출애굽기 20:1을 보면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분명하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모에게 순종하는 자들에게 상을 약속하신 것은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부모를 공경하는 자들에 대하여 주시는 복이 무엇입니까? ‘잘되고 장수하는 복’입니다. 이것은 엄청난 복입니다.
이것은 일차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받을 복을 의미합니다. 가나안에는 만만치 않은 민족들이 살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험난한 미래가 예상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들이 부모를 공경하고 지도자들을 존중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할 것을 약속해 주신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가나안에 정착하는 이스라엘 사람에게만 해당되는 복이 아니라 모든 세대의 모든 지역에도 적용된다는 말씀입니다.
일반적인 측면에서 생각해 보십시오.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사회는 대체로 잘 됩니다. 인간의 도리가 행해지는 곳이지 않습니까? 그런 사회는 안정되어 있고 풍요롭습니다.
하나님은 부모를 공경하고 지도자들에게 순종하는 자들이 모여 사는 곳에 복을 주십니다. 또한 개인적으로도 자녀가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에는 행복과 평화가 있습니다.
비록 물질적인 번영이 미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그들의 마음은 평안하며, 가족들 모두가 화목하고, 가정에 기쁨이 넘쳐흐를 것입니다. 이보다 더 풍요로운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성도 여러분, 사람이 살아가면서 가장 우선적인 의무는 무엇입니까? 부모를 공경하는 일이며 하나님이 세우신 모든 권위자들에게 순종하는 일입니다. 이것을 실천하면 큰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반면에 성경에는 부모를 공경하지 않는 자들에 대한 무서운 경고가 가득합니다.
“자기 아비나 어미를 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5).
“그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출 21:17).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 아비의 말이나 그 어미의 말을 순종치 아니하고 부모가 징책 하여도 듣지 아니하거든 ...... 그를 돌로 쳐 죽이라”(신 21:18-21).
“자기의 아비나 어미를 저주하는 자는 그의 등불이 흑암 중에 꺼짐을 당하리라”(잠 20:20).
“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독수리 새끼에게 먹히리라”(잠30:17).
성도 여러분,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므로 저주가 아닌 축복을 누리는 자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이 시간에 다시 한번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공경해야 할 부모님, 공경을 받아야 할 부모님이 항상 옳거나 훌륭하지는 않을 경우에는 어떻게 해야 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세상에는 많은 문제를 가진 부모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자녀는 부모가 능력이 없을 때도 공경해야 했던 것처럼 부모의 결점들과 연약한 점들에 대해서도 인내해야 합니다. 그들의 존재 자체를 존경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부모와 같은 지도자들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들도 연약한 인간인지라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거나 공동체에 피해를 끼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 성도는 기본적으로 그들을 존경해야 합니다. 예의를 잃지 않아야 합니다. 그들이 잘못할 때에는 인내하면서 그들이 바르게 하도록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과격하고 파괴적인 방법으로 비판이나 저항은 옳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세우신 권위자들이 명백히 하나님의 뜻에 어긋난 행동을 했다면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도록 촉구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이를 위해서도 우리는 매우 지혜롭게 처신해야 합니다. 정말 온유한 마음으로, 배려하는 마음으로 행동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특별히 우리가 신앙의 문제로 부모와 대립할 경우가 생긴다면 상당한 주의력을 가지고 행동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존 스토트(John Stott) 목사님은 자녀들이 신앙의 문제로 부모와 의견이 맞지 않을 때에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순종하라’고 충고하였습니다. 즉 부모가 믿는 것을 반대하는 경우에는 순종할 필요가 없으나(고통스럽기는 하겠지만), 세례 받는 것을 반대할 경우에는 나중에 세례 받으라고 말하였습니다. 내 신념을 관철하는 것보다 부모님의 마음과 입장을 배려하는 것이 더 좋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이렇게 우리는 부모의 권위가 절대적인 것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자녀들이 그들의 권위에 순종해야 함을 배워야 하겠습니다. 비록 불신 부모라 하더라도 부모는 그 자체로 권위를 가집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자녀들아 주 안에서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니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복된 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사철에 봄 바람 불어 잇고(559, 3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