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오전까지 비가 왔습니다. 날씨에 관한한 변화무쌍하면서도 비면 비, 눈이면 눈, 바람이면 바람, 그리고 청명하고 투명한 햇빛이면 햇빛, 모두 어정쩡한 경우가 별로 없습니다. 말그대로 화끈하기 이를 데 없는 곳이 제주도라서 이런 극과 극을 오가는 날씨 지켜보기조차 생활의 역동성을 주곤 합니다.
일요일 오후, 비가 그치면서도 먹구름을 거두어가지 못하고, 섬가까이 먹구름이 사방에 휘감으면서 그 사이를 비집고 나오는 맑은 기운이 앙징맞게 느껴집니다. 대하늘의 기운들을 앙징맞다 표현하니 좀 미안하지만 대세 속에서 자기 기운을 내보이려는 이 장면은 이번 주 예고된 내내맑음의 승리이기도 합니다.
오후 비가 그치면서 기온은 갑작스런 겨울로의 회귀모드입니다. 제주도에서 만났던 1월급의 추위가 비 그친 공간으로 훅하고 들어옵니다. 준이가 안 나간다고 해서 진이랑 태균이만 데리고 나온 산책길, 바람과 추위가 뒤섞인 바닷가는 유난히 더 시리게 느껴집니다.
준이가 없는 김에 멀지않은 곳에 맛집도 가보기로 했습니다. 맛집메뉴가 다양해서 고기를 제외하고는 준이가 받아들일 수 있는 게 별로 없으니 기회다 싶습니다. 제주민속촌에 꽤 맛있어 보이는 메밀음식점이 있어 제주민속촌과 표선해수욕장을 갔던 것입니다.
진이가 우리랑 1년 같이 살 때, 태균아빠가 춘천에서 열린 조선일보 마라톤에 참가하니 미리 펜션을 예약해서 하룻밤 자고 춘천막국수랑 닭갈비 등 신나게 먹고오곤 했는데, 그 때 진이가 막국수를 어찌나 잘 먹던지... 하긴 춘천에 있는 퇴계막국수는 제 입맛에 딱 맞는 꽤 괜찮은 막국수집이니 그 집만한 곳을 찾기는 어렵습니다.
막국수 동지 진이가 실망스럽게도 일요일이라 그런지 영업을 하지 않습니다. 한라산아래 첫마을이라고 식당이름도 멋진 이 곳은 후기담들이 꽤 괜찮아서 와보고 싶었습니다. 메밀음식을 먹을 준이와 완이가 아니기에 기회만 보고 있던 참이었는데 마침 영업을 안하니 아쉽게 되었습니다.
민속촌 방문이유가 음식점인데 걷자고 하는 것일까봐 태균이가 좀체로 내리질 않고 버팁니다. 일전에 민속촌와서 걷고 또 걷고 징하게 걸었던 기억이 새삼스럽나 봅니다. 그래도 고집을 내리고 차에서 내려 조금 산책도 하고... 오늘 음식점이 문을 열어 민속촌에 대한 개념을 바꾸었으면 좋았을 것을 ㅎㅎ
두번째 찾아간 곳은 온평리해안가 맛집이었는데 재료소진으로 영업마감되었다고 하고, 세번째 맛집 성산의 '통이 트는 집'은 손님들로 북적북적. 통태탕이 끝내준다고 했지만 생각보다 메뉴가 많습니다. 그래도 우선 통태탕을 맛보기로 하고 통태전골 큰거를 시켰는데 양이 많기는 하네요.
맛? 맛집은 맞기는 할듯한데 저녁손님이 많아서 그런지 서빙하는 분이 정신없어 보이고 살짝 양념이 덜 된 듯한 분주함으로 원래 실력이 제대로 나오지 않은 듯 한 느낌. 그래도 태균이 진이 엄청 잘 먹으니 다행입니다. 입가에 음식도 묻혀가며 동태탕먹기 삼매경인 태균.
싫컷 먹고는 숟가락 놓았는데 숟가락을 놓치못하는 진이를 태균이가 진득히 기다려주고... 진이 입맛에 너무 잘 맞는지 숟가락을 못 놓습니다. 한번은 집에서 콩나물 두부 돼지고기 두루치를 해주었더니 진이가 결국 냄비를 다 비울 때까지 잘 먹더니... 진이도 얼큰한 음식에 한 팬입니다.
다음에는 준이도 가능한 감자탕으로 해보아야 되겠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 감자탕에서 감자는 감자가 아닙니다. 돼지등뼈 사이에 있는 묘한 힘줄같은 살을 감저라고 하는데 감저가 감자로 변형되면서 우리는 감자탕에 감자가 들어가는 것으로 오해하게 된 것이랍니다.
일요일 아침 제가 정말로 큰 솥에 감자탕을 가득 끓였는데 한끼로 그것을 다 먹어치운 3명의 먹성들... 상 가득쌓은 돼지등뼈를 보니 웃음이 피식납니다. 저는 등뼈에 붙은 고기 일일이 손으로 다 발라서 수발하기 바빴거든요. 감자도 큰 거로 8-9개 삶았는데 흔적도 없습니다. 감자탕 요리는 제가 꽤 잘하는 편이죠 ㅎㅎ
진이가 온 며칠, 진이가 워낙 잘 먹으니 두 녀석이 더 경쟁적으로 먹어대는 것 같습니다. 일요일 오전부터 준이가 머리를 감싸는 행동을 하질 않습니다. 두통이 가버린 듯... 토요일 편마비처럼 고개도 제대로 돌리지 못하고 한쪽 신체 움직임에 경직이 오더니 일요일부터 헤어나는 듯 합니다. 다행입니다. 토요일 사진을 보면 한쪽으로 돌아간 고개를 펴지 못하는 모습이 뚜렷하게 보입니다.
편마비 파장에서 벗어나자 원래 준이 모습이 나옵니다. 혼잣말 작렬... 편마비 파장이냐? 혼잣말 파장이냐? 선택사양이 되어버린 듯... 잠자리 시간까지 혼잣말 작렬. 일요일 그래서 혼자있으라고 놔두었더니 훨씬 안정되어 보이긴 합니다. 사춘기란 여러가지 면에서 하나의 혹독한 관문이란 것을 요즘 준이가 적나라하게 보여줍니다.
맑아진 월요일부터는 제주도의 멋진 자연을 찾아서 나서보렵니다.
첫댓글 오늘은 즐거운 소식 가득이네요.
준이가 두통에서 영구적으로 해방되길 기원합니다.
진이는 전에 태균형님이랑 1년간이나 쌓은 정이 있군요.
먹방이 즐거운 글, 잘 읽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