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졸업한 가야초등학교는 가야에있는 가야공원입구에 있었던걸로 기억하는데
언젠가 지나던길에 찿아보았으나 찿지못하고 돌아온 적이 있다.
당시는 다라이행상 할머니 몇며이서 채소를 팔았던 곳이 큰 시장으로 변하여 소스라치게 뛰어 다니던 골목어귀들이 모두 사라져 버린것이었다.
보자기에 싼 책이라고는 다 헐어빠진 국어책 산수책 (당시는 선배들에게 물러받았음)
지우게로 지우고 쓰고 지우고 쓰고 하여 너덜거리는 공책한권과 볼펜자루에 메달려 있는
연필 한 두개 쯤, 그런보따리를 옆꾸리에차고 노땅에 박혀있는 푸른 무시를 내것이양
뽑아들고 콧노래를 부르며 꺽어돌던 두렁길, 조금내려오면 스래트처마 밑에서 거지풀빵을 굽는 곳이 있었는데 언제나 아이들이 들끌었던 곳 이였지 그 당시로는 인기순위 최고 였던걸로 기억하는데 "빵을 먹고있는 놈들 즈그 아버지는 머하는 사람일꼬" 하며 부러운 시선을 감추지 않았었다, 난 소원이 그 풀빵 한번 사 먹어보는 것이였고 많은군침을 싹힌 어느 비오는날 드디어 소원을 성취하게 되였다.(돈 출처에 대해서는 아직도 비밀에 붙여짐) 십원에 몇게였는가? 하였튼 맛있게 먹고있는데 갑자기 온몸이 벼락에 감전된 것 처럼 곳게 굳어 버리고 만 것이다.
몇 십년이 지난 지금도 난 육학년 담임생각만 하면 몸서리가 쳐진다. 한마디로 호랑이선생님 그 자체였다. 수업시간에 기침소리, 숨소리가 크다거나, 존다거나, 연필굴리는 소리가난다거나 하였다면 그날은 몇 명 죽어나갔지 특히 시험후 각 과목당 80점 미만들은 틀린 수 만큼 손바닥 체벌에 청소는 도맡아 하였고 다음날시험에 또80점 미만이되면 곱빼기로 얻어 터졋다. 매일 지옥의혈투 라고나할까 피보는날이 거의 매일 이였으닌까.
그런 담임과 눈이 마주친 것이였다.
선생님 눈에서는 33000볼트의 전류가 튀엿다. *죄송합니다 마무리는 다음에 해야겠네요*
첫댓글 내 남편의 회상록이야.....우리 신랑도 초등학교 친구들이 보고싶나봐,,
다인이 부군께선 초등 모임이 없는가 보네?
응. 굉장히 우리를 부러워한다....ㅋㅋ
아마도 그학교도 모임 같은거 하고 있을거야 다인이 너가 찿아줘라 ....우리신랑은 찾아준다고 해라해도 안하더라 그래서 내가 남편에게 던진말 초딩때 지은죄가 많은가보다 라고 했지 ㅎㅎㅎ
다인 ...다음 카페찾기에 가서 '가야 초등'만 두드리도 많이 나오네 ~~ ?회까지 같이 두드리던가~~ 16,17,20,49,55회 등등 많네~ 아님' 아이 러브 스쿨'에서 가야초등 찾으면 또 나오겠지? 해 보셩 ~~ ^^* 찾아주면 랑이 무지 기뻐 하시겠네~~
안녕^^ 즐거운 월요일 오늘도 욜심히 일하자^^
다음판이 재미 있겠네 기대해 보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