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주교 전주교구 문규현(바오로) 신부가 본당사제 생활을 마감하고 다시 새로운 평화의 길을 찾아 떠난다. 1월 23일 오전 10시 30분부터 전주교구 평화동 천주교회에서 문 신부의 은퇴미사와 송별식이 열렸다. 본당신부로서 문규현 신부가 마지막으로 집전한 이 미사는 11명의 사제와 700여 명의 신도들이 함께 봉헌했고, 문규현 신부의 지난 삶에 감사의 박수를, 앞으로의 새로운 길에 축복의 기도를 드렸다.
|
|
|
▲ 700여 명의 신도들과 내외빈이 1, 2층 성당을 채웠다. (사진/정현진 기자) |
"제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고 하신 하느님의 질문이 있습니다. 사제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묻고, 도전하고, 돌아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제 '문규현 바오로야 너 어디 있느냐?'고 다시금 물으시는, 하느님 음성을 새로이 듣습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첫 제자들처럼,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길, 희망의 길을 선택한 그들처럼, 저도 첫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예' 하며 나섭니다. 이 시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불어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 곧 하느님의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매일 새로남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
|
|
▲ 이제 “문규현 바오로야 너 어디 있느냐?”고 다시금 물으시는, 하느님 음성을 새로이 듣습니다. (사진/정현진 기자) |
마지막 인사말을 읽으면서, '이제 떠나야 할 때'라고 말하는 문 신부의 목소리가 떨렸다.
문 신부는 여러모로 부족한 자신을 사제로 부르고 귀한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하느님과 그동안 함께 지냈던 모든 이들,그리고 마지막 본당 이름이 ‘평화’임은 정말로, 아주 특별한 선물이며 덕분에 영원히 평화속에 남을 수 있게 되었다고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본당 안에 머물며 좀 더 편안하게 있고 싶은 유혹이 나이들 수록 많아졌음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떠나야 하는 시기다. 그 숱한 유혹과 염려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조용히 굴복할 때 제 자신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장애물이 될 것이기에 사제로서의 본질적 정체성은 사라지고 로만칼라로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장하고 고집하는 슬프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을까, 그것이 더 두렵다”라고 고백했다.
|
|
|
▲ 사진/정현진 기자 |
이어서 “믿는 이들이 있는 곳 어디든 교회며, 온 세상이 구원 현장이요, 복음화의 현장이다. 성당 건물과 교회질서 안에 우리자신을 한정하며 세상구원과 복음화를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너무 작고 옹졸하게 만드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다고 말하면서 신앙인들의 가슴은 세상을 향해 더욱 활짝 열려야 하며 신앙인들의 걸음은 더욱 과감하게 세상 안으로 들어가, 더불어 머물러야 한다”라고 당부했다.
문 신부는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그저 아쉬움과 부끄러움, 미안함만 가득하다. 여러모로 부족한 성품, 깊지 못한 지혜 때문에, 또 미천한 능력과 판단 때문에, 적지 않게 여러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을 것”이라면서 한없는 너그러움과 인내, 사랑으로 품으며 긴 세월 동행해준 이들에게 인사했다.
|
|
|
▲ "평화를 빕니다." 문 신부는 성당을 한 바퀴 돌며 모든 이들에게 평화의 인사를 전했다. (사진/정현진 기자) |
미사가 끝난 후, 송별식이 진행되면서 문 신부의 여정에 동반 했던 이들의 인사가 이어졌다. 용산참사 유가족인 유영숙(루시아) 씨는 “오늘 처음 평화동 성당에 와서 미사를 하는데, 좋은 일이 아니라 문 신부님의 마지막 미사라 마음이 아프다. 신부님께는 죄송한 마음 뿐이라 무엇을 말씀드릴 수 있을지 모르겠다. 항상 건강하시길, 앞으로 남은 시간 항상 즐거우시길 빈다”고 말하면서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
|
|
▲ 용산참사 유가족들이 참석했다. 송별 인사를 하는 유영숙 루시아 씨. (사진/정현진 기자) |
또 부안 본당 재임 당시 인연을 맺었던 농민 김진원씨는 신부님과의 첫 만남은 절망과 분노였다고 회상했다. “소값 폭락으로 농민들이 구청에 항의 방문을 갔을 때 신부님과 처음 만났다. 그 다음은 새만금 사업, 그리고 핵폐기장 싸움이었다. 신부님은 우리가 아쉬울 때만 찾아뵈었는데, 신부님 역시 우리가 좌절하고 있을 때, 함께하자면서 찾아 오셨다. 새만금때는 말도 안되는, 부안에서 서울까지 삼보일배를 하겠다고 찾아 오셨고, 핵폐기장 싸움에서는 앞으로 나서서 머리부터 발끝까지 소화기 가루를 뒤집어쓴 모습으로 우리에게 메시지를 주셨다. ‘이제 내가 앞장 설테니, 더 이상 좌절하지 말라'는 메시지였다”면서 문 신부의 외침과 말씀 덕분에 지금도 생명과 평화를 지키는 부안 사람들이라는 깊은 자부심을 갖고 산다고 애틋한 마음을 전했다.
|
|
|
▲ 사진/정현진 기자 |
저기 사람이 간다. 저기 한 사람이 기어 간다.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 예, 제가 지금 여기 있습니다. 절망의 서러운 눈물과 고통의 피와 땀이 절여있는 이 붉은 땅을 지금 제가 기어가고 있습니다. 저기, 저기 신부님이 자벌레처럼 기어갑니다. 하루 내내 마른 등어리 위에 떨어지는 하얀 매화꽃 털며 야윈 등은 하늘에 닿고 누런 정강이와 배는 땅에 닿아 자벌레 처럼 기어갑니다. 사람이 가로막힌 두터운 벽을 머리로 밀고 또 밀며 자벌레 처럼 기어갑니다. 검은 하늘이 무겁게 내려와 등위에 앉더니 붉은 땅이 올라와 그의 가슴을 매웁니다. 기어가는 작은 자벌레 몸속 어디 만큼에서 하늘과 땅이 만났습니다. 우리들 육신에서 흘러넘친 저 욕망의 쓰레기 더미를 자벌레 연두색 머리로 밀고 또 헤치며 시속 100킬로 짜리 아스팔트위를 천천히, 아주 천천히 기어갑니다. 하릴없는 제가 그 옆에 쪼그리고 앉아서 자벌레에게 물었습니다. 이 강팍한 땅, 하느님은 어디로 숨으셨나요. 그분은 항상 네 몸속에 계신단다. 네가 하느님이다. 네 눈에 보이는 사람들도 모두 가슴에 하느님이 계시는구나. 생명 있는 모든 것이나 생명 없는 모든 것이 다 하느님이시다. 네가 사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네 몸 속 하느님이 사람들 가슴속 하느님을 보는 것이란다. 네가 산과 강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네 몸 속 하느님이 산과 강에 깃든 하느님을 보는 것이란다. 그렇게 그이가 기어갑니다. 뜨거운 아스팔트위에 피 같은 땀 두 방울이 떨어집니다. 자벌레가 기어가고 난 후 빈자리는 폐허의 적막감이 그 위에 땀 한 방울 떨어진 자리에 민들레 한 송이가 소금꽃처럼 피었습니다. 그리고 한 방울 땀은 마중물이 되어 새로운 강물을 만듭니다. 석삼년 가뭄 메마른 들을 굽이굽이 흐르는 새로운 강물을 만듭니다. 신부님, 우리들의 신부님.
- 홍성담 화백의 송시 -
홍성담 화백의 송시에 이어, 문 신부의 삶을 담은 영상과 축복송 등이 이어졌다. '마중물 문규현'이라는 제목의 영상은 문 신부의 신학생 시절부터 오늘까지, 생명과 평화를 위해 걸었던 여정을 생생히 보여주었다. 절박하고 고통스런 순간에도 잃지 않는 한결같은 웃음은 애잔함과 희망을 함께 전했다. 생활성가 가수 김정식 씨는 “문규현, 문정현 두 신부님은 노래를 참 좋아하신다. 지난 2009년 10월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 투쟁 중 문규현 신부님이 쓰러진 후, 회복실에서도 노래를 부르시더라. 그 모습을 보면서 만든 노래가 있다”고 전하면서 노래 <짧은해>를 문 신부와 함께 불렀다.
|
|
|
▲ 갈대가 하얗게 피고 바람부는 강변에 서면, 해는 짧고 당신이 그립습니다. (사진/정현진 기자) |
송별식이 진행되는 동안, 700여 신도들과 내외빈 손님들은 함께 울고 웃으며, 문 신부를 위해 기도하는 마음을 모았다. 누구보다 평화동 본당 신도들은 매사에 마음을 다해 임했던 문 신부를 떠나보내는 아쉬움과 건강에 대한 염려로 안타까움이 크다고 입을 모았다.
문 신부는 본당사목을 은퇴한 후, 원로 사제로서 또 다른 사목을 준비 중이다. 우선 문규현 신부와 함께 하는 이야기 공간이라는 주제로 카페 <그래도 희망입니다>를 전북대 정문 건너편에 오픈한다. ‘진짜 찻집’으로 운영될 이 카페는 문 신부가 사람들과 더불어 생명평화에 대한 이야기를 해 나갈 수 있는 공간이며, 현재 활동 중인 '생명평화 마중물' 회원들의 상설 만남과 재정 강화 등을 도모하기 위한 공간으로 준비된다.
|
|
|
▲ 초등부 아이들의 율동을 지켜보는 문 신부의 눈에 사랑이 가득하다. (사진/정현진 기자) |
|
|
|
▲ 송별인사에 문 신부는 삼배(三拜)로 화답했다. (사진/정현진 기자) |
|
|
|
▲ 평화동 성당 신도들의 영적 예물을 받고 활짝 웃는 문 신부.(사진/정현진 기자) |
<문규현 신부 약력>
-1945년 음력 1월 1일, 전북 익산에서 부친 문범문(베드로)와 모친 장순례(수산나)의 4남 3녀 중 3남으로 태어난 문규현 신부는 1976년 5월 3일 천주교 전주교구 소속 신부로 사제수품을 받았다. -이후 전동, 고산, 팔마, 김제 요촌, 서학동, 부안 성당 등에서 본당사목을 하고, 1989년 천주교 아시아주교회의 인간개발위원회 사무총장, 같은 해 7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로 임수경 학생의 판문점 귀환에 동행하기 위해 방북, 8월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1998년 8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대표단과 함께 방북했다가 평양 통일대축전에서 발표한 인사말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2차 구속, 보석 가석방 -2003년 3월부터 6월까지 전국 부안 해창갯벌에서 서울까지 65일 간 ‘온 세상의 생명평화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한 삼보일배’ 수행 -2003년, 한국환경기자클럽이 선정한 ‘2003 올해의 환경인상’에 삼보일배단 수상, 천주교 서울대교구 일산성당 ‘2003년 일산천주교환경상’ 수상, 시민운동가 선정 ‘2003 최고 시민운동가’ 선정,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가 뽑은 ‘2003 올해의 인물’ 선정 -2008년 9월 4일부터 124일 간 ‘평화의 길, 생명의 길, 사람의 길을 찾아나서는 오체투지' 순례 -2009년 10월 22일 용산참사 해결을 위한 단식투쟁 중 쓰러져 의식불명, 사흘 만에 의식 회복 -2006년 8월부터 20011년 1월 25일까지 천주교 전주교구 평화동 주임신부를 마지막으로 본당 사목 은퇴, 원로 사목 시작
평화동 성당 마지막 미사 강론 [전문] |
|
고맙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저를 사제로 부르시고 이 귀한 자리까지 이끌어주신 하느님, 우리 모두의 근원이고 희망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님, 늘 새롭게 하시는 성령님, 그리고 여러분 모두에게, 진심과 마음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사제생활 35년, 그간 지나온 본당들, 신자들을 떠올려 봅니다. 전동 성당 보좌로 시작해서 고산, 팔마, 김제 요촌, 서학동, 부안...하나하나 잊지 못할 소중한 추억과 역사, 사람들을 간직한 곳들입니다.
특히 제게 마지막 본당사목의 은총을 허락하고, 일상의 기쁨과 희망을 나눠온 우리 평화동 성당 신자들, 사목회 임원들, 보좌신부님, 수녀님들께 마음 깊이 감사드립니다. 제 마지막 본당이름이 ‘평화’임은, 정말로 아주 특별한 선물입니다. 덕분에 저는 영원히 평화 속에 남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본당사제직에서 은퇴하겠다고 하니까, 신부생활 다 끝나는 줄로 이해하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벌써 그렇게 많이 늙었냐는 탄식도 있고, 물고기가 물을 떠나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는 ‘생존 걱정’도 있습니다. 나이든 신부에겐 그래도 본당 신부가 편하고 안전하지 않은가, 권력 잡고 누리던 양반이 그걸 내려놓고 또 무슨 재미로 살겠는가, 하는 얘기도 듣습니다. 그러게요. 다 맞는 말입니다. 감사하고 죄스럽게도, 저도 빠짐없이 이 모든 걸 다 누렸습니다.
그러나 본당 공동체란 사제들의 안전함과 영화를 보장해주는 곳이 아니라 성령의 도움 속에 열정과 헌신으로 하느님 나라를 일구는 이들의 신앙공동체요 영적 공동체입니다.
제게 본당사목은 언제나 제 사제생활의 중심이었습니다. 하느님께서 현존하시며, 세상 사람들의 삶이 그대로 녹아드는 생생한 생활현장이요, 집처럼 가족처럼 기쁨과 힘을 얻는 공동체였습니다. 사랑과 자비, 정의와 평화가 넘치는 세상을 함께 일궈나가며 우정과 동지애를 만들어가는 곳이었습니다. 제가 세상에 무언가 의미 있는 기여를 할 수 있었다면, 다름 아닌 우리 신자들의 정성스런 지지와 지원이 이뤄낸 것입니다.
그런 만큼 본당 안에 머물며 좀 더 편안하게 있고 싶은 유혹이, 나이들 수록 많아졌음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몸까지 성치 않아지니 더욱 그렇습니다. 그래서 바로 지금이 떠나야 하는 시기입니다. 그 숱한 유혹과 염려들,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조용히 굴복할 때 제 자신이 바로 하느님 나라의 장애물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 사제로서의 본질적 정체성은 사라지고 사제복 로만칼라로만 자신이 누구인지를 포장하고 고집하는 슬프고 초라한 모습으로 남을까, 그것이 더 두렵습니다.
제 마음의 중심에는 항상 “사람아, 너 어디 있느냐?”(창세 3,9)고 하신 하느님의 질문이 있습니다. 사제란 누구인지,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지, 제대로 살고 있는지를 묻고, 도전하고, 돌아보게 하는 질문입니다. 이제 “문규현 바오로야 너 어디 있느냐?”고 다시금 물으시는, 하느님 음성을 새로이 듣습니다.
오늘 두 번 째 독서, 사도 바오로의 가르침을 다시 새겨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이 일을 말재주로 하라는 것이 아니었으니,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바로 저를 두고 하는 말씀 같습니다. 이제 정들고 사랑하는 이 공간을 떠납니다. 그러나 믿는 이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 교회입니다. 온 세상이 구원 현장이요, 복음화의 현장입니다. 성당 건물 안에, 교회질서 안에 우리자신을 한정하며 세상구원과 복음화를 얘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너무 작고 옹졸하게 만드는 신성모독이나 다름없습니다.
세상 만물이 하느님을 통해 창조되었고, 지금도 계속 창조되고 있음을 진실로 믿는다면, 신앙인들의 가슴은 세상을 향해 더욱 활짝 열려야 하며 신앙인들의 걸음은 더욱 과감하게 세상 안으로 들어가, 더불어 머물러야 할 것입니다. 지금 세상은 우리 신앙인들의 겸손하고 따뜻한 영혼을, 정의로운 투신을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동안의 제 삶은, 정주하면서 역동성을 만들고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 침묵과 외로움의 의미를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이제부턴 자유로움 속에서 몸과 마음이 머물 자리를 찾고, 홀로 있으면서도, 사람들과 친밀하게 교감하는 방법을 배워야 합니다. 새로이 그리스도를 알고 느끼며, 사제로 사는 법을 깨우쳐가야 합니다. 상실감이 가져다주는 또 다른 선물을, 내려놓음으로써 지켜지는 것들을, 비우면서 채워짐을 지켜보겠습니다. 불안함 속에서 희망을, 불편함 속에서 평화를 누려보겠습니다.
지나온 길을 뒤돌아보니, 그저 아쉬움과 부끄러움, 미안함만 가득합니다. 세상 구원을 목표로 열심히 살다보니 결국 나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 애쓰고 있더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러모로 부족한 성품, 깊지 못한 지혜 때문에, 또 미천한 능력과 판단 때문에, 저도 적지 않게 여러 사람들에게 아픔과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저를 한없는 너그러움과 인내로, 사랑으로 품으며 긴 세월 동행해주셨음에, 다시 한 번 깊은 감사의 말씀 드립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첫 제자들이 예수님을 따라나서는 장면입니다. 단순하고 소박하게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첫 제자들처럼, 어떤 미래가 기다릴지 아무 것도 모르고, 또 알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모든 것을 뒤로 한 채 새로운 길, 희망의 길을 선택한 그들처럼, 저도 첫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예” 하며 나섭니다.
이 시간은 만남의 끝이 아니라, 새로운 만남의 시작입니다. 앞으로도 계속해서 더불어 생명의 길, 평화의 길, 사람의 길, 곧 하느님의 길 위에서 만날 수 있기를, 매일 새로남을 위해, 함께 기도할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 문규현 신부 드림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