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재(세종자치시) - 금병산(382m) - 부강 둘러보기>
추운 겨울이 지나고 따뜻한 봄날이 오기를 얼마나 기다렸을까?
입춘(立春),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 양력 2월 4일 무렵이다.
오늘이 바로 입춘날인 2월 4일, 우리는 아침 10시에 반석역에서 만나 바람재로 바람같이 달려가본다.
바람재 정상에는 팔각정자가 운치 있게 있고, 그 옆에 주차를 한다. 금병산까지는 1.7km란다. 계단까지 만들어 놓은 산책길인지 등산로인지를 따라간다. 참나무잎으로 낙엽 포장된 산길, 오솔길을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천천히 올라 간다. 미세먼지 극성부리지 않는 좋은 아침 공기를 마시면서,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산길을 걸어간다.
산길은 나름대로 다듬어 경사지에는 계단도 있고, 중간중간에 표지판과 비상시 안내 지점도 있고, 쉬어가는 정자도 있다. 산책로에 쏟아부은 정성에 찬탄을 하면서 나목으로 된 숲길을 걸어간다. 이따금씩 나타나는 바위틈을 벌리고 씩씩하게 뻗어오른 산벚나무의 무서운 생명력을 보며, 소나무를 반기면서 옥당봉(372여 미터)에 이른다. 북쪽 산등성에서 올라가던 산길에서 비로소 동서로 뻗은 금병산 주능선에 올라선 것이다.
서에서 동으로 길게 쭉뻗은 금병산 줄기, 서쪽으로는 계룡산이 우뚝 솟아 있고, 동쪽 끝자락에는 적오산성이 연무 속에 아스라히 보인다. 병풍처럼 둘러쳐진 산줄기, 그래서 이름도 금병산이라 했던가. 마침 수운교 측에서 세운 금병산(382m) 소개비에는 이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에 이 산에다 기도드렸다는 얘기에, 비단으로 병풍을 둘러쳐준다는 전설을 담은 내용이 있다. 그러구보니 계룡산 신도안에는 궁궐터니 종로터니 하는 지명에다가 그 당시 시작했던 초석이 아직도 남아있고 보면, 이태조가 올랐다는 왕가봉이 국립대전 현충원 앞 동쪽 산에 있음도 생각해보면 그럴듯하게도 들린다. 믿거나 말거나.
금병산 정상은 동서로 이어지는 밋밋한 산줄기인데다가 산봉우리들이 고만고만해서 얼른 잘 식별이 되지 않는다. 최고봉 정상이라는 곳에서 자운대 너어로 보이는 대전시 주변 산들을 둘러본다. 식장산 줄기, 계족산 줄기, 보문산 줄기, 수통골 도덕봉으로해서 갑하산 신선봉을 거쳐 우산봉으로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넓은 대전 분지.
그 일대는 한반도의 태극의 중심지라는 믿음을 갖고 근현대를 살아온 종교들의 중심지가 되어있는 곳이다.
계룡산과 정감록의 정도령 신봉자들, 산태극 수태극의 조화와 새로운 하원갑 세상이 올 것이라는 개벽사상을 굳게 믿는 증산교 본부가 대전에 있고, 수운교 천단도 있고, 천진교도 주변에 있다. 금병산 북서쪽 아래 바람재 가는 도중에는 금강대도 총본도 있다.
금병산 정상에서 우리 전통 신앙의 근저에 흐르는 민족 신앙의 모습을 잠시 그려본다. 조선말기의 고난. 일제 억압, 광복, 한국동란 등 임란과 병자호란 이라는 양대 난후의 이어지는 살기 힘든 민초들의 삶에 유일한 희망이 되었을 정감록, 그것은 어제의 이야기로 끝난 옛이야기가 아니라 8.15 해방과 육이오 한국전쟁까지 면면하게 이어져온 현실이 아닌가! 그 실상을 직접 확인할 수있는 대전, 유난히도 많은 이북 피난민들이 하필이면 대전으로 와서 정착한 까닭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개성 만두니 또는 무슨 면옥이니, 숯골 냉면처럼 북한 음식이 거저 유명해진 것이 아니다. 계룡시 금암동과 무도리의 직조공장, 숯골 자운대 터에도 한때는 직조공장이 많았었다는 이야기. 계족산성 아래의 천개동 사연, 부강 노고산성 안의 이북 도민들 묘역 등등.....
금병산 정상에서 간식과 차로 목을 축이고, 사방 조망으로 눈가심을 한 후 에 조곤조곤 내려서 바람재로 되돌아 온다. 이왕 나선 길이니 부강가서 옛날 짜장면집을 찾아 점심을 해결할 요량으로 바람재 북쪽 길로 내려선다. 가는 길은 복잡한데 산지기는 잘도 안다. 다리 지나서 우측으로, 좌측으로 하면서 길라잡이 노릇을 한다. 놀랄 정도이다. 영대리의 폐교된 학교도 지나고, 6.25 때는 많은 미군 병사들이 금강변 전투에서 전사했다는 동네도 지나서, 이제 세종시 과학단지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인 신동과학단지 공사장을 뚫고 어떻게 어떻게 부강 쪽으로 힘들게 찾아나간다.
다다른 곳은 부용정, 금강이 활처럼 휘어져 흘러가는 곳에 지은 정자다. 새천년에 십리벚꽃길이라는 이름의 길 옆에 지은 정자, 정자 바로 아래 금강에서는 강오리가 한가롭게 둘씩 셋씩 짝지어 놀고 있다. 오른쪽 푸른 강물 위로는 소문산성의 산줄기가 산그림자를 강물 속에 반쯤이나 드리우고 있다. 강 건너에는 부강 공단이 있고 굴뚝에서는 연기인지 수증기인지 하얀 것이 하늘로 올라가고 있다. 봄날 벚꽃철이면 더한 층 볼만할 거리에 부용정. 잠시 들러 본다. 희떠운 옛시절 이야기도 들으면서....
낭만이 있는 거리를 뒤로 하고 요리조리해서 위태롭게 보이는 철판다리 위로 금강을 가로 질러서 부강으로 들어선다. 옛날 금강 수운의 내륙 최종점인 부강, 그래서 멋드러진 연꽃의 의미보다는 돈많은 부자의 동네 부강으로의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소금이며 젓갈이며 어염, 내륙의 농산물을 실은 배가 드나들고 상인들이 붐비던 곳, 그래서 교통의 요지인지라 산성도 많다. 강 양안에 즐펀한 산성들.... 고구려 산성, 백제 산성, 신라 산성...
부강에서 옛날 짜장면집 부강루를 더듬더듬 힘들게 찾아가서 맛을 본다. 옆에 이웃해있는 부강성당도 보고, 홍판서 고택을 찾아나선다. 부자 동네 답게 옛판서 고택, 생각보다 오래지는 않고, 그렇게 품위있는 고택은 아니다. 연조도 짧은 편, 1866년에 지은 세도가 홍국영 동생인 홍순영네 집이란다. 조선말기 외척과 세도가 판치던 냄새(?) 나던 시절에 시골에 별채로 지은 집. 사대부라면 한양에 집이 있고. 시골에는 고향 집이 있게 마련인. 이 집은 그냥 시골 논밭 관리하러 내려올 때 사용할 목적으로 지은 별채인 것 같다. 그런대로 반가의 틀은 갖추고 있지만 많이 변형되어있다. 집안으로 들어서면서 보니까, 대문이 보통은 동쪽으로 나있는 법인데, 어쩐일인지 서쪽으로 나있어서 이상한 감이 들었다. 안채에 들어서서 차 한잔 대접받으면서 이야기 나누다 보니 옛날 부강면장이던 이규상씨임을 알게되었다. 5년도 더 전의 일, 이 일대 산성 답사 때 일이다. 자료를 구하러 면사무소에 들렸을 때 친절하게 대해 주었던 그분이다. 더 젊어져서 못 알아봤다고 눙치면서 옛이야기를 나누었다. 지금은 퇴직해서 고택 관리자로 있었다. 대문을 나서면서 서쪽으로 대문이 난 이유가 의심스러워 물었더니 본래 동쪽으로 났었던 것이 옮겨져서 그렇단다. 그러고 보니 집이 원래 모습에서 많이 변형된 형태로 남아있다. 좁은 안뜰에는 향나무 한 그루와 우물이 있었다.
내실 마루 위 액자에는 "무량수"라는 글씨가 한자로 쓰여있다. 오래오래 살고 싶은 인간의 욕망, 100세 시대를 무색하도록 무량하게 장수하겠다는 욕망은 어쩌면 인간의 솔직한 면인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이러니컬하게도 원 집주인은 바뀌어 지금은 성씨가 다른 사람이 사서 쓰고 있다니 인생 부귀영화가 다 헛되고 헛되도다.
판서 고택을 보고 부강약수터를 찾아간다. 부강과 청주로 통하는 길옆에 있는 부강 약수터. 예전의 명성은 다 어디 가고 약수터만 남아 녹슨 쇳물같은 물만 여전히 흘러내리고 있었다. 옆에 있는 프라스틱 바가지로 떠서 마셔보니 사이다 맛에 쇳물 냄새가 여전했다. 80년대까지도 번창했던 이곳이 많이도 변해서 이제는 퇴락해있었다.
주차장에 걸린 현수막에는 산신제와 시산제가 정월대보름에 노고산 정상에서 열린다고 쓰여있다
이곳이 부강으로 들어가는 동네 어구이다. 장승이라도 있음직한 곳, 아니면 노거수라도 있어서 마을 동제라도 올릴만한 곳, 그 대신 길손의 목을 축여주는 약수 부강 약수가 있었다. 그 길목을 지키는 노고산성. 그리고 산신제가 어울린다는 생각을 해보면서, 합강에 있는 합호서원을 향해 나선다. 그러나 이번에도 길이 많이 변하여 제대로 찾지 못하고 헤매다가는 포기하고 나중을 기약하면서 대전 집으로 향했다. 세종시가 이렇게 변해가고 있음을 실감한 한나절 길이었다. 멀리 원수산과 전월산을 뒤로 하고 나성이 있는 금남교를 건너서 일로 남쪽으로 달렸다. 안산산성(덕진산성)이 있는 우산봉 너머로는 계룡산이 우뚝하다. 해는 늬엿뉘엿 저물어 가는데 나릿재라는 이름의 나성 앞으로 금강은 예나 지금이나 유유하게 흘러가고 있다.
-바람재 정상 -
- 옥당봉 뭇미쳐 있는 정자 앞에서 바라본 부강쪽 개발 현장들 -
-금병산 정상에 세워져 있는 금병산 소개비 - (*수운교 교단측에서 건립한 것임)
-바위틈을 뚫고 뻗어나오 산벚나무의 생명력 - 곳곳에서 눈에 뜨인다.
-금병산 정상에서 동쪽으로 적오산성 쪽 바라보기-
- 가까이 잡아본 적오산성 - (뒤로 희미하게 계족산성 줄기가 남북으로 뻗어있는 것이 보인다.)
- 금병산 정상에서 -
- 금병산 정상에서 : 남쪽으로 자운대, 그 너머로 대전 시가지가 연무에 가려져 있다.-
- 부강 가는 길 : 금강변에 있는 부용정 -
-부용정에서 남쪽으로 바라본 소문산성 줄기 - 금강은 소문산성 아래로 굽이쳐 돌아흐른다 - 연결다리 공사 한창.
-부강 성당, 고목나무에 매어 놓은 그네가 재미있다. -
- 부강성당 사무소: 아마도 안채가 본래의 공소 였을 것-
- 홍판서 고택 입구 -
- 홍판서댁 안방에서 이규상 전 부강면장과 다담 -
-무량수 액자 -
-부강약수 -
-색깔은 녹슨 쇳물색인데 맛은 사이다맛이다.-
-노고봉 정상에서 산신제와 시산제가 열린다는 현수막-
( "노고"라는 명칭은 "할미"의 한자 훈역.) 정월 대보름날 풍속. 산신제 지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