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과 강을 보기위해 길을 나서는 오랜만의 외출이었다.
산이 있는 곳에 강과 하천이 흐르고 배산임수처럼 마을이 자리하여 가슴에 와 닿는 곳,
그곳 인제의 내린천을 찾아 나섰다.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버스는 춘천을 거쳐 깊디 깊은 설악의 산속을 향해 들어선다.
강원도 인제는 한계령을 넘기 전에 숨을 고르기 위해 머무는 베이스켐프처럼
산골 읍 소재지에 작은 평야가 자리하여 사람들이 모여들어 소도시를 이루는 곳이다.
‘인제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바로 원통이 지척에 있는
이 지역은 군부대가 많이 자리한 곳으로 자대 배치를 받아 가는 신병이
이곳을 지나면서 한숨지었다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6-70년대에는
완전히 바깥세상과 단절된 산간벽지와 다름없는 깊은 산중이었다.
인제터미널에서 현리 행 버스를 기다리다가 소재지 구경을 나섰다.
중심가에 들어서니 마침 오늘이 장날이었다.
이른 아침 시간이라 시장 한편 길 따라 노점에서는 아저씨가 전을 벌이고
두툼한 겨울옷과 바지들을 행거에 걸고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다.
그 옆 길 바닥에는 아주머니가 어떻게 가지고 나왔는지 산간지역 농사에 필요한 호미,
쇠스랑, 도끼, 낫과 두더지 포획 틀 등 쇠붙이 기구들을 가지런히 펼쳐놓고 진열에 한창이다.
한참동안 시장구경을 하며 돌아다니다가 농산물 전을 펼쳐놓은 주인아주머니에게
아내가 땅콩을 만지작거리며 물어본다.
“이 땅콩은 어디서 나온 것이다요?”
“이것은 옆 마을에서 농사지어 온 것인디요. 우리 농산물이지라.”
그런데 그 아주머니 왈 아내에게 “고향이 남쪽 같은디. 혹시 그쪽 아니요?”
이쯤 되니 벌써 마음이 통해 고향 얘기며 어찌하여 강원도 인제까지
오게 되었는지 솔솔 이야기를 꺼내 놓는다.
자기는 열아홉에 멋모르고 이곳으로 시집을 와서 군인 남편과 정붙여 살았는데
70 가까이 살다보니 강원도 사람이 다되었다 한다.
마수걸이라해서 땅콩 한 됫박을 사주었다.
첫 손님 흥정이 깨지면 종일 장사가 안 된다고 하는데 안 사줄 수가 없다.
옆자리에서는 다른 아주머니가 숯불에 김을 굽고 있다.
자기 것도 아니면서 선뜻 구운 김 한 장을 집어 우리에게 내민다.
우리는 맛있게 김을 맛보았다. 시골 장은 역시 포근하고 이웃처럼 인정이 서려있는 곳이다.
홍천과 인재를 가로지르는 그림 같은 계곡 70여 킬로가 바로 내린천이다.
인제 소재지에서 1킬로쯤 가면 인북천과 내린천을 만나게 되는데 우리는 내린천으로 방향을 잡았다.
내린천은 소양강의 지류 중 최상류로 홍천군 내면의 오대산과 계방산 계곡에서 발원되었다.
이 천은 기린면 현리에 이르면 가칠봉과 방태산 계곡에서 발원되어온 진동계곡, 방태천(방동천)이
합류하게 된다. 그리고 인제읍 합강리에 서인북천 물과 합수하는 곳까지가 내린천을 이룬다.
맑은 물과 풍부한 수량 수려한 계곡이 다양한 난이도를 갖춘 급류코스를 갖추고 있어 동강,
한탄강과 함께 우리나라 3대 레프팅 명소로 꼽힌 곳이기도 하다.
최근에 낚시와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내린천은 계류의 폭이 좁고 유속이 빨라 레프팅의 재미가 쏠쏠하다.
버스는 내린천 하류에서 상류를 향해 산속을 헤집고 구불구불 들어가고 있다.
기사님에게 내려줄 것을 부탁했다. 여기서부터 걸어볼 작정이다.
내린천의 특징은 물이 남쪽에서 북쪽으로 흐르고 있고 "내린천"이란 이름은
홍천군 내면의 '내(內)'자와 인제군 기린면의 '린'자를 합쳐 내린천이라 이름 붙였다고 한다.
내린천은 전국최초로 모험관광지로 조성되어 래프팅,
산악자전거, 번지점프, 패러글라이딩, 낚시, 산악인 등 많은 레져 동호인들이 몰리고 있다.
병풍같은 기암괴석과 은빛 백사장, 자갈밭 위로 물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맑은 물이 계곡을 따라 신비롭게 조화를 이루고 있어 보기만 해도 상쾌해진다.
내린천 상류를 향해 2시간쯤 들어가는 동안 간혹 지나가는
차량 외엔 둘러싸인 산과 하나가되어 오르막을 걷다보니 눈앞에 그리 높지 않은 고개가 나타난다.
고개 마루에는 장수터 쉼터란 표지판이 보였다.
이번 여름 계속되는 비로인해 이곳도 피해가 컸는가 보다.
산을 감고 도는 길가에서는 무너진 산비탈에 보강공사를 하느라
설치대를 세워놓고 위태롭게 매달려 인부들이 일하고 군데군데 도로를 정비하느라 바쁜 모습이다.
하지만 내가 걷고 있는 바로 옆으로는 아름다운 내린천이 장관을 이루며 조용히 흐르고 있다.
산과 산 사이에 한가로운 길을 따라 그저 하천을 벗삼아
걷는 즐거움은 말로써 다 표현 할 수 없다. 그저 느낄 뿐이다.
내린천 레프팅은 이곳 쉼터에서부터 시작된다.
여름철 성수기에는 여기에서 아래쪽 고사리 마을 까지 약 4-5킬로 튜브를 타고 내려간다.
쉼터 길 건너 산속에는 ‘모험 레포츠 연수원’이 있다.
레포츠 시설을 살펴보면 내린천 따라 케이블카처럼 공중에 케이블을 설치해 놓고
한사람씩 케이블에 매달려 빠르게 내려오도록 꾸며 해놓았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레포츠를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도 보인다.
이곳은 그냥 쉼터가 아니라 여행자를 위해 꾸며놓은 듯한 공원과 함께
내린천을 배경으로 수변무대처럼 공연을 할 수 있도록 무대와 식당과
산새가 어울려 조화롭게 분위기를 장식해 놓았다.
석양 무렵이 되어 현리에 도착했다. 아침에 우리를 내려주었던 마을버스 기사를 정류장에서 다시 만났다.
반가와서 인사를 건넸다.
“기사님. 고사리에서 우리를 내려주었지요? 종일걸어 방금 이곳에 도착했소.” 하였더니 깜짝 놀란다.
쉽게 걸을 수 없는 거리라는 표정이다.
오랜만에 내린천을 실컷 구경하고 온종일 걸었으니 다리와 종아리가 당겨온다.
여기서 방태산 삼림욕장이 또한 먼 거리는 아니다.
내린천의 발원지를 향해 훑어본다면 이 지역의 아름다움을 다시 느낄 좋을 기회일 것이다.
짧은 겨울해이지만 날씨가 포근하여 땀이 나지 않아서 걷기에 좋았다.
유리알처럼 맑은 물과 푸르스름한 하늘이 더욱 투명하게 보인다.
- 길동산장 ju -
첫댓글
‘인제 가면 언제 오나 원통해서 못 살겠네!’ 가 지금은 '인제 가면 좋을시고, 원통에서 살고 싶네!'로 바뀌었다면서요. 동문 카페로 옮겨갑니다.
나는 그렇게 바뀐줄 몰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