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금병매 (141) *경사(慶事) 12
백지 사령서라는 특전을 황제는 공로가 있는 중신들에게 그때그때 내려주고 있었다. 공로가 없었다하더라도 마음이 내키면 언제든 선심을 썼다.
그것으로 말하자면 충신들의 머리를 쓰다듬고 등을 도닥거려서 자기에게 충의(忠義)를 다하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이었다.
황제의 일종의 용인술(用人術)이라고 할 수 있었다.
황제가 양태사에게 임명과 동시에 그 특전을 내려 준 것은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반역죄로 몰려 옥에 갇히기까지 한 인물이었다.
그 죄목이 벗겨지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그 일로 해서 마음이 상해 있을 것 같아서 위로해 주고 앞으로의 충성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양태사는 특전으로 받은 그 석장의 백지 사령서 가운데 한 장에다가 서슴없이 서문경에게 내리는 관아 명칭과 직위, 그리고 성명을 썼던 것이다.
중신들은 황제로부터 그 백지 사령서를 받게 되면 돈을 받고 말하자면 감투를 팔기 일쑤였다. 지방의 부호들 가운데 벼슬 욕심이 있는 사람은 금은보화를 싣고 와서 그 감투를 손에 넣으려고 줄을 대고 다녔다.
감투를 사고파는 일은 공공연한 비밀이었고 매관매직(賣官賣職)이라는 망국적 풍조를 뒤에서 황제가 부추기고 있는 격이었다.
그런 세상이었으니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할 수밖에 없었고 크고 작은 반란이 끊이질 않았으며 도처에 도둑떼가 들끓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서문경에게 내려진 감투가 비록 부전옥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대단한 자리였다. 관아 명칭이 산동으로 되어 있는 것은 소재지는 청하 성내지만, 이웃 양곡현을 비롯한 몇 개의 현을 관할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제형소란 죄인을 다스리는 업무를 수행하는 기관이었다.
그러니까 제형소의 책임자인 전옥(典獄)은 그 지위가 현지사보다 한층 위였고 부전옥이 서열상으로 지사와 동격이었다.
위세는 어쩌면 지사보다 월등히 더 등등하다고 할 수 있었다.
죄인의 생살여탈권(生殺與奪權)을 손에 쥐고 있는 셈이니 말이다.
그런 위세 등등한 감투를 쓰게 된 서문경은 하늘에 날아오르기라도 할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제는 세상에 부러울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재물복과 여자복, 그리고 얼마 전에는 득남까지 했는데 이번에는 큼직한 감투까지 썼으니 말이다.
연초에 역술가에서 일년 신수를 봤을 때 정월부터 삼월 사이에 두 가지 큰 경사가 있다더니 희한하게 들어맞은 셈이었다.
산동제형소의 하(夏)전옥은 평소에 서문경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서문경의 선물을 수없이 받았고, 뇌물을 받고서 그의 청을 들어준 일도 적지 않았다.
그런데 별안간 서문경이 부전옥으로 부임하게되자, 하전옥은 꽤나 당혹스러웠다. 부호이기는 하지만, 관직에 전혀 경험이 없는 사람이 일약 부전옥이 되어 자기 밑에 들어왔기 때문이기도 했고
또 안하무인격(眼下無人格)으로 놀아나는 반건달패 같은 그의 사람됨을 알고 있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것보다도 그에게 감투를 씌어준 사람이 다름아닌 조정의 양태사였기 때문이다.
나라의 병권(兵權)을 한 손에 쥐고 흔드는 양태사의 권력은 대단했다. 그런 분을 배경으로 가진 사람이 바로 자기 다음 자리에 와서 앉았으니 마음이 평온할 리가 없었다.
자기 아랫자리에 오히려 상전이 와서 앉아있는 것 같아 거북하고 부담스러웠다. 마치 눈아래에 갑작스레 혹이 하나 불거져나온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
그러나 하전옥은 겉으로는 전혀 그런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
오히려 배경이 거창한 사람이 들어와서 매우 마음 든든하다는 그런 태도였다.
그를 대할 때면 언제나 미소를 잊지 않았고 그의 의견이면 뭐든 거절하는 일이 없었다. 흡사 자기가 부전옥이고, 서문경이 전옥인 것처럼 오십줄에 들어선 사람이 스무살이나 아래인 젊은이에게 때로는 드러내놓고 아첨을 하기도 했다.
관가의 물을 삼십여년이나 먹은 사람의 노회(老獪)한 처신인 셈이었다.
그러니 서문경이 더욱 우쭐해질 수밖에 없었다.
등청(登廳)을 해서나 집에서나 이제 서문경의 콧대는 더없이 높기만 했다.
집에서 하인이나 하녀를 부를때
“여봐라 아무개 이리 오너라” 하는 소리도
그전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어딘지 모르게 위엄이 서려있고 거드름이 내비치기도 했다.
하인이나 하녀들이 대답하는 소리도 그전과는 달랐다.
그전에는 그저 “예”였는데, 이제는 길게 “예이-”하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주인어른일 뿐 아니라 부전옥 나리이기 때문이었다.
그 “예이-” 하고 대답하는 소리는 서문경을 더욱 기분 좋게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면 절로 집안에서도 명실공히 나리가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뿌듯하게 가슴에 안겨오는 것이었다.
벼슬이라는 것이 그렇게 기분 좋은 것이라는 사실을 안 서문경은 진작 좀 돈을 들여서라도 감투를 쓸걸, 싶기도 했다.
재물이 가져다주는 충족감이나 여자들이 안겨주는 쾌감과는 또 다른 묘한 성취감(成就感)과 만족감이 거기에 있었던 것이다.
콧대가 높아진 것은 비단 서문경만이 아니었다.
정실인 오월랑의 콧대도 그전보다 현저히 높아졌다고 할 수 있었다.
남편이 제형소의 부전옥이 되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다.
부전옥은 오품(五品)에 해당되는 관직으로, 그 부인에게는 명부(命婦)라는 지위가 주어졌다.
바깥 출입을 할 때는 칠향거(七香車)라는 수레에 몸을 싣고 다녔다. 칠향거를 타고 거리를 지날때면 누구나 고관이 부인이라는 것을 알고 길을 비켰고, 부러운 눈길로들 바라보았다.
청하현에 칠향거를 타고 다니는 부인이 세사람 있었다.
품계(品階)가 가장 높은 제형소 전옥의 부인과 그다음 품계인 지사와 부전옥의 부인들이었다.
그 세 부인 가운데 한사람이 되었으니,
오월랑은 절로 콧대가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부호의 아내라는 지위만으로는 결코 맛볼수 없는, 어깨가 으쓱해지는 그런 흐뭇함을 만끽하며 그녀는 이래서 지체 있는 여자들이 모두 남편이 큰 감투 쓰기를 바라는구나 하고 혼자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다.
비단 오월랑뿐 아니라,
다른 부인들 역시 그전보다 한결 우쭐해졌다.
비록 정실인 오월랑처럼 명부칭호는 받지 못했고,
칠향거를 타는 처지는 못되었지만, 부전옥 나리의 소실들이니 말이다.
남편이 죄인을 다스리는 제형소의 두 번째 우두머리이고 보니, 자기네 일가친척은 물론이고, 고향 사람들, 그리고 친구의 친지들이 곧잘 청을 넣으러 찾아오게 마련이었다.
그럴때면 그녀들은 마치 자기네가 무슨 죄인들의 생살여탈권이라도 손아귀에 쥐고 있는 것처럼 절로 우쭐해지며 콧대가 높아지는 것이었다.
그냥 부호의 소실일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대우를 받게된 셈이어서 그녀들 역시 감투라는 것이 과연 좋은 것이로구나 하고 무척 흐뭇해하고 있었다.
감투에 절로 따르게 마련인 것은 재물이었다.
서문경이 부전옥이 된 뒤로 찾아오는 방문객이 전보다 월등히 늘었고, 누구나 맨손으로 찾아오는 법이 없었다.
금전을 비롯한 갖가지 재물을 가지고 와서 나리 나리 하면서 굽실거렸다. 그것은 선물이기도 했고, 뇌물인 경우도 허다했다. 선물인지 뇌물인지 잘 분간이 안 되는 알쏭달쏭한 것도 많았다.
재물에 남달리 욕심이 많은 서문경인지라, 그것이 어떤 성격의 것이든 주저 없이 받았다. 그러니까 서문경의 금고는 날로 더 배가 불러가는 것이었다.
내방객이 많으니 절로 술자리도 빈번했다.
기녀들을 불러다가 가무를 즐기며 흥청거리는 날도 적지 않았다.
부(富)에다가 권력까지 갖추었으니,
서문가의 가운(家運)이 바야흐로 만개(滿開)한 셈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