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봉애산에서 남동쪽 조망, 멀리 가운데는 구재봉(767.6m)
걷는다는 것은 혼자 앞으로 나아간다는 말이 아니다. 걷는 일이 유아독존을 확인하는 데
그친다면 의미가 없다. 우리가 발걸음을 떼는 순간, 이 세계는 우리의 걷기에 동참한다.
풍경은 우리가 떠나온 곳이 궁금해 천천히 뒤로 지나간다.
―― 안도현, 『그런 일』
▶ 산행일시 : 2016년 6월 11일(토), 흐림, 안개
▶ 산행인원 : 21명
▶ 산행코스 : 안한수내→봉애산,왕시리봉,느진목재,문바위등,질등,질매재,왕실봉,문수대,
매막등,1095m봉,청계암→화엄사 주차장
▶ 산행거리 : GPS 거리 18.6km
▶ 산행시간 : 13시간 17분
▶ 교 통 편 : 25인승 버스 대절
▶ 구간별 시간(산의 표고는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 따름)
00 : 00 - 동서울터미널 출발
03 : 50 ~ 04 : 00 - 하동군 토지면 송정리 안한수내, 산행준비, 산행시작
04 : 45 - 주릉
05 : 06 - 봉애산(烽愛山, 611m), 무인산불감시시스템, 무덤
06 : 00 - 816m 고지, 아침요기
07 : 00 - 1,092m 고지, 통천문(출산바위)
07 : 35 - 왕시리봉(1,240.2m), 무덤
08 : 56 - 느진목재, ┫자 갈림길 안부
09 : 24 - 1,150m봉
10 : 05 - 문바우등(1,196.0m)
10 : 47 - 질등(1,147.4m)
11 : 14 ~ 11 : 40 - 질매재, 점심
12 : 07 - 왕실봉(1,263.2m)
12 : 26 - ┣자 갈림길, 오른쪽은 돼지령 가는 길
13 : 10 - 문수대
14 : 25 - 골짜기
14 : 50 - 매막등(1,197.3m) 아래 1,150m 고지
15 : 35 - 1,095m봉, Y자 능선 분기, 왼쪽은 형제봉 쪽으로 감
16 : 44 - 청계암(聽溪庵) 아래 도로
17 : 17 - 화엄사 주차장, 산행종료
17 : 33 ~ 19 : 20 - 화엄사 입구 식당가, 모텔 샤워, 저녁
22 : 52 - 동서울 강변역, 해산
1. 문수대 암자에서
2. 노고단 남릉 내리면서 바라본 문바위등과 왕시리봉(오른쪽)
▶ 봉애산(烽愛山, 611m)
산행인원 21명. 두메 님 카운티 버스는 작고, 대형버스는 너무 크다.
중국산 선롱(申龍, Sunlong) 25인승 버스가 적당하다. 차 뒤의 트렁크가 널찍하여 배낭을
넣고 간다. 다만, 에어컨을 켜고 달리는데 추워서인지 모두 냉풍배출구를 닫아놓아 앞쪽
차문 위에 있는 (닫을 수 없는) 고정 배출구에서 냉풍이 태풍처럼 몰아치는 바람에 나를
포함한 앞좌석 몇 명은 달달 떨어야 했다.
정확히 자정에 동서울을 출발한다. 휴게소 한번 들리고 들머리인 안한수내로 직행한다. 대체
무엇을 먹고 살까 싶게 하늘이 손바닥만큼 열린 깊고 깊은 산골짜기 마을이다. 길이 좁아 버
스를 돌려서 나올 수가 있으려나 우려하며 (돌릴 데도 마땅하지 않고) 들어간다. 널찍한 동
구 광장이 나온다. 안한수내(‘內寒水川’일 것 같다) 마을 포럼(forum)이다.
갈 길이 멀어 여느 때의 차내 계속 취침을 오늘은 생략하고 바로 산행을 시작한다. 내한교 건
너 마을 고샅길을 오른다. 주민들 안면에 방해될까봐 발소리 말소리 숨소리 죽이며 살금살금
가는데 담장 너머 귀 밝은 개 한 마리가 우리의 정을 모르고 짖어댄다. 밤중 고적한 마을에
개 짖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산기슭 아래 집들로 번번이 발길이 막히고 마른 너덜 골짜
기를 더듬어 오른다.
향도는 인간 내비게이션 선바위 님이다. 산속 사면 빙 둘러 벌레잡이 유인등을 켜놓았다. 멀
리서 보면 집 마당 불빛인줄 알고 미리 비켜가기도 했다. 너덜지대 지나 두릅나무 야생 재배
지를 오른다. 후텁지근한 날씨다. 바람 한 점이 없다. 새벽부터 비 오듯이 땀을 흘린다. 바지
자락이 땀에 젖어 휘감기고 걷기 거북하다. 20분 남짓 기어올라 지능선 잡아 잠시 멈춰 가쁜
숨을 돌린다.
길은 있는 듯 없는 듯 헤드램프 닿는 곳이 다 길로 보인다. 잡목은 어둠을 틈타 배낭을 잡아
챈다. 하늘에 별 하나 보이지 않아 오늘 날씨가 그리 좋지 않을 것을 예감한다. 뭇 새들이 아
침을 견인한다. 그 재잘거림에 동녘 여명이 밝아온다. 왕시리봉 주릉. 길 좋다. 어디 쉬운 산
이 있을까? 봉애산이 첨봉으로 보인다.
봉애산(烽愛山). 정상에는 무덤 한 기가 넓게 자리 잡았고 그 옆에 철조망 두른 무인산불감
시시스템과 전망탑이 있다. 섬진강 주변을 전망하려면 수직 철사다리 타고 전망탑에 올라야
하는데 나는 겁도 났지만 광량 부족으로 신통한 사진이 나올 것 같지 않아 오르다 말았고 담
력이 센 스틸영 님만 올랐다.
봉애산(烽愛山). 봉화 ‘烽’자에 왜 사랑 ‘愛’자를 붙였을까? 봉화산이 변성된 것으로 보인다.
2008.8.7.자 서울신문의 ‘지리산 산마을 이야기’ 연재기사 중 일부다.
“부산에서 봉화를 올리면 이곳을 거쳐 서울까지 소식이 닿았다 해서 마을 주민들은 봉화산이
라고 부른다. 아직도 축대 흔적이 남은 봉애산에는 불을 피웠던 옛 기억 대신 산불을 감시하
는 무인 감시탑이 들어서 있다. 왕시루봉은 2017년까지 출입통제로 묶여 있어 공개적인 산
행은 할 수 없다.”
3. 봉애산에서 남동쪽 조망, 멀리 왼쪽은 구재봉(767.6m)
4. 안개 속으로
5. 안개 자욱한 숲속
6. 왕시리봉 오르기 직전 통천문(출산바위?)이 있는 오르막이 주춤한 산죽 밭에서 휴식
▶ 왕시리봉(1,240.2m)
봉애산 내리는 길도 오르는 길처럼 아주 가파르다. 두 피치를 뚝뚝 떨어져 내린다. 안부 바닥
친 반동을 살려 긴 오르막에 달라붙는다. 능선에 이는 바람은 미약하여 우리의 거친 숨만 못
한다. 비지땀 쏟는다. 울창한 숲속 길이라 어차피 고개 들어 볼 것이 없고 안개가 엄습한다.
그저 걷는다. 안개 속 풍경도 지리산에서는 다를 것.
816m 고지. 왼쪽 사면으로 우회하는 길이 있어 냉큼 따른다. 선두가 816m 고지 평평한 초원
에 자리 잡았다. 아침 요기한다. 새벽부터 땀을 너무 많이 흘린 탓으로 입맛이 쓰디쓰다. 입
산주 탁주 한 잔에 머리가 핑 돈다. 두루 님 식혜만 거푸 들이킨다. 산죽이 출몰한다. 개화병
(開花病)에 걸려 죽은 산죽이다. 죽은 산죽은 대만 남아 있어 눈 등에 찔릴 위험이 크다.
왕시리봉 정상을 300m쯤 남겨두고 점호 겸 휴식한다. 통천문(출산바위라고도 한다) 앞 오
르막이 주춤한 산죽 밭이다. 안개 속을 간다. 오리무중이다. 조망 좋을 바위가 나와도 만천만
지한 안개라 막막하다. 왕시리봉 정상은 어디인가? 사방 펑퍼짐하여 종잡을 수가 없다. 무덤
한 기가 있는 데를 정상이라 생각하고 배낭 벗어놓고 의례의 휴식한다.
산의 모습이 시루를 닮아서 ‘시루(시리), 증(甑)’을 사용해 왕시리봉(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
의 표기다) 또는 왕증봉(王甑峰)이라 부른다고 한다. 왕시리봉은 보름달이 지는 새벽에 연
곡사에서 당재 오를 때 뒤돌아보는 모습이 가장 아름답지 않을까 한다. 우리에게 그런 날이
있었다. 작년 가을 불무장등을 오르려고 그 길을 갔다.
산죽 숲을 헤치며 간다. 길은 발로 찾는다. 내리막이 시작되려는 ┣자 갈림길에서다. 오른쪽
길은 우회하는 길인 줄로 알고 직등하였다. 잠깐 올라 바위가 나왔으나 아무 조망이 없고 직
진하여 내렸다. 개활지 무덤이 나온다. 왕시루봉 오른 기념사진을 여기서 찍자 하고 일행이
오기를 기다린다. 일행으로부터 전화가 온다. “너희들은 잘못 가고 있다!”
뒤돌아 오른다. 지나온 ┣자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내린다. 가파른 너덜 사면을 내린다. 안
개비에 젖은 너덜이 빙판처럼 미끄럽다. 자세 낮춰 미끄러지더라도 데미지 적게 한다. 일행
들은 바위벽 아래에서 훈제오리 덥히고 곰취 쌈하여 그 안주로 탁주를 마시고 있는 중이다.
이러니 산을 아무리 가도 살이 빠질 틈이 있으랴.
등로 주변 다소곳이 고개 숙인 함박꽃을 들여다보며 너덜을 내린다. 길게 내린 안부는 ┫자
갈림길이 나 있다. 느진목재다. 여기서 자연 님이 발목이 불편하여 탈출하려 했으나 (소백 님
이 아름다운 동행을 자청하고), 차라리 노고단을 오르고 성삼재로 가서 버스를 이용하는 편
이 훨씬 더 나을 것이라는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간곡한 만류로 계속 가기로 한다.
느진목재. 무슨 뜻일까? ‘느진’은 늦은 곧 ‘만(晩)’이겠고, ‘목’은 통로 가운데 다른 곳으로는
빠져나갈 수 없는 중요하고 좁은 곳이란 뜻으로 ‘항(項)’이다. 다시 말하면 우리나라 흔한 고
개 이름 중의 하나인 ‘만항재(晩項-)’이다. 그 중요한 고개가 외진 곳에 있어 거기를 넘으려
면 날이 ‘늦어진다(저물어진다)’는 뜻이 아닐까?
8. 이런 보살도 있다
10. 산죽 숲 돌진
▶ 문바우등(1,196.0m), 질등(1,147.4m), 왕실봉(1,263.2m), 문수대
다시 긴 오르막이다. 가도 가도 자욱한 안개 속 산죽 숲이다. 문바우등 전위봉(1,150m봉) 내
린 야트막한 안부에서 휴식하고 문바우등 직등에 나선다. 두 차례 암릉을 올라야 한다. 바위
가 젖어 미끄럽다. 왼쪽 사면으로 돌아 넘는 길이 있지만 모처럼 짜릿한 손맛 볼 기회다 하고
덤빈다. 아쉽다. 문바우등은 절경을 볼 수 있는 최고의 경점이겠는데 오늘은 안개로 가렸다.
문바우등 오르는 바위틈으로 많은 산앵두나무를 보았다. 조그만 꽃이 활짝 피었다. 산앵두나
무(Vaccinium koreanum)는 이스랏나무 또는 천금등(千金藤)이라고도 한다. 속명이 ‘korea
num’인 점에 비추어 우리나라 특산종임에 틀림없다.
문바우등 내림 길은 수월하다. 완만한 숲길이다. 높낮이 없는 등로다. 질등 가까워서는 잘 난
등로 따라 왼쪽 사면의 너덜을 오른다. 국토지리정보원 지형도에는 질등 부근 능선이 암릉으
로 표시되어 있다. 질등 길목의 전망바위도 오늘은 무용하다. 질등을 길게 돌아내린 안부는
질매재다. 초원이다. 이른 점심자리 편다. 점심시간이랬자 숨 돌릴 휴식시간일 26분에 불과
하다.
둘러보면 하늘 가린 숲속 안개가 자욱한 풍경이다. 이따금 키 훌쩍 넘는 산죽터널을 뚫는다.
안면 블로킹이 긴요하다. 왕실봉은 맨눈으로 그 정상을 짚어내기 어렵다. GPS가 알아본다.
딱히 봉이라고 할 것이 없다. 그리 두드러지지 않았다. 약간 내렸다가 느긋한 오르막길에 ┣
자 갈림길을 만난다. 오른쪽은 지리주릉 돼지령으로 간다. 자연 님과 오늘 처음 나온 우규민
님이 여기서 탈출한다. 가은 님이 아름다운 동행이다. 내 산행을 포기하고서 동행한다는 것
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문수대 가는 길이 어디일까? 대간거사 총대장님의 예전 기억을 더듬고 왼쪽 사면을 기웃거
리며 오른다. 그때보다 길이 더 희미해졌다고 한다. 운이 좋았다. 노고단 넘어오는 등산객을
만난다. 문수대 가는 길은 돼지령 가는 ┣자 갈림길 근처에 있다고 한다. 너무 많이 올라와버
렸다. 뒤돌아 내리다 사면 쓸어내린다. 문수대 가는 소로와 만난다.
길이 사납다. 잡목 숲속 너덜 길이다. 산굽이 돌고 돈다. 이런 산길 가는 게 바로 수도가 아닐
까? 당장 넘어지지 않으려니 다른 생각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러다 고개 들면 화사한 조팝
나무, 함박꽃 무리가 우리의 벗이다. 박석 다듬은 길이 나오고 문수대(文殊臺) 암자다. 경향
각지에서 찾아온 등산객들로 북적인다. 스님 말씀, 저 바위가 문수보살이 법문하는 모습이라
고 한다. 바위 아래 솟는 샘물이 시원하다. 식수 보충한다.
11. 문바우등은 암릉을 두 차례 오른다. 그 첫 번째
12. 문바우등 오는 중
13. 문바우등 오르는 일행
15. 등로, 안개는 몰려왔다 몰려가기를 반복했다
16. 문수대 가는 길의 조팝나무
17. 문수대 가는 길의 함박꽃
18. 문수대. 바위의 모습이 문수보살이 법문하는 중이라고 한다. 가운데 움푹한 데가
문수보살의 입이다.
19. 문수대 뜰에 피어 있는 고광나무
▶ 매막등(1,197.3m) 아래 1,150m 고지, 청계암
오늘 산행의 하이라이트가 시작된다. 문수대 오가는 사면 길을 계속 이어가다 너덜지대에서
잠시 휴식하고 능선 붙들어 남진한다. 바로 우리의 길이다. 산죽과 잡목 헤치고 나아가다 남
서진하는 지능선을 찾아낸다. 골로 간다. 이 너른 사면의 죽은 산죽이 색다른 풍경이다. 쭉쭉
내린다. 골에는 옥수가 흐른다. 현상금을 내걸어도 알탕하는 사람은 없겠다. 서늘한 한기를
느낀다.
골 건너 너덜지대의 고로쇠 채취하는 파이프 넘고 넘어 가파른 산죽 숲을 헤친다. 산죽 수포
기씩 움켜쥐어가며 오른다. 땀은 모자챙에 낙숫물로 줄줄 흐른다. 선두의 두런거리는 말소리
가 멀어지지 않고 더욱 가까이 들린다. 거기가 능선이겠지. 타는 목마름을 꾹 참고 내쳐간다.
노고단 남릉 매막등(1,197.3m) 아래 1,150m 고지다.
대포 님이 캔맥주를 내놓는다. 회심의 작품이다. 달리 비길 데 없는 이 맛을 느끼려고 산을
오르기도 한다. 당분간은 지난겨울에 눈을 찾아 왔던 이 길을 내린다. 그때와는 전혀 다른 풍
경이다. 그때는 죽은 산죽도 눈꽃 핀 화초였는데 오늘은 스산하다. 전망바위 나오면 교대로
들려 오전에 지나온 왕시리봉, 문바우등 연릉 바라본다.
1,095m봉 약간 내린 Y자 능선 분기지점에서 오른쪽으로 청계암을 겨냥하고 내린다. 이제 내
리는 일만 남았다. 세상 일이 흔히 그러하듯 정점에서 탈 없이 내리는 일이 쉽지 않다. 잠깐
방심하여 길이 사라지고 잘못 내리는 줄을 깨닫는다. 너덜 사면을 대트래버스 하여 잃었던
능선을 찾아낸다. 쭉쭉 내려 산줄기 맥을 놓은 끄트머리에 청계암이 자리 잡았다. 그 주변은
철조망을 둘렀다.
계속 직진하다가는 절개지 절벽에 막힐라 오른쪽 사면으로 틀어 내린다. 대로에 다다른다.
산모퉁이 돌아 청계암 입구를 이르니 커다란 자연석에 ‘聽溪庵’이라고 각자하였다. ‘청계(淸
溪)’가 아니다. 알 것 같다. 소동파의 시구에 ‘계곡의 물소리는 설법’이라는 대목에서 연유했
으리라. 그 설법을 듣는 암자라는 뜻일 것.
소동파의 시 「여산의 총장로에게 드리는 시(贈廬山總長老詩)」이다. 소동파는 이 시를 읊
어 득도의 경지를 인정받았다.
溪聲便是廣長舌 계곡의 물소리는 바로 널리 퍼지는 설법(說法)이고
山色豈非淸淨身 산의 모습은 어찌 청정한 법신(法身)이 아니랴
夜來八萬四千偈 밤에 온 이 팔만 사천의 게송(偈頌)을
他日何如擧示人 다른 날 어떻게 해야 사람들에게 들어 보일까
산모퉁이 돌고 돌다 생사면 내려 화엄사계곡 길에 다다르고 이윽고 화엄사 주차장이다. 선두
후미 간 길어야 5분 내외 차이다. 오늘도 무사산행을 자축하는 하이파이브 힘차게 나누고 또
다른 즐거움인 목욕, 이곳 특산물의 저녁과 얼근한 반주, 서울 가는 길의 녹작지근한 피곤 속
엷은 졸음 등을 향해 이동한다.
20. 문수대 옆 너덜지대에서
21. 산죽 숲 내리며 골로 가는 중
22. 죽은 산죽 숲 내리며 골로 가는 중
23. 노고단 남릉 내리면서 바라본 문바위등과 왕시리봉(오른쪽)
24. 오른쪽은 문바우등, 맨 왼쪽은 질등, 그 왼쪽 안부가 질매재
25. 멀리 가운데가 왕시리봉
26. 종석대 남릉의 차일봉
27. 가운데가 노고단 남릉의 형제봉
28. 가운데가 원사봉, 골짜기 왼쪽이 화엄사
29. 화엄사 청계암 주변의 소나무 숲
30. 화엄사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