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소질 있는 딸에게
자유학기제가 날개를 달아줬어요”
‘2017 자유학기제 공모전’ 수기부문
최우수상 학부모 전인숙씨
“자유학기제가 시작되기 전에 엄마들
사이에서는 ‘공부 잘 하는 애들 시간 벌어주는 제도 아니냐’는 얘기가 많았어요. 그런데 제가 막상 경험해 보니 ‘시간을 벌어주는 제도’가 맞긴
맞더라구요. 시험과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는 제도’ 말이죠.”
전인숙씨(43)의 딸은 지난해 경기도 성남의
한 중학교에 입학했다. 성남 분당의 교육열은 서울의 강남, 목동 못지않게 뜨거운 편. 딸에게 나름 선행학습도 시키며 준비를 했지만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딸은 친구들의 성적을 따라가지 못했고, 자기비하로 이어져 울음을 터뜨리는 날이 잦았다.
“초등학교 때까지 저와의 관계가 나쁘지
않았고 모녀간 믿음도 튼실했어요. 그런데 중학교 입학하면서 딸의 머릿속에 ‘성적이 곧 행복과 성공을 나타내는 지표’라는 잘못된 인식이 굳은살처럼
박혀가는 걸 느꼈어요. 성적 앞에서 자존감이 완전히 무너진 거죠.”
하지만 자유학기제가 본격 시작되면서 반전이
일어났다. 진로적성검사 후 선생님으로부터 ‘너는 우뇌가 매우 발달해 창의성이 뛰어나니 미래가 더 기대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미술을 좋아하는
딸에게 이보다 더한 칭찬이 또 있을까. 성적이 아니라 자신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봐주는 선생님의 격려가 딸에게 작은 힘을 주었다. 딸은
경기자유학년제 UCC 공모전 참가라는 작은 도전에 나섰고, 장려상이라는 귀한 열매를 수확했다.
“딸에게는 최우수상 이상의 가치가 있는
상이었어요. 공부는 신통치 않지만 그림이나 애니메이션만큼은 잘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은 거죠. 한 번 자신감이 붙으니까 놀라운 일들이
벌어졌어요. 자유학기제 동아리 활동에서 두각을 나타내 친구들로부터 ‘황금 손’, ‘신의 손’이라는 이야기를 듣게 됐고, 점차 소심했던 모습이
적극적인 모습으로 바뀌게 됐어요. 그야말로 자유학기제가 딸에게 날개를 달아준 것 같았어요.”
학교 수업에서도 토론수업과 협동수업,
융합수업이 활발하게 진행돼 싫어했던 수학, 과학, 한문 과목에도 재미를 느끼게 됐다. 공부 잘하는 아이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던 토론수업에서도
선생님께 잘 한다는 칭찬을 들어 자신감도 부쩍 커졌다. 자신감이 커지니 소질이 없는 체육활동에서도 웃음과 여유를 찾게 됐다. 발야구에서 연신
‘파울’을 쳤음에도 주눅 들지 않고 밝고 환하게 웃더라는 것.
“학교에서 반 대항 칠판협동화대회가 열렸나
봐요. 딸이 그림에 소질이 있으니 반 친구들로부터 ‘잘 부탁한다’는 응원을 들었대요. 열심히 해서 9개 반 중에서 1등을 했고, 그렇게 ‘나라는
존재의 소중함’을 깨닫더군요. 그 뒤로 저는 아이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자신의 소질을 계발하고, 존재감을
드러내면서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힘까지 얻었는데 뭘 더 바라겠어요.”
딸은 초등학교 5학년 수준이라고 핀잔 듣던
영어학원을 과감히 그만뒀다. 대신 자신만의 방법으로 영어공부를 하겠다며 서점에서 책을 사와 이런저런 시도를 하고 있다. 그림 그리기, 블로그
운영하기, 소설 쓰기 등등 많은 활동을 딸 스스로 계획하고 실천하는 중이다. ‘아이 캔 스피크’라는 영화를 본 뒤 위안부 할머니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됐고, ‘2018년 버킷리스트’에는 ‘위안부 할머니를 위한 애니메이션 만들기’라는 항목이 32번째로 등록됐다.
“아이가 위안부 할머니와 관련된 다양한
자료를 수집하고 직접 현장을 답사하더군요. 제대로 된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일본어를 공부해야겠다며 책도 사왔어요. 딸아이가 2학기 동안 총
8개의 상을 받았고, 그 중 7개가 자유학기제 관련 상이었어요. 기존 성적만으로 평가하던 시스템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결과죠. 학기 초
자존감이 무너져 울던 아이의 모습은 지금 어디에도 없어요.”
전인숙씨는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자유학기제에
대한 생각을 솔직하고 담담하게 글로 옮겨 ‘2017년 자유학기제 우수사례 공모전’에 출품했다. ‘작은 바람이 선한 바람으로’라는 제목의 수기는
접수된 465편 가운데 1등을 차지했다.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상을 받은 전 씨는 지난 1월 26일 개최된 ‘2017 자유학기제 성과발표회’에서
우수사례 발표자로 연단에 섰다.
“자유학기제가 딸아이뿐만 아니라 저에게도 큰
의미로 다가온 것 같아요. 시험과 스트레스 없이 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시간을 벌어주는 이 제도가 대한민국 전체 중학교에 잘 정착됐으면
좋겠어요. 자존감이 무너져 자주 울던 아이가 1년 만에 환하게 웃는 모습으로 변했어요. 1년 전 저는 다른 어머니들과 마찬가지로 ‘물음표’로
걱정스럽게 자유학기제를 바라봤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아이의 웃음을 보면서 자유학기제에 대한 제 생각은 이제
확고해졌어요.”
글_ 최중혁 에디터
출처_ 꿈트리 Vol.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