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아버지와의 화해
“스님,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
◇ 경상북도 경산시에 있는 제석사 *출처=경산시청
그리고 두 해가 지나서 형제들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기를 통해 저는 아버지가 50년 만에 고향으로 돌아오셨다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동안 집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를 가족들이 선뜻 받아줄 리 없었습니다.
가족들이 고향 집에 들어와 사시는 것을 반대해 아버지는 친척 집에 머물고 계시다고 했습니다. 아버지 소식을 듣고 나니 급체를 한 듯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청화 스님을 뵙고서 마음속으로는 아버지와 화해를 했다고는 하나, 정작 늙으신 아버지가 고향 마을을 헤매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만감이 교차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존재를 있게 한 생명의 뿌리이기도 했지만, 처음으로 버림받았다는 서러움을 안겨준 곤곤한 슬픔의 뿌리이기도 했습니다.
생각 끝에 저는 직접 아버지를 만나야겠다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아버지를 만나서 제 가슴에 남아 있는 모든 앙금을 깨끗하게 씻고 싶었던 것이지요.
저는 형제들에게 아버지를 모시겠노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의 말을 듣고서 아버지는 제가 있는 절로 찾아오셨습니다. 아버지는 저를 보자 고개를 떨어뜨릴 뿐 선뜻 입을 열지 못했습니다.
이윽고 아버지는 제 앞에 무릎을 꿇더니 어렵게 말문을 열었습니다.
“스님, 실로 면목이 없습니다.”
30여년 만에 만난 막내에게 꺼낸 아버지의 첫 마디였습니다. 저는 얼른 아버지를 일으켜 세운 뒤 손목을 붙잡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부자는 화해를 했습니다. 아버지의 손목을 이끌고 제 방으로 향하는 내내 제 가슴속에서는 환한 빛 한 줄기가 쏟아져 내렸습니다. 언 실개천을 녹이는 따사로운 햇빛이었습니다.
◇ 마가스님 *출처=메거진 한경
그 일이 있은 후 오래지 않아서 저는 식구들에게 차례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고흥 고향 집에 계시는 어머니, 서울에 사는 형님과 누님, 광주에 사는 누님 등 가족 모두에게 절로 와달라고 부탁 했습니다. 가족 치유 법회를 열기 위해서였습니다.
마곡사에서 템플스테이를 지도하면서 자비 명상으로 여러 가족의 상흔을 치유하면서 저는 내심 ‘중이 제 머리 못 깎는다’라는 말을 떠올리곤 했습니다. 제 가족의 상흔은 그대로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50년 만에 온 가족이 모였습니다. 먼저 둥글게 앉은 가족 앞으로 아버지를 모셨습니다. 그리고 가족들이 번갈아가면서 아버지가 부재한 가운데 견딘 50년 세월에 대해 털어놨습니 다.
이야기는 무심했던 아버지를 원망하는 내용이 주를 이뤘습니다. 형제들은 목이 잠겨서 말을 잇지 못하거나 이야기를 다 끝내지 못하고 흐느끼기 일쑤였습니다. 그만큼 형제들의 가슴에는 대 못만큼이나 아픈 게 박혀 있었던 것입니다.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눈가가 축축하게 젖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이 떠난 뒤 남겨진 가족이 얼마나 어렵게 살아왔는지를 들으며 머리를 숙였습니다. 자식들의 볼멘소리를 다 듣고 나서 아버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뗐습니다.
“그저 미안하다.”
저는 아버지에게 식구들을 향해 절을 세 번 올리라고 했습니다. 아버지는 제 말을 따라주었습니다. 그렇게 제 가족은 그간의 아픔을 씻고 더불어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그날 법회 후 어머니와 형제들이 다시 아버지를 가족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게 된 것입니다.
1년 뒤 저는 고향 마을 인근에 있는 제석사라는 절로 다시금 가족을 불렀습니다. 이번에는 제 직계가족뿐 아니라 친척들까지 참석해줄 것을 부탁했습니다.
친척들에게는 조상 천도재(죽은 이의 영혼에게 부처님 가르침을 전하여 밝은 길로 이끌기 위해 치르는 재)를 지낼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만, 천도재를 지낸다는 것은 명분일 뿐 실제로는 가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기 위한 자리였습니다.
50년 동안 아버지가 집을 비웠으니 친척들과의 관계도 제대로 돌려놓을 필요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담이지만 그날 어머니는 제게 넌지시 돈 봉투를 건넸습니다. 일종의 유산인 셈인데, 저는 어머니에게 동의를 구해 그 돈을 제석사에 시주했습니다. 어머니에게 복을 짓는 기회를 드리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제 가족은 물론이고 친척까지도 원통한 마음을 풀고 홀가분해질 수 있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저도 “어떤 사람이 왼쪽 어깨에 아버지를, 오른쪽 어깨에 어머니를 메고 히말라야를 백 번 천 번 돌아 살갗이 터지고 뼈가 부서진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어떤 사람이 부모를 위해 1백 자루의 칼로 자기 몸을 찌르며 1천 겁(劫)을 지낸다 할지라도 부모의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 또 부모를 위해 불에 사르기를 억만 겁 할지라도 부모의 깊은 은혜에는 미칠 수 없다.”라는 『부모은중경』의 구절을 가슴 깊은 곳에 담아 둘 수 있었습니다. <계속>
글 | 마가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