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성어로 한자를 공부하다보면
어떤 사자성어든 민감할 수 밖에 없습니다.
모르는 사자성어를 만나면
그와 관련된 사자성어를 모두 찾아 학습하는 습관을 가졌습니다.
최근 당랑의 꿈을 들고 나온 정치인이 있어
당랑의 꿈에 대한 곤충의 소원을 들여다 보았습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은 당랑, 곧 사마귀와 관련된 대표적인 사자성어이며
그 비슷한 뜻을 가진 사자성어는 당랑지부와 당비당거 등 있습니다.
당랑거철(螳螂拒轍)은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는다는 뜻으로,
자기(自己)의 힘은 헤아리지 않고 강자(强者)에게 함부로 덤비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랑지부(螳螂之斧)는 당랑은 사마귀를 말하며 부(斧)란 도끼로,
사마귀가 넓적한 앞다리를 쳐드는 모습이 마치 도끼를 휘두르는 것 같은 데에서 비롯된 말이며
자기 힘을 생각지 않고 강적 앞에서 분수없이 날뛰는 것을 비유한 말입니다.
당비당거(螳臂當車)는 사마귀의 팔뚝이 수레를 당(當)하다라는 뜻으로,
강적 앞에서 용감무쌍한 것을 뜻합니다.
이렇게 용감무쌍한 당랑은 한낱 곤충일 뿐......
당랑의 꿈이라는 인생의 포부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
꿈을 말할 때는 쓸데없다는 뜻의 부질없는 꿈,
한낱 물거품인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날 "꿈이 없는 교회는 망한다"는 청빙 설교를 듣고
신앙의 연금술사는 부질없는 망상이라고 비판하였는데 결국 위임받고 3년을 채우지 못하고 쫓겨났습니다.
요셉의 꿈과 다니엘의 꿈 해석은
계시적 비전, 그 자체이지만 일반적인 꿈은 몽상에 불과합니다.
전도서는 일이 많으면 꿈이 생기고 말이 많으면 우매자의 소리가 나타나며
꿈이 많으면 헛된 일들이 많아지고 말이 많아도 그러하니 오직 너는 하나님을 경외할지니라고 말씀하였습니다.
시편 기자는 악인의 형통을 꿈에 비유하였고
사람이 깬 후에는 꿈을 무시함 같이 주께서 깨신 후에는 그들의 형상,
곧 악한 자의 형통을 멸시하시리이다고 하였습니다.
특히 이사야서는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는 것 같다고 말씀하였습니다.
주린 자가 꿈에 먹었을지라도 깨면 그 속은 여전히 비고
목마른 자가 꿈에 마셨을지라도 깨면 곤비하며 그 속에 갈증이 있다는 말씀은
부질없는 꿈에 대한 정확한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낱 꿈은 자기의 무덤을 파는 함정이며
망상의 세계를 꿈꾸는 사망의 덫이요, 올가미요, 그물입니다.
부질없는 꿈, 그 망상에 젖다보면
당랑의 꿈을 정치적 야망으로 갖기도 합니다.
당랑의 꿈은 한낱 계란으로 바위치기에 불과하며 수레에 짓밟힐 뿐이요
오만한 자의 객기 , 그 만용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당랑의 꿈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 비유하는 것은
성경이해의 제로지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참으로 다윗은 골리앗과 맞서 여호와의 전쟁을 하였고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였습니다.
☞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넘기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목을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를 오늘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에게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넘기시리라(삼상17:45-47)
☞ 여호와께서 반드시 내 주를 위하여 든든한 집을 세우시리니
이는 내 주께서 여호와의 싸움을 싸우심이요 내 주의 일생에 내 주에게서 악한 일을 찾을 수 없음이니이다
사람이 일어나서 내 주를 쫓아 내 주의 생명을 찾을지라도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삼상25:28-29)
당랑의 꿈으로는
성서지대의 어떠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비전을 이룰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의 여호와 이레, 모세의 여호와 닛시, 기드온의 여호와 살롬, 삼손의 엔학고레,
사무엘의 에벤에셀, 에스겔의 여호와 삼마, 요한계시록의 마라타타 등
당랑의 꿈으로는 범접할 수 없는 성서지대 비전의 실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창세 전의 깊이로 하나님의 통치와 구원의 경륜.......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선택과 예정과 사랑과 믿음으로 그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였습니다.
☞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속량 곧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을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신 것이요
그의 기뻐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모든 일을 그의 뜻의 결정대로 일하시는 이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이는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의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엡1:3-14)
바울의 선포된 복음, 곧 케리그마는 역사적 예수의 부활에 대한 증거요,
하나님의 구원 경륜을 이루고 부활하여 더 좋은 언약의 중보가 되신
영원히 살아계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참된 크리스챤은 진리의 말씀과 복음에 깨어 있어
종말론적인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땅 끝까지 주 예수의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당랑의 꿈과 같은 복음의 가라지를 붙잡고
인본주의 신앙으로 예수의 하나님 나라를 농단하였습니다.
적극적 사고방식은 복음의 가라지요,
긍정의 힘, 또한 복음의 가라지입니다.
목적이 이끄는 삶의 캠패인은
종교다원주의, 그 꿈의 실현입니다.
대부분 기독교 서적의 베스트 셀러는 복음의 가라지요,
다른 예수, 디른 영, 다른 교훈의 전형입니다.
기독교의 옷을 입은 서적, 그 출판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리의 복음과 구원의 말씀을 인본주의로 채색하였습니다.
인본주의로 채색된 기독교 서적은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종말론적인 악한 영의 역사, 그 거짓 선지자의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잘 못 알고 있는 상식은
먹거리 문화에서도 넘칩니다.
치맥 페스티벌, 그 먹거리의 꿈은
젊은이들마저 요산의 결절로 풍이 들게 하였습니다.
우리 아이들의 성장과 발달에 좋다는 등푸른 생선은
퓨린 성분이 풍부하여 요산의 증가로 풍을 유발하며 주방의 미세먼지 1위에 등극하였습니다.
우리 몸에 좋은 각종 산약초는
그 과다복용으로 간독성을 일으키는 주범입니다.
헬스로 짐승남이 되기 위한 꿈은
각종 근육 강화제와 스테로이드 복용으로 소망의 문이 사망의 문이 되었습니다.
자유 민주주의에서 그 자유로 보장되는 노동 운동은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에서는 죽음의 골짜기입니다.
전교조가 헬조선 타령하며 평양의 꿈을 말하지만
주체교육을 받은 탈북자들의 증언에 의하면 북한의 실정은 아사직전의 상황입니다.
지난 날 이만갑과 모란봉 클럽과 베나 TV와 이애란 TV 등은
70년 공산독재의 실상, 그 민낯을 사실 그대로 보여주었습니다.
작금의 우리 나라는 각종 사회주의 베네주엘라와 같은 정책의 실행으로
시장경제가 무너지고 자영업이 무너지고 도시산업선교, 그 도산의 유령이 지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안보의 경계지점이 없어
적화의 전략전술에 무풍지대가 되었습니다.
당랑의 꿈, 그 종자(鍾子)는 적벽대전의 계란치기요
수레에 항거하는 당랑의 오만, 그 객기의 만용일뿐입니다.
당랑의 꿈을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으로 바라보는 시각은
성경에 대한 편협한 이해요, 지성의 편견, 그 민낯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