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이 가까워질 때...
죽음이 가까웠고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해지는 순간이 있다. 약도, 몸의 사대(四大)를 강화하는 명상법도, 기도도 더 이상 우리의 수명을 연장하지 못한다. 퇴행성 질환 때문이든, 노쇠가 다하여 자연스럽게 생을 마감하는 것이든, 우리는 곧 죽게 되리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이때 죽어가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신체적·지각적·정신적 현상들을 이해하고 있다면, 자신의 죽음을 맞이할 때 큰 도움이 될 수 있으며, 또한 임종을 앞둔 다른 사람들의 경험을 이해하는 데에도 통찰을 줄 수 있다.
그러나 죽음에 수반되는 낯선 감각들과, 평생 의지해 왔던 육체라는 기반을 잃어가는 경험은 여전히 매우 어렵고 두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더라도 죽음의 이행(移行)을 무사히 통과하게 해 줄 절대적 본성(absolute nature) 에 대한 흔들림 없는 자각을 미리 길러 두어야 한다.
죽음은 몸의 기능을 유지하는 다섯 가지 근본 풍(風, vital winds) 과 감각기관을 유지하는 다섯 가지 보조 풍 이 힘을 잃기 시작하면서 시작된다. 이 바람들의 기능이 약해짐에 따라 신체 기능 역시 하나둘씩 멈추어 간다.
이와 복잡하게 연결되어 있는 몸의 에너지 중심, 즉 차크라(chakra) 역시 기능을 잃기 시작한다. 각 차크라의 에너지가 흩어질 때마다 이에 대응하는 몸의 원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 역시 차례로 흩어진다.
이 네 원소는 신체의 구성 요소와 직접 대응한다.
지(地) 는 살과 뼈를,
수(水) 는 혈액과 체액을,
화(火) 는 소화력과 체온을,
풍(風) 은 호흡과 순환을 담당한다.
이 원소들이 하나씩 해체되어 갈수록 서로를 결속시키던 힘과 기능도 함께 쇠퇴한다. 그러면서 죽음에 수반되는 신체적·정신적·환시적 경험은 급속도로 진행된다.
죽음의 첫 징후는 음식이 소화되지 않고, 삼키기가 어려워지며, 팔과 다리, 머리를 들어 올리기 힘들어지는 것이다. 호흡은 짧고 거칠어지며 숨을 헐떡이게 된다.
처음에는 팔다리가, 이어 온몸이 차가워지고, 아무리 덮어도 따뜻해지지 않는다.
마음은 크게 동요하여 생각이 통제되지 않은 채 끊임없이 솟아난다.
곧 몸을 똑바로 유지하는 것조차 불가능해진다. 팔과 다리를 움직일 수 없고 머리는 뒤로 젖혀지며, 몸 전체를 무거운 것이 짓누르는 듯한 압박감을 느낀다.
이러한 정신적 동요는 점차 사라지고, 대신 졸음과 반혼수 상태가 찾아온다. 신기루 같은 환영과 깜빡이는 빛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입과 코, 목과 눈은 극도로 마른다.
몸의 감각은 크게 둔해지고, 고통과 쾌감, 뜨거움과 차가움이 번갈아 나타난다.
마음은 쉽게 짜증을 내게 되며, 연기 같은 환영을 보기 시작한다.
이어 가족과 친구조차 알아보지 못하게 된다.
청각과 시각은 혼란스러워지고, 마치 반딧불이 같은 붉은 점들이 눈앞에 나타난다.
마침내 몸은 완전히 움직일 수 없게 된다.
호흡은 더욱 짧고 거칠어지며, 들숨보다 날숨이 길어진다. 시야와 소리는 모두 흐릿해진다.
죽음의 순간에는 각자의 업(karma) 에 따라 다양한 환시가 나타난다.
몸과 말과 마음으로 매우 악한 행위를 많이 지어 온 사람은 무서운 형상들을 보거나, 자신의 삶에서 가장 나빴던 순간들이 되풀이되는 광경을 경험하기도 한다. 두려움 때문에 목구멍 깊은 곳에서 거친 신음소리를 내기도 한다.
반대로 선하고 자비롭게 살아온 사람은 행복하고 천상과 같은 광경을 경험할 수 있으며, 사랑하는 이들이나 깨달은 존재들의 모습을 보기도 한다. 이러한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훨씬 적다.
마침내 한 번의 길고 긴 마지막 날숨이 이어지는데, 이것이 흔히 말하는 '죽음의 가래 끓는 소리(death rattle)' 이다.
그 뒤에는 몸의 바람들이 심장으로 거두어지면서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이 모두 닫힌다.
육체적으로는 이 순간 사람이 죽은 것이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사업이 실패하는 불안도 아니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슬픔도 아니다.
죽음이 바로 눈앞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우리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어떤 감정보다 훨씬 더 깊고 압도적인 공포를 느낀다.
이 공포는 인생이 결국 아무 의미도 없었다는 후회와 번갈아 찾아온다.
우리는 열심히 일했고 성공하기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 모든 노력 끝에 과연 무엇이 남았는가?
뒤돌아보았을 때 삶이 충만하지 못했고, 결국 공허하고 무의미했다고 느껴진다면 깊고도 참담한 슬픔이 밀려온다.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어디로 가게 될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은 극도로 흔들린다.
감정에 압도된 우리는 그 혼란을 감당할 힘조차 잃는다.
죽어가는 과정과 그 어려움을 이해하는 것은, 지금부터 죽음을 준비해야 한다는 강력한 동기가 되어야 한다.
그 준비는 삶 자체가 꿈과 같다는 사실을 인식하는 것 에서 시작된다.
순간순간 우리는 삶을 마치 꿈이 펼쳐지는 것처럼 바라보아야 한다.
자동차에 기름을 넣을 때도,
설거지를 할 때도,
산책을 할 때도,
조금 떨어져서 지금 이 상황 전체를 바라보라.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꿈과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는지 알아차리라.
이러한 태도를 통해 우리는 삶이 필연적으로 변해 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되고, 지금의 꿈이 또 다른 꿈으로 바뀌어 가는 과정일 뿐임을 이해하게 된다.
이러한 관점을 유지할수록 우리의 삶의 태도는 조금씩 달라진다.
집착은 줄어들고,
사물은 더 이상 그렇게 단단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보이지 않으며,
우리는 그것들을 그토록 완고하게 붙잡으려 하지 않게 된다.
이처럼 이완되고 열린 존재 방식 속에서 우리는 잘 죽는 가장 확실한 방법, 곧 우리 자신의 절대적 본성을 알아차리는 것 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 착두 툴쿠 린포체
『Life in Relation to Death』 중에서
첫댓글 밤의 모서리마다 드리우는
어둠의 명도(明度)는 늘 두렵다.
어린 날의 호랑이보다 더 짙은,
정체를 알 수 없는 불안의 그림자들
열심히 쌓은 모래성은 밀물에 무너지고
숨이 턱에 차도록 달린 트랙 끝엔
오직 사라지는 발자국만 남을 때,
마음의 주파수가 미세하게 흔들린다.
길을 잃고 파르르 떨리는
나비의 날개짓 같은 날들 속에서
아미타불이 가만히 내 어깨를 감싸며 속삭였다
."이 세계는 거대한 하나의 시뮬레이션이란다.
"눈을 뜨는 아침부터
로그아웃하는 밤의 시간까지,
우리는 반짝이는 데이터 속을
가벼운 산책자처럼 걷고 있는 거라고.
오늘 흘린 눈물의 얼룩도,
소리 내어 웃었던 주파수도,
결국은 모두 예쁜 가상 입자가 되어
밤하늘의 스크린에 별로 저장될 거라고..
그러니 어둠 속으로 숨지 말고
지금 이 순간이라는 도화지 위에
가장 감각적인 너만의 컬러를
꾹꾹 눌러 색칠해 보렴 이라고...나무아미타불
무더운날씨에 강건하옵소서..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