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의 ‘마일스톤 방식’ 신약 기술수출 계약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이 3상까지 임상을 거쳐 최종 승인을 받을 확률은 10% 미만이지만 제약바이오사는 위험을 감수하고도 10년 이상 천문학적인
연구비용을 들여 신약 개발에 매진한다. 성공할 경우 얻는 이익이 막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내 제약바이오기업은 이러한 시간과 비용을 들일만한 기초체력이 아직은 부족한 만큼 신약 후보물질 발굴에 집중하고 있으며 일정
부분 성과가 나타나면 기술수출로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최근 기술수출 성과가 점차 가시화되며 제약바이오산업에 대한 장밋빛 전망에 힘이 실리고 주식시장에서는 새로운 기술수출 계약
소식을 전한 기업의 급등 사례가 심심찮게 나타나고 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이 같은 기술수출 소식 자체만 보지 말고 계약의 세부적인 내용까지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실제 한국거래소의 경우 기술수출과 관련해 투자자들이 착시현상을 겪을 수 있는 공시 내용이 좀 더 정확히 전달되도록 규정을 개선하고 7월 말부터 적용하고 있다. 신약 후보물질 기술수출 시 확정 금액과
임상시험 진입이나 품목 허가 등 조건 달성 뒤 받을 수 있는 조건부 금액인 마일스톤을 적시해 투자자들이 명확하게 계약 내용을 살펴볼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
여기서 최근 체결된 일부 기술수출 사례를 보면 세부 계약내용 확인의 중요성이 다시금 수면위로 드러나고 있다.
유한양행은 지난 7월 미국 스파인바이오파마와 퇴행성디스크질환 치료제 ‘YH14618’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는데 총 기술수출 금액은 2억1815만달러에 달하지만 반환의무가 없는 계약금은 65만달러에 불과했다. 나머지 2억1750만달러는
사실상 개발·허가·매출 등이 발생해야 받을 수 있는 금액이다.
제넥신도 지난해 12월 중국 아이맙 바이오파마에 총 5억6000만달러 규모의 면역치료제 '하이루킨'의 기술수출을 성사시켰지만 실질적으로 받은 금액은 반환 의무가 없는 계약금
1200만달러에 그쳤다. 계약금의 대부분(5억4800만달러)은 역시 마일스톤이다.
한올바이오파마 역시 같은달 미국 로이반트사이언스와 총 5억250만달러 규모의 기술이전 계약을 체결했지만 반환 의무가 없는 금액은 3000만달러에
그쳤다. 마일스톤이 4억5250만달러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했다.
영진약품은 지난해 5월 휘귀질환 신약 'KL1333'을
스웨덴 뉴로바이브 파마슈티컬AB에 5700만 달러 규모의
기술수출을 체결했지만 대부분은 마일스톤이고 실질적으로 받은 금액은 300만달러에 미치지 못했다.
대화제약도 지난해 9월 중국 RMX바이오파마에 2500만 달러 규모로 경구용 파클리탁셀 항암제 '리포락셀액'을 기술수출하고 선급금 350만달러를 제외한 나머지 금액은 역시 마일스톤이다.
동아에스티는 2016년 4월 미국 토비라에 당뇨치료제
‘에보글립틴’을 비알코올성지방간염 치료제로 개발하기 위한 총 6150만달러 규모의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2017년 11월 계약 종료 통보를 받았다. 동아에스티가 수령 금액에 대해 미공개 입장을 고수해 정확한 금액을 확인 할 수는 없지만 당초 계약 금액에 비해
미미한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LG생명과학, 부광약품, 종근당 등이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지만 개발이 중단되는 아픔을 겪었으며 코오롱생명과학은 세계 최초 골관절염
세포유전자 치료제 인보사의 기술수출 계약금 반환 요청 소송에 휘말리며 곤란한 상황에 처했다.
이처럼 기술수출에 있어 마일스톤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이유는 낮은 신약 개발 확률 리스크에 대비할 수 있고 언제든지 해지가 가능하기
때문.
여기서 주목할 점은 해지 가능성이 낮은 기업을 선별하기 위해서는 총 계약금액 대비 계약금 비율을 확인하는 것이 핵심.
일단 계약 체결 시 보통 계약금만 지급이 확정되는 만큼 계약금 비율이 높다면 상대 기업이 신약 개발의 성공 가능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또 기술수출 계약이 해지된 경우를 살펴보는 것도 중요하다. 블록버스터급 신약이 임상 3상 단계까지 진입한 경우 성공확률을 꽤 높게 보고 몇 번 실패해도 웬만해서는 포기하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임상 3상까지 가서 계약이 중단됐다는 것은 신약 기술에 큰
문제가 생겼다는 방증인 것.
그 대표적인 사례가 한미약품의 올무티닙이다. 한미약품은
2015년 7월 베링거인겔하임과 내성표적항암신약 ‘올무티닙’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하며 계약금 5000만달러, 총 7억3000만달러의 대형 계약 체결 소식을 발표했었다. 하지만 2016년 9월 베링거인겔하임이 올무티닙 권리를 반환하며 실제 한미약품이
받은 돈은 계약금과 일부 마일스톤료까지 6500만달러에 그쳤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제약바이오사들이 향후 시장 및 실험 상황이 어떻게 급변할지 예측이 어렵다는 이유로 마일스톤과 임상시험
유예 등의 정보를 구체적으로 공시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며 “하지만 상장기업은 투자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만한 중대한 문제가 생기면 신속·정확하게
공시해야 할 의무가 있다. 자의적 판단으로 해당 내용을 공시하지 않는 것은 책무를 저버리는 것인 만큼
투명한 정보 공개를 통해 투자자들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