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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관령 고속도로 성산 제3교
보광리 普光里
동쪽으로는 관음리와 위촌리 및 사천면 사기막리, 서쪽으로는 도암면 횡계리와 사천면 사기막리,
남쪽으로는 어흘리, 북쪽으로는 사천면 사기막리에 접해 있다.
신라 때에 낭원 대사가 세운 보현사(普賢寺)의 ‘보’ 자를 따고
마을이 빛을 내는 곳이란 뜻에서 ‘보광’이란 마을 이름이 생겼다.
보광리(普光里)는 본래 강릉군 성산면 지역에 속하였는데 보현촌, 보광동, 보갱이라 하다가
1916년 무일동, 삼왕동, 무시골을 합해 보광리라 했다.
1955년 9월 1일 명주 군에 속하였다가, 1995년 1월 1일 도농 통합으로 강릉시에 편입되었다.
예로부터 전해지는 보광리 내의 주요 지명으로는 무시골, 절골, 보겡이, 삼왕동, 송명동, 백양동 등이 있다.
무시골은 보현사 앞과 보현들 사이에 있는 지역으로 안무시골과 바깥무시골로 나누어진다.
옛날 문수보살이 살던 터가 있어 무시 터라고도 하며,
또한 무시를 무쇠 또는 물괴라 하여 수철동(水鐵洞)이라고도 한다.
절골은 폐교된 보광 초등학교에서 보현사까지의 깊은 계곡으로 보현사가 있어서 생긴 이름이다.
보겡이는 보광 초등학교에서 삼왕(三王) 사이에 있는 내 서쪽 마을이다.
삼왕동(三王洞)은 명주군왕릉 앞에 있는 마을로 명주군왕(溟州郡王) 김주원(金周元)이
죽은 다음 아들 둘이 이곳에 머물러서 ‘삼왕(三王)’이라 했다고 한다.
송명동은 삼왕동에서 내 건너 서쪽에 있는 골로 골 안에 기도원이 있으며,
옛날 이곳에 송명암(誦明庵)이란 암자가 있었다고 한다. 백양동은 보광 초등학교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현]
보광리는 강릉 지역 내의 주요 송이버섯 생산지의 하나로 보광 1리와 보광 2리의 2개의 행정리로 이루어져 있다.
보광리 일대는 주요 문화재들이 많이 보존되어 있는 지역으로 유명하다.
우선 보광 1리 마을 뒤 선자령 낙맥 아늑한 곳에 보현사가 있으며,
여기에는 보물 제191호인 낭원대사오진탑, 보물 제192호인
낭원 대사 오진탑비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들이 잘 보존되어 있다. 또한 보현평에는 가마터가 있다.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 권 153 강릉 대도호부에 ‘자기 소일재부 보현촌’이란 기록이 있는데
이 가마터가 보광 2리에 있는 사기점으로 추정된다.
보광 2리 마을 뒤에는 명주의 옛 왕인 명주군왕릉[강원도 기념물 제12호]이 있다.
명주군왕릉 입구에는 삼왕사와 생육신의 일인인 매월당 김시습의 영정을 모신 청간사가 있다.
그 외에도 마을 맨 안쪽에는 강원도 기념물 제28호인 강릉 대공산성이 있다.
보광리는 전형적인 농·산촌 마을로 논농사보다는 밭농사가 발달해 있는 지역이며,
최근 보광리에서는 힐링과 농·산촌 체험을 위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또 전망 좋은 곳곳에는 펜션들이 지어져 관광객들이 내방하는 농촌관광의 명소로 발전하고 있다
2025년 4월 19일 어명을 받은 소나무 길 / 출발지 보현사 입구 주차장...(09:46)
부산님.키키님, 령관이네
꽃잔디
미국 중부·동부가 원산지인 꽃고비과의 여러해살이풀.
잔디처럼 낮게 자라는데, 그 위를 전부 덮어버리는 꽃이 아름다워 관상용으로 많이 기른다.
건조한 모래땅에서 잘 자라는 높이가 10cm에 달하고 많은 가지가 갈라져 잔디같이 땅을 완전히 뒤덮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잎은 잎자루가 없이 마주나기 하며 길이 8~20mm로서 대개 피침형이며 끝이 뾰족하다.
꽃은 적색, 자홍색, 분홍색, 연한 분홍색, 백색 등 여러 가지 색이 있으며,
주로 4월에 피며 9월까지 보이기도 할 정도로 개화시기는 넓은 편이다.
꽃자루는 꽃받침과 더불어 선이 없거나 간혹 있고 줄기 상부에서 갈라진 3~4개 가지 끝에 꽃이 1개씩 달린다.
열매는 삭과이며 종자는 각 실에 1개씩 들어 있다.
꽃말은 온화.
이사님 Opening... (빠른 쾌유(快癒)를....)... (09:58)
3구간 지기 인디언밥(?) & 하비님
(화장실 배경이 영~ 다음부턴 화장실 앞이 아닌 다른 곳에서 인사를 하기로...)
어명정 가는 길 출발... 보현사 앞을 지나 간다 ...(10:06)
보현사 普賢寺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 소속 사찰.
건립초기에는 보현산사 지장선원(普賢山寺 地藏禪院)이다.
일반적으로 산명을 사명으로 쓰면서 또 다른 사명을 쓰기도 한다.
즉, 산의 이름이 보현산이므로 보현산사라하고 사명은 지장선원이라 하였다.
[건립]
굴산문의 개산조인 범일국사(梵日國師)의 법(法)을 이은 낭원대사(朗圓大師)에 의해 개산 된 사찰이다.
굴산산문의 개산조이고 낭원대사의 스승인 범일국사가 889년에 입적하자
부도와 비석을 세우고는 민규 알천의 지원 아래 보현사에 주석하게 되었다.
보현사의 창건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으나 적어도
범일국사가 입적하는 889년에서 924년 사이에는 창건되었음을 알 수 있다.
[현]
경내에는 지정문화재로 낭원대사 오진탑(보물 제191호)과 낭원대사 오진탑비(보물 제192호),
대웅전(강원도문화재자료 제37호)이 있다.
이외에 법당 안에는 조선 후기에 조성된 목조삼존불이 봉안되어 있고,
법당 앞에는 3층 석탑재, 석등 부재, 사자석 등이 있다.
보현사의 법맥에 대하여 낭원대사 이후에는 알려진 바가 없다.
그러나 강릉시립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미타계좌목(彌陀契座目)』에 의하면
승속·남녀·반상이 모두 동참할 수 있는 보현사의 향도조직(香徒組織)이 결성되었음을 볼 수 있다.
죄목은 조선 숙종 7년(1681)과 45년(1719), 순조 19년(1819)과 28년(1828),
헌종 13년(1847)에 각기 서문과 계칙 등이 작성되고 있다.
이는 보현사가 1681년 이후에 계속하여 지역주민과 함께하는 사격을 보여주고 있는 면에서
조선후기 사찰의 사상적 계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라고 할 수 있다.
또한 관음사에는 ‘건륭오십구년갑인(乾隆五十九年甲寅)
/ 팔월일강릉보현사(八月日江陵普賢寺)
/ 대종기(大鐘記)’ 라 주조된 범종이 있는데,
건륭 59년은 1794년(정조 18)으로 『미타계좌목』에서도 보이듯이
보현사의 법등이 계속되고 있음을 유물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05년 강원문화재연구소에서 사찰 동측의 식당선원 예정부지를 발굴조사한 결과
10세기경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해무리굽 청자 편과 금동풍탁 11점,
그리고 조선시대의 분청사기와 백자편들이 다수 출토되었다. 사찰 입구에는 조선 후기에 건립된 부도 20기가 있다.
보현사는 강릉 지역에 현존하는 최고의 사찰로서 굴산산문의 법맥을 잇는 사찰이다.
어명정 길은 초입부터 된비알의 연속이다.
어명정을 지나 술잔 바위까지는 오름길이다.
첫 번째 휴식처에 도착해서...(10:22)
백두대간 능선에 쌓여 있던 눈들도 이젠 다 녹고 ...
오랜만에 뵙는 레이니어님 부부
술잔 바위 까지는 계속해서 오름길....
소나무에 붙어 있는 만들다 실패한 500원짜리 단팥빵(?) 같아 보이는 버섯
노랑제비꽃 / 반칠환
노랑제비꽃 하나가 피기 위해
숲이 통째로 필요하다
우주가 통째로 필요하다
지구는 통째로 노랑제비꽃 화분이다
꽃밭에 앉아....
바위에 앉아...
어명정 도착... 어명정과 술잔 바위에 흩어져 점심 식사를 한다... (11:28)
강릉의 둘레길인 ‘바우길’ 구간 중에 ‘어명을 받은 소나무길’이라는 별난 이름을 가진 코스가 있다.
대관령 아래 성산면 보광리에서 명주군왕릉까지 12.5㎞ 산길이다.
이 길이 특별한 이름을 가지게 된 것은 광화문 복원과 관계가 깊다.
지난 2007년 광화문 복원 때 기둥으로 쓸 소나무를 여기서 벌채했다.
길 중간에 있는 ‘어명정(御命亭)’은 그 사실을 알려주는 상징적 시설이다.
아름드리 금강소나무를 베어내면서 옛 예법에 따라 ‘어명을 받아 벌채한다’는 것을 알리는
고유제를 지내고, 베어낸 그루터기에 정자를 세워 벌채의 뜻을 기렸다.
한국인에게 소나무는 인생목(木)이면서 민족의 나무이다.
태어나면 소나무 가지로 금줄을 쳐 액운을 막고, 소나무 집에서 살다가 죽으면
소나무로 만든 관에 육신을 담아 솔숲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희로애락, 생로병사를 함께해 온 소나무 이야기로 말하자면 강릉은 화수분 같은 곳이다.
해풍과 왜적의 침입을 막아 줬다는 바닷가 송정의 울창한 해송림에서부터
신라 화랑들이 심고 가꿨다는 한송정 송림, 오죽헌의 율곡송(松) 등등.
소나무 이야기는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도처에 즐비하다.
오대산 자락 첩첩산중, 부연동 마을에는 호랑이 전설을 간직한 ‘제왕솔’이 위용을 뽐내고,
100년 전에 뿌린 씨가 400㏊ 국내 대표 소나무 군락지를 이룬 대관령 솔숲은
산림청에서 아예 ‘문화재 복원용 목재 생산림’으로 지정해놓고 있을 정도다.
율곡은 동시대 강릉 향리의 어른이었던 임경당(臨鏡堂) 당주 김열(金說)이
집 주변에 선친이 심고 가꾼 솔숲이 후대에 모두 베어 지지 않을까 걱정하자
“선대에 손수 심은 소나무에 잠깐만 눈길이 스쳐도 어버이 생각이 불현듯 솟구칠 텐데, 어찌 함부로 범하겠냐”며
저 유명한 호송설(護松說)을 남겼다.
그런 강릉 소나무가 서울 광화문 광장 산책로에 조경수로 심어졌다.
산책로 사이로 광화문과 북악이 한눈에 들어오는 절묘한 배치다.
광화문 기둥에 먼저 사용된 어명정 소나무와 짝을 이뤄 대한민국 심장에서
다시 천년을 살 강릉 소나무가 더없이 귀하고 자랑스럽다.
술잔 바위를 향하여 힘차게 오른다
생강나무꽃
생강나무꽃과 산수유꽃은 3~4m 이상 떨어져서 보면 사실상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다.
이처럼 거리가 있을 때는 나무줄기의 표면 모습으로 구별해야 한다.
꽃 가까이 접근해서는 꽃의 생김새와 향기로 구별해야 한다.
1. 나무줄기의 표면
・산수유: 갈색의 나무껍질이 거칠고 갈라지거나 보풀이 일어나 있음.
・생강나무: 줄기는 회색이고 꽃이 핀 가지 끝은 녹색이며, 줄기는 보풀이 없이 매끄러운 편임.
2. 꽃의 생김새
・산수유: 한 송이 안에 아주 작은 꽃(수술 모양)이 방사형으로 퍼져있고 꽃자루가 좀 길다.
・ 생강나무: 꽃이 곱슬머리 모양(작은 공 모양)으로 몽글몽글 모여서 있고, 수술의 길이가 산수유에 비해 짧다.
3. 꽃의 향기
・산수유: 향이 매우 약해 있는 듯 없는 듯하다.
・생강나무: 달콤한 향이 매우 강하게 난다.
• 이 둘은 식물 분류체계상 다음과 같다.
층층나무목 → 층층나뭇과 → 층층나무속 → 산수유
녹나무목 → 녹나뭇과 → 생강나무속 → 생강나무
진달래 / 시인과 촌장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가슴으로 스몄으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그대 타는 가슴으로 스몄으면
4월 목마른 4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4월 목마른 4월 하늘 진홍빛 슬픔으로 피어
그대 돌아오는 길 위에서 흩어지면
나 다시 진달래로 피어 피어 피어
진달래꽃 / 최문자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이 나를 지나 내 푸른 노트 다 태워 버린 것
가장 찬란한 사랑은 언제나 다 타고 난 가루에서 빛나는 것
한 번의 뜨거움으로 죽도록 꽃은 가루가 되겠지
한 사나흘 비 뿌리는 동안 꽃이 물이 되는 거
그 물이 불을 끄고 돌아서서 다시 푸른 노트가 되는 것
괜찮아, 괜찮아 뒷산에 불 지른 것
불 지르고 돌아서서 진분홍 물이 되는 거
알 수 없는 그 고단했던 사랑 꽃잎 날리는 모든 이별 괜찮아
습지(濕地) 지형 근처를 지나간다.
술잔 바위와 대공산성 갈림길...(11:54)
강릉대공산성 江陵大公山城
강원도 강릉시 성산면 보광리와 사천면 사기막리에 걸쳐 있는 고대 산성.
백제의 시조 온조왕(溫祚王)이 도읍지로 정하고 군사를 훈련시키기 위하여 축조하였다는 전설과
발해의 대씨(大氏)가 쌓았다 하여 대공산성(大公山城)이라 불린다는 전설이 있다.
또한 가까운 곳에 보현사가 있어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도 불린다.
전설로 전해 오는 백제의 온조왕이나 발해의 대씨가 쌓았다는 설은 민간에 전하는 이야기 거나 오류인 것으로 보인다.
5세기 이전에 이 지역은 고구려 영역이었고 백제는 이곳까지 힘이 미칠 수 없었으며,
5세기부터 시작된 신라와 말갈의 접경 지역은 니 하성(泥河城)으로 판단하는 견해도 있으나
발해의 대씨가 축조한 성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9세기 말엽까지 신라와 말갈이 대치한 곳이 이하였을 것이라는
견해를 인정한다고 해도 이 성과 발해 대씨와의 관계는 성립될 수 없는 것이다.
오히려 조선시대 지리지들이 보여 주는 보현사의 존재와 관련한 명칭으로 보현산성이 더 타당성 있어 보인다.
한편, 산성에 대한 옛 기록은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에
처음 보이며 ‘파암산석성(把巖山石城)’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 후의 지리지 기록에서는 모두 ‘보현산성(普賢山城)’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서는 ‘대공산성(大公山城)’으로 기록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문화유적총람(文化遺蹟總覽)』에서 이 성을 ‘대공산성(大公山城)’으로 칭한 것은 오류라고 생각된다.
이를 인정하고 비판 없이 문화재지정 명칭으로 삼은 것도 잘못이며 바로잡아야 할 것이다.
보현사(普賢寺)가 신라 말 굴산사의 말사로 개창된 후 본 산성이 위치한 산의 명칭이 보현산으로 불렸으며,
이에 따라 모든 지리지들이 ‘보현산성’으로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보현사와 깊은 관련이 있는 성곽은 아니라 할지라도 그렇게 부르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판단된다.
[위치]
대공산성(大公山城)은 강릉시에서 서쪽으로 약 20㎞ 지점에 위치한 높이 2m, 둘레 3㎞ 정도의 석성(石城)이다.
보현사에서 서북 방향 약 2㎞지점, 해발 1,131m의 곤신봉(坤申峰)에서 동북 방향으로 약 1.5㎞ 지점에 위치해 있다.
노인봉에서 곤신봉, 능경봉으로 이어지는 태백산맥에서 동쪽으로 돌출된 944m의 보현산에 타원형으로 축조되어 있다.
이 성은 남쪽의 제왕산성, 동남 방향의 칠봉산성, 명주성 등에 둘러싸인 고대산성의 거점 성으로 판단된다.
[생활민속적 관련사항]
성의 중심에서 북쪽지역 저지로 내려간 곳에 우물 2곳이 있고,
남쪽의 우물물이 북서쪽으로 흘러내리고 그 위 북쪽에 건물지로 추정되는 곳이 있다.
성의 정문으로 생각되는 동문 근처에 석원(石垣)을 갖춘 우물이 있으며,
성안의 수원은 풍부하며 우물 근처에 일부 늪지대가 있다.
동문 입구에 2m 간격으로 주초석이 앞쪽에 있는데 95 ×104㎝의 장방형 석재이다.
석재는 성문 안쪽에서 22㎝ 정도에 2개의 둥근 문추공(門樞孔)이 있는데 지름 25㎝, 깊이 3~5㎝이며
바깥쪽으로 가로 17㎝, 세로 9㎝, 깊이 3㎝의 네모진 구멍이 2개씩 있어 성문 시설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건물지로 보이는 평탄지가 곳곳에 있으며,
평탄지에서는 고려~조선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많은 양의 토기 편과 와편, 백자 편, 그리고 청자편도 일부 산재해 있다.
[현황]
을미의병(乙未義兵) 때 민용호(閔龍鎬) 부대는
1896년 1월 13일 원주에서 일어난 이후 약 10개월간 대일항전을 하였다.
민용호 부대는 원주에서 강릉으로 동진하였으며, 이 과정에서 보현산성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민용호는 정부군이나 일본군과 평지에서 맞서기보다는
산악 지대인 관동 지방의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였던 것이다.
민용호 부대는 1896년 1월 17일 원주를 떠나 1월 29일 대관령을 넘어 강릉성 밖의 구산까지 행군하였으며,
2월 1일 강릉에 입성하였다. 그 후 원산으로 진출을 시도하였으나 실패하고 4월 초순에 강릉으로 귀환하였다.
관군의 공격으로 5월 24일 강릉에서 물러나 동해안을 따라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보현산성이 을미의병 때 사용되기는 하였으나
격전을 치러 낼 정도로 의병의 근거 성(城)으로서는 활용되지 못하였던 것 같다.
[의의와 평가]
자세한 연구가 이루어지지 못하여 고대사 속에서 이 성곽의 비밀을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강릉 지역의 가장 오랜 산성이며 영동과 영서를 잇는 대관령 지역에 축조되었던 고대 산성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1979년 5월 30일 강원도 기념물 제2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술잔 바위에 도착해 점심 식사를 한다...(12:02)
식사 후 술잔 바위에서 망중한...
아름다운 소나무 군락지(群落地)
하비님이 가져온 맛있는 두릅을 올해 처음 맛보았다. 인디언 밥님이 가져온 약밥도 꿀 맛이었다
어명정에서 식사를 한 후미팀들 도착...(12:54)
술잔 바위에서 허브님이 좋아하는 단체 사진 한 장 남긴 후 오후 발걸음을 시작한다.
이제부턴 내리막 길이라 모두 룰루랄라 즐겁게 걷는다.
이곳을 걸어가는데 봄인지~가을인지 계절이 혼란스러웠다.
구멍이 뚫어져 있는 독특한 바위...
산불 감시 초소 도착...(13:36)
바우길의 봄처녀들(?)... 령관엄마. 에셈,새치미님
인생을 달관(達觀) 한 듯 한 표정의 밥 아자씨...
마지막 휴식...(14:13)
세트장 같은 풍경
도착해서 스탬프를 찍는다...(14:40)
수선화에게 / 정호승
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눈이 오면 눈길을 걷고
비가 오면 빗길을 걸어가라
갈대숲에서 가슴검은도요새도 너를 보고 있다
가끔은 하나님도 외로워서 눈물을 흘리신다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고
네가 물가에 앉아 있는 것도 외로움 때문이다
산 그림자도 외로워서 하루에 한 번씩 마을로 내려온다
종소리도 외로워서 울려 퍼진다.
*
정호승 시인은 인간의 실존적인 본질은 '외로움'이라고 한다.
가슴검은도요새. 하느님도, 새들도, 산 그림자 지는 것도,
종소리도, 모두 외로운 것이라고
홀로 핀 상징 '수선화'를 위로 해준다.
숙명적인 인식을 통해 긍정을 노래하는 시다.
명주군왕릉 (溟州郡王陵)
강릉김씨의 시조인 명주군왕 김주원(金周元)의 묘.
신라 태종무열왕 5대 손으로 알려진 김주원이 명주군왕(溟州郡王)으로 봉(封)해졌기 때문에 왕릉이라고 한다.
신라 선덕왕(宣德王)이 후사(後嗣)없이 죽자, 신하들은 왕족 중에 김주원을 택하여 왕위에 추대하려고 했다.
그러나 마침 경주에 내린 큰 비로 강을 건너지 못해 김주원은 회의에 참석지 못하게 되었다.
신하들은 “하늘이 비를 내려 김주원을 이 회에 참석지 못하게 한 것은
하늘이 김주원을 왕위에 오르지 못하게 함이니 다른 사람을 뽑자.”라고 하여 김경신(金敬京:元聖王)을 즉위케 하였다.
원성왕은 왕위에 오른 후 김주원을 강릉에 보내 명주, 삼척, 울진, 평해 등
영동지방 일대를 식읍(食邑)으로 주고 명주군왕에 봉하였다고 한다.
강릉 성산면 보광리 삼왕동의 북쪽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임영지(臨瀛誌)에 의하면 김주원의 묘소는 한때 실전(失傳)하였다가
김주원의 후손인 김첨경(金添慶)이 조선 명종(明宗) 때에 강릉부사로 와서 찾아냈다고 한다.
[현황]
현재의 묘역은 봉분 아랫부분에는 긴 사각형의 둘레돌을 두른 묘 2기(전:왕릉, 후:왕비릉)가 앞뒤로 배치되어 있다.
묘 앞에는 "명주군왕 김주원묘(溟州郡王金周元墓)"라고 새긴 묘비가 있으며,
좌우에는 망주석, 문인석, 동물 석상이 한 쌍씩 세워져 있다.
동네 입구에는 신도비(神道碑)와 재실(齋室)이 각각 있다.
1971년 12월 16일에 강원도 기념물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강원도 기념물로 재지정되었다.
명주군왕릉 홍살문을 지나면서 어명정길 발걸음을 마무리한다...(14:43)
홍살문(紅─門)
홍살문(紅살門), 홍전문(紅箭門), 홍문(紅門), 정문(旌門)은 대한민국의 전통 대문(大門)으로,
설치한 지역이 신성한 곳이거나 구격(具格, 주 격식이나 예절을 갖춤)이 맞는 장소임을 나타내기 위해 표지로 세우던 문이다.
이름을 직역하면 '붉은 화살 문(Gate with Red Arrows)'이라는 뜻이다.
기록상 삼국시대부터 존재하는 것으로 확인되며, 현재 남아있는 홍살문들보다 과거의 홍살문들은 그 크기가 매우 컸다.
종로거리에도 거대한 홍살문이 있었다.
주로 왕릉과 같은 묘지나 향교. 서원, 궁궐 및 관아 등의 정문으로 설치하였으며
드물게 용주사처럼 절에 있는 것도 있고 대구 약령시처럼 거리에 설치한 경우도 있다.
형태를 보면 나무로 만든 기둥과 살에 붉은색을 칠하고 문의 상단에도 붉은 화살(홍살)들이 붙었고
가운데에 한국식 태극무늬를 새겨 붙인다. 태극무늬를 지나는 홍살들은 서로 꼬여 당파 모양을 하였다.
붉은색으로 칠함은 동짓날 팥과 같이 붉은색이 양기를 띠어 귀신과 액운을 물리친다는 뜻이고,
윗부분을 화살로 장식함은 잡귀를 화살로 쏘아 없애버린다는 뜻을 담는다.
일반 문과 달리 문짝이 없고 '문 문(門)'자 모습을 하였다.
용도도 일반 문과는 다르게 장소의 안팎을 구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어떤 특별한 지점으로 도달했음을 명시하는 것이다.
또 홍살문 옆에는 신성함을 위하여 하마비(下馬碑),
즉 통행인의 신분과 상관없이 '타고 있던 말에서 내려 걸어 지나가라'고 지시하는 내용을 새긴 비석을 세우는 곳도 있다.
이곳에서는 귀천과 상관없이 왕이나 황제조차도 말에서 내려야 한다.
April People / Rod McKuen April people, try to smile / 사월의 사람들, 미소를 짓네요 even when they're sad / 심지어 그들이 슬플 때에도요 'cause they know / 왜냐하면 그들은 알거든요 behind the rainbow / 무지개 뒤엔 things can't be that bad / 그렇게 나쁜 일은 없다는 걸 April people, all are lonely / 사월의 사람들, 모두 외로워요 that's the general rule / 그게 일반적인 일이지요 more than once / 한 번 이상씩은 a lonely heart / 외로운 마음이 has made an April Fool / 사월의 바보를 만들지요 Born in April, sad of heart / 사월에 태어나서, 슬퍼서 you're a lonesome child / 당신은 외로운 아이 you could make the sun shine / 그 반쪽의 미소만으로도 with even half a smile / 태양을 반짝이게 하네요 April people, live for love / 사월의 사람들, 사랑을 위해 살아요 nothing else will do / 어느 누구도 so come along / 그보다 잘 하진 못해요 take my hand / 그러니 제 손을 잡아요 I was born in April too / 저도 사월에 태어났거든요 Born in April, sad of heart / 사월에 태어나서, 슬퍼서 you're such a lonesome child / 당신은 외로운 아이 you could make the sun shine / 그 반쪽의 미소만으로도 with even half a smile / 태양을 반짝이게 하네요 April people, live for love / 사월의 사람들, 사랑을 위해 살아요 nothing else will do / 어느 누구도 so come along / 그보다 잘 하진 못해요 take my hand / 그러니 제 손을 잡아요 I was born in April too / 저도 사월에 태어났거든요 * 평생을 혼자 살며 고독을 노래했던 음유시인 Rod McKuen 로드 맥퀸은 다채로운 경력을 지닌 아티스트이다. 시인, 작사 작곡가, 가수 등 학자와 음악인으로 활동을 했다. 불어에 능통하여 샹송 가사를 영어로 번역하기도 했고 팝은 물론 클래식 분야의 심포니나 오케스트라 음악까지 영역을 넓혔다. 또한 사회 개혁에도 관심을 가져 1970년 남아프리카 투어 때는 흑백 좌석을 요구하기도 하여 후일 Sammy Davis, Jr., Ella Fitzgerald 같은 흑인 아티스트들의 공연을 열어주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에이즈 퇴치, 어린이와 노인을 위한 기금을 마련하는 등 인도주의에 대한 노력으로 상을 두 번이나 수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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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와~~반가운 걷자님의 후기를 보았어요~
잠깐,,일 좀 보고 다시 올게요~^^
어?.누가 왔다 갔지?....
오랫만에 만난 반가운 얼굴들! 과 함께,,
쨟아서 더 아쉽고,,
붙잡고 싶은 봄을 맘껏 느끼고 안을 수 있었던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소중한 시간을 고운 앨범으로 남겨주신 걷자님
감사합니다!! ❤️
술잔바위 단체사진
넘 좋으네요 ^^
어깨 얼른 나으시길 🙏 ^^
하 수상한 계절....
봄인가 싶었는데....봄 날은 가고 있는 듯 했습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들도 만나고
두 분과 함께 걷고 맛있는 점심을 함께 할 수 있어서 즐거웠습니다.
문득, 허브님이 단체 사진을 좋아한다는 생각이 나..집합 한번 시켰었습니다...
고맙고 감사드립니다.
(어깨...이젠 저도 제 나이를 심각하게 생각 할 때가 온 것 같았습니다...ㅎ)
딩동~다시 왔습니다~^^
맞아요~저도 사진 찍을때
화장실이 배경이 되는것이 영 안 예뻤는데
다음에 방향을 틀어 인사~?^^
4구간지기님의 부득이한 사정으로 3구간을 함께 못했네요~
휘리릭 둘러 본 사진들 이제사
찬찬히 즐겨요~
숨이 찬 듯 보이지만
얼굴엔 즐거움이 가득
저도 행복해져요~
허브언니의 댓글을 보아하니
어깨에 탈이 생기신 듯
얼른 나으시고
수고 많으셨어요~~^^
참내..일요일 아침부터 뭐가 그리 바쁜거요?...테라씨..
혹시나 하고 참석했더니....
역시나 테라씨가 불참...
구간 점검에 동참했다니....용서해 주기로...
그러고 보니 곧, 테라씨 구간이 다가 옵니다?
5구간~ 선두에서 바람 처럼 걸어 갈 테라씨를 상상해 보면서..ㅎ
감사드립니다.
@걷자(서울/강릉) 7시엔 아침을 꼭 드시는 어떤사람 늦은 아침 차려 주느라 ㅋㅋ
4구간 짱똘님도 무리하시면 안되는 회복기간이라
의리로 뭉쳤구요~
넵~다가오는 5구간~~
2구간 오전걸음을 빼고 경호쪽 리본보완도 했더랬죠
그런데 어떤 천사분들이
해파랑길 점검을 하시며
5구간 낡은 리본도 제거해주시고
완벽하게 점검을 해주셨다죠~
누구신지는 나중에 알려드릴게요~^^
5구간은 참 예뻤다~^^
요놈 참 이뻣습니다. 노랑제비꽃
또 보고 싶네요. 요놈.
걷자님 후기는 늘 좋네요. 노랑제비꽃 사진 제가 한장 데려갈께요
인상 좋은 노간주나무님....
함께 하는 발 걸음이 즐거웠습니다.
열심히 참석하셔 좋은 사람들과 즐겁게 지내시기를....^^
부상중임에도 선뜻 나서서 앞장서주시는 걷자님께 무한 감사를~~
봄이 언제였냐는 듯...제법 육수(?)가 흐르던 날씨였습니다.
칭런님과 걸으면서 집에 가면 옷 정리 부터 해야겠다고 말했었습니다.
함께한 발 걸음 즐거웠습니다.
인대 파열로 어깨 수술해 본 사람입니다. 정말 마이 아파요.
인대를 계속 사용하시면 악화되니 앞으로 다 나을때까지 카메라 없이 그냥 나오셔서 함께 걸어요.
아프신데도 바우님들 이쁜 추억을 쌓아 주시려고 사진 찍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얼른 나으셔요~ 걷자님.
어깨 부상은 시간이 약인 것 같습니다.
치료 받으면서 조심~조심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신경 써 주심에 감사드립니다.
함께 한 발 걸음 즐거웠습니다.
오랜만에 뵙는
반가운 바우님들과 함께
술잔바위에서 함께 찍은
단체사진은
몇번을 봐도 정말 보기 좋네요~~
누군가 술을 따라주었나요?
비가 오지도 않았는데
바위 속 술잔에 채워진 술 한 잔과
건배하는 행운도 얻어 갑니다.
이렇게 좋은 추억과 기억을
남겨주신 걷자님께 감사드립니다^^
바우길에 참석해 아침에 령관이네를 보면 기분이 좋다는....
두 분이 걷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아름답습니다.
걷기 좋은 계절입니다.
령관 엄마와 손 꼭(?) 잡고 행복하게 걸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