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망했습니다.
홍콩에서 발이 묶여 강제로 이곳에서 관광하며 시간을 보내야
할 것 같습니다.
인도 마드라스(첸나이)를 떠나 오전 10시에 홍콩에 도착했습
니다만 비행기 연결편 문제로 새벽 1시에나 홍콩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할인티켓이라 어디 하소연도 못할 것 같고...
항공사측에선 급한 승객 연결편 마련하려 분주히 뛰어다니면서
뭐 죄송하다고 연신 고개 숙이지만... 음무하하하.... 나는 괜찮다.
시간이 남아도는 사람이다. 안전 운항이 중요하니 충분히 이해할
뿐만 아니라 호텔만 제공해주면 일박까지도 가능하도다.
수화물을 다음 뱅기까지 그대로 옮겨준다니 별도로 귀찮게 챙길
필요도 없이 걍 환승구에서 입국대로 간 뒤 10분반에 유유히
공항을 빠져나왔습니다. 16시간의 홍콩 관광이로다.
자고로 갑작스런 변수에 얼마나 잘 대처하느냐에 따라 여행이
고행이 될 수도 있고 자유를 누릴 수 있다는 공자님의 말씀인가,
신밧드의 말씀인가 뭔가 하는 것도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홍콩 지도는 물론이고 공항에서 나가는 법도 모르는
그야말로 무대포 관광올시다.
공항의 환율이 좋지 않으니 일단 100달러만 환전한 후 물어 물어
MTR홍콩역까지 가는 특급행에 몸을 실었습니다. 왕복으로
끊으니 조금 할인받아 약 170 홍콩달러(약2만3천원)군요.
홍콩은 공항에서 시내까지의 교통편이 굉장히 단순해서
무대포도 통할 것 같습니다. 공항에서 홍콩역까지는 약 25분 정도
걸린다고 합니다(버스는 1시간)
홍콩역앞. 촌놈이 졸지에 홍콩엘 와봅니다. 그것도 공짜로다가....
공자님, 신밧드님 감사합니다. 날씨까지 쥑인다. 걷기 딱
좋은 날씨다.
하지만 이층 버스 빼고는 서울과 다를 바 없어... 조금 실망입니다.
게다가 이곳 물가는 거의 코펜하겐 수준일 듯 합니다.
센터럴 역 근처의 쇼핑몰로 왔습니다. 야들은 무슨 컴플렉스가
있는건지 뭐든지 어리어리하게 높고 크군요. 아니면 좁은 땅을
잘 지혜롭게 잘 활용하는 것인지...?
그러고보니 어제 아침부터 지금까지 거의 24시간 동안 단식을
한 셈입니다. 어제 첸나이 공항 라운지에서도 와인 한 잔으로
여유만 부렸는데 .... 지금은 그게 아니올시다.
사이드 디쉬로 나온 빵.
웬만큼 배고파도 돈까지 주면서 빵을 사 먹는 일은 거의
없지만.... 지금은 돌멩이도 꿀꺽할 수 있습니다. 한 접시 더 달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오늘의 메인 요리, 홍콩 랍스터.
US 1,000달러의 출장비를 받았는데 일주일 동안 인도에서는 50
달러도 사용하지 않은 탓에... 저는 지금 엄청난 현금 부자올시다.
그도 그럴 것이 웬만한 것은 말린슨, 제이슨 박사가 자기들 경비로 제 영수증까지 쓱 싹.... 하긴 뭐 저도 영국팀의 주요(?) 초청 인물이었던 관계로...
훌륭하도다.
인생, 뭐 있나. 이 식당이 자랑하는 최고급 부르고뉴 백포도주까지
한 잔.
은은한 샴페인 골드색에 아주 적당한 탄닌과 풍부한 아로마.
역시 화이트 와인 = 부르고뉴가 정답인 것 같습니다.
낮술은 역시 적당한 탄닌의 백포도주로다가...
맨날 혼밥에... 혼술입니다만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여기는 마... 홍콩이다.
오늘의 소소한 고민은, 어떻게 하면 오늘 하루에
남은 출장비 US 950 달러 중 1/3이라도 합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것.
하지만 허걱걱... 하필 오늘이 토요일, 은행이고 뭐고 다 문닫아
환전이고 나발이고 완전 망했습니다. 그나마 홍콩공항 입국장에서
100달러라도 환전하지 않았으면 국제 거지될 뻔.
결국 HSBC의 자동 인출기에서 개인카드로 약간의 현금서비스를
받아 ... 세어가며 아껴쓰야 하는 곤궁한 신세가 됐습니다.
그래도 좋다.
캐세이패시픽과 말레이 항공을 포함한 원월드 가맹 항공사들
모두 완전 부자되세요.
아직 소신에겐 12시간이 남았습니다만 공항에서 받은 지하철 지도
하나 딸랑 뿐...짧은 시간을 알차게 보내기 위해 궁리하다 결국
여행사로 들어가 가이드 받기로 했습니다.
쇼핑 프로그램 지역 탐방, 먹방, 야경 투어 등등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쇼핑과 먹방엔 관심없으니 지역 탐방을 선택했습니다.
결론적으로 아주 탁월한 선택이었습니다. 가이드님이 얼마나
유쾌하고 성실한 지 그의 직업정신에 감동받을 정도였습니다.
명함까지 챙겼습니다.
(당연하지만.. 이것은 마.... 제 개인 카드로 결제했습니다)
버스타고 이동한 곳. 무슨 영화 촬영지로 유명한 곳인데 이름은
가물가물. 가이드님 설명에 따르면 이 동네가 어마무시한 부촌이
랍니다.
세상에나... 구두신고 넥타이에 정장차려입고 서류가방까지 들고
한 대 구브며 이 아름답고 섬세한 해변을 거니는 몰지각한 사람이
저 말고도 두 명이나 더 있습디다. 언어와 피부색은 다르지만 우린
영혼의 민폐-브라더스다.
스탠리 마을. 시원하게 한 잔 꺽는 중이올시다.
스탠리 광장. 날씨에 어울리지 않을 듯하지만 묘하게 어울리는
블루지한 기타의 음색과 보컬의 음색이 우리나라의 이중산
선생님과 참으로 오버랩되었습니다. 이 분께서 cd를 판매했다
면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구입했을 것인데.... 아쉽게... 데모조차 없더군요.
10w 내외의 조그만 앰프에서 울리는 블루지한 음색에 뭍어나오는 낙천, 낭만, 여유 그리고 그것마저 스스로 즐기는 연주와 낮은 목소리에서 내공이 장난 아니라는 것이 딱 느껴지더군요.
지역 아마추어 공연팀의 리허셜.
솔직히 춤 공연은 잘 모르겠고 음악 만큼은 매혹적이었는데
과연 이것을 CD로 구입할 수 있을지 궁금해서
물어보니 객석에 있는 요.... 음악감독님을 소개시켜주더군요.
이 곡이라는데.... 혹시 아시는 분?
스티비 원더의 Lately와 아주 비슷한 느낌의 곡입니다. 제 핸드폰은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 검색 불가....
음악감독님께서 검색해서 보여준다음 이메일로 유투브 주소를
보내 주시겠다고는 했는데... 홍콩 소식은 언제 당도할까나.
카페 안에는 각국의 지폐에 메모를 담긴 여행자들의 흔적이 빼곡.
저도 지폐 한 장 기증하면서 흔적을 남길까 하는 생각을 아니했던
것은 아닙니다만... 오늘은 주머니 사정이 아주 곤궁한 관계로
아쉽게 ..... 패스...
담에.. 마, 내 지폐 듬뿍 발라주마. 오늘은 우짜다보니 내 형편이 ... 좀 그렇따.
여행의 멋을 아는 멋진 놈들... 행동이나 어투에서 집안 교육까지
잘 받은 티가 팍팍나는 댄디한 친구들 입죠.
옅은 고동색 맥주 아주 일품 올시다. 술 못마시는 척 천천히 마시는
중이었습니다만 귀국하면 박스로 사서 나발 함 불어야 겠습니다.
웃고 즐기는 동안, 벌써 이 도시의 조명이 켜졌습니다.
그렇다면 이제... 야경의 해안가로 이동합시다.
첫댓글 ㅋㅋㅋ 너무 재밌어용^^*
서브 직업으로 파워블러거 하셔두 될듯 합니다
넘 잼나게 봤습니다^^
와우~
초밀도 홍콩!!!
와우~!
랍스타와 백포도주~! (왕년에 한때는 즐겨하여었었던 포도주 생각이~)
홍콩스러운 홍콩 입성
홍콩스러운 홍콩의 젊은이들 모습.
바로옆에서 나를 하루 세번은 웃기기 위하여 들려주는
시트콤같은 이야기
잼나게 읽었습니다.
아.~ 복근운동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