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는 함축된 인생이라고 한다.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경기가 길던 짧던 간에 그 속에 무한한 실패와 승리가 함께 함축된 참으로 인생을 축소해 놓은 작품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래서 인간만이 그들만의 리그를 즐기는 것이 아닐까. 스포츠는 하지만 불쾌한 상황도 많이 드러낸다. 특히 결과를 중시하는 문화권에서는 더욱 그렇다. 경기 전체를 이끌다가고 한순간 실수로 패배하면 그 과정에서 이뤄낸 모든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고 만다. 스포츠는 인생의 축소판이기에 스포츠를 보면 그런 순간이 많이 연상될 수밖에 없다.
한국 시간 어제(2022.9.18) 새벽 영국에서 벌어진 프리미어리그 토트넘과 레스터 시티와의 경기에서 참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결과적으로 토트넘이 레스터 시티에게 6대 2 대승을 거두었다. 그동안 부진을 보였던 손흥민 선수가 선발에서 제외된채 후반에 투입됐으며 13분만에 해트 트릭이라는 대기록을 수립하면서 그동안 부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영국 매체들은 손흥민의 부활을 알리는 엄청난 보도로 자신들의 최고의 리그에서 지난시즌 득점왕의 귀환을 대대적으로 알렸다. 그동안 골을 기록하지 못해 마음 고생이 심했던 손흥민 선수이기에 그를 축하하고 싶은 마음들이었을 것이다.
한국도 그렇지만 축구의 종주국인 영국에서는 승자든 패자든 항상 언론앞에 선다. 그것이 축구팬들을 위한 일종의 팬 서비스이다. 그리고 바둑의 복기와도 같은 것이다. 승리의 원인과 패배의 원인 그리고 무엇이 이번 승패를 결정지었는가 하는 질문앞에 승자와 패자는 서게 된다. 승자는 항상 웃음 가득차고 자신있게 승리를 만끽한다. 그렇지만 패자는 슬프고 지쳐있다. 그런 패자의 말이 오히려 더 감동적으로 다가온다. 패자지만 그래도 상대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패배원인을 밝힐 때 그들은 패자지만 결코 패자가 아닐 수 있다. 아니 오히려 승자보다 더 승자다운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영국 프로축구가 왜 강한지 아는가. 바로 그들은 승자를 축하하고 패자를 격려하는 그런 문화가 있기 때문이다. 승자는 겸손하고 패자는 비굴하지 않는 것 그것에서 한국의 선비정신을 읽을 수도 있다. 그래서 영국 프로축구가 세계에서 가장 으뜸이라고 평가받는 것일 것이다. 어제 경기에서 패자인 레스터 시티의 제임스 메드슨 선수는 패배후 가진 질문에 "전반까지는 대등한 경기를 펼쳤다. 손흥민이 출전하지 않기에 다소 안도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우리팀이 이번에 토트넘을 이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후반전에 손흥민이 몸을 풀기에 이번 경기도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흥민은 그 존재만으로 상대를 제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는 얼마전 토트넘에서 나를 영입하려고 했다고 알고 있다. 하지만 나는 나의 팀을 떠나고 싶지 않았다. 비록 팀 순위에서는 뒤로 밀리지만 이곳에서 역사를 쓰고 싶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손흥민과 같은 팀에서 있고 싶다. 그와 같이 경기를 해보고 싶다. 그는 실력도 실력이지만 인성이 대단하지 않은가. 실력이 좋은 선수는 많다. 하지만 인성이 멋진 선수는 아주 드물다." 레스터 시티의 로저스 감독은 "손흥민은 환상적인 선수이다. 그를 제대로 막지 못한 것이 패배의 주원인이다. 나는 이번 경기로 경질될 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인정한다. 완벽한 패배였다."
프리미어리그가 세계 프로축구에서 가장 뛰어난 리그인 것이 바로 이런 것이다. 적군의 대장이 상대방을 높이 평가하고 적군의 총사령관이 적군 사령관을 극찬하는 그런 모습이 바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최강점이다. 엄청난 파워를 보이는 바로 그 핵심이다. 그런 문화는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다. 어릴때부터 그런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행위이다. 적군을 칭찬하는 것은 어쩌면 바보같은 행위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적장을 칭찬하면서 자신의 자존심을 높이는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라운드는 전쟁터이다. 생사 여탈권을 쥔 사람은 바로 감독이다. 그래서 그 감독은 결과에 승복하고 무엇이 패배의 원인인지를 곰곰히 생각하게 한다. 패배하면 분할 것이다. 자신의 밥그릇이 그냥 날아가버릴 수도 있다. 그래도 영국 프리미어리그 감독들 가운데 자기 변명으로 일관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그런 변명이 더 자신을 비참하게 한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상당수는 상대 적장을 칭찬한다. 대놓고 칭찬하지는 않지만 그의 전술 그리고 용병술을 거론하며 우회적으로 그의 승리를 인정한다. 그래서 그들의 문화가 멋져 보이는 것이다.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 참 한국 정치는 못났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적장끼리 덕담을 나눈지 3시간만에 적장뒤에 칼을 꼽는 상황이고 서로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살 수 없다는 절박감속에 아우성치는 이 나라 정치 현실은 어찌 설명될 수 있을까. 우리는 진정 적장을 칭찬하는 그런 문화를 가질 수 없을까. 칭찬까지도 바라지 않는다. 뒤통수치고 뒤에서 칼꼽고 너의 탓이라고 비웃고 비아냥거리는 그런 문화에서 조금 탈피할 수는 없을까. 정책적인 면에서 도움보다는 자기 수성에 바쁜 그리고 상대의 칼에 맞서 더욱 날카로운 칼날을 들이미는 그런 상황에서 이제는 벗어날 수는 없을까. 치열하게 싸우되 경기장밖의 수많은 팬들을 위한 제스처가 정말 필요한 것이 아닐까. 스포츠에서 많은 교훈을 받기도 하지만 정치판에서 실제적인 상대를 바라보는 그런 시각을 보고 키우는 것이 우리 어린 후세들이 배우고 또 가르침을 받아야 할 실질적인 교육이다. 그라운드에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되 서로 상대에게 덕담도 나누고 칭찬도 하는 그런 상황을 우리는 영원히 볼 수는 없는 것일까.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보면서 참 가슴 깊이 생각나는 일이다.
2022년 9월 19일 화야산방에서 정찬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