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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6 장 내 몸이 보물이라.....
“본 부방주가 너의 콧대를 꺾어줄 테니 생각이 있으면 앞으로 나서라!”
장내는 즉시 짙은 살기가 살얼음처럼 번져갔다.
우측의 유령인이 그녀의 고함 소리가 떨어지기도 전에 한 마디 냉소를 날리며 몸을날렸다. 그러나 그가 날아간 방향은 은나찰이 아니고 왕세열이 서 있는 곳이었다.
은나찰은 이 광경을 보자 버들눈썹을 치켜 올리며 날카롭게 외쳤다.
“쥐새끼 같은 녀석이 죽고 싶어 환장을 했구나.”
그녀의 신법은 실로 쾌속했다. 말을 하는 사이 그녀는 번개같이 유령인의 앞을가로막고 가볍게 1 장을 뻗어냈다.
바로 이때, 왼쪽에서 있는 유령인이 왕세열을 향해 쏘아나갔다. 그러나 백마는조금도 여유를 주지 않으려는 듯 그 유령인을 향해 맞아나가 왕세열의 중간에서차단했다.
왕세열은 드디어 3파가 엇갈려 싸우자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생각을굴렸다.
‘흥! 소혜문, 오랫동안 기다렸다. 이번에는 내가 너의 운명을 끝내주겠다.’
생각을 끝내자 재빨리 멀리 서 있는 소혜문에게 달려가며 왼손으로 1 장을뻗어냈다.
소혜문은 어금니를 악물고 수중의 1 검을 연달아 휘저어 왕세열의 일격을 간신히피해냈다. 왕세열은 차갑게 냉소를 날리며 오른손으로는 그녀의 일격을 방어하고왼손으로 맹렬한 1 장을 퍼부었다.
소혜문은 감히 그의 1 장을 맞받지 못하고 재빨리 뒤로 후퇴했다.
왕세열이 막 코웃음을 날리며 그녀를 덮쳐가려 했을 때 눈앞에 남색인영이 번쩍하며두 명의 비마방 시녀가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
왕세열은 뜻밖에 자기의 계획이 여기서 제지될 줄을 몰랐다.
그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형편없는 것 같으니라구.”
그는 몸을 날려 철금을 연달아 휘저어 두 남의시녀에게 공격해갔다.
바로 이때다.
“당신은 빨리 도망가지 않고 뭘 꾸물거리고 있으셔요?”
이 목소리는 누군가 암중에서 전음입밀로 왕세열이 달아날 것을 재촉한 것이다.
왕세열은 그 소리를 듣자 내심 섬뜩함을 금치 못했다. 과연 지금 이 기회는 그가 3파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하지만 그는 달아나지 않았을 뿐 아니라맹렬하게 철금을 휘두르며 두 남의시녀를 항해 덮쳐갔다.
남의소녀는 그의 적수가 되지 못함을 잘 알고 있는 듯 더 이상 반격해 오지 않고뒤로 분분히 후퇴했다.
왕세열은 눈앞에 원수를 두고 죽으면 죽었지 도망갈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일단 남의시녀가 물러서자 그는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번개같이 소혜문을 향해재차 덮쳐갔다.
그가 미처 그녀에게 공격을 하기도 전에 한 줄기의 인영이 전광석화같이 앞으로날아왔다. 그 인영의 신법은 실로 예측하기 어려울 정도로 신속했다.
왕세열이 막 방향을 바꾸어 1 장을 뻗어내려 했을 때 돌연 눈앞이 캄캄해지며전신이 뻣뻣하게 마비됨을 느꼈다.
이때 상대방은 그를 옆구리에 낚아채 마치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달려가고 있었다.
몇 번 몸을 솟구쳤다 내리는 사이 회색 인영은 이미 중인들이 싸우고 있는 곳에서수십 장이나 벗어나 있었다.
왕세열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나를 놓아주시오.”
회색 인영은 아무 대꾸도 하지 않고 여전히 앞으로 질주해 갔다.
또 한 차례 눈 깜짝할 사이 수 리(里)를 달려갔다.
그제야 회색 인영은 왕세열을 땅바닥에 내려놓고 손을 휘저어 그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왕세열은 상대방을 쳐다보고 의아해 하며 큰소리로 외쳤다.
“낭자가……”
“그래요. 저예요.”
그 회색 인영은 다름 아닌 왕세열이 한번 만난 적이 있었던 회의소녀였다. 또 그가유엽검에 격중되어 생명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한번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기도했다.
왕세열은 제차 안색이 일변하며,
“낭자, 이게 무슨 짓이오?”
“나는 당신을 또 구해준 거예요.”
“나를 구해줬다구요?”
회의소녀는 생끗이 웃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난 당신을 구해줬어요. 당신이 아무리 원수를 갚으려고 하지만 지금은갚을 수 없을 뿐 아니라 그들에게 죽음만 당할 뿐이에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왕세열은 코웃음을 날렸다.
“흥! 누가 낭자더러 나를 구해주라고 했소?”
말을 마치자 그는 돌연 몸을 돌려 왔던 길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채 5장도 달려가기 전에 눈앞에 회영이 번쩍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당신은 정말 죽고 싶은가요?”
왕세열은 안색이 재차 변하며 큰 소리로 외쳤다.
“내가 죽는 것 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회의소녀는 아무 말도 못하고 전신을 바르르 떨기만 할 뿐이었다. 방금 왕세열이내뱉은 말은 그녀의 자존심이 크게 상한 것 같았다.
그녀는 안색이 창백하게 변하더니 앙칼지게 외쳤다.
“당신이 남의 손에 죽음을 당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내가 차라리 당신을죽여주겠어요.”
그녀는 번개같이 앞으로 덮쳐오며 옥장을 휘둘렀다.
왕세열이 얼른 몸을 피하려 했으나 이미 때가 늦었다. 찰싹! 하는 음향과 함께왕세열은 그녀의 손에 호되게 따귀를 얻어맞고 뒤로 대여섯 걸음이나 후퇴했다.
왕세열은 너무나 어이가 없었는지 의아한 눈빛을 그녀에게 던지며 반문했다.
“당신이 감히 날 때리다니……”
회의소녀도 그를 때린 것이 너무나 뜻밖이었는지 멍하니 정신을 빠뜨리고 서있었다. 그러나 이내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울음을 터뜨리며 고함을 질렀다.
“가셔요. 바보! 어서 꺼지란 말예요.”
원래 왕세열의 마음속에는 부모의 원수를 갚아야겠다는 집념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러나 회의소녀가 울음을 터뜨리자 비로소 정신이 들어 자기가 너무 고집을부렸다고 후회했다.
회의소녀는 돌연 울음을 그치고 만면에 상심된 표정을 짓고 그를 힐끗 쳐다본 후등을 돌려 앞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왕세열은 당황한 표정을 짓고 급히 불렀다.
“낭자!”
회의소녀는 걸음을 멈추고 몸을 돌리더니 싸늘한 어조로 내뱉았다.
“그래요. 당신의 생사는 저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어요. 당신은 죽던지살던지상관하지 않을 테니 빨리 가보셔요.”
왕세열은 어찌 할 바를 모르다가 또 불렀다.
“낭자, 잠깐!”
회의소녀는 앞으로 몇 걸음 걸어가다가 고개를 비꼬는 어조로 반문했다.
“당신은 내게 무슨 분부할 일이 있나요?”
왕세열은 길게 한숨을 내쉬며 씁쓸하게 웃었다.
“지난번 낭자께서 소생을 구출해 주어……”
“흥!”
회의소녀는 냉랭하게 코웃음을 날리며 냉소를 날렸다.
“그런 대수롭지 않은 일을 가지고 감사까진 할 것 없어요.”
“하지만……”
“그만 두세요. 당신은 쓸데없는 소린 그만 하고 빨리 당신의 원수나 갚으러가세요. 나는 이만 가겠어요.”
“낭자!”
왕세열은 내심 다급함을 금치 못해 입을 열었다.
“나는 부모님의 원수도 못 갚고 이곳으로 왔으니 약간……”
회의소녀는 그 말에 몸을 완전히 돌려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이어 냉랭한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원수를 갚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그…… 그건……”
회의소녀는 입가에 비웃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
“왕세열, 당신은 너무 비범한 척하지 마세요. 당신의 그 잔재주 같은 무공으로 흥!복수를 한다구요!”
그녀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곧 말을 이었다.
“그래요. 소혜문은 바로 당신의 원수예요. 하지만 진짜 원수는 백마에요. 당신은우선 그 백마의 적수가 되나요?”
왕세열은 내심 움찔 놀랐다.
“그…… 그건……”
“흥! 조금 전 그 백마는 단지 백마의 문하 중 한 사람에 불과해요. 만약 진짜백마가 나타나면 아마 당신은 개죽음을 면치 못할 거예요.”
왕세열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뭐라구요! 그럼 백마가 한 사람이 아니고 여러 사람이란 말이오?”
“그래요.”
회의소녀는 냉소를 머금고 곧 말을 이었다.
“아마 수십 명이나 될 거에요. 제가 한 마디 하겠는데 당신의 원수는집마전(集魔殿)의 전주가 진짜 원수라는 걸 아세요.”
왕세열은 놀라움에 휩싸여 전신을 부르르 떨었다. 그는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길게 한숨을 불어내며 속으로 나직이 뇌까렸다.
‘그게 사실이라면 내가 원수를 갚기는 하늘의 별따기보다 더욱 어렵겠구나. 그럼나는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
회의소녀가 그를 흘겨보며 냉랭하게 물었다.
“당신은 이제 낙심을 하는군요.”
왕세열은 계면쩍게 웃으며 힘없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실망하지는 않소.”
회의소녀가 다그쳐 물었다.
“그럼 왜 한숨을 쉬세요?”
왕세열은 그녀를 바라보며 빙긋이 웃었다.
“만사가 뜻대로 되지 않기 때문이요.”
회의소녀는 잠시 생각하다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백마는 그렇게 대단한 고수는 못 되요. 그러나 유령인은 결코 만만치 않은인물이에요. 한데 당신이 그들을 격퇴시킬 수 있다고 장담할 수 있나요?”
왕세열은 잠시 생각해 본 후 고소를 머금었다.
“듣고 보니 낭자의 말씀이 옳소.”
회의소녀가 미소를 머금고 다시 입을 열었다.
“비마방의 부방주 또한 일대의 여마두에요. 그녀의 무공은 방주와 별로 차이가없다고 해요. 당신은 한 가지 계약으로 그들과 서로 싸움을 붙였는데 설사 그들 중어느 한쪽이 패하더라도 당신은 이기는 편에 붙잡히는 신세를 면치 못할 거예요.”
왕세열은 부인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낭자의 말씀은 사실이오.”
회의소녀는 그가 뜻밖에 순순히 굴자 기쁜 듯 생긋이 웃었다.
“만약 당신이 꼭 원수를 갚아야겠다고 생각한다면 한동안 이를 악물고 참아야해요.”
왕세열은 씁쓸하게 웃었다.
“알았소. 소생은 오늘부터 낭자의 말씀을 깊이 명심해 두겠소이다.”
회의소녀는 멍청하니 그를 주시했다. 그가 이토록 말을 잘 들을 줄은 몰랐던모양이다. 그녀는 곱게 그를 흘겨본 후 꾀꼬리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럼 조금 전에 제가 흥분하여 당신의 따귀를 때린 걸 용서해 주시겠어요?”
왕세열은 어깨를 으쓱했다.
“낭자 용서고 자시고 할 것도 없고. 그건 오히려 잘 때린 것이오.”
“흥! 철면피 같은 사람!”
“핫하하하……”
“호호호호……”
두 사람은 유쾌하게 웃었다.
잠시 후 회의소녀가 웃음을 뚝 그치고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당신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은 게 있어요.”
“말해 보시오.”
회의소녀는 그의 표정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당신의 몸에 기서가 숨겨져 있나요?”
왕세열은 고개를 흔들었다.
“없소.”
“장진도는?”
“그것도 없소.”
회의소녀는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재차 다그쳐 물었다.
“정말 인가요?”
“내가 왜 낭자에게 쓸데없는 거짓말을 하겠소?”
회의소녀는 잠시 오리무중에 빠져 멍하니 섰다가 짜증을 버럭 냈다.
“당신에게 도대체 어떤 물건이 있다고……”
왕세열이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정말 나는 모르는 일이오. 내게는 아무것도 없소.”
회의소녀가 고개를 저었다.
“그럴 리가 없어요. 반드시 당신 몸에 있을 거예요.”
“뭐가 있단 말이오?”
“저도 모르겠어요.”
왕세열은 계면쩍게 웃었다.
“하지만 실제로 내 몸에는 아무것도 없소.”
회의소녀는 그를 뚫어지게 응시했다.
“저는 믿어지지 않아요.”
“못 믿겠다면 내가 옷을 발가벗고……”
여기까지 말한 후 자기가 비로소 실언한 것을 깨닫고 급히 입을 다물었다.회의소녀도 얼굴을 붉혔다.
“당신은 그런 말을……그나저나 정말 이상한 일이군요.”
“뭐가 이상하단 말이오?”
“내가 보기엔 그 물건은 당신의 몸에 있는 것이 분명한데 다만 당신이몰라서……”
왕세열은 힘껏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낭자, 기서가 있다면 왜 내가 모르겠소?”
“기서가 아닐지도 몰라요.”
“뭐라구요?”
왕세열은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그녀를 뚫어질 듯이 주시했다.
회의소녀가 눈망울을 굴리며 혼잣말로 나직이 중얼거렸다.
“어쩌면 기서가 아닐지도 몰라요.”
“그럼 무엇이오?”
회의소녀는 답답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건 누구도 모르는 일이예요. 다만 증명할 수 있는 것은 유령인과 백마, 그리고비마방이 당신을 놓치지 않고 손에 넣으려고 하는 건데 그들은 모두 당신에게보물이 있다고 믿고 있어요.”
“보물이라구요!”
“그래요.”
왕세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내 몸에 보물이 있단 말이오? 정말 웃기는 일이군 하하하……”
“웃지 말아요?”
왕세열은 웃음을 뚝 그쳤다.
“좋소. 웃지 않겠소. 그럼 무슨 보물인지 말해 보시오.”
회의소녀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왕세열, 제가 한 가지 묻겠는데……”
“나는 듣고 있소.”
“소문을 들으니 영존께서는 사망마회의 적수가 절대로 아니라고 하던데 그게정말인가요?”
왕세열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사실이오.”
“영존께서는 누구에게 무공을 전수받았나요?”
“나도 그 문제에 대해선 자세히 모르오.”
“그게 바로 수수께끼예요.”
왕세열은 어리둥절해 하더니 담담하게 말했다.
“낭자, 나는 도대체 뭐가 뭔지 이해가 안 가는구려.”
“그럼 좋아요.”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가 곧 입을 열었다.
“당신의 부친이 무림의 기인이던 비급이던 어떤 것을 얻었던간에 우선 덮어두기로해요. 단지 영존께서 무공을 터득한 데에는 어떤 가능성이 있어요.”
“어떤 가능성이오?”
“그건 누군가 영존에게 가르쳐 준 거예요.”
왕세열은 빙긋이 웃었다.
“그것과 내 몸에 숨겨진 보물과 무슨 관계가 있단 말이오?”
“꼭 관계가 있어요.”
왕세열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었다.
“갈수록 신기한 일이군.”
회의소녀가 그를 흘겨보았다.
“이 일은 원래가 신기한 거예요. 만약 영존의 무공내력이 누군가 가르쳐 준 사람이있다면 그 사람은 어느 곳으로 갔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아요?”
왕세열은 차갑게 냉소를 날렸다.
“낭자, 그것도 말이라고 묻소? 설사 누군가 가르쳤다 해도 사람이란 어디든 갈 수있는 일이고, 또 가르쳐 주지 않았다 해도 가친께서는 무림의 기서를 얻기 위해서어느 곳이건 갈 수 있는 일이 아니오?”
회의소녀가 손뼉을 딱 쳤다.
“그래요. 바로 맞았어요.”
왕세열은 어리둥절해 했다.
“당신의 말뜻은?”
“영존이 가신 곳은 틀림없이 무림의 어떤 기인이 은거하여 수신(修身)하는 그장소일 거예요. 그래서 영존께서는 그곳을 당신에게 알려줬을 거예요.”
왕세열은 또 한 차례 어리둥절해했다.
“알려줬다고요! 당신은 너무 생각을 비약시키고 있소.”
“아니에요. 전 십분 가능성이 있다고 봐요.”
“어림도 없는 말, 아버님께서 돌아가셨을 때 그분은 아무것도 말씀 하시지않으셨고, 또 나도 한 마디 말씀도 듣지 않았소.”
회의소녀는 급히 고개를 가로 저었다.
“아녜요. 그분은 꼭 그 보물이 있는 장소를 알려주었을 거예요.”
왕세열은 막연한 표정을 지었다.
“낭자의 말씀은 선친께서 그 신비의 장소가 있는 곳을 도식으로 표시하여 나의 몸어딘가에 숨겨두었단 그 말이오?”
“그래요.”
왕세열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한 일이오. 나는 아무것도 지니고 있지 않으니까 말이오.”
“그래요. 이상한 건 바로 그거예요. 만약 저의 이런 추측이 틀림없다면 또 하나의가능성이 있어요.”
그녀의 말이 막 끝나기가 무섭게 5 장 밖에서 발걸음 소리가 들리며 누군가 말을받았다.
“낭자, 너의 추측은 매우 일리가 있다.”
왕세열은 깜짝 놀라 급히 고개를 돌려보았다.
이때 머리가 구름같이 하얀 백발노인이 느릿느릿 걸어오고 있었는데 다가오는신법이 괴이하여 눈 깜짝 할 사이 그들의 면전에 왔다.
왕세열은 하고 나직이 외치며 재빨리 포권의 예를 올렸다.
“노선배님이군요.”
“그렇다.”
노인은 고개를 돌려 회의소녀를 바라보았다.
“이 낭자는 누구냐?”
회의소녀가 어른 그 노인을 향해 허리를 굽히고 공손히 대답했다.
“후배는 우청(于菁)이라고 부릅니다.”
노인은 그녀의 아래위를 한바탕 훑어본 후 빙그레 웃었다.
“낭자. 조금 전에 네가 한 추측에 노부는 실로 감탄해 마지않았다. 왕세열의 몸에숨겨진 것은 기서가 아니고 하나의 지고무상한 보물이다.”
왕세열은 펄쩍 뛰었다.
“선배님. 그것은 허무맹랑한 얘기입니다.”
“이놈아, 그것은 사실이다.”
왕세열은 움찔 놀라며 급히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사실을 말씀해 보십시오.”
백발노인은 왕세열을 힐끗 돌아보고 나서 회의소녀 우청에게 시선을 돌렸다.
“낭자, 조금 전에 어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는데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우청은 급히 허리를 굽히며 고개를 흔들었다.
“후배는 다만……”
“아니다 괜찮다. 어서 얘기 해보아라.”
우청은 잠시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풍문에 의하면 왕문청이 실종 되었다가 강호에 출현한 것은 불과 6, 7 년이란짧은 시간이라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분의 무공은 어떤 귀인이 가르쳐 주었을가능성이 짙다고 봅니다.”
백발노인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은 합리적인 추측이다.”
“그렇게 추측해 본다면 지금 천하에서 그럴싸한 절기를 지닌 사람은 한사람만이……”
왕세열이 대뜸 큰소리로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그 사람이 누구요?”
“영제(影帝)!”
왕세열은 안색이 일변하며 멍청하게 물었다.
“영제? 그도 사람이오?”
“그래요.”
왕세열이 백발노인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물었다.
“영제는 도대체 어떤 사람입니까?”
백발노인은 나직이 헛기침을 하며 빙긋이 웃었다.
“영제는 그의 별호처럼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직 아무도 본 사람이 없다. 왜냐하면그가 출현할 때 사람의 눈에 보이는 것은 검은 그림자뿐이기 때문이다.”
왕세열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그럼 귀신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하지만 그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 사람이 강호에서 어떤 일을 했단 말입니까?”
백발노인은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곧 입을 열었다.
“영제, 그가 강호에 출현한 것은 불과 몇 번뿐이었다. 하지만 나타날 때마다 그는경천동지할 일을 행사했었다. 첫 번째 일은 마해사패(魔海四覇)를 소멸했고, 두번째는 동해마왕(東海魔王)을 제거했으며, 세 번째는 음혼고(陰魂故)를소멸시켰지.”
왕세열은 잠시 생각한 후 또 물었다.
“그에게 멸망당한 사람들은 모두 어떤 사람들입니까?”
“마해사패는 네 명의 살인마였고 그들은 강호에 일대 풍파를 일으켜 피바다를 만든사람이었지, 강호인들은 당시 어떻게 할 수 없었다. 동해마왕과 음혼고는 중언무림을 쟁패할 야심을 품고 강호에서 제 멋대로 행사했었다. 만약 영제가 이 무림에나타나지 않았다면 그 결과는 상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왕세열은 의외라는 듯 급히 반문했다.
“그럼 영제는 일대의 무성(武聖)이 아닙니까?”
백발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그는 일대의 무성이었지. 모든 무림인들은 그의 얘기만 나오면 존경하는마음으로 우러러 보았다 하더군.”
왕세열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런데 아무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었습니까?”
“그렇다. 그 누구도 그의 얼굴을 본 사람이 없다. 다만 그를 본 사람은 간담이써늘해져 신검이 다시 출현했다고 말했다.
“신검이라고요?”
백발노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신검은 고인이 남긴 신물인데 영제가 이 신검으로 어지러운 강호를 몇 번 구했던것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우청을 돌아보며 물었다.
“낭자는 왜 왕문청이 영제를 만났을 것이라고 추측했느냐?”
우청은 대답을 하지 않고 공손히 물었다.
“노선배님, 장생노인(長生老人)을 아십니까?”
백발노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안다. 그가 아직도 살아 있단 말이냐?”
“그렇습니다. 제가 그분을 만나보았습니다만 그분께서는 왕문청의 무공이 영제의절기와 비슷한 점이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중의 문제는 매우복잡했습니다.”
“어떻게 복잡하단 말이냐?”
우청은 잠시 망설이다가 결심을 굳힌 듯 입을 열었다.
“이 일에는 저의 가친도 관계되어 있습니다.”
백발노인과 왕세열은 동시에 크게 놀라 서로 얼굴을 마주 쳐다보았다. 한참 후에야백발노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계속 말해 보아라.”
우청은 또 머뭇거리다가.
“노선배님께서는 당년에 능파선자(凌坡仙子)라고 불린 사람을 아십니까?”
“노부는 들은 적은 있으나 직접 만나보진 못했다.”
“그분이 바로 저에 가모이십니다. 그분은 당년에 옥면협(玉面俠)과 매우 뜨거운사이였고 결혼을 하기 전에 소저를 잉태하셨습니다. 어느 날 왕문청 어른께서 저의부친인 옥면협을 찾으려……”
왕세열이 크게 놀란 듯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저의 선친께서 영존을 무슨 일로 찾았소?”
“당신의 부친과 저에 아버님은 아주 다정한 사이였어요. 이런 일은 강호에서 매우드문 일이지요. 당신 부친께서는 보물을 찾으러 간다면서 우리 아버님을찾아오셨는데 한 번 가신 후로는 영영 소식이 끊어졌어요.”
왕세열은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그렇지만 우리 아버님은 돌아오셨소.”
우청이 그 보라는 듯이 말을 받았다.
“제 말은 그 점이 이상하다는 거예요. 영존께서 강호에 나타나자 저의 어머님께선당신아버지를 찾아 나섰는데 그때 당신의 부친이 또 갑자기 실종되었어요.”
“아마 선친께서는 당신 여인곡(麗人谷)에 가셨을 것이오.”
“그래서 저의 어머님께서는 당신 아버님께서 마음이 변했을 거라고……”
“마음이 변하다니요.”
“그래요. 그렇지 않다면 그분이 돌아오시지 않을 이유가 없잖아요.”
왕세열은 도무지 어찌된 영문을 몰랐다. 그는 한참동안 눈썹을 찌푸린 채생각하다가 불쑥 입을 열어 물었다.
“그것과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이오.”
백발노인이 깨달은 바가 있다는 듯 웃으며 말을 받았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왕문청과 옥면협은 영제를 만났을 것이다. 그리고 너의몸에 있는 보물은 바로 영제가 지니고 있었던 그 보물일 것이다.”
왕세열은 격동된 표정을 지었다.
“그럼 아버님께서는 그 신검을 얻으셨단 말씀입니까?”
“설사 신검을 얻지 못했다 해도 그는 신검이 있는 곳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왕세열은 그제야 깨달은 듯 환환 표정을 지었다.
“이제 알겠습니다. 그러니까 아버님께서는 그 신검이 숨겨진 곳을 어떤 물건에다기재한 후 저의 몸에 숨겨 주셨단 말씀이시군요.”
“그렇지.”
왕세열은 씁쓸하게 웃고 곧 정색을 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이 어떤 물건인지 알지 못하겠습니다.”
백발노인이 길게 한숨을 불어내며 입을 열었다.
“이제 곧 무림에 혈겁이 일어날 텐데 노부는 몇 가지 알아볼 일이 있어가봐야겠다.”
왕세열은 어리둥절해 하다가 급히 허리를 굽혔다.
“노선배님, 그럼 안녕히 가십시오.”
그러나 백발노인은 몇 발자국 걸어가다가 돌연 걸음을 멈추고 왕세열을바라보았다.
“너는 자기 자신을 엄중히 지키도록 해라. 어쩌면 무림의 안위가 너에게달려있을지도 모른다.”
왕세열은 속으로 웃음을 금치 못했으나 겉으로는 정중하게 대답했다.
“후배는 선배님의 말씀을 명심하겠습니다.”
“그럼 노부는 가겠다.”
백발노인은 올 때도 그랬지만 일단 신형을 전개하자 눈 깜짝할 사이 연기처럼사라져 버렸다.
왕세열은 잠시 후 우청을 돌아보며 의아한 빛으로 물었다.
“낭자, 저분은 누구요?”
우청은 그를 힐끗 돌아보며,
“내 추측이 틀림없다면 그분은 태극진군(太極眞君)이실 거예요.”
왕세열은 내심 크게 놀라 멍청해 버렸다.
‘태극진군이라고!’
왕세열은 한 동안 넋 나간 사람처럼 서 있다가 급히 우청에게 물었다.
“그분이 정말 태극진군이란 말이오?”
“나는 확실히 몰라도 아마 그럴 거라고 추측했을 뿐이에요.”
왕세열이, 멍하니 선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우청이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걸어갔다.
“왕 공자, 나도 이만 가봐야겠어요.”
왕세열은 깜짝 놀랐다.
“어디로 간단 말이오?”
“집으로……”
“그럼 낭자, 나도 같이……”
그는 자기의 말이 타당치 않음을 느끼고 급히 입을 다물어 버렸다.
우청이 멈칫하며 반문했다.
“저와 함께 간다구요?”
왕세열은 당황해하며 급히 말을 받았다.
“나는 당신이 우리와 함께 무림의 정의를 위해 분투하자고 한 거요.”
우청은 호수와 같은 눈빛으로 그를 뚫어지게 응시하더니 생긋이 웃었다.
“하지만 당신은 아내가 있잖아요?”
왕세열은 내심 가슴이 뜨끔해 어떻게 말을 해야 좋을지 몰랐다.
우청은 돌연 안색이 변하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당신은 지옥마화를 사랑하나요?”
왕세열은 어깨를 으쓱했다.
“전에는 분명히 그러했소. 하지만 지금은……”
“지금은 어떻다는 말인가요?”
“지나간 일이요.”
“지나간 일이라구요? 그래서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지 않아도 좋다는 말인가요?”
“내말은 그런 뜻이 아니오. 우리는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이익만을위해……”
“흥!”
우청은 냉랭히 코웃음을 날리며 그의 말을 가로챘다.
“왕세열, 그건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 없어요. 제가 알기로는 천하에서 당신을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지옥마화예요. 한데 당신이 그녀를 그런 말로 비평하다니,그녀는 당신을 위해서……”
우청은 여기까지 말한 후 갑자기 말을 끊었다. 곧 이어 그의 안색을 살피더니말하기 곤란한 듯 퉁명스레 내뱉었다.
“아무튼 이 세상에서 그녀 같은 여자도 찾아보기 힘들 거예요.”
왕세열이 아무 말도 못하고 막연하고 의아한 시선으로 그녀를 바라보자 우청이 다시말을 이었다.
“당신은 쓸데없는 생각을 버리고 그녀를 따뜻하게 잘 대해주세요. 그녀는 당신을깊이 사랑하고 있으므로…… 그럼 잘 가세요. 몸조심하구요.”
말을 마치자 그녀는 몸을 돌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왕세열은 그녀를 부르지 않고 다만 멍하니 서서 그녀의 뒷모습을 응시했다.
그는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을 음미했다. 하지만 그는 그녀가 왜 그런 말을했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지옥마화를 따뜻하게 잘 대해주라고 정말 여자들은 알 수 없는 물건들이야.그녀들은 서로 적같이 으르렁대면서도 곧잘 상대방을 위하는 척 하니 말야.’
그는 여기까지 생각한 후 길게 장탄식을 터뜨리며 생각에 잠겼다.
‘아버님은 정말 내 몸에다 보물을 숨겨 놓았단 말인가?’
여기에 생각이 미치자 자신도 모르게 눈을 지그시 감고 자기의 몸에다 보물을숨겨둘 만한 곳을 상상해 보았다.
그러나 그의 이런 상상은 아무런 쓸데도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자기의 몸을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데 만약 이상이 있다면 왜 알지 못하겠는가,
왕세열은 한 차례 장탄식을 터뜨리며 앞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첫댓글 즐독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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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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