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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막내딸의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나오자 마자 세롬이의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카드키로 현관문을 열고 양승란 할머니가 들어서자 마자 세롬이는 앞 발을 쳐들고 킹킹 거리며 그녀의 무릎 앞에서 펄떡거렸다.
"잘 있어냐? 우리 강아지..."
그녀는 반갑게 품에 세롬이를 안았다가 벽에 붙여진 시계를 보고 얼른 내려 놓고서는 서둘러 이곳 저곳을 두리번 거렸다. 딸이 퇴근하기 전에 얼른 볼일을 마쳐야 했다.
우선 식탁 위에 덜그렁 서 있는 빈 소주병이 예사롭지 않았다. 화장실 쓰레기 봉지에는 담배 꽁초가 한 움쿰 있었다. 그나마 꽁초들이 길다는 사실에 위안을 삼으며 화장대를 지나치다가 서랍을 열어 보았다. 대나무 그림이 청순하게 새겨진 얇은 담배갑이 일렬로 정돈돼 있었다.
순간 허기가 느껴졌다. 점심을 김씨네에서 한 것이 양이 모자란 모양이었다.
기초생활 수급자 대상에서 제외되었다는 김씨는 마지막 라면이라면서 끓여서는 식은 밥을 탈탈 털어 겨우 한 공기를 채워 내놓았다. 그것을 함께 말아 나눠 먹은 점심의 초라함이 늦은 오후 공복감으로 되살아 났다.
승란은 딸의 냉장고를 열어 보았으나 오징어 젓갈에 양반김에 계란 2알만 보았다. 결정적으로 밥통에 밥이 없었다. 현관문을 닫고 서울행 좌석버스를 타러 단지 앞 정거장으로 내려오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동가식 서가숙 하다시피 하던 꽃샘 추위의 시절에 아들이 차로 모시러 오더니 막내 딸의 새 아파트에 옮겨다 주었을 때가 좋았었다.
이 집을 물러 나온 지 내일이면 한 달이 되는 날이었다.
“나는 역시 야생 체질인가봐.. 여기서도 새장의 새 같구나..”
양승란은 그런 구실로 고시원과 찜질방을 전전했고 예전에 활동했던 달맞이 종자유에 건강 식품에 이런 저런 판매 조직에도 다시 합류했다.
딸에게 해 줄 수 있는 거라고는 우선 자기 한 몸 그 집에서 물러나오는 것이었다.
2
치킨 가게 주인은 벌써 1시간이 넘게 가게에 앉아 떠날 줄을 몰랐다. 겔포스를 사러 온 슈퍼 주인이 합류한 뒤로 둘의 신세 타령은 윤상의 약국을 소음으로 메웠다.
윤상의 약국에 겔포스를 사러 온 슈퍼 주인이 치킨 집 주인의 신세 타령에 불을 지폈다.
“연평도에서 살 때가 좋았는데…”
“ 대형 마트의 저가 치킨과 저가 피자 때문에 장사가 망해요. 구멍가게 업자들은 다 죽으라는 세상인가봐요”
연평도 포격 사태가 있은 뒤로 가산을 정리해서 인천으로 나와 그가 할 수 있었던 치킨 가게도 하루 하루가 적자라는 하소연에 슈퍼 주인은 질세라 자신의 갑갑한 처지를 주절거렸다.
오늘은 저녁 식사 후 다녀간 손님이 단 두 명! 슈퍼 주인은 간장약에 겔포스를 또 달라고 했다.
“영감 약국 문 닫을 시간 됐어요”
윤상의 아내는 점포의 손님들을 내보내려고 안방에서 짐짓 언성을 높였다.
윤상은 말없이 가게의 난로 온도만 높여 주었다.
약국 창 밖으로 둬 시간 전부터 내리던 눈발은 제법 굵어져 가고 있었다.
무지개 다방의 미스 구가 종종걸음으로 들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다방 건물 옆으로 ‘자유수호체제 망가뜨리는 좌경 국회의원은 사퇴하라” 는 현수막이 눈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가게 앞 택시 간이 대기소 건물 앞에 세워진 장 씨의 택시 위로 눈이 수북했고 뒷 트렁크엔 해병대 마크만 빼꼼히 붙어 있었다.
장씨와 그 동료들은 6.25참전 전우회 명의로 플랭카드를 걸어 두면서 윤상에게 지역구 급진 야당 의원의 사퇴를 촉구하는 서명운동명부를 맡기고 갔다.
"어르신도 한국전쟁 참전 용사신데 연금이라도 올려 받으셔야죠? 파월 장병 전우회 건은 국회에서 잘 하면 곧 통과될 것 같습니다. 수일 후에 회수하러 오겠습니다"
윤상은 약국에 들리는 손님들이 잘 볼 수 있는 곳에 명부를 비치해 두었지만 애써 설명을 곁들이지는 못함은 물론 그것을 슬며시 약 서랍장 안으로 옮겨 버렸다.
'내일 철규가 서울로 올 수 있을까? '
윤상은 쌓이는 눈을 보면서 고향 친구가 보내온 청첩장을 다시 펼쳐 들었다.
예식을 주말도 아닌 금요일 평일에 하는 걸 보면 친구가 그만큼 경황이 없거나 예식장 대여료를 굳이 싼 조건으로 빌리기 위함인 듯 했다.
노래방 등 유흥시설이 늘어선 번화가에서는 좀 떨어진 변두리지만 이 곳으로 이사 와서는 그래도 늦은밤 박카스에 우루사를 찾는 취객 손님들이 매상을 채워주었다.
슈퍼 주인을 부축해 나가는 치킨가게 주인에게 신문지를 자리에 빠트렸다고 말해 주었다. 그는 손을 저으며 외면하면서 슈퍼 주인과 어깨 동무를 하고 내리는 함박눈에 맞으며 걸어나갔다. 그가 약국에 들어 설 때 눈을 피하려고 쓰고 왔던 젖은 신문지에 낮 익은 정치인들이 한데 모여 있었다.
‘내년 대통령 선거의 화두는 복지정책’이라는 제목 아래로 여야 후보들의 사진들. 그 옆에는 후보들 마다의 선진 복지 행정의 구상들이 채워져 있었다.
예산확보 대안 없이 후보들은 어떻게든 복지 공약을 채워 넣느라 고심한다는 기사 면을 펼쳐 본 윤상은 신문을 내던져 버리고 약국 점포의 문을 닫고 안방으로 들어와 버렸다.
밤 11시가 되도록 윤상은 몇번이고 돌아 눕기를 거듭했다. 치킨 가게 주인의 연평도 얘기에 남한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던 북한 중앙당 방송의 아나운서 말투가 떠올랐다. 평안도 보다 함경도 억양이 배여 있었다.잠깐 가수면 상태였던 것 같다.
사람들 가래침에 범벅이 되어 숨이 멎은 철규 아버지. 사촌형 권석호와 고모가 사람들 앞에서 도끼에 찍혀 쓰러지는 모습이 또렷이 나타났다. 붉은 완장의 물결위로 죽창들의 춤바람이 일렁거렸다.
인민해방, 토지무상 분배의 격문들이 하늘을 덮던 시절의 악몽이었다.
좋은 세상이 금방 올 것처럼 대중을 광분시키던 정치선전들! 부자는 인민의 적이라며 죄다 싸잡아 죽여 버리던 광기는 옛날 일만이 아닌 듯 하다.
복지를 공약하면서 복지행정의 기반이 될 대들보를 뜯어 파는 오늘날 정치인들도 어쩌면 비슷한 게임을 만들고 있는 게 아닌가
관련 예산의 확보 방안은 모호한 채 복지공약을 앞다퉈 떠들어 대는 대권후보들 너머로 붉은 완장들을 찬 그들이 보였다. 공약은 당선을 위한 과장된 약속이었고 장기적 가치를 희생하며 눈앞에 사탕 발림과 진통제를 파는 작태들이었다.
또 눈이 떠졌다. 새벽 1시. 전립선 고장으로 잔뇨 증상에 윤상은 내복 바람으로 비틀거리며 방문을 열고 나섰다.싸늘한 암흑 너머 재래식 화장실을 더듬는 이 길이 멀게만 느껴 진다.
윤상은 안방 사물함을 뒤져 진통제를 2알 더 꺼냈다. 통증을 기만시켜 주는 진통제가 숨을 돌리게 허락해 준다.
어쩌면 그 기만이 우리의 통증을 달래는지도 모른다.근본 수술을 한다는 건 감당하기 어려운 고통이었다.전립선 암세포가 이 밤에도 자라고 있을 테지만 수술을 하기엔 위험했다. 나이 80에 당뇨 합병증으로 수술후 경과를 장담할 수 없다는 의사의 충고였다.
“세상에 ! 그렇게 몇 억씩이나 날릴 줄 알았으면 작년에 양옥 집으로 2천만원 더 주고 옮길 것을..” 부스럭 거리는 소리에 잠을 설친 아윤상이 돌아 누우며 혀를 차는 소리를 또 내뱉는다.
가게 유리창 너머 유람선은 이 시각까지 화려한 조명을 밤새 켜 놓고 있었다. 작년 이맘때도 인천 부두에 수리를 위해서 정박해 있던 배였다.그때는 결혼 50주년이 되는 올해에 유람선 유행을 다녀오자고 아내랑 약속했었다.
일반 은행보다 이자 1~2% 더 주는데다 창구 직원 친절함만 믿고서 마을 저축 은행에 전재산을 맡긴 게 화근이었다.이사를 왔을 때 이모 저모 알려주고 빌려주던 고마운 동네 아가씨였다.
아내가 목돈 예금을 자주 하자 도장까지 아예 자신에게 맡기게 하고서는 출금 전표를 조작해서 예탁금을 임의로 인출하고 횡령했다. 사업을 하는 오빠의 빚을 갚아 주는데 썼다고 한다.
“오빠는 희망 전도사에요. 독학으로 교수가 되어서 서울에서 사장들도 가르치고 있어요. 할머니들의 장롱 돈이라도 끌어내 오빠를 도와 주면 오빠가 대한민국 서민의 희망 전도사가 될 거에요. 오빠가 성공하면 많은 이자를 쳐서 돌려 드리려 했어요”
남의 평생 재산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놓고서도 힘있는 어조였다. 자신은 원래 사기를 칠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 자신도 사채업자 언니에게 맡겼다가 사기를 당한 피해자라는 것. 무서운 자기 중심적 사고와 융통성이다! 대의를 위한다며 자행하는 만행들! 좌우익 대립에서도 숱하게 보아 오질 않았는가.
화장실에서 나와 다시 방문을 열려고 더듬다가 윤상은 엎어지고 말았다. 저축은행 여직원이 3년전에 선물했던 대형 화분에 발이 걸렸다.
‘어르신! 제 동생이 생활력 하나는 강합니다.식당 일을 해서라도 어르신 돈을 얼마씩 갚아드리는 게 실용적이지 감방에서 썩으면 뭐하겠습니까? 제 사업도 조만간에 큰 돈을 벌게 돼 있으니 피해 보신 액수를 갚아 드릴 테니 요기 합의서에 서명 좀 부탁 드립니다.’구체적 보상 조건은 빠진 서류를 내밀던 그 오빠의 너스레가 떠오르는 순간 윤상은 화분을 발로 걷어찼다.
“차라리 땅이나 집이라도 사 두였더라면..영감이 매번 반대하던 차에 은행에나 맡기다 이 꼴이 난 게 아니유?” 돌아 눕는 아내의 혀 차는 소리가 경찰차 사이렌 소리 같다.
어느 덧 새벽 5시다. 이제 7 시간 후면 고향 동기 막내 딸의 결혼식이다. 자리를 털고 일어난 윤상은 손톱을 깍았다. 언제 부터인가 손톱 발톱을 깍아 아내가 쓰고 버린 화장품 통에 모아오기 시작했다.
“결혼식 피로연 때 많이 드시고 대충 드이소마”라고 하면서 어제 먹다 남은 딱딱한 고등어 구이가 식탁에 또 올라왔다. 윤상은 푸념할까 하다가 그냥 한숨을 삼켰다.
연하던 고등어 살도 식은 것은 성하지 않은 이로 씹기에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고기의 섬유질이 뿌리가 떠버린 송곳니 틈새로 찡겨 든다.윤상은 하는 수 없이 물에 말아 밥알을 대충 넘니고 점심 상을 물렸다. 약국 점포 앞 택시 대기소에서 장씨가 눈 덮힌 택시를 털어내는 모습이 보였다.
"전철역 까지 갑시다"
장씨는 파월 장병 용사회 회원이었다. 파월 장병 연금액 인상안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곧 좋은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들 떠 있었다.
지하철을 타고 내린 종각역을 나서자 캐롤송이 흘러 나왔다. 구세군 자선 남비의 종소리가 울리는 곳 몇발치 떨어진 곳에 머리가 백발인 할머니가 어느 두 할아버지 사이에서 봉다리에 든 김치를 열며 사발면을 젓가락으로 휘 젖는다.
식장은 종로 3가 YMCA 뒷 골목에 있었다.
큰 아들 결혼식 때 모인 고향 친구는 10명의 모였었는데 막내 딸의 결혼식엔 3명이 나타났다.
“동기들이 세상을 등지거나 병원에 누워 오늘 내일들 하고 있는 데 우린 그래도 이렇게 모였네..”
너스레 웃으며 철규가 권하는 음료수를 받으며 윤상도 급히 웃는 기색을 지어 보였다. 긴 명줄을 생각하면 그깟 돈이 뭐냐 라고 도리어 웃어야 하는 거야 ! 라는 철규의 얼굴은 완연한 병색이었다. 아픈 고향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1950년도 국군의 9.28 서울 수복과 북진 때 사촌형인 권석호와 고모 일가는 철규의 손에 죽었다. 빨갱이 처단에는 총알도 아깝다며 우익 청년단들은 도끼들을 휘둘렀고 그들 사이에 철규가 있었다.
“미안허이 . 그 때는 그럴수 밖에 없었네 그려”
윤상을 만날 때 마다 되풀이하는 철규의 고해성사다. 그는 소주를 2잔째 물컵에 담아 마신다.
6.25 가 있기 3년 전 윤상의 아버지는 일찍이 한의원을 청진에서 개업했다.침통의 침을 한 개 씩 알코올 솜으로 닦던 윤상은 찾아온 환자들 중에는 좌익도 우익 인사도 다 보았다. 아버지는 양 측의 회유와 협박에 잠을 못 이루실 때가 많았다.어딜 가든 침통 하나면 들고 떠나면 밥을 굶기야 하겠냐고 어머니는 일찍부터 서울로 가자고 조르셨다. 아버지는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을 기다리시다 때를 놓치셨다. 한국전쟁 1.4 후퇴 때 모든 걸 버리고 피난길을 서둔 악몽이 있는 사람이라면 부동산에 투자하기가 여간 망설여 지는 게 아니다.
‘영구 맘마 먹자’라며 철규가 부르자 팔뚝만한 작은 애완견이 그의 코트 주머니에서 고개를 삐쭘 내밀고 웬 세상인가 분주히 머릴 두리번 거린다.
“외출하려고 옷을 챙겨입는 순간부터 ‘나도 데려 나가 주세요’라고 녀석이 젖은 눈으로 말하는데 두고 올 수가 있어야지”
철규는 .어릴 때 강아지는 커녕 토끼도 징그럽다고 도망치던 소년이었다.작은 공장을 운영하다 빚에 몰려 자살한 그의 외아들 소식을 들은게 십 년은 더 된 것 같다.
“부러졌던 뼈가 아물어 가는 것 같아 간암 9주의 시한부 인생인 윤상이 도리어 소생하는 기분이네”
말하다 말고 옆구리를 움켜쥔다. 독한 소주를 3잔째 물컵에 부어 비우는 철규였다.항암주사도 맞을 형편이 안돼 술로 마취하는 주인의 궁색함을 아는 걸까? 음식을 씹던 철규의 강아지가 주인을 올려다 보며 눈을 글썽이고 있었다.
"할아버지 이거 읽어 주세요!"
라며 책을 들고 온 손자 손녀는 책도 던져 놓고 강아지에 정신이 팔렸다. 식탁 위의 동화책 제목이 눈에 들어왔다. 행복한 왕자' 였다. 왕자는 불행한 이웃들 모습을 다 보고 자신의 보석 눈알부터 금붙이 옷까지 제비를 통해 하나씩 뜯어 주고 끝내 벌거숭이 고철 덩어리로 남았다. 헌데 요즘 세상은 나눠 주기 전에 와서 속옷까지 벗겨 가는 것 같다.
잃은 게 많았던 전쟁의 시절에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재산이며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던 시절. 숱한 죽을 고비들을 넘기고 살아온 지금의 인생은 덤이 아니겠나? 라며 철규가 애써 웃어 보이며 뷔페 접시에 담아온 갈비를 윤상에게 밀쳐 주었다. 철규가 권하는 갈비를 입에 넣었다. 어금니 4개는 다 빠지고 송곳니까지 흔들거려 고기를 먹을 수가 없다. 틀니를 하려다가 돈 500만원에 망설인 게 다시 억울한 심정을 부르기 시작했다.
예식장 하객들이 다 물러가고도 철규는 자리에 한 참이나 남았고 윤상은 그의 옆을 지켰다. 서울에 또 언제나 올지 모르겠다며 함께 서울역 구경이나 가보자고 하는 철규를 윤상은 외면할 수 없었다. 서울역 구청사의 주춧돌을 철규도 윤상도 한참동안 손으로 어루만졌다. 한국전쟁 전 용산에서 학교를 다닐 때 방학이 되면 고향 청진으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던 기억이 살아났다.
"손자들에게도 여기를 들려서 입구 안 쪽 좌측 표석에 손을 대어 보라고 해야겠어"
윤상이 그렇게 말할 때 곤색 정장에 어깨 띠를 두른 청년 한 명이 다가와 말을 건넸다.
"어르신 저기 서울역 4호선 2번 출구 앞에서 무료 저녁 배식을 하고 있습니다. 이용해 주세요"
윤상의 기억에도 그곳은 무상 급식소가 있는 자리가 맞았다.
추운 겨울에다 연말연시여서 일까. 평소 노숙인들에게 중식만 제공하던 급식이 오늘은 석식까지도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배식대에서 일하던 아줌마들이 보이질 않았다. 대신 젊은 남자 2명과 얼굴이 유난히 하얗고 조그마한 여자가 봉사하고 있었다. 밥 냄새에 철규의 애완견이 겨울 외투 안에서 꿈틀거리다가 밖으로 뛰쳐 나왔다. 식판을 들고 구석 자리로 찾아드는 철규와 윤상은 강아지를 수습하느라 곤욕스러웠다. 하얀 얼굴의 여인이 강아지 이름이 뭐냐고 묻자 철규가 ‘영구’라고 대답했다.
“영구야. 이리와 착하지…”
가늘지만 또렷한 그녀의 목소리에 강아지 영구는 냉큼 그녀의 무릎을 향해 까치발을 서며 따랐다.
“저희 캘빈 리더십 학교가 오늘 배식 봉사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들이 가슴에 달고 있는 ‘캘빈’이라는 가슴 띠가 눈에 들어왔다.
명태국을 훌쩍거리고 있는데 가슴 띠를 한 대표 처럼 보이는 남자가 안내를 했다. 리더십 공개 강좌에 특별히 노인분들을 모신다는 것이었다.
“자기 미래의 성공 이미지를 그리고 실천 공약을 발표하고 그 다음 주에는 실천 사례를 발표합니다.다른 이의 발표를 들으면 그 긍정적 변화의 감격이 서로에게 전이되며 긍정의 에너지 바다가 되지요."
철규가 윤상의 손목을 힘주어 잡았다.
“한번 따라가 보세. 젊은 이들이 공부하는 걸 또 언제 보겠나?”
강의후 인근의 찜질방을 30%에 이용할수 있는 할인이용권을 지원해 준다는 조건도 마음을 움직였다.
3
충무로에 있는 캘빈 리더십 건물의 금요일 저녁 7시 강좌는 같은 건물 한 층 아래 2층 작은 강의실에서 시작됐다. 현란한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 뒤로 벽에는 강의 기념 사진, 수강생 기념 사진들이 즐비하게 걸려있었다.
“차분하고 온유한 시선으로 당신의 사화산 처럼 잠들어 있던 열정을 태평양처럼 일렁이게 해주는 우리의 비전 가이드 조영희 강사를 소개합니다.”
소개 받은 여자 강사는 수강생 각자의 외모와 이름을 조합하는 기억법으로 그녀는 전체 수강생의 이름을 빠짐없이 외웠는지 수강생의 발표를 유도할 때마다 '홍석호 님께서 한 번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박수정 님께 한번 의견을 들어 보겠습니다'라는 식으로 이름을 불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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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글은 연평도 사람들인가요..아니면...처량한 신세타령글인가요...재미있게 읽다가 슬프고 서글퍼지고요...흐흑
노령화 세태를 말하고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