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인향 17

제 17 장 뼈아픈 패배   하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할지 방향을 잡지 못했다. 도대체 자기가 가야할 곳이 어디란 말인가?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돌연 이를 빠드득 갈며 나직이 뇌까렸다. “백마, 소혜문 이둘 두 잡종들은 언젠가 용서 없이 능지처참해 죽여 버리겠다.” 그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돌연 외마디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왕세열, 당신은 매우 신출귀몰하군요.” 어쩌면 이 말은 비웃는 것이 분명했다. 왕세열은 소리 나는 쪽으로 급히 고개를 돌려보고는 안색이 일변했다. 가파른 산비탈에서 은나찰이 두 명의 시녀를 데리고 나는 듯이 달려오고 있지않은가, 왕세열은 그녀를 보자 울화가 치밀어 날카롭게 고함을 질렀다. “당신은 무엇 때문에 나를 쫓아다니는 것이오?” 은나찰은 요염하게 웃으며 말을 받았다. “나는 당신을 데려가려고 그러는 거예요.” 왕세열은 두 시녀와 은나찰을 쓸어보고 나서 코웃음을 날렸다. “흥! 당신들이 아무리 나를 쫓아다녀도 나는 가지 않을 것이오.” “왕세열! 조금 전에 당신은 용케도 달아났지만 이번에는 맘대로 안될 걸요.” “그렇다면 마음대로 해보시오.” “좋아요. 당신은 내가 무정하다고 생각지 마세요.”그녀는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소매자락을 펄럭이며 그에게 달려들었다. 그녀의소매자락에서 명쾌한 파공음이 일며 가벼운 경풍이 왕세열의 얼굴을 향해밀려왔다. 이 1 초의 발출은 실로 신속했으나 왕세열은 더욱 신속하게 철금을 휘둘러 그녀의 1초를 봉쇄했다. 하지만 그가 막 철금을 휘두르려고 할 때 은나찰은 즉각 초식을바꾸어 옥장을 허공에 춤추며 왕세열의 어깨를 잡아왔다. 그녀의 출수가 어찌나 빠른지 왕세열은 그 다음 공격을 어떻게 방비해야 좋을지몰랐다. 그가 어리둥절한 채 몸을 뒤로 물리려 할 순간, 이미 그녀의 갈무리 같은손이 그의 어깨 가까이 접근했다. 바로 위기일발의 찰라, 휙! 하는 허공을 가르는 예리한 소리와 함께 눈앞에 백영이번쩍하며 날카로운 소리가 귓청을 찢었다. “은나찰, 우리는 또 만났군.” 위기일발의 순간에서 아슬아슬하게 물러난 왕세열은 1 장 가량 밀려난 후 고개를들어 보니 백마가 은나찰과 마주 대치한 채 서 있었다. 전신에 백의를 걸치고 있는 이 사람은 왕세열을 꼭 수중에 넣어야 속이 풀리겠다는듯 언제나 신변 가까이 따라다니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지 않다면 위기의 순간,악착같이 나타나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쓸 리가 없다.백마는 일단 공력을 펼쳐 선수를 잡자 끝장을 내려는 듯 은나찰을 맹렬히 추격해갔다. 은나찰은 극도로 화가 치밀었다. 그것도 그럴 것이 백마가 이 귀중한 시간에 나타나방해만 하지 않았더라면 무림에서 혈안이 되어 수중에 넣으려고 하는 왕세열을 잡을수 있는데 뜻밖에도 헛손질만 한 결과가 되었기 때문이다. 백마에 의해 몸을 이리저리 날리며 공격할 틈을 노리고 있을 때 휙휙 하는 두 차례옷자락이 펄럭이는 소리가 들리며 가까운 숲 속에서 두 가닥 흑영이 나와 멍하니 서있는 왕세열을 향해 날아갔다. 이번에는 바로 유령문의 유령인이 출현한 것이다. 왕세열은 사정이 심상치 않음을 깨닫고 황급히 수중의 철금을 휘둘러 반격했다. 바로 이때다. “멈추시오!” 외마디 날카로운 폭갈이 허공에서 우렁차게 울려 퍼졌다. 중인들은 이 소리를 듣자 모두 안색이 일변하며 급급히 공격을 멈추고 뒤로물러났다. 8 장 밖에 한 명의 청의인이 우뚝 서 있었다. 그 자의 나이는 대략 40세 남짓해보였고 엄숙한 얼굴에는 감히 범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 있었다. 그의 등 뒤에 나풀거리고 있는 검 자루의 숱이 마치 피빛처럼 붉어 유난히도중인들의 눈을 현혹시켰다. 중인들이 놀란 가운데 아무도 입을 여는 사람이 없자 청의인은 입가에 한 가닥조소를 머금고 천천히 걸음을 옮겨 장내로 들어섰다.중인들은 아무도 그를 알지 못하는 듯했다. 하지만 청의인이 얼굴 가득한 위엄에짓눌리기라도 한 듯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는 눈치다. 청의인은 장내에서 우뚝 걸음을 멈추더니 송곳같이 예리한 시선을 돌려 왕세열을쏘아보았다. “네가 왕세열이냐?” 왕세열은 약간 어리둥절해 하며 대답했다. “그렇습니다만……” “나는 아직 말을 다 끝내지 않았다. 네가 정말 왕문청의 아들인지 알고 싶다.” 왕세열은 검미를 찡긋 치켜떴다. “그렇습니다. 한데 귀하는……” 청의인은 돌연 미간을 찌푸리며 무한한 근심이 있는 듯 왕세열의 얼굴을 뚫어지게바라보더니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채숙아는 죽지 않고 살았느냐?” 이 돌연한 질문에 왕세열은 가슴이 뜨끔하며 얼른 입을 열었다. “선배님, 그렇습니다.” 청의인은 비로소 미간을 활짝 펴며 장내에 있는 중인들에게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나는 당신들에게 볼일이 없으니 당신들은 이제 가 봐도 좋소.” 이 말은 그가 비록 웃으면서 말했지만 그 어투는 상대방을 조금도 안중에 없다는뜻이 내포되어 있었다. 다시 말해 장내는 일순간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청의인에의해 주객이 전도된 셈이다. 백마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냉랭히 웃으며 말을 뱉았다.“흥! 몹시 건방진 친구로군. 귀하는 무엇 하는 친구요?” 청의인은 조금도 화를 내지 않고 빙긋이 웃었다. “당신은 내게 그런 걸 물어볼 자격이 없을 것 같소.” 백마는 돌연 눈에서 살기를 뿜어냈다. “내가 가지 않겠다면 너는 어떻게 할 셈이냐?” “그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일이오. 나의 말은 한 두 마디면 족하고 나머지는 등뒤의 검이 처리해 줄 테니 말야.” 백마는 청의인의 검을 힐끗 쳐다보며 냉소를 날렸다. “그렇다면 네가 얼마만큼 능력을 지니고 큰소리를 치는지 시험해 보아야겠구나.” “좋소.”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백마는 기쾌한 신법으로 청의인을 향해 덮쳐갔다. 그러나 백마가 청의인의 면전에 채 날아오기도 전에 한 줄기 혈광이 허공으로뿜어나갔다. “으악!” 외마디 처절한 비명소리가 허공을 찢으며 울려 퍼지더니 순식간에 고요를회복했다. 장내에 중인들은 청의인이 등 뒤의 장검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보았을 뿐 그가 언제장검을 뽑아 백마에게 출수했는지 보지 못했다. 백마가 뜻밖에도 그의 장검에 죽을 줄은 전혀 예상치 못했을 뿐 또 이렇게 간단히승부가 결말날지는 더더구나 예상치 못해 중인들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싸움치고 너무 싱겁기도 했고 너무나 공포스런 장면이 아닐 수 없었다.백마는 청의인의 단 일격에 가슴이 두 쪽으로 갈라져 비몽사몽간에 황천길로 직행한것이다. 청의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여전히 웃으며 중인들을 바라보았다. “또 누구 출수할 사람 없소?” 이 한마디는 마치 장난기 섞인 어투였으나 중인들은 등골이 오싹했다. 잠시 쥐죽은 듯한 침묵이 흐른 후 청의인은 천천히 고개를 돌려 왕세열을 바라보며자상한 어조로 말했다. “왕세열, 나와 함께 가자.” 왕세열은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없어 의아한 빛으로 청의인을 바라보았다. “어디로 간단 말입니까?” “가보면 안다.” 은나찰이 냉랭히 웃으며 말을 받았다. “잠깐!” 청의인이 빙그레 웃으며 그녀를 돌아보았다. “낭자는 할 말이 있소?” “그래요. 귀하의 무공은 정말 감탄할 만한 정도군요.” “그럼 낭자도 한번 시험해 보겠단 말이오?” “나는 백마와는 달라요. 그러나 나는 당신에게 한 가지 제의를 하겠는데 당신이응할 여유가 있을지 의문이군요.”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은나찰은 요염하게 웃으며 유령인을 힐끗 바라 보았다. “나는 유령인이 한조가 되어 출수하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어요?” 청의인은 한 차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못할 것도 없지. 작정을 했으면 손을 써도 좋소.”은나찰이 유령인과 함께 출수하겠다고 제의한 것은 두 시녀에게 기회를 주어왕세열을 제압하려는 속셈이었다. 그녀는 두 시녀에게 눈짓을 하고 나서 번개같이 청의인에게 달려들었다. 청의인은 그녀의 일격을 피한 후 고함을 질렀다. “잠깐!” 은나찰은 급히 신형을 멈추고 비웃듯 물었다. “당신은 혹시 겁이 난 게 아닌가요?” 청의인은 담담하게 웃을 뿐 아무대꾸도 않고 걸음을 옮겨 왕세열의 앞으로다가갔다. “왕세열, 너는 저 두 계집애를 상대해 낼 수 있겠느냐?” 왕세열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건 어렵지 않습니다.” 청의인이 돌연 어조로 모기 소리만큼 낮추어 다시 물었다. “너는 100년 가까이 되는 내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데 너는 왜 내력을 발휘할 수없는지 그 이유를 아느냐?” 왕세열은 어리둥절하며 급히 물었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단 말입니까?” “다시 묻겠는데 너의 임독 두 맥이 어째서 뚫리지 않는지 그 이유를 알고있느냐?” “모르겠습니다.” “음…… 사실 너의 임독이맥이 관통되면 결코 너의 무공이 이 사람들에 비해조금도 뒤떨어지지 않지.” 왕세열이 반신반의하며 가만히 있자 청의인이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 “자, 내가 너의 임독이맥을 관통해 줄 테니 똑바로 섰거라.”왕세열이 내심 의혹을 금치 못하며 어떻게 해야할 지 몰라 있을 때 갑자기 청의인이날카롭게 외쳐 왼손을 휘둘러 앞으로 찍어왔다. 왕세열이 깜짝 놀라 막 몸을 피하려 했으나 갑자기 전신의 맥이 쭉 빠지며 힘없이땅바닥에 쓰러졌다. 은나찰과 유령인은 이 광경을 목격하자 내심 경악과 의혹을 금치 못했다. 그들은청의인이 선수를 써 왕세열을 납치해 가려는 것이 아닌가 의심했고 또 정말왕세열의 혈도가 뚫려질지 믿어지지 않았다. 아무튼 이 두 가지 사실은 그들에게 있어 모두 불리한 일임에 틀림없는 일이다. 그들이 의혹을 금치 못하고 있을 때 청의인이 다시 왼손을 뻗어 왕세열의 전신요혈을 찍어갔다. 이 눈 깜짝할 사이에 전개한 청의인의 수법은 실로 형용할 수없을 만큼 기묘하기 짝이 없었다. 청의인이 요혈을 찍기가 무섭게 기절해 쓰러졌던 왕세열이 기적적으로 벌떡일어섰기 때문이다. “자, 이제 됐으니 너는 잠시 운공조식을 해라. 내가 아무 일이 없도록 앞에서보살펴 주겠다.” 왕세열은 그의 말을 더 이상 의심하지 않고 곧 땅바닥에 책상다리를 한 채운공조식에 들어갔다. 얼마가 지나자 돌연 단전에서 진기가 흘러넘치며 전신의 각 요혈로 퍼져나갔다. 원래 왕세열의 내력은 기약을 복용한 이후 60 년에 상당했다. 또 현의검모로부터영단을 받아 복용하여 20 년이 증가되었는데 단지 그의 임독이맥이 뚫리지 않아지금까지 내력을 발휘할 수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임독이맥이 뚫리자 갑자기 잠재해 있던 내력이 폭발하듯 용솟음쳐 심맥이끊어질 정도였다. 왕세열이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을 때 청의인이 돌연 오른손을 내뻗어그의 등심에 갖다댔다. 그러나 용솟음치던 기혈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기혈이평상시처럼 운행되었다. 청의인은 그제야 빙그레 웃으며 은나찰을 돌아보았다. “이제 두 분께서 출수해도 좋소.” 은나찰이 유령인에게 손짓을 한 후 하며 몸을 날려 앞으로 덮쳐갔다. “흥! 이것은 당신이 자초한 것이니 원망하지 마세요.” 두 명의 유령인도 냉소를 날리며 뒤에서 청의인을 향해 덮쳐갔다. 눈 깜짝할 사이 세 명이 덮쳐가 공격을 펼치자 그 위맹은 경천동지할 만 했다.하지만 청의인은 조금도 당황하는 기색 없이 냉랭히 웃으며 장검을 휘둘러 앞으로맞아나갔다. 섬광이 번쩍하자 세 명의 고수들은 일제히 흠칫 놀라 분분히 뒤로 후퇴했다가 다시앞으로 덮쳐갔다. 이때 두 명의 비마방 시녀도 날카로운 교성을 터뜨리며 왕세열을 향해 덮쳐갔다. 왕세열은 철금을 휘두르며 호통을 쳤다. “받아랏!” 철금이 허공을 가르며 맨 앞에 덮쳐간 남의시녀의 머리를 후려쳤다. “아악!” 귀청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비명소리가 들리고 덮쳐온 시녀가 허공에 피를 뿌리며벌렁 쓰러졌다. 뒤이어 철금이 허공을 긋자 두 번째 시녀가 단말마 비명을 울리며가슴이 터져 죽어버렸다.두 시녀는 1 초도 공격해 보지 못하고 무참하게 죽어버린 것이다. 왕세열은 너무나 뜻밖인 듯 그 자리에 멍하니 선 채 두 시체를 내려다보았다.이것은 그에게 있어 너무나 뜻밖의 일이었던 것이다. 이때 그의 귓전에 온유하고 부드럽기 그지없는 목소리가 그를 불렀다. “왕 소협……” 왕세열은 가슴이 섬뜩하여 급히 고개를 쳐들고 소리 난 쪽을 바라보았다. 5 장 밖에 지옥마화가 언제 나타났는지 만면에 수심이 가득한 빛으로 서 있었다. 왕세열이 우청이 떠나기 전에 한 말이 뇌리에 떠올라 급히 입을 열려고 했을 때차가운 냉소소리가 들렸다. “흥!매우 다정한 칭호로군.” 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한 줄기 금색 인영이 장내로 날아와 우뚝 멈추었다. 왕세열과 지옥마화는 나타난 사람을 보자 동시에 깜짝 놀라 외쳤다. “혈아랑자 등곤! 당신이……” 등곤이 차갑게 웃으며 그의 말을 가로챘다. “그렇소. 바로 나요.” 지옥마화는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어찌할 바를 몰라 했다. 왕세열 역시 침착성을 잃고 살기 띤 어조로 날카롭게 외쳤다. “등곤, 나는 오랫동안 네놈을 찾고 있었다. 등곤은 가소롭다는 듯이 차갑게 웃었다. “무슨 일로 나를 찾았지?” “너를 죽여주려는 것이다.”등곤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핫하하하…… 왜 나를 죽이려 하는 것이냐?” 왕세열은 애써 침착하려고 하며 또박또박 내뱉었다. “너는 나에게 1 장을 빚진 사실이 있다.” “하하…… 나는 아직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다. 그래 그것이 어쨌단 말이야?” “나는 오늘 그 빛을 받아낼 뿐만 아니라 아예 강호의 화근을 없애겠다.” 등곤은 어깨를 으쓱하며 히죽이 웃었다. “마음대로 안 될걸.” “그렇다면 내가 시험해 보지.” 왕세열이 손을 쓰려하자 등곤이 날카롭게 외쳤다. “잠깐!” “무엇이냐?” “나는 우선 네게 한 가지 사실을 얘기해 줄까 하는데 듣고 싶지 않다면 그만두겠다.” “무엇인지 말해 보아라.” 등곤은 얼굴이 창백한 채 전신을 가늘게 떨고 있는 지옥마화를  끗 쳐다보고 소름이오싹 끼치는 웃음을 지었다. “이건 진 낭자에 관한 얘긴데 흐흐흐……” 지옥마화가 날카롭게 외쳤다. “등곤, 네놈이 감히 한 마디라도 지껄인다면 나는 너를 갈가리 찢어놓고말겠다.” 등곤은 히죽이 웃었다. “흐흐…… 그것이 뭐가 대단하다고 그러시오.” 지옥마화는 아무 말도 못하고 치를 떨었다. 왕세열은 그녀를 힐끗 쳐다보다가 등곤을 향해 큰소리로 외쳤다.“도대체 무슨 일인지 말해 보아라.” 등곤은 득의의 웃음을 흐트렸다. “하하하…… 꼭 듣고 싶다면 말해주지. 너는 지옥마화가 좋은 여자라고생각하느냐?” “그게 무슨 말이냐?” 지옥마화가 앙칼지게 외쳤다. “등곤! 나는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말을 마치기가 무섭게 그녀는 정말 그를 요절낼 작정인지 몸을 날려 덮쳐가며소매자락을 휘둘렀다. 왕세열은 검미를 찡긋 치켜뜨며 큰소리로 외쳤다. “멈추시오!” 그는 전광같이 몸을 날려 두 사람의 사이로 끼어들며 약간 격동된 어조로 입을열었다. “등곤, 그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자세히 얘기해 보아라.” “흥! 그럼 내가 다시 묻겠는데 너는 그녀가 좋은 여자라고 생각하느냐?” 왕세열은 가슴이 섬뜩했다. 예리한 비수에 가슴이 찔린 느낌이었다. 그는 막연한빛을 띠고 더듬거렸다. “너는 무슨 말을 지껄이려 하느냐?”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다.” 그는 잠시 말을 끊었다가 곧 흉칙하게 웃었다. “그녀 누구든지 맘에 내키면 가리지 않고 재미를 보는 여자다. 나와도 함께……” “뭐라구!” 왕세열은 더 이상 말을 잊지 못하고 멍하니 지옥마화를 주시했다. 마치 청천벽력같은 말에 눈앞이 아찔하여 몸을 휘청거렸다.등곤은 입가에 음흉한 웃음을 띠고 기다렸다는 듯이 몸을 날려 번개같이 왕세열의혈도를 찍었다. 왕세열은 상대가 이처럼 교활한 독계를 쓰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가경각심을 느끼고 급히 몸을 피하려 했을 때는 이미 한 발 늦고 말았다. 마혈이 따끔! 한 후 몸을 움직이려 했지만 전신이 말을 듣지 않았을 뿐 아니라 힘이쭉 빠져 앞으로 무력하게 쓰러졌다. 지옥마화가 분노를 터뜨리며 재빨리 등곤을 향해 덮쳐갔다. “등곤, 나는 네놈을 죽이고 말겠다.” 등곤은 왕세열을 옆구리에 끼고 재빨리 뒤로 물러섰다. “핫하하…… 마음대론 되지 않을 걸.” “네가 그를 놓아준다면 나는 네게 손을 쓰지 않겠다. 내려놓아라.” “경고하겠는데 감히 출수한다면 나는 먼저 왕세열부터 죽이겠다.” 지옥마화는 재차 덤벼들려고 하다가 이 말을 듣자 전신이 뻣뻣해졌다. 그녀는이빨을 갈며 날카롭게 외쳤다. “너는 도대체 그를 어떻게 할 작정이냐?” 등곤은 득의한 웃음을 날리며 고개를 저었다. “걱정하지 마시오. 나는 추호도 그를 죽일 생각이 없으니 말이오.” 여기까지 말을 한 후 다시 몸을 솟구쳐 3 장 밖으로 달려 나갔다. 그러나 그가 미처땅바닥에 내려서기도 전에 한 가닥 청색인영이 전광같이 쏘아와 전면을 차단했다.바로 청의인이었다.청의인은 얼굴에 살기를 띠며 무섭게 입을 열었다. “친구, 좋게 말할 때 그를 내려놓아라.” 등곤은 앙천대소를 터뜨렸다. “하하하…… 그렇게는 안 될 것이오.” “흥! 넌 죽고 싶어 눈이 뒤집어 졌구나.” 등곤은 오만하게 코웃음을 쳤다. “당신이 손을 쓴다면 나는 먼저 왕세열을 죽이겠소. 자신이 있다면 손을 써보시오.” “넌 너무 자신을 높이 평가하는 모양이군. 하지만 다시 말하지만 그를 놓아주는 게좋을 것이다.” “당신은 나에게 손을 쓸 수 있다고 장담하는 군요. 그렇다면 한번 손을 써보시오.” 그는 재빨린 섭선을 꺼내 왕세열의 머리 태양혈에 갖다대고 냉랭히 코웃음쳤다. 청의인은 안색이 일변하며 앞으로 달려가려다가 멈칫했다. 그 역시 어쩔 수 없었던모양이었다. 일신에 비록 놀라운 무공을 지니고 있었지만 왕세열을 구할 수 없게되었다.  등곤은 득의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럼 나는 이만 실례하겠소.” 그는 왕세열을 옆구리에 낀 채 몸을 솟구쳐 앞으로 달려갔다. 청의인과 지옥마화는 마치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으로 등곤이 달아나는 것을보고도 멍하니 바라볼 뿐이다.* * *얼마나 지났을까, 왕세열은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살펴본 후 깜짝 놀랐다. 지금 자기가 누워있는 곳은넓은 대청이었는데 주위에 수십 명이나 되는 남의인이 삼엄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왕세열이 일시 어찌된 영문을 모르고 있을 때 여인의 싸늘한 외마디 냉소가들렸다. “왕 소협, 이제 깨어나셨군요.” 왕세열은 얼른 몸을 일으켜 암중으로 운기를 해보았다. 그러나 그는 곧 운기를멈추고 운기할 것을 포기했다. 아직도 혈도가 찍혀 풀리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는 소리 난 쪽으로 천천히 시선을 돌리다가 한 쪽에 혈해랑자 등곤이 득의한웃음을 짖고 서 있는 모습을 발견했다. 왕세열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날카롭게 외쳤다. “네놈이 감히……” “하하하……” 등곤은 광소를 터뜨리며 말을 받았다. “이곳은 네가 소리칠 장소가 아니니 점잖게 구는 것이 좋을걸.” 왕세열은 눈에서 살기를 번쩍이며 그를 노려보았다. 당장에 혈해랑자를 삼켜 버리지못하는 것이 분한 듯이…… 그는 곧 침착성을 회복하고 이번에는 우측에 은나찰이 서 있음을 보고 흠칫 놀랐다.보아하니 등곤이 이미 비마방에 가입한 모양이었다. 그렇다면 지금 자기가 이곳에있는 것은 등곤이 그를 독계로 생포한 후 비마방에 넘겼음이 분명했다. 그가 한동안 멍하니 서 있을 때 갑자기 대청 뒤쪽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렸다. “대리방주께서 오십니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대청 안은 쥐 죽은 듯이 조용했다.한차례 여인의 옷자락 끌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 명의 절세 미모를 지닌 소녀가 네명의 남의시녀를 거느리고 안으로 들어섰다. 모든 남의인은 물론 은나찰과 등곤까지 일제히 무릎을 꿇고 큰소리로 외쳤다. “제자들은 대리방주께 인사 올립니다.” 비마방의 대리방주는 수정처럼 맑은 눈망울을 굴려 중인들을 바라보더니 입가에엷은 웃음을 띠었다. “모두 일어나 한 쪽으로 물러서시오.” 그녀의 목소리는 감히 어느 누구도 얕볼 수 없을 만큼 위엄이 있었고 음성은옥쟁반에 구슬을 굴리듯 아름답기 짝이 없었다. 왕세열은 그녀를 바라보는 순간 가슴이 섬뜩했다. 나이가 불과 20세도 안되는소녀가 비마방의 대리방주라니 실로 납득이 가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 대한 의혹을 금할 수 없었지만 비마방의 방주가 누군지에 대해 더욱의혹을 억제할 수 없었다. 수십 명의 남의인이 일제히 대답을 하고 뒤로 물러서자 대리방주는 갑자기 무표정한얼굴로 왕세열을 주시하며 의아한 빛으로 물었다. “귀하가 바로 왕세열인가요?” 왕세열은 이 질문에 그녀를 냉담한 눈빛으로 바라볼 뿐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대리방주는 약간 의아한 빛을 띠고 다시 입을 열었다. “귀하는 왜 내 질문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거예요?”“흥!” 왕세열은 이번엔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이것은 비마방의 문인이나 대리방주에게납득이 가지 않는 일이었다. 대청에 깔려 있는 남의인의 안색이 일변했고 은나찰과등곤까지 푸르락붉으락 얼굴이 일변했다. 그들은 대리방주가 크게 노할 것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등곤이 불쑥 앞으로 나서며 왕세열을 향해 날카롭게 소리쳤다. “왕세열, 방주의 질문이 아니꼬우냐?” 왕세열은 냉담하게 그를 쏘아보며 입을 열었다. “내가 그녀의 질문에 꼭 대답할 필요가 있느냐?” “그럼 넌 대답하지 않겠단 말이냐?” “그건 너 같은 잡종에게 말할 필요도 없다.” 등곤은 안색이 크게 변하며 고함을 질렀다. “그럼 네가 대답을 하지 않는지 내가 시험해 보겠다.” 그는 손바닥을 뒤집어 호되게 왕세열의 따귀를 두 대 갈겼다. 눈 깜짝할 사이 왕세열의 따귀를 후려갈긴 것이다. 왕세열의 두 볼이 부풀어 오르며 입에서 선혈이 흘러나왔다. 왕세열은 손등으로 입가의 선혈을 훔치며 냉담하게 웃었다. “등곤, 나는 이 두 대를 잊지 않고 갚아주겠다.” “흥! 그럼 이번의 두 대도 기억했다 갚아라.” 그는 손을 뒤집어 또 따귀를 갈기려 했다. 바로 이때다. “멈추시오!” 대리방주가 앞으로 나섰다.등곤은 얼른 손을 거두고 공손히 대리방주를 바라보았다. “대리방주……” 대리방주는 냉랭히 그의 말을 가로챘다. “당신은 그의 혈도부터 풀어주시오” 등곤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감히 거역하지 못하고 공손히 대답을 한 후왕세열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왕세열은 혈도가 풀렸지만 등곤에게 격중당했을 때 입은 상처가 심각해 공력을제대로 발휘할 수 없었다. 대리방주가 입가에 웃음을 띠고 꾀꼬리 같은 음성으로 입을 열었다. “왕세열, 제가 손님의 대접을 너무 소홀했으니 널리 이해해 주세요. 그러니 마음놓고 우리가 얘기를 나누는 게 좋지 않아요?” 왕세열은 여전히 냉담하게 바라보며 냉소를 날렸다. “나는 당신과 별로 할 얘기가 없소이다.” 대리방주는 그의 말에 별로 개의치 않았다. “저는 당신이 말을 하는 걸 들을 수 있으니 퍽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처음에는당신이 벙어리가 아닌 가 염려했어요.” 그녀는 잠시 침묵을 지켰다가 곧 쌩긋이 웃으며 말했다. “제가 당신을 이곳에 모시고 오게 한 이유가 무엇인지 아시나요?” 왕세열은 냉소를 쳤다. “당신들이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수법에 감탄했소.” 대비방주는 얼굴을 살짝 붉혔다. “우리는 누차 사람을 보내 당신을 모셔오도록 했어요. 하지만 당신이막무가내이므로 부득이……”“흥!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데려온 목적이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귀하더러 본방에 가입하라고 권유하자는 뜻이지 별다른 일은 없어요.” 왕세열은 입가에 조소를 띠었다. “나는 거절하겠소.” “왜요?” “내가 왜 꼭 귀방에 가입해야 할 필요가 있단 말이오?” “그건 무림을 함께 새신해서 소협과 군림하고 싶어서예요.” 왕세열은 그녀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며 어처구니없다는 듯이 픽 웃었다. “나는 낭자의 호의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겠소. 다시 말해 소생은 당신과 함께영화를 누릴 복이 없는 사람이오.” 대리방주는 안색이 일변하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아무튼 당신은 꼭 본방에 가입해야 되요.” “만약 내가 싫다면?” 대리방주는 싸늘하게 그를 노려보며 한자 한자 또박또박 떼어 말했다. “당신이 가입하던 안하던 간에 나는 상관하지 않겠어요. 하지만 당신이 나의 3검을 받고도 무사할 수 있는지 궁금하군요.” 왕세열은 그녀의 말뜻을 당장 알 수 있었다. “낭자, 소생이 당신의 3 검을 받아낸다면 어쩌겠소?” 대리방주는 냉랭히 코웃음을 쳤다. “당신은 나의 3 검을 받을 자격도 없어요. 하지만 만약 나의 3 검을 받아낸다면나는 즉시 당신이 이곳을 떠날 수 있도록 하겠어요.”왕세열은 상대가 자기를 너무 과소평가하자 오기가 충천해 코웃음을 날렸다. “당신은 약속을 지킬 수 있소?” “나는 한번 내뱉은 말은 하늘이 무너져도 꼭 지켜요. 그리고 또 당신이 2 검을받아낸다면 본 방은 명예를 걸고 앞으로 당신을 괴롭히지 않겠다는 것도약속해요.” 왕세열은 내심 흠칫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말은 자신에 가득 차 있어 자기가 너무 상대를 얕본 것이 아닌가 하는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그는 태연자약하게 빙긋이 웃으며 냉랭히 말했다. “두 번째 호의에 대해 소생은 감사할 뿐이오. 하지만 내게 한 가지 조건이있소.” 대리방주는 쌩긋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무엇인지 말해 보시오.” 왕세열은 한쪽에 서 있는 등곤을 힐끗 바라 보았다. “저 녀석을 내게 넘겨주는 것이오.” 대리방주는 자신이 있기라도 한 듯, 아니면 등곤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있다는 듯간단하게 승락했다. “좋아요.” 그녀는 잠시 멈추었다가 곧 고개를 돌리며 차갑게 소리쳤다. “검을 갖고 오너라!” 그녀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한명의 시녀가 공손히 대답한 후 자루 보검을그녀에게 바쳤다. 대리방주는 섬섬옥수로 검을 받아 쥔 후 왕세열의 다섯 자 앞으로 걸어왔다.“왕세열, 당신이 패한다면 당신은 어떻게 하겠어요?” 왕세열은 잠시 생각하다가 경쾌하게 대답했다. “패자는 말이 없는 법이오. 나는 낭자가 어떻게 하던 따를 뿐이오.” “좋아요. 그럼 먼저 손을 쓰세요.” “잠깐!” “당신은 또 할 말이 있나요?” 왕세열은 한 손에 철금을 들고 냉담하게 반문했다. “당신은 부상을 입은 나와 싸워 이겨도 영광스럽지 못할 것이오.” 대리방주는 안색이 확 변하며 급히 검을 거두었다. “아, 나는 그 점을 미처 생각지 못했군요.” 말을 마치자 곧 품속에서 옥병을 꺼내 단약 한 알을 손바닥에 쏟아 왕세열에게건네주었다. 왕세열은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그녀가 주는 단약을 단숨에 삼키고 나서 즉시 그자리에 앉아 운공조식에 들어갔다. 그 단약은 약 반시진이 지나자 곧 효력을 발휘했다. 순식간에 심신이 평정되며상세가 씻은 듯이 완쾌되었다. 대리방주는 그가 자리에서 일어서자 웃으며 물었다. “당신의 상세는 이제 완쾌되었나요?” 왕세열은 고개를 끄덕인 후 입을 열었다. “하지만 내게 한 가지 궁금한 게 있소.” 대리방주는 의아한 빛으로 물었다. “뭔지 말씀해 보세요.” “당신은 대리방주인데 왜 방주의 모습은 보이지 않소?”대리방주는 싸늘하게 웃었다. “이것은 본방의 비밀이에요. 하지만 만약 당신이 나를 이긴다면 곧 얘기해주겠어요.” “당신은 시원해서 좋군요.” 왕세열은 고개를 끄덕일 뿐 철금을 옆으로 비스듬히 든 채 태산처럼 버티고 섰다. 잠시 시간이 흐른 후 그는 철금을 가볍게 휘저으며 말했다. “낭자, 손을 쓰시오.” 대리방주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이 먼저 손을 쓰세요.” “아니오. 대리방주가 먼저 손을 쓰시오.” 대리방주는 입가에 차가운 미소를 머금더니 천천히 오른손의 장검을 치켜들었다. 대청 안의 모든 중인들은 숨을 죽인 채 한눈도 팔지 않고 왕세열과 대리방주를바라보았다. 장내의 정세는 극도로 긴장해갔고 일순 차가운 공기마저 감돌았다. 중인들 가운데 누구 하나도 왕세열이 대리방주의 3 초를 무사히 막아내리라고는믿지 않았다. 왕세열 역시 대리방주가 자기를 격패 시킬 만큼 공력이 고강하리라고는 생각지 않아담담한 빛으로 대리방주를 주시했다. 그는 이번에 설사 목숨을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그녀의 3 초를 막아 내야 한다고비장한 각오를 다지고 있었다. 그는 암암리 내공을 전신으로 운용해 대리방주의 공세를 맞이할 자세를 취했다. 대리방주는 가슴 앞까지 쳐들었던 장검을 갑자기 멈추며 쌩긋이 웃었다.“이제 출수할 테니 조심하세요.” 왕세열은 담담하게 대꾸했다. “출수 하시오.” 날카로운 교성이 울려 퍼지더니 한 줄기 섬광이 번쩍하며 검망이 왕세열에게 폭사해갔다.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왕세열은 몸을 휘청하며 전광같이 철금을 휘두르며 그녀를 맞이해 나갔으며대리방주 역시 조금도 양보하지 않고 검화를 난무시켰다. 찰라간에 1 초가 흘러갔고 왕세열은 무사히 대리방주의 1 초를 피하는데 성공했다.그러나 막 2 초로 접어들었을 때 갑자기 장검의 초식이 변하며 번개같이 왕세열의가슴 앞으로 쏘아왔다. 이 1 검의 공격은 조금 전의 일초보다 예측을 불허하는 것이었다. 왕세열은 전신의 공력을 철금에 집중시켜 맹렬히 휘두르며 장검을 맞았다. 쨍! 하는맑은 금철소리가 울려 퍼지며 쌍방은  뒤로 후퇴했다. 그러나 즉각 한데 어울려 맹렬한 공격과 수비가 전개 되었다. 바야흐로 제 3초의 공격이 시작된 것이다. 왕세열은 그녀의 예리한 검법에 식은땀을 흘리며 철금을 옆으로 그어 상대방의옆구리를 찔러갔다. 대리방주의 장검 끝이 살짝 위로 치켜지며 왕세열의 곁으로 스쳐가 다시 제자리로돌아왔다. 이것은 실로 눈 깜짝할 사이에 일어나 중인들은 싸움이 끝난 지도 모른 채 멍하니장중을 쳐다보았다.왕세열은 자신도 약간 멍한 빛을 띤 채 그 자리에 서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무사히 그녀의 3초를 피해냈단 말인가?’ 대리방주가 요염하게 웃으며 말했다. “왕 소협, 미안해요. 호호호……” 왕세열은 그녀의 말을 듣자 자신도 모르게 눈앞이 아찔해왔다. 그녀가 방금 한 말은승리자의 음성이었기 때문이었다. 왕세열은 내심 당황해하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내가 지다니 어떻게 패했단 말인가? 흥! 이것은 불가사의 한 일이 아닐 수없구나.’ 그는 이렇게 생각하며 시선을 굴려 전신을 훑어보는 순간, 어! 하며 깜짝 놀랐다.그는 비로소 가슴 앞의 옷섶이 반자 가량 찢어져 있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왕세열은 내심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 ‘대리방주의 검법은 이미 신화의 경지에 이르렀구나. 검 끝으로 가슴 앞의 옷을찢으면서 조금도 상처를 내지 않다니……’ 그가 적지 않게 놀란 가슴을 달래고 있을 때 등곤이 성큼 앞으로 나서며 코웃음을쳤다. “왕세열, 너는 패한 것을 솔직히 시인하겠느냐?” 왕세열은 이 말에 얼굴이 뻘개지며 전신을 가늘게 떨었다. 이 일은 정말 죽음보자더한 치욕이 아닐 수 없었다. 대청 안은 일시 찬물을 끼얹은 듯한 침묵이 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