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수씨의 편지는 정말이지 내게 구원과도 같았다. 그 덕에 이번에 너를 만나고 나서 생긴 고민들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사실 우리 모두가 일용할 양식을 구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느끼는 건 가벼운 일이 아니다. 우리의 생계수단이 위협받는다고 느끼는 게 우스운 일은 아니란 말이다.
이곳으로 돌아와서도 계속 무척이나 슬펐고, 너를 위협하는 문제가 역시 나를 내리누르고 있다는 걸 느꼈다. 내가 무슨 일을 할 수 있었겠니. 기분을 바꿔보기 위해 노력했지만 내 삶도 뿌리에서부터 위협받고 있으니 발걸음조차 비틀거릴 수밖에.
네가 나를 부담스러운 존재로 존재로 느낄까 두려웠다. 하지만 제수씨의 편지로 내 입장 역시 아주 힘겹다는 사실을 네가 잘 이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에 돌아와 다시 일을 시작했는데 붓이 내 손가락에서 떨어져 내릴 것만 같더라. 하지만 내가 원하는 걸 정확히 알고 있었기에 세 점의 큰 그림을 그렸다.
그 중 하나가 혼란스러운 하늘 아래 펼쳐진 거대한 밀밭 그림이다. 극한의 외로움과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내 길에서 벗어날 필요는 없겠지. 너도 곧 그 그림들을 볼 수 있기를 바란다. 가능한 빨리 이 그림을 너에게 가져갔으면 한다. 이 그림들이 말로 할 수 없는 내 감정을 네게 전해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시골에서 내가 되찾은 건강과 원기 역시 말이다. 다른 그림들은 '도비니의 정원'이다. 이곳에 왔을 때부터 계속 생각해 온 그림이지.
계획한 여행이 네 기분을 조금 전환시켜 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종종 조카를 생각한다. 그림을 그리느라 온 신경과 에너지를 쏟아붓기보다느 아이를 기르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너무 늙어서 발길을 돌려 새로 출발한다거나 다른 어떤 것을 바랄 수가 없다. 적어도 나는 그런 느낌이다. 그런 희망들은 나를 떠난 지 오래다. 그로 인한 정신적 고통은 남겨둔 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