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으로 인하여 해안으로 밀려 올라온 지 이틀이 지났다. 오늘 아침 섬을 돌아보았다. 제법 큰 섬이다. 섬의 크기는 제일 넓은 곳이 190걸음. 길이는 끝에서 끝까지 267걸음이다.
이 섬에는 먹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 이름은 리차드 파인. 이것은 나의 일기이다. 구조된다면 (언제가 될지?) 곧 처분할 수 있다. 성냥이 많이 있다. 성냥과 헤로인. 이 두 가지만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어느 쪽이건 여기서는 1센트의 가치도 없다, 후후……. 그러니까 쓰겠다고 생각한다. 시간 보내기엔 안성맞춤이니까.
복잡한 것을 모두 고백하기로 한다면 어떻단 말인가? 시간이 남을 만큼 있는데! 역시 뉴욕의 리틀 이탈리아에서 태어났을 때에는 리차드 핀세티라는 이름이었다는 것부터 적어야 하겠지.
아버지는 머리가 딱딱한 구식의 사람이었다. 내가 외과의사가 되겠다고 하니까 생각했던 대로 아버지는 웃으며 나를 미친 놈이라고 욕하고, 한 잔 더 와인을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아버지는 마흔여섯 살에 암으로 돌아가셨다. 나는 그때 매우 잘된 일이라 생각했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풋볼을 하였다. 나는 개교 이래의 명선수였다. 포지션은 쿼터백. 마지막 2년 간은 올 시티의 멤버로 뽑혔다. 그러나 난 풋볼을 아주 싫어하였다. 그러나 단지에 살고 있는 가난한 이태리 사람으로 대학에 가고 싶어서 스포츠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풋볼을 하고 운동선수에게 지급되는 장학금을 받았다.
대학에서는 성적이 좋아서 우등생에게 주어지는 정규의 장학금을 받게 되자 풋볼을 그만두고 말았다.
나는 의학부 학생이 되었다. 아버지는 졸업이 한 달 보름 정도 남았을 때 돌아가셨다.
참으로 타이밍이 좋았다. 연단을 걸어서 졸업증서를 받고 아래를 보니까 뚱뚱한 이태리 사람이 있다…… 그건 참을 수 없는 일이다. 천한 태생을 겪은 자는 일부러 성장 과정을 폭로하는 것을 남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나는 우애회에도 가입했다. 핀세티라는 이름을 가진 나를 넣어줄 정도니까 대수로운 회는 아니지만 우애회는 틀림없다.
왜 이런 것을 적고 있는가? 왜 그런지 우스운 생각이 든다. 아니, 완전히 우스갯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튼 위대한 의학박사 파인이 되자 바지에 T셔츠 차림으로 끝에서 끝까지 침을 튀길 수 있을 정도로 좁은 고도의 바위 위에 앉아 신상 이야기를 열심히 쓰고 있으니까. 아, 배가 고프다. 그러나 걱정을 할 건 없다. 이런 것을 적는 것은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즉, 쓰고 있으면 적어도 공복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혀 잊어버릴 수는 없을 테지만 말이다.
의학부에 들어가기 전에 이름을 파인으로 바꾸었다. 그때 어머니는 마음이 터질 것 같다고 하였다. 그러나 그 어머니에게 어떤 마음이 있다는 말인가. 아버지를 매장한 다음 날에는, 벌써 같은 불럭의 모통이에서 식료품 가게를 하고 있는 유태인에게 열심히 추파를 던지고, 이름을 소중히 한다는 사람치고는 아연실색할 정도로 재빨리 스타인블루너라는 유태인 이름으로 바꿔 버렸는데 말이다.
외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저 그것뿐이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그렇게 생각해 왔다. 그때부터 풋볼 시합이 있을 땐 반드시 손을 붕대로 싸매고 끝나면 손을 소독약에 넣고 소독을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외과의사를 목표로 하는 이상 손을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겁장이라고 놀리는 자도 있었으나 나는 결코 손을 들지 않았다. 위험은 풋볼만으로 충분했다. 그러나 보복의 길은 있었다. 가장 심하게 덤벼드는 선수는 얼굴에 온통 여드름투성이의 하위 프로키라는 몸집이 큰 바보였다. 나는 신문 배달을 하면서 신문과 함께 숫자 맞추기 도박의 숫자도 팔고 있었다. 여러 가지로 조금씩 벌고 있었다. 그래서 여러 사람을 알고, 항상 귀를 기울여 정보를 수집하고 연줄을 만들었다. 거리의 패거리들을 상대로 도박에 이기려면 그런 것도 해야 했다.
죽는 방법은 어떤 바보라도 알고 있다.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은 살아 남는 방법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알겠나? 그래서 나는 학교에서 제일 등치가 큰 리키 브럿지에게 10달러를 주고 하위 프로키의 입을 지워달라고 했다. 문자 그대로 지워달라고 했다. 이빨 한 개에 1달러씩 준다는 약속도 했다. 리키는 세 개의 이빨을 페이퍼 타올에 싸서 가지고 왔는데, 그 일을 하고 있는 동안에 손가락이 두 개나 관절이 빠지고 말았다. 그러니까 이런 일은 자신이 절대로 할 수 없는 일이다.
의학부에 들어가서는 나는 레스토랑의 급사며 넥타이 팔기, 청소부 등의 아르바이트를 계속했다. 풋볼 도박, 바스켓볼 도박, 그리고 숫자 맞추기 도박 등, 그래서 이탈리아인 거리의 패거리들과도 끊어지지 않고 사이 좋게 지냈다. 그리고 대학도 무난히 졸업했다.
마약 밀매에 관계하게 된 것은 인턴을 끝내고 실습 의사가 돼서다. 당시 나는 뉴욕에서도 최대 규모의 병원에서 일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처방 용지를 팔기만 하였다. 용지가 백 장씩 묶여진 것을 한 권씩 이탈리아인 거리의 아는 사람에게 팔면, 그 남자가 40이나 50명의 의사의 서명을 위조해서 역시 나한테서 산 처방의 형식을 흉내내서 가짜 처방전을 만드는 식이다. 그리고 처방전이 완성되면 그는 그것을 가지고 거리로 나가 한 장에 10달러나 20달러에 판다. 각성제 상용자나 수면제 상용자가 즐겨 샀다.
그러나 얼마 후 병원의 마약 보관실의 관리가 아주 엉망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약의 출입을 아는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 마약을 두 손에 가득 담아 가지고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그런 짓은 안 했다. 나는 조심스러웠다. 내가 난처한 일에 말려들어가는 것은 이번처럼 부주의하거나 그것도 불운이 겹쳤을 때뿐이다. 그러나 어떡해서든 빠져나갈 자신이 있다. 지금까지도 늘 빠져나왔으니까.
이젠 더 쓸 수가 없다. 팔이 피곤하고 연필의 심도 무뎌지고 말았다. 아무튼 걱정할 건 없다. 그러는 사이에 누군가가 구해 줄 것이다.
1월 27일
어젯밤, 보트가 떠내려가 섬 북쪽의 수심 10피트의 앞바다에 가라앉았다. 그까짓 보트는 아무래도 좋다. 암초를 지나왔기 때문에 선체가 스위스 치즈처럼 구멍과 상처투성이가 되어 있었다. 이미 쓸모 있는 물건들은 다 가져왔다. 4갤론의 물, 바느질함, 구급 약품, 그리고 구명 보트의 점검 일지와 지금 내가 글을 적고 있는 이 노트. 웃기는 일이다. 비상 식량이 비치되지 않은 구명 보트를 본 일이 있나? 여기 적혀 있는 마지막 점검 날짜는 1970년 8월 8일이다. 아 참, 잊어버리면 안 되지. 나이프가 두 개 있었다. 한 개는 형편 없고, 다른 한 개는 제법 날카롭다. 게다가 포크와 스푼이 하나씩 있다. 오늘 밤, 저녁 식사를 할 때 쓰기로 하지. 오늘 밤의 메뉴는 로스트 록, 즉 바위 구위다, 후후……. 나이프는 연필 깎는 데 쓰긴 한다.
하얀 새 똥만이 사방에 흩어져 있는 바위섬에서 빠져나가면 파라다이스기선을 고소해서 혼을 내줘야겠다. 그러기 위해서도 살아 남지 않으면 안된다. 나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여기서 탈출한다, 절대로. 꼭 탈출해 보인다.
(추기)
소유물을 열거하였을 때 한 가지 잊은 것이 있다. 순수 헤로인 2킬로그램. 뉴욕의 거래 가격으로 계산하면 35만 달러다. 그러나 여기서는 제로. 1센트의 값어치도 없다. 웃기는 일이 아닌가, 후후…….
1월 28일
드디어 먹었다 그러나 먹었다고 할 수 있을까. 섬 중앙에 있는 바위 위에 갈매기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거기서는 어떤 바위든 모두가 수북이 쌓여서 산처럼 돼 있다 게다가 어떤 바위도 갈매기의 똥투성이다. 나는 적당한 바위산에 올라 되도록 가까이 접근하였다. 갈매기는 도망가려고도 하지 않고 바위에 앉은 채 검게 빛나는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다. 내 배 속에서 꼬르륵 소리가 나도 갈매기는 겁을 내지도 않고 날아가지도 않아 오히려 내가 놀랐다.
내가 던진 돌은 갈매기에 명중하였다. 갈매기는 끼악 하고 큰 소리를 내며 도망가려고 하였으나 오른쪽 날개가 꺾여 날 수가 없었다. 내가 바위로 기어올라 잡으려 하니까 갈매기는 깡총깡총 뛰면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하얀 날개 위에 피가 조금 흐른 것이 보였다.
나는 결국 무척 힘들게 섬의 동쪽에서 그 갈매기를 잡았다. 갈매기가 바다로 들어가 허우적거리며 도망가려고 하는 것을 날개를 잡아당겨 잡았다. 그러자 갈매기는 휙 고개를 돌리더니 내 손을 부리로 쪼기 시작했다. 나는 한 손으로 놈의 다리를 잡고 또 한 손으로는 놈의 목을 분질러 버렸다. 목이 부러지는 가련한 소리를 듣자 큰 만족감을 느꼈다. 점심 식사를 할 수가 있으니까. 안 그래? 후후…….
나는 갈매기를 야영지까지 가지고 왔다. 그리고 털을 뽑고 내장을 꺼내기도 전에 부리로 쪼인 상처를 소독하였다. 새는 온갖 세균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데서 세균에라도 감염되면 끝장이다.
갈매기에 대한 수술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불을 쓸 수가 없다. 섬에는 풀 한 포기 나 있지 않고 흘러온 나무도 없었다. 구명 보트도 바다에 가라앉고 말았다. 할 수 없이 날로 먹었다. 그러나 곧 토하고 싶어졌다. 위에는 동정하지만 토하는 것은 용서할 수 없다. 구역질이 가라앉을 때까지 숫자를 거꾸로 세었다.
정말 놀라운 새다. 이 놈의 덕택으로 발목이 부러질 뻔했고, 부리로 쪼여서 손에 상처를 입었다. 내일 또 한 마리를 잡으면 고문을 하고 고통을 주어 가며 죽여야지. 이번에는 너무 간단하게 죽였다. 이렇게 쓰고 있는 동안에도 조금 떨어진 곳의 모래 위에는 절단된 놈의 머리가 있다. 검은 눈이 생기를 잃고 흐려졌는데도 아직도 나를 비웃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갈매기는 지능이라는 것이 조금이라도 있을까?
갈매기는 먹어도 괜찮을 새일까?
1월 29일
오늘은 먹을 것이 없다. 갈매기 한 마리가 바위산의 꼭대기 가까이 내려앉았지만 이쪽이 한 번의 돌팔매질로 잡을 수 있을 만큼 접근하기 전에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수염이 길기 시작했다. 근질근질해서 견딜 수가 없다. 아까 그 갈매기가 돌아와서 잡을 수 있다면, 죽이기 전에 눈을 빼버릴 것이다.
이미 썼다고 생각하지만, 나는 외과의사였다. 그런데 그놈들은 나를 내쫓아버리고 말았다. 참 웃기는 놈들이야. 다들 하고 있는 일인데. 그들은 누군가의 부정이 발각되면 갑자기 성인(聖人)이 된단 말이야. 엿이나 먹어라! 난 이미 잔뜩 벌어놨거든. 타인의 부정에 대해선 엄하게 추구하고, 자기의 부정에 대해선 웃으며 얼버무려라 이것은 위선 히포크라테스의 제2의 맹세다.
인턴과 실습 의사로 있는 동안에 나는 여러 가지 모험을 하며 잔뜩 돈을 모았다. 파크 아베뉴에서 개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자금을 모아두었다. 돈을 모아두어서 정말 잘했다고 생각한다. 많은 동료들과 달라서 나에게는 돈 많은 아버지나, 유력한 후원자가 없었다. 내가 개업하였을 때, 아버지는 이미 빈민굴 묘지에 들어간 지 9년이나 되었고, 어머니는 면허 취소가 되기 전해에 죽었다.
면허 취소처분이 된 것은 부정 리베이트를 받고 있던 것이 탄로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이스트사이드의 수명의 약사, 두 개의 제약회사, 게다가 적어도 20인의 의사와 리베이트의 거래를 하고 있었다. 서로 환자를 돌려서 보고 있었다. 나는 수술을 하고, 수술 후의 약은 올바로 처방하였다. 불필요한 수술도 하긴 하였으나 환자의 의사를 무시하고 수술을 한 적은 없었다. 게다가 내가 써 준 처방전을 보고, '이런 약은 먹을 수 없어요'라고 한 환자는 본 적이 없다. 그러니까 그럴 생각이었으면, 1965년에 자궁절제수술을 한 환자나, 1970년에 갑상선 일부 절제수술을 받은 환자에게 5년 후, 10년 후의 지금도 진통제를 계속 먹게 할 수가 있단 말이다. 나도 가끔은 한 일이다. 나만 한 것이 아니다. 유복한 환자들은 진통제 중독이 되더라도 곤란을 겪지 않는다. 또 수술을 한 뒤에 잠을 못 자는 환자도 가끔 있었고, 마르는 약이나 정신 안정제를 원하는 환자도 있었다. 그런 환자들에게는 원하는 약을 입수할 수 있게 하였다. 물론 내가 거부하더라도 그들은 다른 의사로부터 입수할 수 있을 테니까 말이다.
어느 날, 국세청의 조사관이 로반탈에까지 손을 뻗쳐 그 겁쟁이를 조사하였다. 5년의 형을 암시하자 로반탈은 대여섯 명의 이름을 실토하고 말았다. 그 속에 내 이름도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얼마 동안 높은 데서 관찰을 하다가 매처럼 날쌔게 덮쳐왔다. 그때 나는 5년 정도의 형으로도 안 될 상태였다. 그 밖에도 처방전 판매 등 두세 개의 부정 행위가 발각되었다. 처방전 판매를 완전히 그만두지 못하다니 정말 웃기는 일이지. 이제는 그런 일 안 해도 되는데, 아주 습관이 돼버려서 그만둘 수가 없었지. 단물이라는 것은 얼마쯤 있어도 모자라는 거야.
물론 나는 부정을 하고 있는 사람들 이름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조사관과 거래를 하고 몇 사람을 늑대들에게 인계해 주었지. 그러나 모두들 내가 싫어하는 자들이라서 가책은 없었지. 늑대밥이 된 자들은 전원이 어쩔 수 없는 들이었으니까.
제길헐! 배가 고파졌다.
1월 30일
오늘은 갈매기도 없다. 그래서 생각이 났다. 이탈리아인 거리에 찾아오는 야채 장수의 손수레 뒤에 '오늘은 토마토 없음'이라는 표지가 붙어 있는 것을 가끔 볼 수 있었다. 나는 손에 날카로운 칼을 들고 바다로 들어갔다. 물이 허리까지 차는 곳까지 들어갔다. 거기서 4시간 동안 햇볕에 타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 두 번이나 기절할 뻔했지만 수를 거꾸로 세어 가며 간신히 견뎌냈다. 물고기는 한 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단 한 마리도.
1월 31일
갈매기를 또 한 마리 잡았다. 잡은 방법은 전과 같았다. 이번에 잡으면 잔뜩 괴로움을 준 다음에 잡아 먹으려고 했는데, 배가 너무 고파서 그럴 겨를도 없었다. 내장을 빼내자 그대로 덥석 물어뜯었다. 그 후에 내장도 먹었다. 활기가 단숨에 회복되는 것을 똑똑이 느꼈다. 뭐라고 말할 수 없는 기묘한 감각을 맛보았다. 이젠 모든 것이 틀렸다고 생각하기 시작할 때였다. 중앙의 커다란 바위산 그늘에 누워 있으려니까 여러 가지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하였다. 아버지의 목소리, 어머니의 목소리, 이혼한 아내의 목소리. 그러나 최악의 것은 사이곤에서 나에게 헤로인을 판 뚱뚱한 중국놈의 목소리였다. 언청이라서 그런지 혀가 짧은 듯한 목소리였다.
"자, 이너케 하헤요."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온다.
"쪼흠만 냄헤 맡하 보헤요. 배 고흔 거 다 이너버히고 마하요."
그러나 나는 한 번도 마약을 해 본 일은 없다. 수면제도 먹어본 일이 없다.
로반탈은 자살하였다. 그건 벌써 적었던가? 그 겁쟁이는 자기 일터에서 목을 매고 말았다. 그런 놈은 죽는 편이 세상을 위하는 거야.
나는 의사 면허를 되찾고 싶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자 중에는 안 될 것도 없다고 말하는 자도 있었다. 단지 막대한 돈이 들 것이라고 덧붙이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까지 생각지도 않았던 거액의 뇌물이 필요하였다. 금고 속에는 4만 달러가 있다. 되든 안 되든 이것을 써 볼 생각을 했다. 4만 달러를 2배나 3배로 늘리기로 한 것이다.
그래서 로니 하넬리를 만나러 갔다. 로니와는 대학에서 풋볼을 함께 한 사이로 그의 동생이 내과로 갈 결심을 했을 때 실습 의사의 자리를 마련해 준 일도 있다. 로니는 법학부 진학 과정에 들어서 있었다. 이것도 웃기는 일이, 어렸을 적에 로니는 스틱볼 심판도 하고 하키의 심판도 했기 때문에 우리들이 암흑가의 보스란 별명을 붙여주었다. 그의 심판이 마음에 안 들을 때에는 양자택일을 강요당했다 아무 말 않고 참느냐 아니면 항의하고 주먹을 맞든가 둘 중의 하나였다. 푸에르토리코 사람들은 그를 이타코로니라고 불렀다. 놈은 그것을 재미있어하고 그렇게 불러도 싫어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대학에 들어가 법을 전공하고 최초의 도전으로 변호사 시험에 간단히 합격하고는 그가 낳고 자란 거리에 개업을 하였다. 눈을 감으면 그가 흰색의 링컨 콘티넨탈을 타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지금도 눈에 떠오른다. 그는 뉴욕 제일의 지독한 고리대금업자였다.
로니에게 부탁하면 어떻게든 될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처음엔 위험하다고 로니는 말했다.
"그러나 넌 언제든지 잘 헤쳐나왔지. 물건을 가져오면 몇 사람 소개해 주지. 그 속에는 하원의원도 있어!"
현지의 두 사람의 이름도 가르쳐 주었다. 한 사람은 그 뚱뚱보의 중국인 헨리 리쓰. 또 한 사람은 소롱 고라는 이름의 월남인. 이 친구는 화학자였다. 돈을 내면 리쓰의 물건을 테스트하여 준다. 리쓰는 가끔 '고약한 장난'을 하기로 유명하였다. '고약한 장난'이란 헤로인 대신에 화장용의 탈쿰 파우더라든가 배수관용 세제라든가 콘스타치 같은 것을 비닐 봉지에 넣어서 판다는 것이다. 리쓰는 그러는 중에 '고약한 장난'으로 말미암아 목숨을 잃게 될 것이라고 로니는 말했다.
2월 1일
비행기가 한 대 날아왔다. 섬의 상공을 똑바로 가로질렀다. 나는 바위산의 꼭대기에 올라가 손을 흔들려고 하였다. 그러나 다리가 바위 틈에 빠져 버리고 말았다. 갈매기를 처음 잡았을 때 빠진 것과 같은 바위 구멍일 것이다. 그래서 발목을 부러뜨리고 말았다. 복합골절이다. 마치 총에 맞은 것처럼 되었다.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통증. 고통을 견디지 못해 비명을 지르다 균형을 잃고는 미친 듯이 팔을 휘두르다가 넘어져서 머리를 찧었다. 그대로 눈앞이 캄캄해졌다. 정신이 들자 저녁 때가 되어 있었다. 머리를 찐 데가 찢어져서 피가 조금 나왔다. 발목은 타이어처럼 붓고 전신이 햇볕에 타서 형편 없었다. 한 시간만 더 햇볕을 쪼였다면 물집이 생겼을 것이다.
발을 질질 끌며 돌아와 한심스러워 울고 떨며 밤을 지샜다. 머리의 상처는 관자놀이 우측에 있어 그것을 소독하고 조심스럽게 붕대를 감았다. 머리는 가벼운 두부좌상에 뇌진탕이었지만 발목은 지독한 골절이다.
이제부터 갈매기란 놈을 어떻게 쫓아다니면 좋단 말인가?
그것은 칼라스호의 조난자들을 찾고 있는 비행기가 틀림없을 것이다. 아무튼 어두웠고 그런 폭풍이었으니가 구명 보트는 침몰 지점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으로 밀려갔을 것이다. 수색 비행기는 이제 이쪽에는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빌어먹을! 발목이 몹시 아프다.
2월 2일
남쪽의 작은 백사장에 구조를 기다리는 표지를 만들었다. 하루 종일 걸렸다. 그늘에서 쉬고 싶었으나 그래도 두 번이나 실신했다. 체중이 적어도 25파운드는 줄지 않았나 생각한다. 거의 탈수에 의한 것이겠지. 그러나 지금 앉아 있는 곳에서 하루 종일 걸려 쓴 글자가 보인다. 백사장에 늘어논 검은 돌이 아래위 4피트의 HELP라는 글자를 그리고 있다. 비행기가 온다면 놓칠 리가 없다. 만약에 다시 온다면 말이다.
다리가 쉴 새 없이 지근지근 아파 온다. 붓기가 더 심하고 복합골절을 한 부위가 많이 변색되어 있었다. 셔츠로 단단히 매고 있기 때문에 통증은 좀 가라앉힐 수가 있지만 그래도 지독한 통증으로 정신을 잃곤 하였다.
다리의 절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2월 3일
붓기와 변색이 더 심해졌다. 내일까지는 두고 보자. 수술이 필요해지면 어떻게든 할 수 있을 것이다. 성냥으로 날카로운 쪽의 나이프를 살균할 수 있을 것이고, 실과 바늘은 재봉 세트에 들어 있다. 붕대는 셔츠를 쓰면 된다.
'진통제'도 2킬로나 있다. 환자에게 처방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러나 준다면 아무도 거절은 안 할 것이다. 절대로. 머리를 파랗게 염색한 할머니들은 기분이 좋아진다면 '삼림의 향기'라고 선전한 그레이드의 방향제라도 맡는다. 거짓말이 아니다.
2월 4일
부러진 다리를 절단하기로 결심했다. 나흘 동안이나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먹는 것을 더 이상 연기하면 수술 중에 쇼크와 공복으로 실신하고 실혈사할 위험성이 있다. 그러나 어떤 비참한 상태가 되더라도 나는 살아 있고 싶다. 기초해부학의 수업에서 목 리치 교수가 말하던 것이 생각났다. 올드 모키라고 우리가 부르던 교수다.
"의대생이라면 누구든지 늦건 이르건 직면하는 의문이 한 가지 있다."
교수는 늘 이렇게 시작한다.
"그것은 환자라는 것은 어느 정도의 외상성 쇼크까지 견뎌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다."
그렇게 말하면서 막대기로 인체도를 탕탕 두들기면서 간장, 신장, 심장, 비장, 장 등을 가리킨다.
"그 답은 말이야. 제군들, 따지고 보면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된다. 즉, 그 환자가 얼마만큼 절실하게 살아 남으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렇다면 걱정 없다.
정말로.
이렇게 적고 있으니까, 해야 할 일을 뒤로 연기하고 있는 듯한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어째서 이런 곳에 오게 됐는지 아직 마지막까지 쓰지 않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수술이 실패하지 않을 것이란 장담은 없다. 역시 이야기는 뚜렷하게 끝까지 해야 한다. 수분이면 끝날 것이고, 해가 지려면 아직 멀었고 수술 시간은 충분히 있다. 나의 손목시계로는 아직 오전 9시 9분밖엔 안 되었다.
나는 관광 목적으로 사이공으로 갔다. 묘한 느낌이 든다. 아니, 조금도 묘하지 않다. 닉슨이 전쟁을 하고 있어도 사이공을 방문하는 관광객은 매년 수천 명이 된다. 일부러 자동차 사고의 현장이나 닭싸움을 보러 가는 사람들도 있으니까 전쟁을 구경하러 가는 사람이 있어도 이상할 건 없다.
사이공에서 리쓰라는 중국인으로부터 헤로인을 샀다. 그것을 월남인 고에게 가져갔더니 그는 대단히 양질의 것이라고 말했다. 고에 의하면 리쓰는 4개월 전에 여전히 '고약한 장난'을 해서 아내를 자동차와 함께 날려 버렸다고 한다. 그녀가 자기 전용의 오피스텔 열쇠를 돌리는 순간 폭발이 일어났다. 그는 그 후부터는 '고약한 장난'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사이공에 3주 동안 체류하였다. 돌아올 때는 배로 하지 않으면 안됐기 때문에 샌프란시스코행의 칼라스호라는 배에 예약을 해 두었다. 물론 1등 선실. 헤로인은 어렵지 않게 반입할 수가 있었다. 고에게 돈을 주고 두 사람의 세관원을 매수하였다. 그들은 수츠케이스를 대충 훑어보고 손을 들어 통과시켰다. 같 은 항공회사의 플라이트백에 들어 있는데 두 세관원은 그쪽에는 눈도 주지 않았다.
"미국의 세관은 훨씬 엄격해." 고가 말했다. "그건 당신 문제지 내가 알 바 아니지."
미국의 세관을 통할 생각은 없었다. 로니 하넬리가 몹시 까다로운 일을 3천 달러로 청부해 줄 스킨다이버를 수배해 주었다. 세인트 리즈스 호텔이라는 이름을 가진 샌프란시스코의 싸구려 호텔에서 그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그러고 보니까 약속의 날짜는 2일 전이었다.) 요컨대 물건을 방수된 캔에 넣어서 바다에 던진다는 방법이다. 캔 뚜껑에 타이머와 붉은 물감 주머니를 달아놓고 배가 접안하기 직전에 바다에 던진다 물론 그 일도 내가 하는 것도 아니다.
칼라스호가 침몰하였을 때에도 나는 적은 돈으로 비밀을 지켜 줄 빈틈 없는 아니면 바보 같은 요리사나 급사를 찾고 있었다.
배가 침몰한 이유는 알 수가 없다. 폭풍우였지만 침몰할 기색은 전혀 없었다. 23일 밤 8시경 선내 어디에선가 폭발이 일어났다. 그때 나는 칵테일 라운지에 있었다. 폭발과 거의 동시에 칼라스호는 기울기 시작하였다. 좌측…… 전문 용어로 말한다면 좌현이다.
모두가 비명을 지르며 사방으로 흩어져 뛰기 시작했다. 술병이 카운터 뒤의 선반에서 바닥으로 떨어져 깨졌다. 한 남자가 아래층에서 비틀거리며 나왔다. 셔츠가 타고 살은 바베큐처럼 되어 있었다. 스피커에서는 출항시의 설명 때 할당된 구명 보트 스테이션으로 가도록 지시하고 있었다. 승객들은 당황하며 여기저기로 뛰어다니고 있었다. 거의 대부분의 승객들은 구명 보트의 설명회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나는 출석했었다 모든 것을 명쾌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맨 앞줄에 앉았었다. 나는 자신의 생명에 관한 문제라면 언제나 진지했다.
나는 내 방으로 내려가 헤로인의 봉지를 좌우의 포켓에 하나씩 넣고 8번 구명 보트 스테이션으로 갔다. 주갑판으로 가려고 계단을 올라갔을 때 폭발이 다시 두 번 일어나고 배는 더욱 크게 기울기 시작했다.
갑판 위는 극도로 혼란이 벌어졌다. 아기를 안은 여자가 비명을 지르며 기울어져서 미끄러지기 쉬운 갑판을 전속력으로 질주하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내 앞을 지나갔다. 그녀는 공중에 뜨는가 하더니 두 번 공중제비를 하고 그대로 보이지 않았다. 샤플보드 코트 한복판에 주저앉아 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있는 중년 남자도 있었다. 흰 옷을 입은 요리사가 얼굴과 손에 심한 화상을 입고 여기저기로 비틀거리며 외치고 있다.
"살려줘요! 눈이 안 보여! 사람 살려요. 눈이 안 보여!"
문자 그대로 공포의 상태였다. 공포는 마치 전염병처럼 승객으로부터 선원에게 전파되었다. 최초의 폭발에서 칼라스호가 침몰할 때까지 불과 20분밖에 걸리지 않았으니까 놀랄 일도 아니다. 구명 보트 스테이션은 비명을 지르는 승객으로 가득 찬 곳도 있었고, 텅 빈 곳도 있었다. 기울어진 쪽에 있었던 내 스테이션에는 승객이 한 사람도 오지 않않다. 온 것은 여드름투성이의, 얼굴이 창백해진 하급 선원과 나뿐이었다.
"이 형편 없는 놈을 물 위에 뛰워야 해!" 선원은 미친 듯이 눈을 굴리며 말하였다. "이 거지 같은 배가 제대로 내려갈지!"
구명 보트의 톱니바퀴는 간단하게 움직였는데, 선원이 당황해서 조작하였기 때문에 활차에 로프가 끼고 말았다. 보트는 6피트쯤 내려가서 배머리가 선채보다 2피트 아래로 내려가 공중에 매달리고 말았다.
내가 거들려고 선원 쪽으로 가려고 했을 때, 그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였다. 엉킨 로프를 푸는 데 성공한 순간, 활차와 로프 사이에 손을 끼고 말았다. 로프가 소리를 내며 선원의 손 안에서 미끄러지자 껍질이 벗겨지고 손이 잡아당겨지더니 선원은 밖으로 내던져졌다.
나는 줄사다리를 선외로 던지고 보트를 급히 내리고는 로프를 풀었다. 그리고 배를 저었다. 보트를 젓는다는 일은 친구의 별장에 놀러 가서 해 본 것뿐이지만 그때는 진지했고 목숨을 걸고 있었다. 나는 알고 있었다. 칼라스호가 침몰하기 전에 충분히 떨어져 있지 않으면 함께 바다 속으로 끌려들어가 버리고 만다는 것을.
그로부터 불과 5분 후에 칼라스호는 침몰하고 말았다. 역시 침몰의 영향을 전혀 받지 않는 데까지 빠져나갈 수는 없었다. 미친 듯이 노를 저어 간신히 피할 수 있는 위치에 머물 수가 있었다. 칼라스호는 눈 깜짝할 사이에 바다 속으로 침몰하였다. 배의 난간을 잡고 비명을 지르고 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보였다. 마치 원숭이의 일단이나 다름이 없었다.
폭풍우가 더 심해졌다. 노를 한 개 파도에 빼앗기고 말았지만 나머지 한 개는 간신히 사수하였다. 밤새도록 그야말로 정신 없이 꿈 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는 보트에 고이는 물을 열심히 퍼내고 있었지만, 그러고 있는 사이에 뱃머리를 큼직한 파도 속으로 들이밀지 않으면 안 되게 돼서 노를 꼭 잡고 필사적으로 보트의 방향을 바꾸었다.
24일 날이 샐 무렵 보트 위에서 파도가 높아지는 것을 느꼈다. 보트가 힘 있게 앞으로 밀려나갔다. 겁이 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음이 들뜨고 흥분하였다. 갑자기 대부분의 배 밑 널판이 깨어졌다. 가라앉기 전에 구명 보트는 이 바위섬에 쾅 하고 부딪혔다. 어디쯤 있는지도 알 수가 없다. 짐작도 할 수가 없다. 항해 같은 건 해 보지도 않았으니.
그러나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알고 있다. 최후의 수단이지만 어떻게 해서든지 성공할 수가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어떤 난관이라도 뚫고 왔으니까. 게다가 최근에는 훌륭한 의족도 있다. 한쪽 다리만 가지고도 별로 불편 없이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자, 내가 얼마나 견뎌낼 수 있을지 해 보기로 하자. 행운을 빌며.
2월 5일
해냈다.
통증이 가장 걱정이었다. 통증에는 강한 편이지만 체력이 떨어져 있고 공복과 고통 때문에 수술 중에 실신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 문제는 헤로인이 깨끗하게 해결해 주었다.
나는 봉지 하나를 열고 평평한 덩어리의 표면에서 헤로인 가루를 듬뿍 집어 코로 흡수하였다 처음에는 오른쪽 콧구멍으로. 감각을 마비시키는 상쾌한 얼음이 콧구멍을 타고 올라가 뇌 구석구석까지 퍼져나가는 느낌이었다. 그것은 어제 일기를 쓰는 것을 끝내고 곧 9시 45분의 일이었다. 다음에 시계에 눈을 돌렸을 때는 그림자가 이동해서 내 몸에 별이 좀 들어 있었다. 시간은 12시 41분이었다. 나는 졸다가 잠이 들어 버렸다. 이렇게 기분이 좋을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않았다. 지금까지 왜 복용하지 않았는지 알 수가 없다. 통증도 공포도 처참함도…… 모두 사라지고 평온뿐이었다.
수술은 그런 상태에서 했다.
실제로는 심한 통증이 목에서부터 일어났다. 그러나 그 통증은 남의 통증 같고, 자신의 몸에서 유리한 것처럼 느껴졌다. 영문을 알 수가 없었지만 흥미를 깊게 느꼈다. 알 수 있을까, 이 느낌. 몰핀을 주제로 한 강력한 약을 써 본 일이 있는 의사라면 아마 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통증이 부드러워질 뿐 아니라 어떤 정신 상태가 나타난다. 마음이 조용하고 평온해진다. 어째서 마약의 포로가 되는 자가 있는지 이것으로 알 수 있었다. 포로가 된다는 말이 가장 많이 쓰이고 있는데 대단히 강한 말처럼 생각된다. 물론 마약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들이 쓰는 말이다.
그러나 수술이 반 정도 지나자 통증이 차차 자신의 것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몇 번이고 정신을 잃을 뻔했다. 입이 열린 하얀 가루가 든 봉지에 뜨거운 시선을 보냈지만 필사적인 생각으로 눈을 돌렸다. 또다시 잠이라도 들어 버린다면 정신을 잃은 것과 마찬가지로 확실히 실혈사할 것이다. 나는 숫자를 백에서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가장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실혈이다. 그것은 외과의사로서 지나칠 정도로 잘 알고 있다. 한 방울의 피라도 필요 없이 흐르게 해서는 안 된다. 병원의 수술에서 실혈은 수혈로 채운다. 그러나 여기선 그렇게 할 수 없다. 잃어버린 피는 체내의 조혈 조직이 보충을 해줄 때까지는 잃은 그대로다 수술을 끝냈을 때 발 아래의 모래가 피로 검게 물들어 있었다.
수술은 12시 45분에 시작하여 1시 50분에 끝났다. 곧 헤로인을 흡입하였다. 양은 전보다 증가시켰다. 나는 고통이 존재하지 않는 회색의 세계로 빨려들어 5시 가까이까지 거기 있었다. 정신이 돌아오자 해는 서쪽 수평선 가까이 푸른 태평양 저쪽에서 황금빛을 던지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말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 지금까지 느꼈던 모든 고통이 그 일순간으로 보답을 받았다. 한 시간 후에 헤로인을 조금 더 흡입하고 일몰을 마음껏 즐겼다.
해가 지자, 얼마 안 가서 나는 .
나는 .
잠깐 기다리자. 나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것 썼던가? 쇄약해 진 몸에 활력을 보급하게 되려면 우선은 자기 자신의 몸을 이용할 수밖에 없는 상태다. 그 이야긴 썼던가? 그리고 이것은 벌써 여러 번 되풀이했다고 생각하는데, 존속한다는 것은 정신의 문제다.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가 아니면 우수한 생존자가 될 수 없다. 이런 상태에 빠지면 누구든지 똑같은 일을 한다는 식으로 말해서 자기의 행위를 정당화할 생각은 없다. 첫째 외과의사가 아니라면 이것은 할 수가 없다. 비록 다리를 절단하는 방법을 알고 있어도 수술에 익숙하지 않으면 실패해서 실혈사를 초래할 위험이 크다. 또 만에 하나, 수술에 성공하고 외상성 쇼크에도 견뎌낼 수가 있다 하더라도 상식이 없는 보통 사람에게는 이런 생각은 떠오르지 않을 것이다. 걱정할 건 없다.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섬을 떠날 때에는 이 일기장을 꼭 처분할 것이니까.
나는 조심하고 또 조심했다.
철저하게 씻고 먹었다.
2월 7일
절단한 자리의 통증이 계속되고 있다 때때로 견딜 수 없을 정도가 된다. 그러나 치유 과정에서 일어나는 심한 가려움이 더 견디기 어렵다. 오늘 오후에는 상처의 무서운 가려움을 참을 수 없다고 하던 환자의 일을 줄곧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이 긁고 싶은데 긁지 못하는 것은 견딜 수가 없다고 호소하자, 왜 그렇게 은혜도 모르고 참을성도 없는 놈들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으레 미소를 띠고 내일이면 더 편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 가려움증이 얼마나 지독한 것인지 이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상처를 아무렇게나 박박 긁고 싶은 충동을 여러 번 느꼈다. 셔츠로 만든 붕대를 찢어버리고, 상처를 박박 긁고, 손가락을 살 속에 쑤셔넣고 봉합한 실을 뜯어내 모래 위로 피를 콸콸 흘려 버리고 싶다. 이 강렬한 가려움증에서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지 하겠다! 몇 번이고 그런 심정이 되었다. 그럴 때에는 우선 백에서부터 수를 거꾸로 세고, 그것으로 안 되면 헤로인의 신세를 졌다.
지금까지 헤로인을 얼마나 흡입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다. 수술 이후로 거의 계속해서 취해 있었다. 헤로인은 공복감을 눌러 준다. 배가 고프다는 것조차 모르게 돼 버린다. 배 깊숙한 곳에서 희미한 통증을 느낄 뿐이다. 그 정도의 통증이란 아무것도 아니다. 그러나 헤로인을 먹는 것 대신으로 할 수는 없다. 헤로인에는 칼로리 같은 것은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때때로 나는 여기저기 기어다니며 에너지가 얼마나 남았는지 테스트해 본다. 체력은 확실히 떨어져 가고 있다.
아…… 그렇게 되지 않아야 할 텐데…… 또 수술이 필요해질지도 모른다.
(추기)
비행기가 또 날아왔다. 너무 높아서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늘에 남아 있는 비행운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손을 흔들었다. 손을 흔들고 외쳤다. 보이지 않게 됐을 때 그냥 울어 버리고 말았다.
어두워지고 주위의 것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먹을 것이 눈에 떠오른다. 나는 모든 종류의 먹을 것을 계속 생각하였다. 어머니가 만들어 주었던 라자니야, 가릭 토스토, 에스카르고, 라브스타, 프라임 리브, 피치 멜바, 런던 브로일, 1번가 <마더 처치>의 디저트에 나오는 파운드 케익의 큼직한 한 조각…….
100, 99, 98, 97, 95…….
2월 8일
오늘 아침 갈매기가 한 마리 바위산 위로 내려왔다. 통통하게 살이 찐 큰 놈이다. 나는 자른 다리를 위로 셔츠를 올려 방어하면서 바위 그늘에 앉아 있었다. 갈매기가 바위에 내려앉자 나는 군침을 흘리기 시작했다. 마치 파블로프의 개다. 어린애처럼 군침을 흘린다. 어린애처럼.
적당한 돌을 들고 갈매기 쪽으로 기어가기 시작했다. 제4쿼터. 3번째 공격에서 전진해야 할 거리가 아직 멀다. 크게 기대하지는 않았다. 곧 날아갈 것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래도 시험해야 했다. 만약에 저렇게 거만하고 통통하게 살찐 새를 잡을 수 있다면 예정하고 있는 다음 수술을 무기 연기할 수가 있을 것이다. 나는 갈매기 쪽으로 계속 기어갔다. 가끔 상처가 바위에 부딪혀 통증이 전신에 흘렀다. 그래도 나는 계속 기어갔다. 갈매기가 날아가지나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갈매기는 날아가지 않았다. 그뿐 아니라 열병을 하는 장군처럼 살이 통통이 찐 가슴을 앞으로 내밀고 뻐기는 듯한 걸음걸이로 여기저기 걸어다니고 있다. 그리고 가끔 그 밉살스런 검은 눈으로 나를 본다. 그러자 나는 돌처럼 굳어지고 놈이 다시 왔다갔다할 때까지 숫자를 백에서 거꾸로 세기 시작했다. 갈매기가 날개를 퍼덕일 때마다 내 위는 얼음통이 된다. 군침은 여전히 흐르는데 어쩔 수가 없다. 나는 어린애처럼 군침을 계속 흘렸다.
그놈한테 가까이 가는 데 얼마나 걸렸을까? 1시간? 2시간? 가까이 가면 갈수록 심장이 높이 뛰고 그놈이 맛있어 보인다. 차츰 놀림을 받고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명중이 가능한 곳까지 가기가 무섭게 그놈은 틀림없이 날아갈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팔과 다리가 떨리고 입 속이 마르고 상처가 심하게 아프다. 마약의 금단 현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이렇게 빨리 나타날까? 헤로인을 사용한 지 겨우 1주일밖에는 안 되는데.
걱정할 건 없다. 헤로인은 필요하다. 아직도 많이 남아 있다. 아주 많이. 미국에 돌아가서 치료가 필요하게 되면 캘리포니아 제일의 진료소에 입원하여 웃으면서 치료하면 된다.
명중 가능한 위치까지 가자 갑자기 돌을 던지고 싶어졌다. 못 맞힐 것이다. 적어도 1피트는. 절대로 못 맞힌다 미친 듯이 그렇게 생각해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더 가까이 가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하늘을 쳐다보며 바위산을 계속 기어올라갔다. 살이 빠져 허수아비처럼 된 몸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다. 이가 썩기 시작한 것은 이미 썼던가? 미신을 믿는 남자라면 틀림없이 이렇게 말할 것이다. 그것은 그것을 먹었기 때문이다 좀더 과학적으로 되어야지.
나는 멈췄다. 전에 갈매기를 잡았을 때보다 훨씬 더 가까운 위치까지 다가갔다. 그러나 아직도 던질 결심이 서질 않는다. 나는 손가락이 아파질 때까지 돌을 잔뜩 움켜쥐었다. 아무래도 던질 수가 없었다. 못 맞히면 어떻게 되는가 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저 마지막 순간에 그놈이 날아가지만 않는다면 아주 가까운 거리까지 기어가서 돌을 던지지 않고 손으로도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으면 기어올라가서 목을 조를 수도 있을 텐데, 그러나 그놈은 날개를 펴고 날아갔다. 나는 그놈을 향해 소리치며 무릎으로 일어나서 만신의 힘을 다하여 돌을 던졌다. 맞았다!
갈매기는 목을 조르듯 한마디 비명을 지르고 바위산 저쪽으로 떨어졌다. 나는 기성을 올리고 캑캑 웃으면서 절단한 쪽의 다리가 바위에 부딪히건 상처가 열리건 상관없이 기어서 바위산의 꼭대기를 넘어 저쪽으로 나갔다. 그러나 균형을 잃고 머리를 바위에 부딪히고 말았다. 지독한 혹이 생겼지만 그때는 머리를 찐 것조차 몰랐다. 머리 속에는 갈매기의 일뿐이고 나는 이 행운에 미친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어찌 됐건 명중한 것이다. 그것도 날개에 명중한 것이다.
갈매기는 날개를 퍼덕거리며 모래사장에 굴러떨어졌다. 한쪽 날개가 잘리고 배 쪽에 피가 붉게 묻어 있다. 나는 있는 힘을 다 해서 빨리 기어갔지만 갈매기 쪽이 더 빨랐다. 참 기묘한 경기였다. 손만이 아니었다면 붙잡을 수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거리는 조금씩 좁혀 가고 있었다. 손은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수술이 필요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손을 감싸며 기어갔는데도 좁은 모래사장에 도달했을 때에는 손바닥에 긁힌 상처가 나 있었고, 손목시계는 바위 모서리에 부딪혀 유리가 산산이 깨지고 말았다.
무서운 울음 소리를 내며 날개를 퍼덕거리고 물 속으로 들어간 갈매기를 나는 붙잡았다. 꼬리의 날개를 꽉 붙잡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꼬리는 내 손에서 빠져나가 버리고 말았다. 나는 그대로 바다 속에 넘어져 물을 잔뜩 마시고 코로 물이 들어가 사래가 들었다.
그래도 바다 속을 기어서 나갔다. 헤엄을 쳐서 쫓아가려고 했다. 그러나 셔츠의 붕대가 상처에서 빠져나가 나는 그대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간신히 뭍으로 돌아오자 극심한 피로로 전신이 부들부들 떨리고 견딜 수 없는 고통으로 울고 외치며 도망간 갈매기를 저주하였다. 갈매기는 서서히 멀어지면서 오랫동안 보이는 곳에 떠 있었다. 나는 갈매기가 돌아오도록 빌기도 한 모양이다. 그러나 암초를 지났을 무렵에는 갈매기는 죽었을 것이다.
이 도대체 무슨 헛수고란 말인가?
야영지까지 돌아가는 데 1시간 가까이 걸렸다. 헤로인을 코로 대량 흡입하였으나 그래도 갈매기에 대한 분노는 사라지지 않았다. 결국 잡지 못할 것이라면 왜 그렇게 애태웠는가. 차라리 깨끗이 날아가 버리지 않고!
2월 9일
왼쪽 다리를 절단하고 바지를 붕대 대신 상처를 덮었다. 기묘한 일이다. 수술 중 나는 계속해서 군침을 흘리고 있었다. 줄줄 흘리고 있었다. 갈매기를 보고 있을 때와 마찬가지였다. 멈추게 하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참고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래서 백에서 거꾸로 세기 시작하였다. 스무 번…… 서른 번…….
그리고…….
언제까지 중얼거렸다. 콜드 로스트 비프. 콜드 로스트 비프. 콜드 로스트 비프.
2월 11일(?)
2일 간 비가 계속 오고 있다. 게다가 바람도 강하다. 고생한 끝에 중앙의 바위산에서 바위를 몇 개 가지고 와서 기어들어갈 만한 동굴을 만들었다. 거미를 한 마리 잡았다. 도망 가려는 것을 손가락으로 잡아 먹었다. 제법 맛이 있다. 쌓아올린 바위가 떨어져서 생매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에 떠올랐다. 무슨 상관이겠는가.
폭풍우가 지나는 동안 헤로인을 맡고 계속 도취해 있었다. 비가 온 것은 2일이 아니고 3일 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아니면 하루만이었을까? 그러나 두 번은 어두워졌을 것이다. 꾸벅꾸벅 조는 것이 좋다. 통증도 가려움증도 느끼지 않는다. 절대로 살아 남을 것이다. 이렇게 버티고 있는데 개죽음을 할 리가 없다.
어렸을 때, 교회에 지옥과 대죄에 관해서 이야기하는 것을 좋아하던 키가 작은 신부가 있었다. 신부는 그 이야기가 몹시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대죄를 범하면 돌이킬 수가 없고 반드시 지옥으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그의 견해였다.
어젯밤, 이 신부의 꿈을 꾸었다. 검은 바스로브 모습의 빨간 위스키코를 한 헤일리 신부가 나한테 손가락질을 하면서 말했다.
나는 비웃었다. 이 이상의 지옥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게다가 단념한다는 것이 유일한 대죄다.
하루의 반은 의식이 몽롱한 상태에 있고, 나머지 반나절은 상처가 가렵고 습기로 인해서 통증이 일어난다.
그러나 단념하지 않겠다. 절대로. 죽을 순 없다. 이대로 개죽음을 할 순 없다.
2월 12일
태양이 겨우 얼굴을 내밀었다. 활짝 개인 아름다운 날이다. 지금쯤 리틀 이탈리아에서는 모두들 엉덩이까지 얼리고 있지나 않을까.
오늘은 몹시 좋은 날이다. 이 섬에 온 이후로 최고의 날이라고 해도 좋다. 폭풍우가 지나는 동안 나 있던 열도 식은 모양이다. 동굴에서 기어나왔을 때 쇠약해서 몸이 떨리긴 하였으나 한두 시간 햇볕을 쪼이며 뜨거운 모래 위에 누워 있으니까 다시 살아난 기분이 들었다.
기어서 남쪽 모래사장에 가니 풍랑으로 실려온 나무가 몇 개 뒨굴고 있었다. 구명 보트의 널판도 몇 장 있었다. 널판 위에 해초가 묻어 있었다. 먹었다. 지독한 맛이었다. 욕실의 비닐 커튼을 먹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러나 오늘 오후에는 체력이 제법 회복한 듯한 감각을 느꼈다.
흘러온 나무를 끌어올려 파도가 닿는 데서 되도록 멀리 갖다가 말렸다. 성냥은 거의 쓰지 않았기 때문에 상자 속의 방수 성냥은 아직 많이 남아 있다. 그러는 동안에 누군가 올 테니까 나무는 그때 태우면 신호가 된다. 아무도 오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요리할 때 쓰면 된다. 그래, 또 헤로인을 흡입하기로 하자.
2월 13일
게를 한 마리 발견했다. 죽여서 작은 불을 피우고 구웠다. 오늘 밤은 오래간만에 하나님을 믿을 수가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되었다.
2월 14일
오늘 아침 전에 모래사장에 써 놓은 HELP의 글씨가 폭풍우로 거의 지워져 있는 것을 알았다. 폭풍우가 지나간 것은…… 벌써 사흘 전이 아니었던가? 헤로인 때문에 이렇게 몽롱해진 것이 아닐까? 조심하지 않으면 안되겠다. 양을 줄여야겠다. 배가 가까운 데를 지나갈 때 몽롱해져 있으면 큰 일이지.
문자를 새로 썼다. 그러나 하루 종일 걸려 녹초가 되고 말았다. 게를 발견한 장소로 가서 또 찾아보려고 했으나 수확은 없었다. 글자를 쓰는 데 사용한 돌로 두 손에 찰과상이 생겨 극심한 피로에도 불구하고 소독하였다. 손은 소중히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2월 15일
오늘 바위산의 정상에 갈매기가 한 마리 와서 앉았으나 명중 가능한 데까지 가까이 가기도 전에 날아가 버렸다. 할 수만 있다면 그놈을 지옥으로 보내고 싶었다. 거기서 그놈에게 헤일리 신부의 충혈된 작은 눈을 영원이 쪼게 한단 말이다.
2월 17일(?)
오른쪽 다리를 무릎에서부터 절단. 대량으로 실혈. 헤로인을 사용해도 통증은 그치지 않았다. 외상성 쇼크로 죽는다는 것은 칠칠치 못한 놈들이다. 요컨대 그 질문이다. 그 환자가 얼마나 절실하게 살아 남으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그 환자가 얼마나 절실하게 살아 남으려고 생각하고 있는가? 손이 떨린다. 손이 나를 배반한다면 끝이다. 그런 배은망덕한 일은 안 시킨다. 절대로. 그토록 소중히 길러 주었다. 모든 것을 소원대로 해주고 무엇 하나 부자유스런 것 없게 해주었다. 배반하지 말아라. 나중에 후회해도 모른다.
지금은 적어도 배는 고프지 않다.
한복판에서 깨어진 구명 보트의 널판이 있었다. 한쪽의 끝이 뾰족했다. 그것을 사용했다. 군침이 흘렀지만 간신히 자신을 억제하고 기다렸다. 그리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늘 먹으러 갔던 바베큐의 일을. 롱아일랜드의 단골집 <윌 하머스미스>에는 돼지 한 마리를 통째로 로스할 수 있는 바베큐 피트가 있었다. 우리는 황혼이 지는 포치에 앉아 큼직한 글라스를 손에 들고 외과수술의 테크닉이나 골프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러면 미풍이 돼지고기가 타는 달콤한 냄새를 우리들에게 실어다 준다. 아, 배반자 유다여! 이것이 돼지고기가 타는 달콤한 냄새다.
2월 ?
또 한쪽 다리도 무릎부터 절단. 하루 종일 계속해서 졸립다.
"닥터, 이 수술은 필요한 것입니까?"
핫핫…… 손이 떨린다. 마치 노인의 손이다. 밉살머리스럽다. 손톱 아래 피가 들어갔다. 부스럼 딱지. 의학부에 있던, 배가 유리로 된 인체 모형이 있었다. 꼭 그것이 된 것 같다. 그저 보고 싶지 않다. 어쩔 수가 없다.
그러나 적절한 치료와 의족에 의해서 나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부자유스러운 것 없이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되면 여기 다시 와서 모두에게 이야기할 것이다. '여기서 모든 것이. 일어났습니다.'라고. 하하하!
2월 23일(?)
죽은 고기를 발견했다. 썩어서 지독한 냄새가 났다. 그래도 먹어 버렸다. 토하고 싶어졌지만 꾹 참았다. 살아 남아야 한다. 헤로인을 맡고 황홀해진다. 저녁 때.
2월
겁이 나지만 하지 않으면 안 되겠지. 그러나 그렇게 위에 있는 대퇴동맥을 어떻게 묶어서 지혈을 하면 좋을까? 이게 유료 고속도로처럼 굵은데.
어떻게 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 대퇴부의 맨 위쪽에 표시를 하였다. 아직은 살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이 연필로 표시를 하였다.
군침이 멎었으면 좋겠는데.
2
오늘은…… 조금 쉬어도…… 괜찮겠지…… 그러니까…… 맥도날드에 가서…… 쇠고기 100퍼센트의 파티에…… 스페셜 소스…… 레타스에…… 피클스…… 오니온도 넣고…… 참깨를 부리고…….
2월
오늘 얼굴을 물에 비쳐 보았다. 마치 껍질을 한 장 뒤집어쓴 해골이다. 벌써 머리가 이상해진 것일까? 그런 것이 틀림없다. 이제 난 바야흐로 괴물이다. 기분 나쁜 이형(異ㄴ)의 괴물이다. 사타구니 아래에는 아무것도 없다. 기괴한 생물. 모래 위를 팔뒤꿈치로 성큼성큼 헤엄치듯 기어가는 동체에 붙어 있는 머리. 게다. 헤로인으로 고주망태가 된 게. 저 패걸이들은 자신들의 일을 그렇게 부르지 않았던가. 이리 오고 저리 가는 나리님들, 나는 불쌍한 마약 중독의 게올시다. 제발 10센트 동전 하나 적선해 줍쇼.
'사람은 먹는 것으로 만들어진다'라고 하지만 이게 정말이라면 나는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빌어먹을! 외상성 쇼크, 외상성 쇼크가 뭐라구…….
2월 40(?)
아버지 꿈을 꾸었다. 아버지는 술을 마시면 영어를 못 한다. 말할 만한 것이 없으니까 아무래도 상관 없지만 바보 병신에게 무슨 말이 필요해. 나는 당신 집을 나와 무척 기쁩니다. 이렇게 나왔어요. 제대로 걸어서 나왔단 말입니다. 흥! 보시오! 난 손으로 걸어서 나왔단 말이야.
그러나 더 이상 잘라낼 것이 없다. 어제 두 귀를 잘라냈다.
왼손이 오른손을 씻고 있다…… 오른손이 하고 있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갑자기 하나, 둘, 셋, 넷, 도어에도 물건을 넣을 수 있는 냉장고를 샀다.
+ 조난당한사람 인내심키우려고 백 거꾸로 세는 습관이 있는데 나중에 마약하면서 또 세는데 그거 보면 96이 빠져있어... 그리고 나중엔 날짜도 제대로 못쓰다가 나중에 2월 40일 등장.. 이 이야기에서 소름끼치는건 처음에 의대생이라서 영리하고 말도 잘하던 사람이 글도 엉망이고 정신이 이상해져가는게 일기에 나타난다는거야
첫댓글 헐 ㅠㅜ끔찍하당. 이사람 끝에 구출안된건가ㅠ
보고싶어!댓글좀쪄줘 ㅋㅋ
댓글 뿅,
자기몸 다 먹는다는 건가 약에 취해서 배고픔에 취해서 아 너무 길어서 듬성듬성 읽었다 ...
누...누가 설명좀 감칠나게해죠 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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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난당한사람 인내심키우려고 백 거꾸로 세는 습관이 있는데 나중에 마약하면서 또 세는데 그거 보면 96이 빠져있어... 그리고 나중엔 날짜도 제대로 못쓰다가 나중에 2월 40일 등장.. 이 이야기에서 소름끼치는건 처음에 의대생이라서 영리하고 말도 잘하던 사람이 글도 엉망이고 정신이 이상해져가는게 일기에 나타난다는거야
읽으면서 뭐지햇는데 언니들이정리해줘서 이해햇뜸.... 으
오 이거.. 스티븐 킹 단편집에 잇는데 괜찮은거많아 재미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