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종, 서있는 남자, 혼합재료 45×70㎝, 2009.
■ 더블린 휴 레인 미술관
아일랜드 태생 컬렉터 휴 레인
미술품과 사랑에 빠진 듯 수집
모은 작품 수준·규모 경이로워
40세 별세…소장품 英에 기증
양국 갈등 끝 상당부분 가져와
고고학자 동원 화가 숨결 복원
‘문학의 수도’서 특별한 미술관
고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이 생전에 수집해온 ‘이건희 컬렉션’이 공개되면서 이제 한국의 한 기업가는 그 이름을 세계적 미술품 소장가 반열에도 올려놓게 됐다. 이 계통에서 가장 많이 알려진 인물은 미국의 기업가이자 자선사업가인 솔로몬 R 구겐하임 가문일 것이다. 뉴욕 구겐하임은 건축가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Frank Lloyd Wright·1867∼1959)의 작품으로 뉴욕의 랜드마크가 됐고, 스페인의 빌바오 미술관은 티타늄으로 외벽을 설치 미술처럼 두른 프랭크 게리(Frank O. Gehry·1929∼)의 이름과 함께 작은 공업도시 빌바오를 별처럼 떠오르게 했다. 금속 티타늄이 저녁노을을 받으면 미술관 앞으로 흐르는 네르비온강은 일제히 그 빛을 반사하면서 황금색 물결을 이루는데 관광객은 미술관의 컬렉션은 차치하고, 이 한 장면만으로도 잊지 못할 감동을 안고 돌아가는 것이다.
이미 크고 작은 미술관 1만 개를 훌쩍 넘어서고 있는 일본은 아시아에서 미술품 수집에 가장 먼저 눈뜬 경우다. 구라사키(倉敷) 지역의 기업가이자 수집가인 오하라 마고사부로(大原孫三郞)는 일본 최초의 사립미술관을 세워 고갱, 모네, 마티스, 피카소 같은 서양 근대 화가의 작품들을 끌어모았다. 일본 남쪽의 한 작은 도시는 이제 그가 세운 미술관 하나로 전 세계인이 찾아오는 명소가 됐다. 내가 갔을 때에는 유독 서양인 관람객이 많았던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런가 하면 러시아에는 평생 모은 자신의 전 소장품을 나라에 내놓아 미술관을 세운 파벨 미하일로비치 트레티야코프가 있다. 그의 이름을 따서 모스크바에 세워진 트레티야코프 미술관(1856년 개관)은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예르미타시 미술관과 견줄 만한 컬렉션으로 이름이 높은데, 특히 러시아적 정체성을 담은 일리야 레핀(Ilya Y. Repin)의 전시실이 압권이다. 1994년, 러시아가 최악의 경제난에 처했을 때도 빵가게 못지않게 그 미술관 앞에는 늘 관람객의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곤 했다. 매서운 추위로 꽁꽁 얼어붙은 날, 나 역시 그 아름다운 순례객들 속에 끼어 한 시간 이상 줄을 섰던 기억이 있다.
서설이 길었지만, 문학의 도시 더블린에는 휴 레인이라는 이름이 있다. 휴 레인(Sir Hugh Percy Lane·1875∼1915), 살아서 이미 전설이 된 남자다. 아일랜드 태생의 이 컬렉터 겸 딜러는 20세기 초 전 유럽에서 가장 왕성하게 그림을 모으고 거래했다. 40년이라는 짧은 생을 살다 간 사람이었지만 그가 생전에 모은 미술품은 그 수준이나 양에서 경이로울 정도였다. 그는 미술품과 사랑에 빠져 산 사람이었다. 미국의 한 저명한 미술사가는 미술품 수집이 사랑에 빠지는 것과 너무도 비슷하다고 설명한 바 있는데 페기 구겐하임과 함께 휴 레인이야말로 그 대표적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사랑에 빠지면 자아의 경계가 무너지거나 상대방에게 흡수돼버리는 황홀경을 체험하게 되는데, 이런 현상이 미술품 수집에서도 동일하다는 것이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우리나라의 간송 전형필(1906∼1962)이나 수정 박병래(1903∼1974) 같은 이의 우리 문화재 사랑이 그런 경우일 것이다. 책과의 인연으로 수십 년 만에 다시 만난 원로 화가이자 우리 민화 수집가인 우담 이영수 교수의 민화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일찍부터 민화와 막무가내식 사랑에 빠져버렸다”는 본인의 고백처럼 어린 시절 집 안에 걸린 까치 호랑이 그림 하나가 인연이 돼 열세 살 때부터 민화를 모으기 시작했다는 것. 그렇게 팔십 평생 모은 자신의 소장품만으로 무려 40여 권에 이르는 책을 만들었고, 지금도 그의 소장품 책 만들기가 계속되고 있다 하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휴 레인 역시 돈을 싸 짊어지고 전 유럽을 훑어 내며 미술품 수집에 열을 올렸는데 뜻밖에도 그의 생명 시계가 40세라는 한창나이에 멈추면서 그의 미술품 수집도 막을 내리게 된다. 그런데 그가 죽기 전 그의 모든 소장품을 조국 아일랜드가 아닌 영국에 바치겠다고 유언함으로써 아일랜드인의 충격과 상심은 말할 수 없이 컸다. 왜 그랬던 것일까. 자신의 소장품을 빛내게 하기 위해서는 더블린보다 런던이 낫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영국과 아일랜드 간의 길고 긴 갈등 끝에 소장품의 상당 부분이 아일랜드로 돌아오게 됐고, 그 작품들로 세워진 것이 바로 그의 이름을 딴 ‘시립 휴 레인 미술관’이다.
그런데 정작 이 미술관이 유명해진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미술관 안에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업실을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 20세기 영국을 대표하는 화가로 알려져 있지만 그의 생생한 숨결은 런던이 아닌 더블린의 휴 레인 미술관에 담겨 있는 것이다. 그의 상속인이었던 존 에드워즈(John Edwards·1949∼2002)가 그의 많은 작품을 휴 레인 미술관 쪽으로 넘기면서 생전의 런던 작업실까지 그 미술관에 재현해 놓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미술평론가와 화가, 심지어 고고학자까지 동원돼 장장 3년에 걸쳐 재현해 놓은 프랜시스 베이컨의 작업실은 평소 청소를 안 해 수북하던 먼지까지 그대로 옮겨왔다고 하니 그 치밀함을 짐작할 수 있겠다. 사람은 떠났어도 그의 예술적 밈(meme·하나의 정보나 지식이 살아있는 생물학적 유전자처럼 보존, 전파·복제되는 현상)은 그곳에서 끝없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셈이다.
휴 레인 미술관은 무려 네 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낸 이 세계 문학의 수도에서 미술 쪽의 단독자로 서 있다. 그만큼 소중한데 더블린 여행자가 건너뛰기 쉬운, 그러나 꼭 한번 가보기를 추천하고 싶은 곳이다.
김병종 화가, 서울대 명예교수, 가천대 석좌교수
■ “애인에게 무릎 꿇고 싶듯 컬렉터는 작품에 눈 멀어”
맹목성에 위작사건 연루도
“미술품 컬렉션은 마치 사람이 사랑에 빠지는 일과 같다.” 이는 미국의 저명한 미술품 과학분석가인 닥터 제프리 테일러(Jeffrey Taylor)의 말이다.
뉴욕의 유명 화랑인 노들러 갤러리(Knoedler Gallery) 위작 사건 때 그는 20세기의 문화유산이라고까지 일컬어졌던 역사와 전통의 그 갤러리가 위작 사건에 휘말린 것도 바로 그런 현상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사랑에 빠져 황홀한 연애 상태일 때에는 그 대상 앞에 절로 무릎을 꿇고 싶어지고 따라서 상대방의 단점이 눈에 들어오지 않거나 보여도 모른 척하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그 과정이 닮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심미안을 지닌 전문가 집단의 검증을 거쳐 모인 세계적 미술관의 소장품 중에서도 왕왕 가짜 소동이 나곤 한다는 것이다. 이와는 다른 얘기지만 어쨌거나 유명한 미술품 컬렉터들은 확실히 미술품을 향한 비상한 열정과 사랑을 가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