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의 창설자인 알프레드 노벨 또한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물음이 삶의 송곳이 돼 그의 인생을 막판에 송두리째 뒤집어 놓았다.
1895년 11월 27일 노벨은 미리 쓴 유서를 생전에 전격 공개하며
자기의 전 재산을 쏟아부어 의미 있는 상을 만들겠다고 공표했다.
그런데 노벨이 이렇게 마음먹게 된 계기는 공교롭게도 그가 언론의
오보로 인해 살아서 자신의 부음 기사를 미리 봤기 때문이었다.
유서를 공개하기 7년 전인 1888년 알프레드 노벨의 친형 루드비그 노벨이
프랑스 칸에서 사망했다.
그런데 당시 한 신문이 이것을 알프레드 노벨의 사망으로 혼동해
'죽음의 상인, 사망하다'라는 제목의 부음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본 알프레드 노벨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시 노벨은 다이너마이트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총 350개
이상의 특허권을 가지고 있었고 폭탄 제조공장과
탄약 제조공장을 포함해 90여 개가 넘는 사업체를 거느린
당대 굴지의 기업인이었다.
하지만 노벨은 자신이 평생 독신으로 고투하며 살아온 삶이
결국 사람들에게 '죽음의 상인’으로밖에 기억되지 못할 것이란
사실을 접하고서 도저히 그대로 있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7년 동안 '나는 죽어서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를
고민한 끝에 결심했다.
'죽음의 상인’이 아니라 ’인류에 수여되는 최고로 가치 있는 상’의
창설자로 기억되기 위해 자신의 전 재산을 던지기로 말이다.
삶의 송곳 같은 물음이 장쾌한 삶의 역전극을 연출한 셈이었다.
결국 '나는 무엇으로 기억될 것인가?'라는 삶의 송곳 같은 물음이
미래로의 길을 새로 뚫는다.
그 물음은 끊임없이 지나온 길을 성찰하게 만들며
스스로 '진정으로 기억되고 싶은 모습’이 되기 위해 주어진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새로운 내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