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
그러므로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내 양 떼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내가 너희의 악행 때문에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2).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5),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6).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7),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8).
[하나님]
1,2절. 양 떼(하나님의 백성)를 잘 돌보지 못한 목자들(지도자들)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참 목자는 양을 보살피기 위해 목숨까지 내어놓습니다. 하지만 유다 왕들은 백성을 흩어서 도리어 먹잇감이 되게 만들었습니다. 거짓 평강을 외쳤고, 거짓 안전을 주장했으며, 거짓 신을 신뢰하여 무지한 백성을 탐욕의 길로 오도했습니다. 오늘날 역시 하나님은 자기 소유인 양 떼를 주인이 원하는 길로 인도하지 않은 지도자의 책임을 엄중히 물으실 것입니다.
3,4절. 거짓 목자들 때문에 흩어진 양 떼를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시온 불패의 거짓 신학을 따라 바벨론에 대항하는 백성은 죽임을 당하겠지만, 예레미야가 전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들이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남은 자’(remnant)들은 살아남아 다시 예루살렘으로 귀환할 것입니다. 심판을 통과하여 정화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재건하는 기초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돌아온 양 떼에게 참 목자들을 붙이셔서, 이제 다시는 그들을 잃지 않으실 것입니다. 이는 단순히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회복이 아니라 메시아를 통해 새로운 백성을 부르시고 하나님 나라를 도래케 하실 약속을 가리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던 양떼인 하나님의 백성들을 다시 모으시고 그들의 참 목자가 되게 하리라는 예언입니다.
5,6절. 심판받은 유다 백성은 잘린 나무처럼 보이겠지만, 하나님은 거기서 싹(사 4:2; 슥 3:8; 6:12)이 움트게 하실 것입니다. 다윗 계열의 의로운 가지를 일으켜(사 11:1-5) 언약의 조건인 공평과 정의로 백성을 다스리게 하실 것입니다. 유다의 마지막 왕은 이름뿐인 ‘여호와는 공의로우시다’(시드기야)였지만, 이 새로운 왕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불리며 새 이스라엘을 힘이 아닌 지혜로 통치할 것입니다.
예레미야가 그토록 고대하던 하나님 백성의 회복은 의로운 목자, 다윗의 자손 예수님 안에서 오늘 우리에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는 참 지혜를 가지고 다스리며 공평과 정의를 가지고 다스릴 것입니다. 나는 말씀을 통하여 그 분의 다스림을 잘 받고 있는지 돌아봅시다.
7,8절. 출바벨론의 하나님이 되십니다. 옛 이스라엘을 애굽의 노역과 착취와 학살에서 건져내시고, 젖과 꿀이 흐르는 목장으로 인도하셨던 것처럼 바벨론으로 끌려간 백성을 돌아오게 하실 것입니다. 출바벨론의 구원은 새 출애굽 사건이 될 것입니다. 그것은 첫 출애굽의 기억을 대체할 정도로 놀라운 구원 경험이 될 것입니다. 이것은 장차 예수님을 통해 주어질 영적인 출애굽에 대한 예고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변하지 않고, 신실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신실한 사랑으로 마침내 사망에게 종노릇 하던 온 인류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해내셨습니다.
하나님은 구원자가 되십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을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바 있지만 이제 출바벨론을 통하여 다시한번 놀라운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이 두가지 사건은 단순히 당대의 사건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차 예수 그리스도가 참 구원자로 오셔서 그의 죽으심과 부활을 통해 자기 백성을 죄와 죽음과 사탄의 권세에서 영원히 해방시키게 될 영적인 출애굽과 출바벨론 사건을 예시하는 것입니다. 구원자 되신 주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립시다.
[교훈]
1,2절. 악한 지도자들은 심판받게 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양 떼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배불리 먹여야 할 목자의 사명을 저버렸습니다. 양의 목자가 아니라, 주인의 양 떼를 훔치고 죽이는 강도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반드시 보응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우리 시대의 모든 정치, 종교, 사회 지도자들에게 주시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지도자는 권력을 누리는 자리가 아니라, 청지기로서 맡은 자들을 섬기는 자리입니다. 섬기라고 주신 힘을 도리어 섬김을 받으려고 행사한다면, 하나님은 그 힘을 거두어 가실 뿐 아니라 그들을 엄중하게 벌하실 것입니다. 나는 내게 맡기신 사람들을 나보다 더 귀하게 여기며 섬기고 있습니까? 목회자뿐 아니라 그룹 인도자, 교사로서 내가 맡고 있는 직분에 속한 사람들을 양을 돌보듯 잘 돌봐야 합니다. 혹시 잘 돌보지 않아 영적으로 병들거나 방황하거나 죽어가고 있지는 않는지 살펴봅시다.
3,4절. 흩어진 양 떼를 찾아 모으는 선한 목자가 계십니다. 목자 잃은 양 떼, 자구책이 없는 양 떼가 맞을 운명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친히 사지와 험지를 두루 찾아다니며, 잃어버린 양 떼를 되찾아 오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염려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고 참 목자들을 세워 돌보게 하시고 다시는 그들을 잃어버리지 않겠다고 다짐하십니다. 지금 나는 주님의 목장에 머물며 안전하고 평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습니까? 혹 목장을 벗어나 방황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5,6절. 다윗 왕가의 실패가 하나님의 실패는 아닙니다. 장차 하나님은 다윗의 후손 가운데서 의의 왕을 세우실 것입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지혜의 왕이며, 하나님의 의를 세상에 실현하는 정의의 왕이 될 것입니다. 그가 통치하는 땅은 안전하고 정의롭고 평화로울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유다뿐 아니라 온 세상 모든 민족의 왕이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적용]
5,6절 말씀에 멈췄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때가 이르리니 내가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가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을 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약속을 확인하면서 직책을 수행할 신실하고 참된 목자들을 주리라고 약속합니다. ‘보라 때가 이르리니’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킬 것이라. 그 가지는 왕이 되어 지혜롭게 다스리며 세상에서 정의와 공의를 행할 것이며 그의 날에 유다는 구원받겠고 이스라엘은 평안히 살 것이며 그의 이름은 여호와 우리의 공의라 일컬음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십니다.
다윗에게 한 의로운 가지를 일으켜서 세상에서 공평과 정의를 할 것입니다. 가지는 보통 가지를 베어 버리고 남은 뿌리에서 돋아난 싹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다윗 왕통에 속하는 보통 왕이 아니고 무너진 다윗 왕통에서 새로이 출발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 백성들을 인도할 목자이시며 만물의 주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하나님은 바벨론 포로가 되어 포로 생활로 유다가 종지부를 찍는 게 아니라, 잘린 나무에서 다시 새싹이 돋아나듯 남은 자들을 불러 모아 새로 지도자로 세워 승리케 하신다는 약속입니다. 메시아는 ‘여호와 우리의 의’라고 일컬음을 받게 될 분으로서 지금까지의 유다의 왕들과는 차원이 다르게 공평과 정의로 현명한 통치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의 모든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신 분이십니다. 예수님은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올바로 회복하여 놓으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고 순종하게 하셨고, 하나님과 화목함으로 죄로 말미암아 고통을 당하던 우리가 완전한 자유를 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의로운 가지인 주안에서 하나님과 관계가 회복되어 참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도록 합시다.
‘한 의로운 가지’ 되신 예수님을 묵상합니다.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선한목자와 삯꾼목자에 대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선한목자와 삯꾼목자를 가르는 차이는 무엇이었습니까? 선한목자는 양들의 유익을 위해 존재하지만, 삯꾼목자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양들을 이용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위기 상황이 되면 누가 선한목자인지 삯꾼목자인지가 드러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린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선한목자에게 있어서 양은 자신의 생명과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삯꾼목자는 다릅니다. 삯꾼은 돈을 받고 고용된 사람이기 때문에 자신의 신변이 위험하면 언제라도 양을 버리고 도망치게 됩니다. 한 의로운 가지로 오신 예수님께서 선한목자로 오신 것을 인하여 감사하게 됩니다. 그리고 작은 역할이지만 교회내에서 맡겨진 사역과 직분을 사명으로 여기고 선한목자 되신 예수님을 본받아 양떼로 주신 소수의 사람들을 섬기고자 기도하게 됩니다.
7.8절 말씀에 멈췄습니다. “보라 날이 이르리니 그들이 다시는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쪽 땅, 그 모든 쫓겨났던 나라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할 것이며 그들이 자기 땅에 살리라 하시니라” 본문에서는 ‘보라 날이 이르리니’ 하심으로 새로운 역사가 이루어 짐을 드러내십니다. 이제는 출애굽에 맞먹는 출바벨론의 역사를 이루시어 새 일을 행하실 것을 말씀하십니다.
여러 나라에 흩어졌던 여호와의 백성은 이상적인 왕이 통치를 시작하게 되면, 포로가 된 상태로 그냥 그대로 머물러있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들은 북쪽 땅에, 즉 여호와께서 그들을 흩으사 내어쫓았던 그 모든 땅에서 다시 돌아올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바벨론에서 되돌아온 후, 저희에게 임할 이 위대한 구원은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지 아니하고 이스라엘 집 자손을 북방 땅에서 인도하여 내신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게 됩니다.
출애굽이나 출바벨론에 대한 말씀을 묵상해 봅니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이스라엘이 경험한 출애굽이나 출바벨론에서 구원의 경험은 없습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각자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할 뿐입니다. 그러한 각자 또는 공동체의 경험을 통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구원의 역사를 기억하게 됩니다. 이것은 출애굽이 이스라엘의 육적 왕국을 위한 것이라면 출바벨론으로부터의 해방은 영적 왕국을 위한 하나님의 사역임을 의미할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를 통하여 죄에서의 해방된 자유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영적인 해방을 주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고 맹세하고 권세 있는 삶을 살게 된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죄에서 해방된 경험은 그저 단회적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으로 머무시는 것이 아니끼 때문입니다. 현재에도 역사하시고 우리의 삶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지금 나의 문제를 주님께 맡기며 나아갈 수 있으며, 또 다시 새로운 경험과 구원으로 이끄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하게 됩니다. 죄가운데서 고통하며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우리는, 예수님의 피로 죄 사함 받아 의롭다 함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죄에서 출바벨론하여 우리에게 주신 해방과 구원은 일방적인 은혜입니다. 이러한 은혜는 너무도 크신 은혜이기에 구원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하며, 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아름답게 쓰임 받을 수 있도록 기도하게 됩니다.
[기도]
한 의로운 가지로 오셔서 공평과 정의로 다스리시며 죄에서 해방시켜주신 은혜를 늘 기억하며 감사하게 하소서.
* 원문출처 : 한절한절 따라가는 성경묵상(https://cafe.naver.com/fmqap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