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소화 / 이원규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화무 십일홍
비웃으며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
내내 핏발이 선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
오래 바라보다
손으로 만지다가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두 눈이 멀어버리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
기다리지 않아도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이라면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
- 이원규 시집 <옛 애인의 집>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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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소화라는 어여쁜 궁녀가 있었는데 임금의 사랑을 받게
되어 빈의 자리에 올랐다. 그런데 빈에 오른 이후 임금은
빈의 처소에 찾아오지 않았다. 다른 비빈들의 시샘과 음모에
궁궐의 가장 깊은 곳까지 밀려난 그녀는 임금이 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담가를 서성이기도 하고 담 너머로 눈길을
보내기도 하며 애를 태우는 사이에 세월은 흘러 ‘담가에 묻혀
내일이라도 오실 임금님을 기다리겠노라’는 유언을 남기고
쓸쓸히 죽어갔다.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어느 한여름,
모든 꽃과 풀들이 더위에 눌려 고개를 떨굴 때 빈의 처소를
둘러친 담을 덮으며 주홍빛 꽃이 넝쿨을 따라 피어났는데
그 꽃을 ‘능소화’라 한다. ‘문화원형백과’가 전하는 이야기이다.
‘능소화(凌霄花)’는 능소화과에 속하는 중국 원산의 낙엽 활엽
덩굴나무로 가지에 흡착근이 있어 다른 물체에 붙어 올라가
10m까지도 자란다. 이에 하늘 높이 오른다 하여 능소(凌霄),
즉 ‘하늘을 능멸하다’는 의미로 이 꽃을 ‘하늘을 이기는 꽃’
이라 한단다. 중국에서는 ‘금등화(金藤花)’라 부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양반들이 이 나무를 아주 좋아해서 ‘양반꽃’
이라고도 했으며, 평민들에게는 이 나무를 심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진한 주황색 꽃이 트럼펫 모양으로 모여 피는데, 한번
피기 시작하면 초가을까지 피고 지기를 반복한다.
해안가에서도 잘 자라고 공해에도 강하여 예전에는 주로
남부지방을 중심으로 사찰 담장이나 가정집 정원에서
키웠는데 근래에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볼 수 있는 꽃이다.
이원규의 시 <능소화>는 이 꽃을 오래 피는 꽃 그리고 사랑을
그리워하는 꽃으로 풀어낸다. 시 속 화자는 능소화를 일컬어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라 말한다. 왜냐하면 ‘화무십일홍 /
비웃으며’ 열흘이 아니라 이른 여름부터 가을까지 주구장창
피고지는 능소화이기 때문이다. 이를 ‘두루 안녕하신 세상이여’라
내뱉으며 능소화 붉은 빛이 ‘내내 핏발이 선 / 나의 눈총을
받으시라’고 말하는 것처럼 풀어낸다.
나는 죽어 꽃으로 피어났는데 그래, 너희들은 잘 살고 있냐는
비아냥일지도 모른다. 여기서 화자는 ‘사랑이라면 이쯤은
돼야지’라 한다. 바로 능소화에 얽힌 어느 궁녀의 이야기를
바탕에 깔고 있다. 기다림에 지쳐 죽은 그녀의 독이 올랐을까.
‘오래 바라보다 / 손으로 만지다가 / 꽃가루를 묻히는 순간 /
두 눈이 멀어버’린다고 하는 능소화. 한 때 능소화 꽃가루에
독이 있어 눈에 들어가면 큰 일난다고 법석을 떨기도 했다.
사랑이라면 그런 독한 사랑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여기서 궁녀의 기다림을 빗대어 ‘기다리지 않아도 / 기어코
올 것은 오는구나’라 하는데, 이는 임금이 찾아 온다는 뜻이
아니다. 그리움에 지쳐 죽어간 궁녀의 죽음이리라.
이 세상 어느 죽음이 슬프지 않겠는가. 기다림에 지쳐 죽은
궁녀 - 능소화로 화한 궁녀는 ‘주황색 비상등을 켜고 / 송이송이
사이렌을 울리며’ 임금이 아니라 ‘하늘마저 능멸하는’ 슬픔을
토해 냈으리라. 그러니 화자는 ‘슬픔이라면 /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라 말하는 것이리라. 열흘 붉은 꽃 없다 했지만
능소화는 백일 넘게 피고진다. 한 송이 떨어지고 나면 그 위에
다시 피어나고 또 지고나면 또 피고…… 이는 단순히 오래
피는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 님을 기다리다 죽은 한이 그렇게
독한 마음으로 표출된 것이리라. 게다가 꽃봉오리 채 툭 떨어져
버리는 능소화를 보면 깨끗한 죽음까지 연상되지 않는가.
시인은 능소화의 특성은 물론 전해오는 이야기까지 잘 알고 있다.
그 이야기들이 시인의 눈을 통해 능소화 예찬으로 승화한다.
수미상관으로 첫 행에 ‘꽃이라면 이쯤은 돼야지’라 하고는
마지막 행에서는 ‘슬픔이라면 / 저 능소화만큼은 돼야지’라
강조한다. 시인의 말을 따라가다 보면 붉은 색이 마치 기다림에
지쳐 죽어간 궁녀가 토해낸 핏빛으로 보이기까지 한다.
게다가 시력을 잃을 정도의 독까지 품었다니 더 그렇지 않겠는가.
이른 여름부터 가을까지 피고지고 또 피고지는 능소화. 그 꽃에
얽힌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시인이 왜 ‘돼야지’라 예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 시인의 예리한 시각 그리고 통찰력이 시로
승화하여 능소화를 예찬하고 있지 않은가
/ 이병렬 시인
[출처] 이원규 시인 8|작성자 동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