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본 영화가 우리나라 영화관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게 1998년 10월부터이니 올해로 6년 째다. 기따노 다께시 감독의 '하나비'를 필두로 몇 편의 영화가 수입되었는데 그 중의 하나가 '나라야마 부시코'이다. 당시 정부는 일본 영화를 개방하면서 해외영화제 수상작이나 우리나라 배우가 출연한 영화로 한정시켰었다. '나라야마 부시코(Narayama bushiko)'는 1983년 깐느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했다. 그런 영화를 우리나라에서는 1999년에 보게 된 것이다. 무려 17년이 지난 후에... 이 영화의 감독인 이마무라 쇼헤이는 83년에 이 영화로, 97년에는 '우나기'라는 영화로 깐느영화제 그랑프리를 두번이나 수상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된 '붉은 다리 아래 따뜻한 물'도 그의 작품이다. 이 영화는 일본판 고려장 전설을 다루고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사람키를 넘는 눈이 지붕을 덮은 두메산골 마을의 설경이 펼쳐진다. 아무런 생각없이 본다면 참으로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감독은 그런 관객들에게 오히려 공포영화 인트로로 어울릴 만한 분위기의 배경음악을 삽입함으로써, 싸구려 감상주의에 호락호락하게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와 먹고살기 힘든 시대의 곤궁한 삶을 복선으로 깔아두는 치밀함을 잃지 않는다. 산골에서의 겨울은 살아남기 위한 투쟁의 시간이다. 겨울에 태어난 남자 아이는 산 채로 버려지고 여자 아이는 팔려간다. 70세가 되면 노인들은 산자들을 위하여 나라야마(우리 말로는 나라산)로 떠나야 한다. 다시 봄이 오고 69세가 된 오린 할머니는 다가오는 겨울 나라야마로 떠나기 위한 준비를 한다. 할머니는 돌절구에 이빨을 찧어 자신이 죽을 만큼 쇠약해졌음을 보여주려고 한다. 오린 할머니의 아들 다츠헤이는 그런 어머니를 도저히 산에 보낼 수 없어 괴로워하지만 마을의 율법은 그걸 용납하지 않는다. 결국 다시 겨울이 오고 다츠헤이는 오린 할머니를 지게에 지고 나라야마로 향한다. 산 정상에는 해골과 뼈들이 즐비하다. 할머니를 두고 내려가는 길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다츠헤이는 눈이 오는 날 나라야마에 간 오린 할머니가 참 행복하다고 생각하며 산을 내려온다. 이 영화는 작가 후가자와 시치로의 두 작품, 노인을 버리는 전설을 토대로 한 '나라야마 부시코'와 농촌의 성을 묘사한 '동북의 신무여'를 한데 모아 모자간의 정, 생과 사의 근원을 추구했다. 원작은 1958년에 기노시타 게이스케(Kinoshita Keisuke) 감독이 영화화해 일본내 영화상을 휩쓸기도 했던 작품의 리메이크작이기도 하다. 언제인지도 모를 머나먼 옛날 일본 산촌의 원시적 생활상을 장면마다 그려낸 이 작품은, 선악에 대한 가치판단이나 윤리 도덕의 기준이 없다. 액운을 피하기 위해 동네의 모든 남자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여자이야기 정도는 오히려 점잖은 편이다. 그들에게는 부끄럼도 없고, 죄책감도 없다. 동물과의 섹스에서 생매장까지 갖가지 기담을 통해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욕구를 리얼하게 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느낌은 감독이 배우와 스탭을 이끌고 산속 폐촌에서 2년동안이나 함께 생활하며 찍은 결과라고 한다. 아직도 장면 하나하나가 내 머릿 속에 남아있을 만큼 영화는 상당히 충격적이다. 20분 가까이 침묵 속에 펼쳐지는 오린 할머니와 아들 다츠헤이의 이별 장면은 처절한 생존본능에서 피어난 부모자식간 절절한 사랑의 깊이를 가슴 아프도록 일깨워준다. 입맛을 다시며 오린을 노리는 참을성 없는 까마귀떼와 즐비한 해골들, 그 사이에 얼핏 웃음을 머금은 채 합장한 오린의 모습은 그 자체로 삶의 진실을 설파하는 심오함이 깃들여 있다. 삶의 바닥에서 높은 곳까지 그렇게 가뿐하게 오간 감독은 마지막 방점을 찍듯 눈내리는 나라야마 산의 한 구석을 또 그렇게 영상으로 비춰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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