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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낭비
어느새 한해가 홀딱 지나갔다. 느닷없이 ‘홀딱’이란 단어를 쓴 이유가 있다. 이 요염한 부사어를 쓴 까닭은 그 의미가 아주 적절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사전에서 ‘홀딱’의 예시어는 ① “아이들은 모두 옷을 ∼ 벗고 개울로 뛰어들었다”이다. 2024년을 보내는 마당에 이만한 표현은 지나치지 않다. 마치 시간을 서둘러 벗어던지듯, 개울가의 아이들처럼 한 해가 이미 홀라당 벗겨진 상태다.
물론 두 번째 예시문도 있다. ② “개천을 ∼ 뛰어넘다”인데 마치 힘차게 뛰거나, 뛰어넘는 모양을 표현한다. 기왕에 지나간 세월은 흘러간 것이고, 성큼 내일로 미래로 내딛을 준비를 하는 기세가 느껴진다. 어느 입장이든 겨우 사흘도 채 남지 않은 2024년을 떠나보내며 미련이 많이 남은 것은 무심한 세월 탓만이 아니다. 시간을 깨소금처럼, 참기름처럼 아껴 쓴 사람이라면 공감할 것이다.
미카엘 엔데(Michael Ende, 1929-1995)는 <모모>에서 시간의 교훈을 이야기한다. 주인공은 시간 도둑들인 회색사나이들과 훔친 시간을 다시 찾아주는 꼬마 소녀 모모이다. 이발사 푸시 등 사람들은 회색사나이들의 유혹에 쉽게 넘어간다. 남아도는 시간이 많아서가 아니다. 시간에 대한 가치 기준을 획일적으로 적용하니 낭비적 요소처럼 보인 것이다.
다만 ‘시간은 금’임을 신봉해온 현대인이라면 의심할 것이다. 시간은행은 과연 미래를 담보해 줄 수 있을까? 그동안 희망이란 약속 어음이 어떻게 휴지 조각으로 변해왔는지 수없이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시간의 총량 법칙이 있다면, 쓸데없이 낭비하는 시간을 시간은행에 맡기는 것은 현명해 보인다. 그러나 하루 24시간도 부족하게 사는 사람들은 시간전당포를 활용해 미리 시간을 당겨쓸 위험도 도사린다.
프랑스 작가 마르셀 에메(Marcel Ayme, 1902-1967)는 조금 더 매력적인 제안을 한다. 그 역시 미카엘 엔데처럼 어린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환타지 세계로 초대한다. 마르셀 에메는 누구나 시간을 가졌지만 시간에도 부익부, 빈익빈이 있다고 한다. 심지어 시간을 쿠폰으로 거래하는 나라가 있어, 남는 시간을 팔 수도 있다고 하였다.
예를 들어 하루하루가 고달픈 가난한 사람은 그 시간을 부자에게 팔아넘길 수 있다. 날마다 겪는 고달픔도 피하고, 게다가 돈도 버니 일석이조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다. 만약 2025년 새해를 시작하면서 열흘을 팔았다면 그는 12월 31일에 잠들어 1월 10일에 깨어날 것이다. 과연 지혜로운 선택일까? 물론 입버릇처럼 킬링타임이란 말을 쓰는 사람도 있다. 평소 시간 죽이는 방법에 몰두하는 그런 사람이 있다면 빈둥거리지 말고 시간의 장터를 활용하는 것이 영특하다.
시간 도둑이든, 시간 거래든, 더 이상 동화같은 소설에 머물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구글이나 테슬라, 혹은 쿠팡에서 그런 상품을 만들지 않을까 싶다. 요즘 핫한 비트코인, 이더리움, 리플과 같은 디지털 자산거래소는 얼마 전까지 전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사람들이 실체를 만질 수 없는 것을 거래하듯, 시간 거래를 상상하는 것은 터무니없는 시간 낭비가 아니다. 세상에는 씨도 먹히지 않는 소설 역시 참 많기 때문이다.
나폴리에서 유래한 ‘카페 소스페소’ 문화가 있다. 소스페소(sospeso)는 ‘달아둔’, ‘미루어진’이라는 뜻을 가진 이탈리아어인데, ‘달아둔 커피’(카페 소스페소)는 커피를 마시고 싶지만 가난해서 마시지 못하는 누군가를 위해 나누는 행위를 뜻한다. 혼자 와서 두 잔을 주문해 누군가를 위해 ‘달아놓는’ 것이다. 소스페소 문화는 핏자 가게든, 미용실이든 얼마든지 적용과 응용이 가능하다. 요즘 집회 현장에 ‘달아둔’ 이름표가 붙지 않은 음식과 음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해마다 연례행사로 반복해 온 걷기도는 그야말로 시간 낭비였다. 올해도 경북 영천-경주-울산을 건너뛰며 걸었다. 얼마 남지 않은 2024년이 아까워 번번이 금쪽같은 시간을 탕진하는 셈이다. 태화강 변을 걸으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너무 많은 것을, 너무 어려운 것을 내년으로 다 옮길 생각 말고, 세월과 함께 흘려보내자.’ 오는 새해에도 시간과 역사의 주인이 ‘달아두신’ 수많은 선물을 향유하게 될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그렇게 2025년이 코앞에 닥쳤다.